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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개정판에 붙여: 팬데믹 시대의 창의적 글쓰기
2013 서울 국제 도서전 초청에 따른 개정판에 붙여 들어가는 글 1부 창의적 영어 글쓰기를 위한 발상의 전환 1. 그대, 창의를 아는가 2. 나이에 맞는 교육이 가장 오래간다 3. 글쓰기에는 영재가 따로 없다 4. 과외로 길든 아이와 방임된 아이(Tutored kid and free-range kid) 5. 창의적인 글쓰기와 학교 글쓰기는 다르다? 6. 내버려 두는 글에 대한 믿음 7.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8.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교육이란 2부 창의적인 독서의 조건 9. 왜 책을 읽느냐고 묻거든 10. 거침없이 독서하라 11. 독후감의 틀을 깨라 12. 독서에는 권태가 약이다 13. 정독주의자들에 대한 경고 3부 창의적인 영어 글쓰기의 세계 14. 30분짜리 에세이가 죽어야 아이가 산다 15. 단어장을 찢어라 16. 일기(日記)여, 영원하라 17. 죽은 문법과 살아있는 문법 18. 이야기의 힘은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19. 폭력과의 전쟁 20. 모든 이야기는 재창조(Recreation)다 21. 자녀의 글∼발 자가식별(自家識別)법 22. 창의적 영어 글쓰기 왕도는 뭘까 23. 창의적인 영어 글쓰기를 위한 십계명 나가는 글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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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영어입니다. 지역이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르고 평가방식이 달라도 결국 영어는 같은 영어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지역 차를 두어 달라져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식 영어의 창시자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어권의 세상에서 100년 전부터 줄곧 유지해온 그들의 영어교육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 p. 26 「들어가는 글」 중에서 창의적인 영어교육은 ‘창의’라는 이름의 아이와 ‘교육’이라는 어른이 만나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습니다. 환상적인 춤사위가 연출되려면 이 둘의 긴밀한 호흡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도 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 본연의 창의가 교육이라는 후천적인 노력과 결합할 때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세상이 놀라고 자신도 놀랄 깜짝쇼를 공연하게 되는 것이지요. --- p. 37 「그대, 창의를 아는가」중에서 우리 기관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취미와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작가와의 허물없는 만남과 지도와 관계 형성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산만했던 아이들이 집중하게 되고, 정서가 들쑥날쑥했던 아이들이 진정되고, 내성적인 아이가 외향적이 되고 (혹은 그 반대로), 잘 흥분하던 아이가 차분히 가라앉고, 컴퓨터 게임에 빠졌던 아이가 책을 읽게 되고,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몰랐던 아이가 커서 작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에 맞는 교육이 아닌 나이에 맞는 교육, 개인 지도가 아닌 그룹 교육, 간섭하는 교육이 아닌 관찰하는 교육, 평가하는 교육이 아닌 칭찬하고 격려하는 교육, 선생한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교육이 아닌 서로에게 배우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 p. 44 「나이에 맞는 교육이 가장 오래간다」 중에서 혹 한두 편의 습작으로 누군가로부터 ‘영재’라는 ‘무’책임한 말을 들었다면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잊어버리십시오. 그럴싸한 명목으로 「영어 라이팅 대회」라고 간판을 붙인 곳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해서 영재 운운한다면 지나가는 말로 듣기 바랍니다. 대신 규칙적이고 습관적이고 성실한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에 올인하는 정공법과 친해지길 바랍니다. 많이 쓰는 아이를 당할 재간은 없습니다. --- p. 56 「글쓰기에는 영재가 따로 없다」 중에서 모든 글쓰기의 근간은 창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창의적이지 않은 글은 어떤 글도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어떠한 종류의 글도 ‘창의성’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학 리서치부터 퍼스널 에세이까지, 도입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표현이 창의적이어야 A+를 받게 됩니다. 즉 모든 글은 창의적인 글쓰기이고 그래야만 됩니다. 창의적인 글쓰기는 단순히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수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이상의 교육에서 진가를 발휘하도록 돕습니다. --- p. 81 「창의적인 글쓰기와 학교 글쓰기는 다르다?」중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당장 써먹을 실력을 갈고 닦게 하기보다는 숨은 재능을 거침없이 표현하도록 도와줘야 하고, 이런 과정에 부모들의 인내와 자제가 필요합니다. ‘창의’는 할 일 없어 빌빌대거나 지겨워서 몸부림칠 때 머리 한쪽에서 내려치게 되는 것입니다(A whack on the other side of the head)!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부모에게 “제발 가만히 좀 계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에 도취하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자라게 하라고, 때론 괴롭고 답답하지만 의도적이라도 게으름을 즐기시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부모들이 만드는 미래는 최소한 대학까지이지만, 내버려 두는 교육의 효과는 평생 갑니다. 그러려면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이들을 믿어야 합니다. 어머니들의 자궁에서 9개월을 품어 세상에 나온 아이들입니다. 