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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실 안내
1부 남해살이 12 흙과 삽 14 두족류의 밤 16 와병독서 19 풀 뜯는 소리 21 태풍의 시간, 감자의 시간 23 온 만큼 더 가면 25 고기 맛 고사리 28 봄과의 거리, 45센티미터 31 천리향 유희 35 쑥이라도 뜯겠어요 39 오늘 뜯을 쑥을 내일로 미루지 않습니다 42 새똥이 밉지, 새가 미운 건 아니다 45 개구리는 백화등 향기를 업고 온다 47 김밥말이, 기억풀이 50 마이 페이보릿 여름 1 자귀나무 54 마이 페이보릿 여름 2 생맥주 57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도 61 만리향 유희 65 참회의 코르크 트리 68 분꽃이 필 때까지 놀았습니다 72 걷지 않은 계절은 봉인된 편지 같아서 75 첫 매화 78 꽃 몸살 82 딸기밭이여 영원하라 2부 민박집 생활사 88 초속 3미터의 바람 90 우리는 폭염 중에 민박집 하나를 열었네 93 소주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95 삼천포 감성 라이더 97 책담 100 묵언 목걸이 103 여름이불 예찬 106 무릎을 껴안을 때 110 마스킹 테이프와 손님의 공통점 112 달밤, 천변풍경 115 여름도, 성수기도 퇴각한다 117 돌아온 쌍화보살 120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123 차고 말간 계절엔 호젓한 문장을 127 오래 속삭여도 좋을 자리 130 아침엔 누룽지 133 물것이 창궐하고 풀이 번창하겠지요 136 만남의 장소 140 나의 향기 자본 143 무해한 마른 풀내 146 옥외 화장실 분투기 150 여름의 사치 154 몽도의 아침 158 방 치는 마음 162 어쩌다 사장 165 네 번째 여름 퇴실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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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기다리며 방란장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손님은 4시에서 5시 사이에 입실 예정이라고 문자를 보내왔으나, 5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다. 기다림은 민박집 주인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숙박 예약 문자를 기다리고, 숙박요금 입금을 기다리고, 오늘 숙박 손님의 입실을 기다리고, 누룽지가 너무 불지 않도록 불 조절 하며 조식 손님을 기다리고, 퇴실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손님이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땐, 어서 방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보통, 손님이 예고한 입실 시간보다 30분 일찍 방란장에 나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조명을 하나 둘 밝히고, 책장에 들쭉날쭉한 책들을 가지런히 열 맞추고, 손님들이 사용할 컵과 접시를 세팅하고, 밤 10시까지 이 공간에 흐를 음악을 고른다. 선곡 기준은 숨소리와 속삭임과 무언가 씹고 삼키는 소리 사이에 적당한 칸막이 역할을 하되, 독서엔 방해되지 않을 만한 잔잔함이다. 그날의 날씨와 내 기분이 선곡의 키워드가 되던 때도 있었지만, 점점 이 공간에서 들쭉날쭉한 내 마음의 기척을 지워나간다. 몽도는 나의 집이기도 하지만, 손님이 들고 나는 엄연한 영업장이니까. --- p.2, 「입실 안내」 중에서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 라는 김사인 시인의 시는 ‘그때 이미 아이는 반은 늙었네’ 라는 아픈 문장으로 끝난다. 고통은 사람을 늙게 한다. 아이가 늙으면 청년이 되지만, 중년이 늙으면 노인이 된다. 아이가 청년으로, 중년이 노년으로 점핑하는 것 모두 슬픈 일. 온종일 비명을 질러 심신이 쇠약해진 중년 부부(여 42세, 남 44세)는 노인의 얼굴을 하고 새벽녘, 검은 바다를 건너 남해로 돌아왔다. 통증의 원인을 밝히지 못한 각종 검사에 실망하며 꺼내 든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잠 못 이루던 새벽에 부랴부랴 주문한 책이다. 늘 장바구니에 담겨있었는데, 매번 다른 책의 유혹에 빠져 구매를 미뤘던 것.