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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_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6 개정판을 내면서_ 설익은 과일을 따버린 초보 농부의 심정이 되어 10 추천의 글_말이 씨가 되게 한 인연으로 14 첫 고개_공무원의 질풍노도 청춘 시민의 종이 되겠다고요? 25 공부 안 하면 노숙자 된다 28 교통사고로 배운 것 31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더니 36 홧김에 사직서 39 정의롭지 못한 나라의 운명 43 단 한 번의 위법행위 49 이유 있는 지시 거부 55 어려운 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라 58 주민등록 전산화 혁명 61 마을문고 회장이 시의원이 되기까지 64 기초의회 의원의 자질 68 든든한 누님, 묵동 형님들 73 규정 없이 민원을 해결하는 내공 77 시골의 추억이 공무원을 돕다 80 구청의 홍보 담당으로 인정받다 83 당신은 매정한 아빠야 87 시청이 구청에 화풀이하다 90 언론의 선한 힘은 진심으로부터 93 먼저 사과했더니 이런 일이 96 울면서 밥 먹는 남자 99 마을문고로 만난 패밀리 103 물난리 안전지대가 되기까지 107 직원에게 손찌검을 한 동장에게 돌직구를 날리다 111 딸의 수학여행 115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 119 호적 전산화와 호주제 폐지 123 부질없는 출생신고 공방 126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129 지방자치 시대의 구청 소식지 132 다시 못 주워 담을 말 135 내게는 박 주임이 나라님이여 138 다음 고개_돌고 도는 인생 한 걸음 한 걸음 우여곡절 6급 승진 147 구청 행사와 중앙 정치의 관계 151 <전국노래자랑> 예비 심사 154 대한민국에서의 가방끈 157 감동의 수업, 실망의 수업 159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로 보내주세요 162 추자도 올레길에서 만난 슬픈 역사 166 메르스 사태의 맨 앞에서 171 오빠의 분골함을 든 자매들 174 스승과 친구는 하나 178 자식과도 같은 석사학위 논문 181 아무도 안 돌보는 비정규직 공무원 185 좋은 정책이 있어도 못 바꾸는 이유 190 돌고 도는 과제, 돌고 도는 인생 194 누님을 울린 학위논문 197 방안이 현재로선 없습니다 200 다다음 고개_시작한 자리로 처음처럼 세상이 바뀌긴 했나 보다 209 동장이 되어 돌아오다 213 사무관이 받아야 할 교육 현장에서 216 할아버지들의 목소리 221 다문화가정과 함께 사는 법 225 시 낭송회가 있는 동네 230 할머니의 말 없는 눈물 234 공무원을 뽑는 면접관이 되다 236 감정노동자의 평정심 239 미국 여행에서 만난 역사와 문화 242 수고했어, 박 동장 249 공무원의 책임과 의무라는 멍에를 벗고 나서 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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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되시면 어떤 자세로 근무하실 겁니까?”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 그러니까 ‘시민의 종’이라는 자세로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나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대답했다. 영어를 섞는 것이 있어 보일 것이라는 어설픈 생각을 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시민의 종이라는 생각만으로 공무 수행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 국가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겼고, 공무원은 국가 발전에 앞장서서 국민을 이끌고 있다는 우월의식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 공무원이 국민의 종이라는 말은 부합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나 들을 수 있는 요원한 말이었다. 면접관은 잘난 척하는 공무원 지원자를 점잖게 타일렀던 것이다. --- p.26~27 「시민의 종이 되겠다고요?」 중에서 1988년 가을, 우리나라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어 세계의 이목이 개최지인 서울에 집중되었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환경개선 사업을 벌였다. 내 가 근무하는 망우2동사무소는 망우로, 봉오재길, 상봉터미널길, 용마산길 등 사면이 간선도로에 인접해 있어 다른 동보다 할 일이 많았다. 더군다나 망우로는 정동진에서 출발하는 올림픽 성화가 지나갈 성화 봉송로였다. 성화 봉송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에 더 신경 쓰였다. 우리는 큰길가의 담장, 상가 출입문, 불량 간판 등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모든 주변 환경을 정비해야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작업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났나, 밤 10시경에 간식으로 순대에다 막걸리를 두어 잔씩 마셨다. 우리는 피곤하기도 하고 술기운도 돌아 길바닥에 주저앉아 담벼락에 기대 잠깐 졸고 있었다. 그때 아이의 손목을 잡고 바로 앞을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된다.” 우리를 술 취한 노숙자로 본 것이다. --- p.28~30 「공부 안 하면 노숙자 된다」 중에서 선거가 있던 시기였다. 언제부턴가 내가 결재받으러 들어갈 때마다 사무장이 사소한 것들을 트집 잡고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책상 좌측 서랍을 반쯤 열어놓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선배에게 조용히 물어보니, 서랍에 상납할 돈을 넣으라는 뜻이었다. 선거 때가 되면 취로 인부 예산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내려왔다. 예전에 지급된 서류를 들여다보니, 평소에 일하지 않았던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노임을 받은 것으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회 담당 직원 서랍에는 생보자들의 목도장을 모은 빨간 인주투성이가 된 주머니가 있었다. 