아니 그 이전부터 그 누군가의 섭리로 잉태된 아이들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을 부모가 안 믿고 세상이 안 믿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 pp. 89-90 「내버려 두는 글에 대한 믿음」중에서 그렇다면 가장 힘든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가장 힘든 교육은 아이들이 가지고 태어난 본연의 동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자아상이 이미 굳어진 어린 나이 이후의 아이들을 자극하고 격려하고 독려해서 자기 안의 세상을 밖으로 꺼내도록 돕는 것, 이게 과연 쉬울까요? 사실 ‘동기부여’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누가 누가에게 동기를 부여합니까? ‘부여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 아닙니까? ‘부여한다(grant) ’는 것은 일방적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동기를 ‘발견하고(discover)’ ‘끄집어낸다(bring out)’는 게 더 적합한 말일 것입니다. 동기는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 누군가가 집어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한창 나중에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 p. 103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교육이란」중에서 “책의 존재 이유는 ‘연결’에 있다.” 여기에 ‘왜 책을 읽는가’의 힌트가 있습니다.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바로 ‘연결(connect) ’을 위해서입니다. 한국어로는 가장 쉬운 단어가 ‘연결’이지만 그 뜻은 실로 심오합니다. 영어 단어 ‘커넥트(connect)’는 어찌 보면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는 거룩한 단어입니다. 독자를 저자와 연결하고 저자가 드러내는 세상, 그리고 그 속의 인물들과 일일이 ‘연결’한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한 권의 책이 아무 관련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가상의 인간들과 독자를 연결합니다. 세상 저편에서 배고프고 고통받고 가족이 없고 미래가 없는 그런 인간들을 책을 통해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게 되고, 그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나누게 됩니다. 이런 연결 과정을 통해 독자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됩니다. 참된 나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신달자 시인이 말한 대로, 책은 인간이 되게 합니다. ‘연결된 인간!’ 나를 세상과 더불어 살게 해준 책. 그게 우리가 책과 함께 살아야 하는, 즉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 p. 116 「왜 책을 읽느냐고 묻거든」중에서 독서는 강압적이기보다는 자발적으로(voluntary), 고정적이기보다는 유연하게(flexible), 주입식이기보다는 창의적인(creative) 방법으로 권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의 세계가 다양하게 확장되고, 신묘막측한 상상의 나래를 타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부모들은 항상 ‘왜 책을 읽히나’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독서’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지식’의 축척으로서 책이라는 대상과 싸우게 되고, 운이 좋으면 그나마 책과의 인연을 지속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책과 아예 담을 쌓게 됩니다. --- p. 128 「거침없이 독서하라」 중에서 두 살 난 아이에게 어른이 먹는 현미밥을 먹이지 않는 것처럼 에세이도 아이들의 물리적, 정신적 수준과 능력에 맞춰 병행시키는 것이 교육의 정도(正道)입니다. 영어의 본산인 북미에서 100년 전부터 가르쳐 온 정규 학교 과정을 보충하는 학습으로서의 에세이를 지도해야지 ‘선행학습’을 빌미로,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서, 어린 나이부터 에세이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의 세계를 축소하고 건조하는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인간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만드신 공평하신 하나님은 어린 나이에 에세이를 얻으면 더 큰 세상을 잃게 하신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 p. 173 「30분짜리 에세이가 죽어야 아이가 산다」중에서 영어 단어를 위한 단어 공부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지금입니다. 제발 구세대의 잘못된 영어 암기 학습법을 후손들에게 대물림 하지 마십시오. 서점을 휩쓸고 있는 단어 책 저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가장 좋은 단어 공부는 ‘단어’ 책에 있지 않고 ‘그냥’ 책에 있습니다. 책을 통해 단어를 알게 하고 책을 통해 단어를 상상하게 하는 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영어학습법이자 참된 단어교육법입니다. --- p. 182 「단어장을 찢어라」중에서 문법을 위한 문법을 가르치면 ‘죽은 문법’이고, 라이팅을 위한 문법을 가르치면 ‘살아 있는 문법’입니다. 물론 문법은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위한 기본원칙을 배우는 것이지만, 말하기보다는 라이팅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법을 외우게 하고 시험 보면 도리어 죽은 문법이 되고, 문법을 글로 표현하게 하고 입으로 의견을 교환하게 하면 살아 있는 문법이 됩니다. 문법책을 가지고 문법을 가르치면 죽은 문법이고, 아이가 쓴 글을 가지고 가르치면 살아 있는 문법이 됩니다. 아이가 쓴 글을 한 번 채점하고 돌려주면 문법이 늘지 않고, 평가 후 다시 쓰게(rewrite) 하면 할수록 문법이 ‘저절로’ 늡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고쳐주면 기계적인 문법이 되고, 더 깊게, 폭 넓게 사고하도록 조언을 해주면 어디서나 응용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문법이 됩니다. 문법을 많이 가르쳐주려고 하면 할수록 문법은 늘지 않고, 많이 쓰게 하면 할수록 문법은 늡니다. --- p. 206 「죽은 문법과 살아있는 문법」중에서 창조적인 사람과 비창조적인 사람의 차이는 전자는 스스로 창조적이라고 생각하고 후자는 스스로 창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글을 창의적으로 잘 쓰고 못 쓰고도 본인이 어떻게, 어디서부터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이 온통 나의 글 소재다. 