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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미술이 자본이 된 이야기를 시작하며 .............5
1. 미술과 미술제도의 등장: 길드, 아카데미, 시장 ......... 27 에피소드 1/ 겸재의 그림을 북경에서 팔다 .....................66 2. 아카데미를 대체한 거대화상의 네트워크: 세계 미술시장의 형성.....71 에피소드 2/ 낙랑파라, 그리고 한국의 뒤랑-뤼엘 .......105 3.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변증법 ...........111 에피소드 3/ 내 이름은 빨강 ............153 4. 앤디 워홀은 왜 비싼가?: 소비사회와 포스트모더니즘.....................................159 에피소드 4/ 도입의 역사를 명작의 역사로 ......................200 5.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미술: 데미안 허스트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207 에피소드 5/ 격차가 해소되면 비로소 차이가 보인다 ..........................................243 6. 나쁜 새 날들: 21세기의 상황 ......................249 에피소드 6/ 흔들리는 기존 미술시장의 지형도 ............299 닫는 글/ 서구 근대 이후의 미술을 위한 단상 ...............305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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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는 평가에 있어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 초점을 맞추는 제도입니다. 작가의 개성이 아닌 아카데미의 단일한 규범에 따라 그릴 때에는 작가보다 작품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살롱에서의 포상이 늘 유명한 대가들에게만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살롱의 심사가 개별 작품의 질적 평가에 치중한 결과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카데미에서도 심사위원들이 심사할 역량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살롱 출품작 수가 너무 많아지자 일정 자격을 갖춘 작가들은 심사를 면제해 주면서 심사에서 작가를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 p.98 “아카데미를 대체한 이 새로운 시장 중심의 미술제도는 과거 교회와 국왕, 귀족들을 대신해서 새롭게 사회의 최상위계층으로 부상한 부르주아계층, 즉 산업자본가들에 맞도록 생겨난 제도입니다. 아카데미가 왕실에 소속되었던 소수의 엘리트 작가에 의해서 처음 결성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수요층인 부르주아 고객들과 연결된 국제적인 화상들의 네트워크에도 소수의 선택받은 작가들만이 포함되었습니다. 많은 수의 작가가 동시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살롱은 더 이상 작가의 등용문으로서 기능하지 못했고, 걸작보다 천재를 찾으면서 그룹전보다 개인전이 선호되었습니다.” --- p.103 “인상주의 화가들은 본격적인 화상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1880년대 말까지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아카데미 체제하에서 아카데미 회원은 왕실과 국가의 보호 아래 귀족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카데미가 쇠퇴하고 화상이 활약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 새로운 구매자로 등장한 신흥 사업가들은 아카데미의 유명한 화가만을 찾거나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만을 선호했습니다.” --- p.117 “실제로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품가는 이후 소더비, 크리스티 등의 경매에서 꾸준히 상승하면서 미술품이 훌륭한 자본의 증식수단이 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장의 확인을 통해 미술사에서 모더니즘의 계보가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미술사에 남는 주요 작가는 비평가나 미술사가,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이 함께 선별합니다.” --- p.136 “모더니즘은 현실과 괴리된 채 예술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아방가르드는 현실 사회와 괴리된 예술을 다시 일상의 삶에 통합해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했으나, 모더니즘이 추구한 아름다움을 아방가르드가 추구한 삶의 영역으로 통합하는 일은 예술이 아닌 상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방가르드가 의도했던 사회적 비판기능은 오히려 상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데 전용되어 소비사회를 더욱 공고히 할 뿐입니다.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포식자를 상대하면서 소비사회의 예술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 p.170 “워홀에 대한 높은 평가는 소비사회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작품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거꾸로 소비사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워홀의 소재는 사실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으며, 특히 「재난」 시리즈의 경우에는 역겹고 추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가 아름다움에 무심한 이유 역시 소비사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변기와 같은 아방가르드 작품이 제도화된 순간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필요조건으로 요청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p.177 “좋은 그림은 값이 비싸고, 비싼 그림은 좋은 그림이라는 이 평범한 인식이 그의 작업을 시작하게 한 허스트의 통찰이었습니다. 