사무장의 속내는 일하지 않은 사람을 일한 것으로 서류를 만들어 자기에게 상납해야 하는데 내가 안 하니 갈군 것이다. 나는 내막을 알고도 취로 노임 지급 건으로 결재를 올릴 때마다 열려 있는 책상 서랍을 짐짓 모른 체했다. 그날도 결재를 올리자 사무장은 예외 없이 짜증을 내며 말이 안 되는 것으로 트집을 잡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책상에 돌아와 사직서를 썼다. “소직은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사직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사흘째 집에서 놀고 있는데 동장이 전화했다. 마치 손주 녀석의 투정을 받아주는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였다. “박 주사, 며칠 쉬었으면 이제 나오지.” 반가웠지만 쑥스럽기도 했다. 나흘째 되던 날 출근했다. 사무장이 나를 보더니 반기며 말했다. “박 주사는 진짜 양심적인 사람이다.” 그 후로 내가 올린 결재 서류에 트집 잡는 일이 없어졌다. --- p.41~42 「홧김에 사직서」 중에서 나는 그전까지 사람이 그렇게 밥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줄 몰랐다. 또 그렇게 큼지막한 눈물방울을 그토록 계속해서 떨구는 사람도 못 봤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데 일주일을 제대로 못 먹었다니 오죽했으랴. 식사가 끝나자 당직자들이 쉬는 방에 데리고 갔다. 지금 밖에서 자면 안 되니,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날이 밝거든 가시라고 했다. 그는 금방 잠들었다. 코 고는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날이 새자 당직 근무 중인 나를 계면쩍게 쳐다보고는 고개 숙이며 말없이 떠났다. 나는 그가 밥 먹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동설한에 노숙하다가 따뜻한 밥에 국물을 먹어서였을까? 뿔뿔이 흩어진 처자식들이 걱정되어서였을까? 아니면 국가 지도자가 잘못해서 나라가 망하고 사업이 망했는데, 말단 공무원이 따뜻하게 해주어 분노와 고마움이 교차했기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역사를 통해 볼 때 위정자가 잘못해서 전쟁이나 국가 부도 같은 큰 환란이 오면, 생사가 걸린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입는다는 것이다. --- p.101~102 「울면서 밥 먹는 남자」 중에서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달이 났다. 호프집 주인이 직원들이 했던 말을 그 남자에게 전한 것이다. 그 남자가 나에게 전 화해서 어떤 놈이 그러더냐고 주민센터를 확 엎어버리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막고 분란을 해소해야 할 공무원, 그것도 서무주임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나는 남자에게 용서를 비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분의 식당에 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연속 사흘을 찾아다니며 빌고 또 빌었다. […] 돌이켜 보면 지금도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쓸어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공직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p.136~137 「다시 못 주워 담을 말」 중에서 “단장님이 소원을 이루시려면 국가를 상대로 두 번의 소송을 제기해 이겨야 합니다. 소송하려면 변호사를 사야 하니 돈이 들어가고, 오래 걸리는데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아버지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먼저 숙부와의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은 숙부가 살아 있어 유전자 감식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 돌아가신 아버지를 친부란에 기재하기 위한 소송이 고비였다. 소송에서 변호사는 단장님이 한자를 몰라 숙부모가 부모로 기재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최근 ‘6?25 전사자 가족 찾아주기 사업’에 신청 서류를 내면서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단장님 가족의 사연을 잘 알고 있는 고향 마을 사람들 전체가 나서서 인우보증을 서주었다. 근 1년 만에 전주지방법원으로부터 6?25전쟁 때 전사한 분이 단장님의 친아버지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 단장님은 어린 나이에 객지에서 고아처럼 떠돌며 고단한 삶을 살다가, 육십이 넘어서야 친아버지를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호적 정리가 끝나자, 나를 찾아와 눈물을 글썽였다. “내게는 박 주임이 나라님이여…….” --- p.140~142 「내게는 박 주임이 나라님이여」 중에서 메르스 사태가 끝나갈 무렵, 한 통의 항공 우편엽서가 날아왔다. 독일로 돌아간 사망자의 큰여동생이 내게 보낸 과분한 감사 인사였다. “당황한 처지에 몰린 메르스 환자 보호자를 그렇게 성의 있게 돌봐주신 그 신념과 용기와 인내에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고마움을 이제라도 전하고 싶어서 늦었지만 몇 자 적습니다. 그날, 그 수고가 서울을 더욱 따뜻하고 살기 좋은, 인정 있는, 고향으로/고국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뼛가루 상자를 안고 우리 두 자매는 말을 잊어버렸었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런 감사의 인사가 박 계장님이 앞으로 계속 일하시는 데 작은 격려가 되기를 빕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10. Aug. 2015. 김영숙?김영희 드림” --- p.177 「오빠의 분골함을 든 자매들」 중에서 우림시장 주변을 순찰하는데 옛날 일이 생각났다. 공무원을 막 시작했던 서기보 시절, 재산세 등 각종 세금 고지서를 가정에 배부하기 위해 골목을 부지런히 오갈 때였다. 