어느 것도 못 쓸 게 없다. 나만의 생각으로 나만의 스타일로 쓴다, 누가 뭐라든 간에!”라고 외칠 수 있는 ‘뻔뻔함(audacity)’만 있으면 됩니다. 이 뻔뻔함을 세상 사람들은 ‘객기’라 치부할지 몰라도 저는 ‘용기(courage) ’로 미화할 것입니다. 당장 옆에 있는 종이와 펜을 집어 들고 멋대로 써 내려가는 ‘무모함(recklessness)’만 있으면 재창조의 세계는 열립니다. 그러는 사이 본인도 모르게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p. 231 「모든 이야기는 재창조(Recreation)다」중에서 결국 아이가 영어 글을 잘 쓰거나 못 쓰는 책임은 바로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순진한 아이들은 그 환경에 노출되고 학습되고 강화됩니다. 비록 아이들의 태도가 당장 엇나갔다 하더라도(사춘기라 치고), 눈동자가 제대로 박혀 있지 않을지라도(컴퓨터에 중독되어 있다고 치고)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여러분 세대의 영어교육이 잘못됐다고 단 한번이라도 후회한 적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오. 잘못된 교육의 전철을 자녀들이 밟지 않도록 합시다. 그냥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스스로 많이 쓰게 하십시오. 양이 결국 질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글을 쓰다 보면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난다고 믿으십시오. --- p. 259 「창의적 영어 글쓰기 왕도는 뭘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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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개정증보판: 팬데믹 시대의 창의적 글쓰기
시대가 바뀌었다. 팬데믹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학교가 문을 닫고 비행기가 활주로에 서 있고 나라 간 국경이 닫혀 버렸다. 이 세상 어느 구석도 팬데믹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이런 전례 없는 위기의 시기에 아이들의 학습능력 저하는 더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2004년 저자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현지의 작가들과 함께 설립한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인 글쓰기 사회(Creative Writing for Children Society)〉 역시 팬데믹 시대 전에는 밴쿠버의 대학이나 공공시설을 빌려 ‘창의적인 글쓰기 워크샵’들을 개최해 왔다. 벌써 17년째이다. 2020년 3월 코로나 광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모든 공공시설이 외부 행사에 문을 꽁꽁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워크샵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저자와 캐나다 작가들에게 큰 근심거리를 안겨주었다. 글쓰기는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관이 주최하는 창의적 글쓰기 워크샵은 단지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글쓰기 워크샵에 대한 저자의 믿음은 창작이 단지 한 개인의 의지의 산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코렐라인〉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두 손가락을 길게 늘여서 타자기를 마구 두들기는 주인공 아버지의 단순 노동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뮤니티의 역할이라고 믿는다(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원래 『내 아이 창의력을 키우는 영어 글쓰기』 에서 『우리는 영어로 책을 씁니다』로 바꾸면서 ‘우리의’ 역할을 강조하게 됐다. ‘나’만, ‘나’를 위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같이 쓴다는 것이 의미가 더 있다는 것이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고 그들과 주고받는 순환 과정을 통해 창작된 글은 어느 혹성에서 뚝 떨어진 유성처럼 단명하지 않고 긴 수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저자는 믿는다. 그런 글은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어권 작가 린다 수 박(Linda Sue Park)의 말과 같이, 그런 글은 취미 수준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연결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저자가 설립한 위 기관이 주최하는 창의적인 글쓰기 워크샵은 그 형태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간에, 그룹 단위로 하고, 작가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멘토라고 부른다. 글쓰기의 노하우 전수보다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이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난 17년간 철저히 관계 위주의 창의적인 글쓰기 교육만을 고집스럽게 추진해 왔던 저자와 그의 기관으로서는, 이런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가져온 영향이 그 무엇보다 커다란 도전이었다. 글쓰기 교육은 상황 불문하고 계속되어야 한다 “자, 이제는 학생들을 직접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읽고 쓰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팬데믹이 우리 모두를 가둬 놨지만 이게 오히려 아이들이 지난 세월 놓치고 있었던 집중/몰입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팬데믹으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리터러시(문해력)만 제대로 붙잡고 있으면 결코 아이들의 학업 능력은 저하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이런 믿음으로 이 기관의 모든 작가들은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줌 워크샵”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인터넷이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다. 