2007년에 발표된 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과 비즈니스가 중첩되는 범위와 수준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생산중심사회에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중시되고, 소비사회에서는 인간의 구매력이 중시됩니다. 따라서 소비사회는 자연스럽게 금전을 중시하게 되고, 가치는 점점 더 화폐, 즉 가격에 의해 평가받게 됩니다. 그래서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해서 허스트는 가장 비싼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 p.225 “비판적 작업을 하는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다른 아방가르드 작업과 달리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이기보다는 다분히 지적입니다. 그도 허스트와 마찬가지로 소비사회를 살았지만 그들과 달리 그는 소비사회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성애자로서 에이즈로 먼저 사망한 그의 동성 연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가 자신의 연인을 떠올리며 사용한 사탕이나 전구가 매달린 전선과 같은 관습적이지 않은 작품의 재료는 관람자로 하여금 저마다의 다양한 상상을 가능케 합니다.” --- p.232 “시장 중심의 세계 주류 미술계는 그 중심에 위치한 서구 주요 미술관과 큐레이터들이 일종의 인증기관 기능을 담당하고, 서구의 메이저 갤러리와 경매회사가 그 작가들의 작품을 유통시키면서 작동합니다. 미술계와 시장이 긴밀하게 연계되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예술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고, 갤러리의 작가 및 작품관리가 철저하며, 컬렉터의 기반도 탄탄해서 서구의 미술시장은 매우 안정적입니다. 반면 역사가 일천한 주변국의 미술시장은 아직 시장의 부침이 극심한 취약성을 보이고 있어서, 경제력 비중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세계미술계와 미술시장은 여전히 서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 p.274 “따라서 이와같이 탈물질화된 미술작품을 NFT로 만드는 행위는 사실상 탈물질화된 작품을 재물질화시킨 것입니다. 미술작품은 현행법상 저작권이 작가에게 귀속되므로, 단지 원본 파일을 NFT로 만들었을 때 그 가치는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파일을 저작권과 함께 NFT로 만들면, 이는 이론적으로 언제든지 동일한 원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천만 원씩 하는 워홀의 복제판화는 난센스가 아닐 수 없으며,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원본의 재화로서의 가치도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블록체인기술이 원본을 완전히 보장하고, 네트워크상에서 사본의 복제가 완전히 통제가 되는 등 주변적인 기술적 여건이 모두 충족된다면, NFT는 아마도 현재의 원본의 지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 p.281-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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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시장에서 위축된 한국미술의 위상 바로잡기
오늘날 세계 미술계 및 미술시장은 서구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 가고시안 갤러리를 비롯한 서구의 주요 갤러리들이 막강한 파워를 통해, 한편으로는 갤러리 전속권한으로 작가들의 시장진입을 관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트바젤을 비롯한 세계적인 아트페어의 참여갤러리 선발권을 행사하면서 갤러리들의 세계 주류 미술시장의 진입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이런 세계미술시장의 질서는 19세기 중후반에 아카데미가 쇠퇴하면서 화상들과 시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서된 미술제도에 뿌리를 두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세계경제에서 서구의 비중은 절대적이었으나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서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0% 이하로 내려앉았고, 중국을 비롯하여 중화권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의 비중이 1/3 이상으로 급등하면서 세계미술의 지형도에 변화가 요청되는 상황이다. 사실 최근 과학의 발전과 생태 및 자본주의의 위기는 지난 이백년의 서구 근대에 파열을 예고하며, 지난 십여 년 동안 세계 사상계는 이른바 실재론의 전회를 통해 서구 근대의 인간중심적 사유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어둡다. 세계화로 인해 서구 유명작가들의 수억 원대 작품에 더해서 수천만 원대의 판화까지 가세하면서 비서구 미술시장을 잠식하며 로컬 미술의 생태계 자체를 고사시키는 중이다. 이는 미술품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는 최근 신규 컬렉터들의 구입패턴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 책은 이런 미술계 및 미술시장의 최근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수년간 금융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미술시장의 작동메커니즘을 관찰하고 관련 논문들을 발표했던 경험을 기초로, 현재 세계 미술시장에서 비정상적으로 위축된 한국미술의 위상을 바로 잡기 위한 효과적인 처방전을 제시한다. 