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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동백의 바다
소년의 눈동자 / 호소카와 하지메 박사의 보고서 / 44호 환자 / 죽음의 깃발 2 · 시라누이해 연안 어민 배의 묘지 / 1959년 11월 2일 / 하늘을 향해 진흙을 던질 때 3 · 유키 이야기 5월의 향기 / 다시 한 번 사람으로 / 4 · 하늘의 물고기 용의 비늘 / 영혼이 깊은 아이 5 · 땅의 물고기 외지에서 온 사람들 / 방황하는 깃발 / 유리의 눈물 / 6 ·통통마을 봄 / 내 고향과 ‘회사’의 역사 7 · 1968년 미나마타병 대책시민회의 / 생명의 계약서 / 천황폐하 만세 / 가을 여우비 작가후기 작품해설 이시무레 미치코의 세계 / 해설 미나마타병,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옮긴이의 말 |
Michiko Ishimure,いしむれ みちこ,石牟澧 道子
金鏡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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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돌이 지나고, 두 돌이 되어도 아이들은 걷는 것은 물론이고 기지도, 말하지도, 젓가락을 쥐고 먹지도 못했다. 때때로 정체불명의 경련이나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생선이라곤 먹어본 적도 없는 젖먹이 아기가 미나마타병일 거라고는 엄마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시내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고, 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며 어구들을 내다팔아야만 했다. --- p.23
내 고향인 이 지방에서는,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장례행렬 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리를 불고 징을 울리고 비단이며 오색찬란한 깃발을 휘날리며, 명정 하나 세우지 못한 초라한 장례라도, 길 한 가운데를 엄숙하게 행진하면 마부는 말을 멈추게 하고, 자동차는 뒤로 물러서주었다. 죽은 사람들 대부분은 많든 적든 살면서 불행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일단 죽은 사람이 되면 숙연한 친애와 경의의 뜻이 담긴 장송의 예우를 받았던 것이다. 1965년 2월 7일, 일본국 쿠마모토현 미나마타시 데츠키의 어부이자 노동자였던 미나마타병의 마흔 번째 사망자인 아라키 타츠오 씨의 장례행렬은, 굉음을 울리며 연달아 달려가는 트럭에게 길을 내주고 질척한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폭 8미터의 3번 국도 가장자리를 논으로 구를 것처럼 위태롭게 비틀비틀 숨죽이며, 바다를 바라보도록 파놓은 묘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p.65 잠시도 멈추지 않는 자잘한 떨림 속에서, 그녀는 건강했을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씽긋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려고 했다. 이미 마흔을 넘겨 수척한 그녀의, 가슴에 사무칠 것 같은 사람 좋은 그 미소는, 하지만 어느새 입술 언저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의 자연스러움과 예의를 자신을 찾은 방문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때때로 그녀가 짜증을 부리는 것은 그녀의 경련이 심해지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녀의 자연스런 성품을 나타내야 할 중요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 p.125~126 밤 되면 가장 생각나는 건 역시, 바다야. 바다가 제일 좋았어. 봄부터 여름이 되면 바닷속에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지. 우리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바닷속에도 명소라는게 있어.‘찻잔코’에‘맨살여울’에‘검은 해협’‘사자섬’까지. 빙 한바퀴 돌면 익숙해진 우리 코에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의 바다 향기가 풀풀 풍기거든.‘회사’냄새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바닷물도 흘러. 굴이며 말미잘이며 청각채며, 바닷물이 출렁이며 흐르는 곳이면 어디나 꽃들이 한들한들거리지. 그 중에서도 특히 물고기가 아름답지. 말미잘은 만발한 국화꽃 같아. 청각채는 바닷속 절벽에 잘 뻗은 가지모양을 층층이 이루고 있지. 톳은 조팝나무 꽃가지 같아. 해초는 대숲 같고. 바닷속 풍경도 육지하고 똑같이, 봄도 가을도 여름도 겨울도 있다우. 나는 바닷속에 반드시 용궁이 있다고 믿어. 꿈처럼 아름다울 거야. 바다에 질리거나 하는 일은 죽어도 없어.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섬 밑에 있는 바위 안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 틈이 꼭 있거든. 그런 맑은 물하고 바다의 짠 물이 만나는 곳 바위에, 아름다운 파래가 봄에 앞서 먼저 피어나지. 바다 내음 중에서도 봄색이 짙어진 파래가 물기 마른 바위 위에서 햇볕에 구워지는 냄새라니! 정말 그립네. --- p.144~145 고무장갑을 낀 한 의사선생이 한쪽 손바닥에 그녀의 심장을 쥐고, 메스로 자르려던 참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장은 그 심실이 절개되는 순간 조심스럽게 마지막 피를 토해내고, 내 속에선 울컥 그리운 슬픔의 기억이 치밀어 올랐다. 죽음이란, 한때를 살았던 그녀의 전 생애의 무게에 비해 이 얼마나 초라한 행위란 말인가? --- p.151 새댁, 나는 대단한 성공은커녕 나이 칠순이 되어도 보시다시피 근근이 살면서 예까지 왔네. 평생을 살면서 자랑할 것 하나 이뤄놓진 못했지만, 아주 사소한 작은 거짓말이야 때로 방편으로 사용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남의 것을 훔치거나 속이거나 강도질이나 살인 같은 나쁜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조심하면서, 남한테 폐 끼치지 말자고 믿는 마음 하나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죽을 날 머지않은 지금에 와서 이런 재난을 겪어야 한단 말이오?--- p.181 이들 산업공해가 변방의 촌락을 정점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이 나라 자본주의 근대산업이 체질적으로 하층계급의 모멸과 공동체 파괴를 심화시켜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집약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미나마타병의 증상을 우리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 목숨이 저승 갈 여비도 안 될 가격으로 값이 매겨졌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면 된다. --- p.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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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환경재앙, 미나마타병,
