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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5
그림 목차 10
표 목차 11

제1장 경주는 어떤 곳인가

1. 중앙부와 주변지역 15
2. 지형과 하천 22
3. 인구와 문화재 분포 30

제2장 신라의 천년 수도

1.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39
2. 사로국·계림·신라 45
3. 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55
4. 궁궐이 어디 있나 73

제3장 왕은 부처이다

1.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 89
2. 이웃 나라는 항복하고 99
3. 짐은 호국대룡이 되어 111
4. 나라 보존의 길을 아노라 121

제4장 평생 충효스럽게 살겠다

1. 충성은 최고의 덕목이다 131
2. 계림은 누런 잎이요 145
3. 효도는 인생의 근본이다 155

제5장 사랑은 해와 달 같다

1. 삶의 활력소 177
2. 쟁취하는 사랑 189
3. 사랑 이상의 것 201

제6장 경주 서부의 화랑도

1. 모량·금척·작성 213
2. 바위를 칼로 베다 222
3. 주사산·여근곡·부산성 233
4. 위대한 유산 242

참고 문헌 249
찾아보기 251

저자 소개 2

경북대학교 문학사, 문학석사, 대구대학교 행정학박사, (전) 경북과학대학교 교수, (현) 사단법인 석정 윤세주열사 기념사업회 회장 주요 저술: 민요로 살펴본 밀양(2019, 고양: 공동체), 밀양 순례(2018, 고양: 공동체), 조선시대 밀양지역의 촌락연구(2016, 향토문화 31, pp. 195-252), 청도군의 촌락유형(2013, 금구논총 16. pp. 197-207), 경주 불국사의 입지특성(2005, 금구논총 11. pp. 18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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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74쪽 | 384g | 153*216*20mm
ISBN13
9791187508663

책 속으로

신라 멸망 후 천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경주의 무엇이라도 쇠나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견뎌 왔겠는가? 금성·월성·동궁·북궁 등 수많은 궁성도 사라지고, 황룡사도 불탔으며, 요컨대 땅 위의 것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까진 없다. 그러한 것을 성취했던 신라인의 도전·모험·지혜·용기·공덕을 들추어내어 새롭게 되새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일 것이다.
--- p.5

요컨대 대릉원 일대의 고분은 경주선상지의 지형적 특성에 적응하여 지상에 축조된 대형 무덤이다. 선상지에서 걷어낸 돌무더기를 쉽고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방법이 적석목곽분이라는 신라 특유의 묘제였다고 생각된다. 내물왕 이래 김씨의 왕족은 이전의 박씨나 석씨 왕릉보다도 전혀 새롭고 전례 없이 거대한 고분을 축조하였다. 왕권의 위엄을 경주분지의 멀리까지 드러내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 p.63∼64

경문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장본인이다. 왕이 즉위하자 갑자기 귀가 길어졌다는 이야기가 왜 만들어졌을까? 왕의 맏사위가 된 데다가 왕좌에 올랐으며, 더구나 미모의 둘째 공주까지 차지하게 되었으니, 어찌 뭇사람의 시기와 질투가 없었겠는가! 경문왕을 질시하는 더 끔찍한 이야기도 있다.
--- p.81

사절유택은 왕이 별궁 또는 이궁으로 삼았거나 귀족이 경주의 다른 곳에 선택적 거처로서 마련했을 수 있지 않을까? 왕이 순행?행락?요양을 위해 지방에 임시적 처소를 두듯이 귀족 역시 지방의 전장田莊을 관리하기 위해 곳곳에 여러 채의 집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사절유택은 인간의 다양성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국왕이나 귀족의 부귀를 반영하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 p.85

이야기책으로 『삼국유사』를 처음 읽었을 때 황룡사 구층탑은 터무니없었다. 구층탑 하나 세운다고 이웃 나라가 와서 항복한다고? 너무 황당한 발상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장륙존상을 채 반년도 걸리지 않아 만들었고, 높이 80미터의 목탑을 2년 만에 완성하였으며, 그 시대의 경주 인구가 100만 명에 근접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이전의 성급과 경망을 부끄럽게 여겼다.

신라가 그러한 막강한 인력, 자재 동원의 경제력, 축적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웃 나라는 항복하고’는 결코 허황한 장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제야 백제 기술자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구층탑의 찰주를 세우는 날 아비지가 백제 멸망의 꿈을 꾸었겠는가.
--- p.108

신종의 주조는 에밀레종 설화에 언급되었다시피 여러 차례 실패를 반복했다. 오래 전 754년에 신종의 4배에 이르는 황룡사종도 거뜬히 만들어냈는데 왜 실패했을까? 신종의 완성이 771년까지 지연된 것은 경주의 지진이 765년(경덕왕 24년), 767년(혜공왕 3년), 768년(혜공왕 4년), 770년(혜공왕 6년)에 집중하였던 것을 감안할 때 지진의 영향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또한 종소리가 지상의 100리까지는 물론이고 지하 깊은 곳의 도산刀山지옥까지도 스며들 수 있는 그윽한 것이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더엉∼ 더엉∼ 울려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 땅울림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 p.128

물계자의 정황은 어느 시대에도 발생할 수 있다. 오늘날의 조직사회에서도 아랫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 또는 기술을 제시했지만, 그것을 윗사람이 가로채 간혹 자신의 공로로 치부하곤 한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윗사람과 회사에 항의하여 보상을 얻어낼 것인가? 또는 인내하여 역량개발에 더욱 매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회사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투명하고 자유로운 다른 회사를 찾아볼 것인가? 충성할 것인가 자유를 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p.133

