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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緖 論 전통법의 역사철학은 왜 배우는가? ― 歷史精神의 顯現과 계승발전을 염원하며 / 24
제2편 原 論 道-法 規範源流觀 / 49 제1장 道로부터 法에까지 / 50 제2장 道 / 61 제3장 德 / 87 제4장 仁과 義 / 114 제5장 禮 / 170 제6장 法 / 263 제3편 本 論 禮-法 文史哲學論 / 347 제1장 전통법문화에서 禮의 법규범성과 법 범주의 역사변천 / 348 제2장 先秦 시대 성문법 공포 / 392 제3장 李?의 法經 / 433 제4장 전통 중국에서 복수의 예법과 철학지혜 / 470 제5장 淸末 法律修訂시 禮法論爭과 沈家本의 법사상 / 521 제6장 전통법문화에서 법의 문자어원상 개념과 규범 비유 / 568 제4편 結 論 / 611 |
金池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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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緖 論
전통법의 역사철학은 왜 배우는가? ― 歷史精神의 顯現과 계승발전을 염원하며 ― 1. 時間 : 현재와 미래에 귀감으로서 역사 ‘傳統’ “史者, 何也? 역사란 무엇인가?” “史者, 師也! 역사란 스승이다!” 30년 전쯤 박사학위 논문 초고를 처음 집필하기 시작할 때, 서론 첫머리에 나 스스로 내린 역사의 定義다. 나중에 서울대 최병조 교수님이 내 정의를 보고, 고대 로마에도 똑같은 정의가 있었다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감탄하셔서, 동서고금에 공통된 진리의 일반보편성에 나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그러려니와, 하물며 30년 전 박사학위 논문 집필 초두에 내가 史料를 얼마나 열람했겠는가? 아마도 비유하자면, 마치 바닷가 백사장에서 어린애가 모래성을 쌓으며 놀다가, 예쁜 소라껍질 하나 주워 신기하게 쳐다보고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바닷물이 전부 얼마나 되는지 그 소라껍질을 됫박 삼아 한 되 두 되 되어 보겠다고 놀이한 셈이 아닐까?! 그러니 走馬看山 격도 못되고, 수박 겉핥기식이나 될까 말까 한 역사 편력에 지나지 않으리라. 역사가 우리 인간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까닭은, 바로 스승처럼 敎訓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와 관련한 가르침?교훈의 의미로 우리는 흔히 ‘귀감龜鑑’이란 단어를 곧잘 사용한다. 귀감이란 거울?모범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스승이 되는 모범을 또한 ‘師範’이라 부르니, 역사와 스승은 모범이라는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 즉, 역사란 과거를 비추어서 현재와 미래를 밝혀주는 스승으로서 거울이며 교훈인 것이다. 龜鑑의 본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면, 역사의 귀감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우선, 구?귀龜란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를 지칭한다. 주지하듯이, 멀리 은殷代부터 이미 거북이 등가죽(甲)을 사용해 길흉吉凶을 점치고(占卜) 그 결과(占辭)를 새겨놓은 것이 甲骨文으로 전해온다. 그런데 구龜란 옛 ‘구舊’의 뜻을 취한 것으로, 舊는 오랠 ‘구久’와 뜻이 상통한다. 즉, ‘龜’에는 천 년을 산다는 거북이의 ‘장수’가 함축되어 있고, 甲骨로 점을 친 까닭은 거북이의 長久한 수명에 깃든 신령스러움이 吉凶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거울을 뜻하는 감鑑의 원래 글자는 ‘監’인데, 한 사람이 물그릇 옆에 서있는 모습( )을 본뜬 것으로, 자기 얼굴을 물에 비춰보는 반관성조返觀省照를 상징한다. 거울의 의미가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나중에 구리거울이 나타나 ‘金’자가 덧붙여졌고, 다시 ‘鏡’자가 나와 같은 거울의 의미로 통용된 것이다. 사실 고요한 맑은 물이 거울의 시초임은 누구나 경험법칙상 짐작할 수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成語는 사실, 선진先秦 시대 장자莊子에 이미 “흐르는 물은 거울삼을 수 없으나, 고요한 물은 거울삼을 수 있다.”는 격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구체적 물의 거울에서 머무르지 않고, 인간 자신의 추상적 일(사건)을 거울삼는 데로 발전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의 거울을 물의 거울보다 훨씬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강조한다. 