첫 번째, 먼저 서구의 시장 중심 미술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면밀이 살펴서 미술시장의 각 주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과거에서 배워야 할 사실을 정리한다. 두 번째는 오늘날 세계 경제상황, 특히 2000년 이후 과도하게 통화가 풀리면서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미술품과 같은 실물자산의 가치가 오르면서 기존의 미술 개념에 생기는 변화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 코너에서 관련 내용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간략히 비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이 세계미술계에서 정당한 발언권과 시장규모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도뿐만 아니다. 미술사적으로는 제도의 변천사를 기술한다는 학술적인 의의가 함께한다. 그동안 서구 미술제도의 변천에 대한, 특히 길드, 아카데미, 시장으로 이어지는 변천사 연구의 부재를 이 책이 메워준다. 그리고 모더니즘 미술이 시작에서부터 서구 근대를 예고한 르네상스의 원근법적 시각질서에 반발하면서 반근대적 요소를 품고 있었으며, 따라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백여 년의 서구미술은 이중혁명(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도래한 서구 근대와 함께 그에 대한 비판의 역사로 일관했음을 드러낸다. 이는 그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구분된 시기가 결과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서구 근대의 비판이자 연장이었음을 직시하고, 최근 실재론적 논의가 선사하듯 21세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사실상 서구 제국의 식민지 출신인 한국의 세계 주류미술 진입은 이미 서구 근대와 단절의 일종이라 하겠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 자체가 새로운 천년, 즉 21세기 세계미술을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발언하는 작업의 씨앗이 되기를 의도한다. 서구 미술시장의 발자취와 한국미술의 동향 오늘날은 서구 근대로 표현되는 지난 이백여 년의 사고와 질서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인류세와 팬데믹으로 대변되는 생태적 위기, 2000년 이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규모 통화방출을 통한 임기웅변적 대응, 세계경제에서 중국을 비롯한 비서구 경제 비중의 급격한 상승, 달러 기축통화 체제 및 국가독점 발권력에 대항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대안적 발권 및 금융의 모색, AI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활환경의 다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서구 근대가 진리로 신뢰했던 자연과학인 뉴튼역학의 상대화 등으로 인한 사고와 질서의 변화가 그것이다. 게다가 지난 십수 년간 다양한 명칭의 실재론적 사상가들도 기존의 인간중심적 근대 담론과 과격하게 단절하는 사유를 전개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책은 현재의 일방적으로 서구 중심적인 서구 미술계 및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경제력에 상당하는 미술의 발언권과 시장규모를 확보하기 위해 서구 미술시장의 발자취와 최근의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1장 「미술과 미술제도의 등장: 길드, 아카데미, 시장」 .에서는 근대적인 화상과 미술시장이 등장하기 이전의 전사(前史)에 해당한다. 서구에서 미술이라는 분화된 영역이 인식되고, 그와 함께 미술에 관련된 제도로서 중세의 길드와 왕정사회에서의 아카데미, 그리고 시민들의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시장의 생성과정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는 서구 미술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에피소드 1’ 「겸재의 그림을 북경에서 팔다」에서는 조선시대 도화서라는 법적 기구의 존재와 문인화가와 직업화가의 구분 등 서구와 차별화된 우리의 제도적 상황을 조명한다. 2장 「아카데미를 대체한 거대화상의 네트워크: 세계 미술시장의 형성」에서는 근대적인 화상이 등장하는 상황을 다룬다. 서구 왕정시대에 설립된 아카데미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작가들의 관리를 대신 맡으면서 등장하는 서구의 근대적 화상의 발전과정을 살펴본다. 이들이 화상들끼리의 연계와 작가, 비평가, 자본가, 미술관, 해외화상 등의 연계를 통해 오늘날의 미술계를 형성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에피소드 2’ 「낙랑파라, 그리고 한국의 뒤랑-뤼엘」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전에 백화점 갤러리와 다방이 화랑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과, 해방 이후 화랑들 중에서 ‘명동화랑’(1970~82)이 서구의 화상과 유사한 노력을 기울였던 점 등을 확인한다. 3장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변증법」에서는 서구에서 인상주의와 함께 모더니즘이 도래하고, 그에 대한 반발로 아방가르드가 등장하는 과정을 확인한다. 이와 함께 인상주의는 서구 근대 인식론과 자연과학적 사고를 반영한 일점투시원근법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그 점에서 인상주의로 시작되는 모더니즘은 명칭과 달리 반근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시작했고, 시기적으로 모더니즘의 비판으로 등장했던 아방가르드를 포괄하면서 모더니즘 시기 자체가 모더니즘과 반모더니즘이 혼재된 시기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에피소드 3’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서구의 회화에 대한 관점과 조선과 동아시아에서의 관점이 어떻게 달랐으며, 그런 상태에서 갑작스레 서구미술을 도입하게 되면서 고전주의, 즉 원근법과 모더니즘의 길항이라는 서구의 이분법이 아니라 서구미술과 전통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했음을 확인한다. 4장 「앤디 워홀은 왜 비싼가?: 소비사회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전후 후기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소비사회가 되고, 그 시대의 미술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을 앤디 워홀(1928~87)이라는 대표적인 작가를 통해서 파악해본다. 