출가수행자가 아닌 김대성이 기념비적 사찰을 지어 승가僧伽에 준 것은 일반의 불자佛子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공덕이었다. 이러한 김대성의 덕목?리더십?신앙심에 비추어볼 때 불국사와 석굴암은 더욱 빛나는 우리의 문화적 유산으로 평가될 수 있다.
--- p.171

인력은 국가적 자산이었다. 앞에서 사다함의 경우에 보았다시피 전쟁의 주요 노획물이 포로였을 정도였다. 땅을 기름지게 가꾸던 사람이 하나둘 떠나면, 토지가 황폐하게 되므로 ‘해와 달이 광채를 잃는’ 것이나 진배없다. ‘손수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더니 빛을 되찾았다는 것은 노동의 가치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듯하다. 이처럼 남녀의 사랑이 없으면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니, 연오랑 설화는 거의 시적詩的 통찰력과 발상을 보여준다.
--- p.179

필자는 경주를 찾는 사람에게 ‘믿는 것만큼 보인다’고 귀띔하고 싶다. 경주는 샅샅이 뒤질수록 경이로운 도시이다. 전성기의 왕도는 178,936호였다고 하니, 줄잡아 인구 100만 명의 도시가 아니었나?. 황룡사는 오늘날 건물 주춧돌만 남았지만, 장륙존상과 구층탑이 서 있었던 곳이다. 장륙존상은 높이 5미터였으며, 573∼574년의 불과 몇 달 만에 이뤄낸 것이었다. 황룡사 구층탑은 높이 80미터에 이르는 목조건물이었다. 신라의 야금술과 건축술 수준이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 p.243

어깨동무 시동무 / 고무집이 타당탕 / 짚나래끼 내동무 / 고무집이 타당탕
어린이도 어깨동무하면, 짚나래끼도 비벼 꼬면, 상상 이상으로 튼튼해진다. 그리하여 고무집(곰의 집)을 타당탕 무너트릴 수 있다니 얼마나 기특한 노래인가! ‘짚나래끼’ 같았던 신라가 ‘고무집’ 같은 백제나 고구려를 정복했으니 이 동요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

--- p.247∼248

출판사 리뷰

『삼국유사』가 필독의 교양서적이라지만 제대로 읽은 독자는 많지 않다. 이야기책으로 읽든 역사책으로 읽든 개개 항목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기초지식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설화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이해가 빠르고 읽어 내려가기에 한결 수월하다. 경주 시내에 산재하는 문화재와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에 덧붙여 민요까지 들려주므로 신라의 역사를 읽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다양한 참고문헌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표, 사진 또는 그림을 수록하여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편집한 것도 이 책의 한 특징이다.

『경주와 삼국유사』는 독자에게 『삼국유사』의 구석구석을 모두 읽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일부의 사람은 불탑, 불상, 사찰 등의 장황한 언급에 지루할 수 있고, 다른 일부는 정치사회적 사건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가족, 사랑은 보편적인 주제이므로 이 책은 개개의 주제가 신라인에게 어떤 의미이었는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청소년이 자신의 국가관, 가족관, 애정관을 나름대로 형성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책 내용

「제1장 경주는 어떤 곳인가」
경주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경주가 친숙한 관광지라지만 지역적 특성을 꿰고 있는 관광객이 많지 않다. 읍면동邑面洞의 지명, 지형과 하천, 인구 및 문화재 분포, 경주국립공원 등에 대해 간략하게 썼다.

「제2장 신라의 천년 수도」
신라의 천년 수도 ‘경주’를 훑어본다. 『삼국유사』는 139개 항목 중에서 상당수가 경주와 인근 지역에 관련된다. 이들 항목은 당시의 경주를 복원하는 데 단편적이긴 해도 크게 도움이 된다. 신라가 진한의 사로국에서 고대국가로 발전하기까지 고분과 궁궐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제3장 왕은 부처이다」
법흥왕 때의 흥륜사는 신라 최초의 절이었고, 진흥왕 때의 황룡사는 최대·최고의 사원이 되었다. 감은사와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성한 문무왕의 숨결을 간직한 곳이고, 봉덕사의 성덕대왕신종은 한국종을 대표하는 범종이다. 개개 사찰의 창건에 수십 년을 쏟아부었고 거기에 얽힌 사연 또한 적지 않다.

「제4장 평생 충효스럽게 살겠다」
충성은 신라 초기에 최고의 덕목이었다. 물계자·박제상·사다함·김유신을 다루었다. 신라 중대 이후 정공·신충·최치원에게서 국운 쇠퇴의 단면을 그려보았다. 효도는 삼국통일 이후에야 인생의 근본으로 중시될 수 있었다. 귀족, 승려,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이 보여준 효행과 공덕을 살펴보았다.

「제5장 사랑은 해와 달 같다」
신라인의 사랑이 시대별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관찰한다. 남녀 간 사랑은 모든 시대의 대중적 주제였다. 제8대 아달라왕 때 ‘연오랑 세오녀’부터 제49대 헌강왕 때 ‘처용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유형별로 엮었다.

「제6장 경주 서부의 화랑도」
경주의 서부 지역을 조명한다. 건천읍·서면·산내면은 농업 지역이어서 관광객의 관심을 좀처럼 끌지 못하는 한적한 곳이다. 하지만 건천읍에는 몇 점의 문화재 이외에도 『삼국유사』에 선덕여왕·김유신·죽지랑·부산성·여근곡 등이 등장하고 있어 경시할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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