물의 거울은 단지 얼굴모습만을 비춰줄 뿐인데, 사람의 거울은 인간사의 成敗?得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찍이 尙書 주고酒誥편에는 周公이 古人의 말을 인용해 교훈을 신칙한다. “사람은 물을 거울삼을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백성을 거울삼아야 한다.(人無于水監, 當于民監.)” 이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의 거울은 적어도 周初 이전에 이미 보편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周初 위정자들은 왕조의 장구한 안정을 위해 자손들에게 夏?殷이 멸망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거울삼아 敬德에 힘쓰라고 거듭 당부하고 있다. “우리는 夏에서 거울삼지 않을 수 없고, 또한 殷에서 거울삼지 않을 수 없다. 夏가 天命을 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한 까닭을 알아야 한다. 그 德을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운명이 일찍이 다한 것이다.” “지금 殷의 운명이 이미 다하였는데, 우리가 여기에서 크게 거울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周初 통치계층은 殷의 遺民을 무마하여 안정시키기 위해, 殷의 선조 成湯이 天命을 대신하여 夏의 桀을 정벌하고 革命한 사실을 일깨우면서, 周가 殷을 혁명한 것도 마찬가지로 上帝의 명을 받들어 紂의 음란한 不德을 정벌한 것이라고 그 당위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古人이 말한 인간의 거울이란, 곧 역사의 귀감을 의미한다. 歷史의 귀감이 반드시 부정적 패망의 사실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찍이 어린 成王을 대신해 7년간 섭정攝政했던 周公은, 成王이 성장하자 왕권을 되돌려 주면서, 일락逸樂에 안주할 것을 두려워해 先王들의 근면성실한 업적을 열거하며 권계勸誡한 바가 있다. 殷 中宗은 천명을 경외하고 정치를 게을리 하지 않아 75년이나 왕위를 향유했다. 殷 高宗 武丁은 즉위 후 3년간 침묵으로 복상服喪하고, 안일에 빠짐이 없이 정치에 힘씀으로써, 59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또 그 아들 祖甲도 서민을 사랑하고 특히 외로운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33년이나 재위했다. 전 왕조의 이러한 善政을 귀감으로 칭송한 것이다. 여기다 文王이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밥 먹을 틈도 없이 백성을 돌보며, 유람이나 사냥질은 감히 엄두도 못 내면서, 50년 간 創業에 힘쓴 사실도 덧붙였다. 이상 네 哲人을 거울삼아 삼가 德政에 힘쓰고, 특히 무고한 백성을 죽이거나 처벌하여 원망을 사는 일이 없도록 신신당부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귀감에 힘입어, 成王과 康王이 德政에 힘쓴 60여 년 동안은, 천하가 평안하고 형벌이 거의 쓰이지 않을 정도로, 周의 전성시대(成康之治)를 이루었다. 孔子도 이를 두고 “周는 夏?殷 二代에서 거울삼아 그 문화가 찬란하므로, 나는 周를 따르겠다.”고 극구 찬양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귀감성은 戰國시대부터 漢初에 일반적 역사관으로 발전해 이론화하기에 이른다. 대표적 언론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옛 말씀에 이르기를, ‘일을 도모해 이루지 못하면, 과거로써 미래를 비춰보고, 드러난 것으로써 숨은 것을 살펴보아라.’고 했으니, 이와 같이 도모한다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앞 수레가 이미 뒤집혔는데, 뒷 수레가 길을 바꿀 줄 모르고 있으니, 어느 때나 깨달을 것인가? … 경계할 줄 모르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지나간 일을 보고 스스로 경계한다면, 治亂과 是非를 또한 분명히 알 수 있다.” “밝은 거울로는 모습을 비춰 보고, 지나간 옛날로는 지금을 살펴 안다.” “옛날에 대한 지금의 관계는, 후세에 대한 옛날의 관계와 같다. 후세에 대한 지금의 관계도 또한 옛날에 대한 지금의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지금을 살펴보면 후세를 알 수 있고, 옛날을 알면 후세를 알 수 있다. 옛날과 지금, 이전과 후세가 한가지인 까닭에, 聖人은 위로 천년을 알고 아래로 천년을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