정치적으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막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살아 있는 한 아직 끝나지 않는다. ‘미나마타병은 이타이이타이병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전후부흥,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인권이나 약자의 생명은 경시되었다. 기업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 또한 풍요로움이니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희생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미나마타병은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발생했다.’ 이 병은 미나마타시에 있는 일본질소비료공장의 폐수에 섞여있던 유기수은중독에서 비롯되었다. 1932년부터 이곳에서는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산하기 위해 수은 성분의 촉매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부산물로 나온 메틸수은이 함유된 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바다에 버려졌다. 이 메틸수은이 물고기를 통해 어민들에게 유기수은 중독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병의 증상은 주로 중추신경에 문제를 일으킨다. 사지말단의 감각장애와 언어장애, 경련이나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사망률이 40퍼센트에 이른다. 미나마타병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956년이었지만 정부가 공장 폐수 때문에 수은중독이 발생했다는 의견을 발표한 것은 1968년이었다. 그 동안 정부는 이병이 공장 폐수 때문에 생긴 수은 중독임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보상은 물론이고 사실을 은폐하며 억압과 폭력으로 환자들을 대했다. 일반 시민들도 괴질로 생각해 접촉을 꺼리기도 하고 지역경제침체를 염려하여 이들의 시위에 불만을 나타냈다, 공장측에서도 1959년 구마모토 대학에서 미나마타병의 원인을 일본질소 미나마타 공장의 폐수에서 검출된 메틸수은 중독이라고 발표하였지만 이 사실을 부정하여 대책 마련이 늦어지게 되었다. 결국 미나마타주민들의 처절한 싸움으로 1987년 3월 30일 구마모토 지방법원이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2004년 10월에는 미나마타병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내려졌다. 미나마타병 발생 50여년이 넘었지만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지루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화의 희생양, 변방의 가난한 사람들, 이 책에서‘나’로 표현되는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는 미나마타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미나마타시에서 전대미문의 공해병이 발생하자 작가는 직접 환자와 환자가정을 방문하며 취재하고 기록했다. 이야기는 1963년 한 소년 환자의 집을 방문한 기억을 회상하며 시작하고 있다. 가족과 친구를 미나마타병으로 잃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검진조차 거부하며 뒤틀린 팔다리와 보이지 않는 눈으로 홀로 야구연습을 하는 열여섯 살 소년 큐헤이. 타지에서 후처로 시집와 알뜰살뜰 살며, 남편과 바닷바람 맞으며 고기잡이하다가 미나마타병에 걸려 달거리 뒤처리까지도 남편 손에 맡겨야 했지만, 결국에는 이혼을 당하는 사카가미 유키. 어미는 도망가고 애비는 미나마타병으로 몹쓸 몸이 되어 늙으신 노부모에게 세 자식까지 떠맡기고,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태아성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어린 모쿠타로. 가혹할 정도로 아름답게 태어났지만, 우유 먹는 인형이 되어 식물적인 삶을 마지못해 살고 있는 열일곱 꽃다운 처녀 유리. 그 밖에도 미나마타병으로 어부를 천직으로 알고 제 집 앞마당인 양 휘젓고 다니던 바다에서 쫓겨난 숱한 젊은 남정네와 그 아낙들. 가난하지만 아름답게 살아오던 부모 아래, 서러운 삶을 예견하며 서글픈 첫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났을 태아성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어린 자식들..... 작가는 이들이 변방에서 얼마나 부지런히, 욕심없이, 가난도 그야말로 팔자거니 하늘이 내려준 운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경제부흥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거스르며 파괴한 대가로 예정된 비극은 그들을 밑바닥부터 철저하게 파괴했다. 작가는 환자와 가족들의 비참함에 전율한다. 그리고 정부와 회사의 무성의와 사실은폐에 분노한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책 작가의 표현에 일종의 처참한 빛깔이 감도는 것은 당연하다. 버려진 채 항구에서 황폐해져가는 어선의 무리, 밤이면 오도독 오도독 낚싯줄이나 어망을 갉아먹는 쥐들, 이런 비참한 형상이 그녀의 문장 사이사이에 나타난다. 수수방관하고 서서 숨만 죽일 뿐인 붕괴감이다. 이 작품에 그려진 붕괴 이전의 세계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목가적인 것은, 이것이 붕괴하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비극적인 만가(輓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판되자 많은 평론가와 언론은 공해고발문학의 절정으로 호평을 했다. 당시 일본에서 한창 불이 붙고 있던 환경오염반대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작가 역시 미나마타병 대책시민회의 결성에 참여하여 팔순의 나이인 지금까지도 관심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환경파괴나 공해문제를 고발하는 증언록이 아니다. 작가는 미나마타병을 이야기하면서 환자들의 아뜩한 파멸의 원인으로 근대산업문명의 폭력성을 이야기 한다. 이 책 곳곳에는 생활의 터전으로 바다와 한 몸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가는 어민들의 거칠지만 소박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온 괴질로 어느새 생활의 터전이 파괴되고 가족이 파괴되는 절망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환자들의 절망어린 시선에서 끊임없이 문명과 인간존재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즉 인간과 인간관계의 파괴와 자연속에 내재한 생명력과 인간과의 관계단절에 개입하고 있는 근대산업문명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환자들의 증언과 보상을 위한 싸움, 자료와 보고서들의 인용으로 자칫 건조한 현장 취재기록으로 보여질 수 있는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시인기도 한 작가의 문체는 마치 한편의 슬픈 영화를 보여주듯 우리를 감동시킨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회복을 희망하는 작가의 염원이 절절이 배어 있는 이 책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