또 반근대의 요소를 내표했던 모더니즘에 이어, 전후미술에서의 물질과 행위에 대한 강조, 이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근대에 반발하는 미술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에피소드 4’ 「도입의 역사를 명작의 역사로」에서는 한국미술에서 이런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로서의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문제의식을 전통적 사유를 통해 소화함으로써 서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전통이 혼합된 ‘단색화’라는 회화양식을 낳게 되는 상황을 확인한다. “분업화된 노동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을 하고 의식주를 인스턴트로 소비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처럼 흙의 자국, 풀잎의 방향, 바람의 냄새, 나무에 붙은 흙이나 털 한 올, 이런 모든 것이 의미를 지니면서 다가오는 주변의 세계를 느낄 수 없습니다. 워홀의 표면뿐인 작품은 이렇게 삶의 두께와 밀도를 상실한 현대인의 삶을 환기시켜 줍니다.”(185쪽) 5장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미술: 데미안 허스트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동구의 붕괴에 의한 세계화의 상황 속에서 구매력, 즉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 변화를 데미안 허스트(1965~)의 작품과 행보를 통해 살펴본다. 그의 돈으로서의 미술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제도에 편입되지 않으면서 체제에 편승해서 바이러스처럼 비판을 수행하는 미술을 시도했던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96)의 작업을 대비하면서 이 시기 전혀 다른 두 종류의 미술이 분화하고 공존함을 기술한다. 특히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을 통해 이제 미술이 추구하는 미는 시각적 미가 아닌 지적 아름다움 내지는 지적 통찰을 제공하는 일종의 도끼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와 동아시아의 문인화를 비교한다. ‘에피소드 5’ 「격차가 해소되면 비로소 차이가 보인다」에서는 근대화의 완수와 함께 미술 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억압되었던 비판이 분출하면서 민중미술이 도래하고, 그와 함께 서구미술과 동시대성을 확보하면서 나타나는 포스트 민중미술과 포스트모던 작업들이 등장하는 것을 살펴본다. “워홀이 유명상표와 유명인사의 이미지로 자신의 작품을 동어반복적으로 광고했다면, 허스트는 도처에 널려 있는 죽음의 공포에서 죽음의 상품가치와 광고가치를 읽어냈습니다.”(221쪽) “허스트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생생하게 대변한다면, 곤잘레스토레스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예술로서 의미를 지닙니다.”(239쪽) 6장 「나쁜 새 날들: 21세기의 상황」에서는 2000년대 이후의 상황을 다룬다. 2008년 세계위기와 2020년의 팬데믹으로 인해서 풀린 전세계적인 과잉통화와 그로 인해 미술품이 점점 더 화폐와 같은 위상을 차지하면서 서구 유명작가의 판화제작 및 판화가격의 상승등 작품이 점점 더 가치저장수단으로서 작동하는 현상을 기술한다. 이와 동시에 디지털화로 인해 그간의 매체와 장르의 구분이 단지 표면효과의 차이일뿐, 모든 미술이 디지털 코드로 환원되면서 최근 메타버스와 NFT미술 등 전혀 새로운 매체와 장르의 등장과 같이 기존의 미술 개념에 나타나는 균열 양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지난 백여년간 진행되어온 서구 근대에 대한 비판이 비로소 서구 근대에 파열을 내면서,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권이 작품에서나 담론에서 새롭게 세계미술에 발언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에피소드 6’ 「흔들리는 기존 미술시장의 지형도」에서는 우리 미술시장에서 눈에 띄는 장면들을 살펴보며,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기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전망한다. 저자는 「닫는 글」에서 ‘도대체 이 급변하는 동시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모두가 느끼는 의문을 소환하며, 서구 근대 이후의 미술을 위해 필요하다고 느낀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한다. “그렇다면 한국미술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한편에서는 작가 수와 전시의 양적 증가를 말하고 있는데 한국미술의 질적 성장이 왜 이렇게 더딘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 “미술은 그것을 미술로 간주하는 것, 바꿔 말해 그것에 대한 담론 없이는 불가능하다”라는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지적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서구미술의 도입의 역사로 기술된 우리 미술사를 우리 독자적인 성취의 역사로, 즉 명작의 역사로 다시 써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도 자체적인 담론 생성의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30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