이전에 물리적으로 만나야 하기에 늘 시간과 장소와 거리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누구나 컴퓨터 화면 앞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고민의 결과, 이전에는 대면으로만 이루어지던 ‘창의적인 글쓰기 워크샵’이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지역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워크샵의 형태로 개최하게 되었다. 그게 2020년 4월이다. 나아가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스토리를 책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온 세상의 아이들과 캐나다 아동작가들을 연결해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이어가고 확대해 보자는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기를 일년 반,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세계를 확장하고,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대학 이상의 교육에서 사용될 학문의 기초를 닦는 이 기관의 창작 활동은 더욱 더 활발해졌다. 저자는 이 기관의 설립 시기인 17년 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학부모들을 만나고 그들의 자녀 문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길 좋아한다. 팬데믹 시대에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학부모들의 걱정과 염려는 더욱 더 커졌고, 부모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어떻게 하지요, 선생님?” 그의 답은 언제나 동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시대나 상황을 보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살다가 이런 세상 또 안 만나겠습니까? 문제는 언제나 부모에게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그것은 기본으로 돌아가고 기본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자신의 글을 쓰는 것입니다. 창의는 역발상하는 능력입니다. 문제를 피하지 말고 도리어 문제를 통해서 해답을 찾는 행위가 바로 ‘창조 활동’입니다. 문제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문제 해결의 묘수를 찾아내는 것, 이런 과정은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창작 과정과 추호도 다르지 않습니다. 상황을 외면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직시하고 수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도리어 이 펜데믹 상황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잊혀진 독서의 흥미를 되살릴 수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자신의 글을 한 페이지도 써본 적 없는 아이가 열 장을 스트레이트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부모의 참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곧 더 좋아질 세상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것은 대단하고 큰일을 도모하는 데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한 권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글로 써 내려갈 때, 바로 그때 조용한 교육의 혁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영어 글쓰기를 위한 십계명 1. 어려서부터 에세이를 가르치지 마라 어려서부터 형식에 노출되면 창의력이 위축된다. 같은 형태의 반복과 정답 형 내용의 주입은 창의적 영어교육의 천적이다. 2. 닥치는 대로 읽혀라 책은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 정독주의자를 경계하라! 많이 읽히려 면 확인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책장을 넘기고 있다 면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라! 3. 단어를 외우게 하지 마라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단어를 외우는 것은 낭비다. 외운다고 그 단어 가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 단어는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필 요할 때 꺼내 사용하는 것이다. 이게 단어를 부리는 주인의 권리다. 4. 글을 쓸 때는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둬라 아이들이 쓰는 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간섭하지 마라. 다 쓴 다음에 아이가 읽어보라고 하기 전까지는 채근 하지도 마라. 글쓰기의 시작은 주눅 들지 않고 제멋대로 써 재끼는 것이다. 5. 일기를 쓰게 하라 가장 훌륭하고 경제적인 학습은 일기 쓰기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기만의 일기가 가장 좋은 작가를 만든다. 6. 문법책으로 문법을 가르치지 마라 문법을 위한 문법은 시간 낭비다. 실질적인 문법은 오직 읽기와 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7. 뻔한 독후감을 거부하라 등장인물부터 요약에 이르기까지 정형화된 형식의 독후감을 반복하는 것은 아이들이 타성에 젖도록 돕는 길이다. 책에 따라, 장르에 따라 독 후감의 형식을 달리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8. 읽든 쓰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라 효과적인 영어교육의 근간은 아이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특히 읽을 책과 쓸 글의 선택 과정에 아이들을 포함하라. 그들 이 주인이 될 때 교육 효과는 급상승한다. 9.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쓰도록 권장하라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독서와 글쓰기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제한한다. 아이들의 선택권도 일정한 교육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능해야 한다. 음 악에 악보가 필요한 것처럼 읽고 쓰는 과정에서도 최소한의 ‘가이드라 인’은 필요하다. 10. 많은 것을 보게 하라 영어를 읽고 쓰는 데에는 영재가 따로 없다. 충분한 독서와 경험이 쌓 이고 시야가 넓어져야 좋은 글이 나온다. 되도록 많은 곳에 아이들을 노출시켜라. 훌륭한 글은 찬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에서 나오며, 뜨거운 가슴은 세상과의 연결고리 없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