동네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수고 많다며 박카스 한 병을 따서 주더니 5만 원을 건네며 신발이나 한 켤레 사 신으라고 하셨다. 마치 큰형님이 막냇동생 대하듯 정겨운 표정이었다. 갓 들어온 공무원이 허접한 운동화를 신고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들었을까? 어쩌면 공무원이 동네일 보는 게 고마워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30년 지나 동장이 되어 그 약국 자리에 가보니 약국은 흔적도 없고 다른 업소가 들어서 있었다. 주변 분에게 약국 사장님의 안부를 물었더니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 가난한 시골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울에서 동장까지 했으니,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동장으로 10개월 일하는 동안, 9급 서기보 시절을 잊지 않았다. 동장으로서 직원들이 기안한 문서를 결재하고 지시하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계획서를 만들고 실무를 하던 습관이 오랫동안 몸에 배어서였다. 동네 행사에서 동네 어른으로 예우받는 것이 쑥스러웠고, 실무자일 때가 편했다고 느꼈다. 나는 정서적으로 아니, 사실상 6급 공무원이었다. --- p.214~215 「동장이 되어 돌아오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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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공무원들을 위한 실무자의 경험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변화를 겪어왔다. 88서울올림픽, 주민등록 전산화, 지방자치 시대 개막, 동사무소 마을문고 설치, 구의회 제도 시행, IMF 경제위기, ‘공무원직장협의회 운영에 관한 특별법’ 및 ‘공무원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시행, 호적 전산화와 호주제 폐지, 가족관계등록법 제정, 출생신고 제도의 변천,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로 명칭 변경, 수해와 메르스 사태, 다문화가정 증가 등 이 책에는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사고와 변화 속에서 일선의 공무원들이 어떻게 일해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 상급 기관과 하급 기관의 역학 관계, 상급 기관의 불합리한 지시에 대처하는 방법,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민원을 해결하는 방법,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공무원의 의무 등 공무원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예비 공무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우리 주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사건·사고는 각종 공문서와 언론을 통해 남는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간섭을 받는 보통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아예 기록되지 않거나 쉽게 잊힌다. 이 책은 그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공무원 면접시험에서 공무원이 되면 어떤 자세로 근무할 거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시민의 종’이라는 자세로 근무하겠다고 답한다. 슬리퍼를 끌고 동사무소에 가면 동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복장이 건방지다고 야단맞던 권위적인 시절이라 그의 답변은 면접관의 걱정을 샀으나, 그의 31년 공직 생활의 신조가 된다. 그 후 저자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6·25전쟁 발발 첫날 전사한 아버지를 죽기 전에 호적상의 친아버지로 올리는 게 소원이었던 봉사단체 단장님, IMF 경제위기로 모든 것을 잃은 어느 가장, 메르스 사태 때 친오빠를 잃은 두 자매, ‘국가유공자의 집’ 문패를 달고 눈물 흘린 할머니 등 그가 만나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대적 고통의 당사자들이면서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과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누고, 울고 웃으며, 돕고 감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이 회고록을 끝까지 읽으면, 결국 인생에 남는 것은 우리가 살아낸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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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 박성택’, 그의 31년 공무원 생활은 한결같이 바닥살이였다. 세월 따라 급수 올라간다고 고개 뻣뻣하게 관료주의로 무장한 책상머리 행정가 행세를 하지 않았다. 중랑구 망우동, 서울의 변두리. 거기서 그는 기꺼이 이웃집 아저씨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는 공무원은 아무래도 촌놈이다. 그러니 출세는 애초에 글렀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도 그놈의 촌티를 끝내 벗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정작 그의 힘이다.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데 주저함이 없고, 올바른 일이라면 기죽지 않고 나섰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따뜻한 인정이 혈관에 흐르고 역사를 몸에 새길 줄 아는 겸손하고 친절한 성택 씨. 어딜 내놓아도 깔끔한 공복으로 살아온 그의 회고록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진솔한 마음 풍경을 마주한다. 이 책을 읽으면 날로 삭막해지는 시대에 숨 맑게 쉬어지는 시간을 누릴 것이다. -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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