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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제1장 들어가는 말제2장 1880년대 조선-청 공동감계와 국경회담의 배경1. 19세기 후반 조선 북방 주민의 월경과 이산 2. 청의 월간 조선인 귀환 요청과 조선의 대응 1) ‘경진개척’과 청조의 대규모 월간민 발견 2) 청의 월간조선민 편입 정책3) 조선의 월간민 쇄환 요청3. 조선의 국경문제 제기와 청의 대응 1) 조선 지방당국의 문제 제기와 어윤중(魚允中) 2) 길림당국의 대응과 갈등의 확산3) 양국 정부 차원 교섭으로의 전개 제3장 제1차 공동감계와 국경회담 1. 제1차 공동감계의 실행 경과2. 제1차 공동감계 직후의 국경회담3. 제1차 공동감계국경회담 이후 양국 당국의 대응1) 길림당국의 반응2) 이중하의 보고와 조선정부의 대응제4장 제2차 공동감계와 국경회담1. 제2차 공동감계의 배경1) 중국 측의 반응과 공동재감계 제의 2) 조선 측의 ‘후퇴’와 ‘차지안치론’의 제기 2. 제2차 공동감계국경회담의 실행과 경과 1) 제2차 공동감계의 실행2) 제2차 공동감계와 국경회담의 내용3. 공동감계국경회담 이후 양국 정부의 반응1) 이중하의 결과 보고와 정부의 대응2) 길림당국의 보고와 중국정부의 대응제5장 제3차 공동감계의 무산과 중국의 동화정책 추진1. 제3차 공동감계의 제기와 무산2. 조선월간민 장악을 둘러싼 경쟁의 심화1) 조선지방관의 월간민 ‘수탈’을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2) 길림당국의 편갑승과(編甲升科) 추진과 조선정부의 대응3) 편갑승과(編甲升科) 정책의 성과와 그 의미제6장 나오는 말참고문헌찾아보기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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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衡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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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80년대 조선-청의 공동감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장에서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와 그 배경으로 꼭 알아 두어야만 하는 백두산정계비의 ‘수수께끼’에 대해 서술하였다.제2장에서는 그 배경을 이루는 19세기 후반 조선 북방 주민의 월경과 이산의 문제(제1절)와 청의 월간 조선인 귀환 요청과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제2절)을 다루고 있다. 특히 1880년의 ‘경진개척(庚辰開拓)’의 전말을 언급함으로써 이후 두만강 중류지역 북안으로 대규모의 조선백성이 월간(越墾)하는 단서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 결과 형성된 대규모 월간지(越墾地)를 함경북도 지방당국이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호적을 편성하고 각종 세금과 잡세 및 소작료를 징수하는 상황이 출현하였고, 이것이 국경분쟁을 낳은 기본적인 원인이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대규모 조선월간민의 존재에 대해 길림당국이 편입·동화정책을 시도하게 되면서, 그들의 쇄환(刷還) 문제가 논의되었다가, 뒤이어 조선 함경도 지방당국에 의한 국경문제의 제기가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청의 지방당국의 맞대응으로 양자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어 결국은 중앙정부 차원의 교섭과 공동감계로 이어지는 문제(제3절)를 다루고 있다. 제3장에서는 1885년의 제1차 공동감계(乙酉勘界)와 국경회담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우선 제1차 공동감계가 실행되는 경과에 대해 서술한 다음(제1절), 뒤이어 제1차 공동감계 직후에 이루어진 국경회담의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제2절). 그리고 그다음에는 제1차 공동감계·국경회담을 마친 다음 양측 당국의 대응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길림당국과 조선정부의 대응으로 구분하여 분석하고 있다(제3절). 이 결과 조선은 ‘토문강=분계강론’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게 되었고, 조선월간민(朝鮮越墾民)의 안치(安置) 문제에 보다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점도 확인이 된다.제4장에서는 1887년의 제2차 공동감계[丁亥勘界]와 국경회담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내용에 대한 분석을 하였다. 조선 측이 기존의 입장에서 후퇴하여 과거처럼 두만강 옛 경계를 지키겠다는 태도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차지안치론(借地安置論)’으로 당면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으로 나왔지만, 중국 측의 거부로 인해 결국은 제2차 공동감계·국경회담에 응하게 되는 배경을 제1절에서 다룬다. 그다음은 제2차 공동감계의 실행 경과와 국경회담의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제2절). 그리고 제3절에서는 제2차 공동감계와 국경회담 이후에 나타난 양측 당사자의 결과보고와 이에 대한 양국 정부·지방당국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길림당국의 강경한 반응은 결국 제2차 공동감계와 국경회담이 결렬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5장에서는 길림당국이 조선월간민에 대한 적극적인 편입정책을 다시 추진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제1절에서는 제3차 공동감계가 다시 길림당국의 요구로 제기되지만 점차 무산되는 과정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제2절에서는 조선월간민의 장악을 둘러싼 양국 사이의 경쟁의 심화, 그리고 길림당국의 편갑승과(編甲升科) 추진에 의한 조선월간민의 장악 시도와 그 성과에 대해서 간단히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과 청 사이에 있은 공동감계를 둘러싼 갈등을 대략 청일전쟁 직전까지의 시기로 한정하여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 할지라도 이 책의 성과는 간도가 생기게 된 배경과 전말을 한중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다룸으로서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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