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 책과도 시절인연이 있다. --- p.18, 「와병독서」 중에서 진영 씨가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둔 일력 사진을 꺼내 ‘나라도 나를 안아주어야 할 때 우리는 무릎을 껴안습니다’라는 구절을 천천히 읽어주었을 때, 마침 나는 무릎을 껴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안아주기 위해서도, 눈물을 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음악 쪽으로, 이야기 쪽으로 더 바짝 귀 기울이느라 그랬다. 별이 빛나는 여름밤.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손님들은 돌아가며 그 밤의 공기와 어울리는 자신의 최애곡을 틀었고, 그 모든 선곡이 매우 적절하여 몸을 동그랗게 말고 온 몸으로 큰 귀가 되고 싶었으니까. 좋은 사람과 좋은 노래를 향해 문득 골똘해질 때도, 나는 무릎을 껴안는다. --- p.108, 「무릎을 껴안을 때」 중에서 “방이나 한 두어 개 치지 뭐. 둘이 밥은 먹고살지 않겠나….” 남해로 이주하기 전, 밥벌이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묻는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다.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는 귀촌인의 흔한 선택지였고, 커피와 음료, 디저트 류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카페 보단 게스트하우스의 진입 장벽이 낮게 느껴졌던 까닭이다. 빨래, 청소, 베딩, 요리, 설거지, 집 단장, 접객…. 민박집의 일들을 어림잡아보며, 살림의 확장판쯤 되겠구나 예상했다. 맵찬 살림꾼은 아니지만, 살림의 영역에 들어가는 일들을 꽤 좋아한다 여겼다. 주술적인 기물들을 늘어놓고 걸어놓고 보며 즐거워한다거나(이것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라 여겼고), 내가 먹을 술안주를 준비하며 흥이 솟구친다거나(이것을 요리에 대한 애정이라 여겼고), 한 달에 한 번쯤 청소를 하면서 쓸고 닦는 일의 보람을 칭송했으니. 나는 나와 사십몇 년을 살고도, 그렇게나 나를 몰랐다. --- p.158, 「방 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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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북스테이 몽도. 남해군 삼동면 동천리, 대숲과 논밭 곁에 자리잡은 작은 민박집입니다. 책과 잠, 책과 노래, 책과 누룽지, 책과 로즈메리... 그 어딘가에 마음 붙일 손님을 기다리며, 매일 쓸고 닦습니다.
“2018년 7월 6일이었다. 여름 한 날, 우리는 폭염 중에 민박집 하나를 열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고, 목하 진행 중이다.” 생계의 수단이 늘 한 글자였다는 사람. 18년 동안 '글'로 밥벌이를 했고, 3년 전부터 '방'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고우정은 남해군에 자리한 북스테이 몽도의 주인이기도 하다. '한 줄 한 줄 공들여 쓰고 있는 책과 같이 집을 거듭 고쳐 쓰고 다듬어 오는 동안', 또 한편으론 호객을 위해 생전 하지 않던 SNS 글쓰기를 하면서 처음 하는 숙박업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찢어질까 두려웠던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며 『숙박일지』의 입실 안내와 퇴실 안내를 쓴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마음을 전한다. "집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할 수 있다면, 몽도는 주인장과 길손이 함께 집필 중인 책입니다. 몽도를 첫 장부터 읽고 싶은 페이지까지,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주세요.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읽어도 되고, 읽던 페이지를 강아지 귀처럼 접어도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보태주세요." 고우정(지은이)의 말 집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할 수 있다면, 몽도는 주인장과 길손이 함께 집필 중인 책입니다. 몽도를 첫 장부터 읽고 싶은 페이지까지,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주세요.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읽어도 되고, 읽던 페이지를 강아지 귀처럼 접어도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보태주세요. 엔딩까진 아직 갈 길이 더 남았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