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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성시완의 아이들’에서 ‘성덕’(성공한 덕후)에 이르기까지
1장 음악적 구루, 성시완 어린 시절 음악을 접한 계기|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의 비서였던 큰누나 덕에 중동 음악의 매력에 빠지다|펜팔 그리고 아트록을 접하다|1970년대 처음 뉴 트롤스를 들었을 때|한국의 유일한 프로그레시브록 앨범을 만들다|전설적인 〈음악이 흐르는 밤에〉 40주년 2장 제1회 DJ 콘테스트에 출전하다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 〈박원웅과 함께〉에 출연하게 되다|제1회 DJ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다|MBC 〈음악이 흐르는 밤에〉 DJ를 하면서 겪은 갈등과 프로그램을 지켜준 애청자들|방송사상 나오기 힘든 프로그레시브록과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위해 유학을 떠나다 3장 시완레코드를 설립하다 음반을 쉽게 구하고 소개하기 위해 회사를 세우다|컬렉터이자 음반 사업가로서 활동하다|뮤지션들과의 교류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테 에 미엘레의 앨범|앨범 디자인에서도 앞서가다|이름을 걸고 만든 시완레코드가 남긴 것들 4장 세계적인 음반 컬렉터 성시완 음반 컬렉터로서의 삶|하루 종일 레코드숍에서, A에서 Z까지 장르별로 다 뒤지다|기억에 남는 음반 구매 에피소드와 뮤지션들과의 교류|음반 수집 50년을 돌아보다|시완레코드에서 발매한 세계 최초의 CD들 5장 세계 최초의 앨범 재킷 전시회와 〈ART ROCK〉 매거진 창간 앨범 재킷 전시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다|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앨범 커버들|정확한 음악 정보 전달을 위해 〈언더그라운드 파피루스〉를 발행하다|〈ART ROCK〉 매거진 1호부터 17호까지|DJ는 하늘의 별만큼 많은 음악을 찾아주는 천문학자다 6장 이탈리아 아트록 그룹의 공연을 유치하다 얼리어답터의 숙명|라테 에 미엘레, 뉴 트롤스를 한국 공연장에 세우다|기억에 남는 공연, 보지 못해 아쉬운 공연, 그리고 이루지 못한 공연 7장 그간의 방송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SBS에서 프리랜서 PD 겸 DJ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성시완의 월드 뮤직〉과 〈성시완의 사이언스 라디오〉|대학 강단에 서다|가장 빛나던 순간과 마니아로 산다는 것|시완’s Choice를 보여주는 작업이 남다|시대를 앞서갈 수 있었던 기회에 대한 감사|많이 듣고 많이 감동하시기를 에필로그_〈음악이 흐르는 밤에〉 40주년 〈ART ROCK〉 매거진 창간 30주년을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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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그러다 보니까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선생님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열을 받지 않습니까? 내 취향이 무시당하는 것 같고, 모든 음악 프로그램이 똑같아야 되냐는 분노가 생기는데요. 5퍼센트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5퍼센트는 그런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반적인 곡만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고민들을 훨씬 더 많이 해오셨을 것 같습니다.
성 : 그것 때문에 계속 고민해왔죠. 그리고 물론 그것은 애청자들뿐만 아니라, 제 본질적인 이슈였어요. 늘 그렇게 고민을 해서 살아왔고, 특히 가장 잊히지 않는 게 1984년 4월 9일이에요. 제가 마지막 방송을 한 날인데요. 사실은 그날 이런 멘트를 하고 싶었어요. 4월 10일이에요. ‘이 방송이 끝나면 새벽 2시인데, 제 가 애국가를 틀고 나면 내일부터는 다른 진행자가 방송을 할 텐데요. 애청자 여러분들 광화문으로 오십시오. 광화문에서 생맥 주 한잔합시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못 했어요. 나중에 들 은 얘긴데 그날 음악 많이 듣던 사람들, 그 프로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많이 했고, FM 주파수를 없애버리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대요. 과격하게 FM부로 전화를 많이 했나 보더라고요. 다른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과 달리 그 시간대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1장 음악적 구루, 성시완」 중에서 지 : 아무래도 그 시절에는 DJ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많이들 참여했겠네요. 성 : 많이 했어요. 1회 때는 360팀, 대부분이 다 대학교 방송국에 서 나왔어요. 개인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전제를 대학생으로 뒀으니까요. 저는 제 친구 얘기를 듣고서 DJ 콘테스트를 준비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학교 방송국에서 녹음도 많이 했고, 개인들이 방송 장비 같은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요. 저는 집에서 좋은 퀄리티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게 다행 이었고, 그전에 장난식으로 녹음한 게 굉장히 많았어요. 친구들, 은사님들한테 학년 끝나고서 감사의 마음으로 드렸던 테이프들도 있지만 장난으로 녹음한 것도 많았고, 일기식으로 만든 것 도 많았고, 진짜로 DJ를 한 것도, 실험적으로 녹음한 것도 많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모아서 출품을 했기 때문에 쉬웠어요. … 원래 한 30분짜리인데 이것은 8월 13일 〈박원웅과 함께〉에 소개됐고, 실전에서는 15분으로 줄이라고 해서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에서 결선할 때 했죠. 그때 했던 작품이 이거예요. 들어보세요. … ---「2장 제1회 DJ 콘테스트에 출전하다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 중에서 지 : 〈음악이 흐르는 밤에〉 첫 방송 후에 느낌은 어떠셨나요? 성 : 저는 DJ가 꿈이었으니까, 대학생이 돼서 그 꿈을 이룬 거잖아요. 날아갈 것 같았죠. 첫 방송, 아마 제가 녹음해서 갖고 있을 거예요.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굉장히 서툴죠. 만족할 수는 없었죠. 그런데 점점 하면 할수록 는다고 할까요. 실험적인 것도 많이 해봤고요. 예를 들어서 금지곡 목록이 있었는데, 첫 곡부터 끝까지 금지곡으로 다 튼 적도 있어요. 학생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모험을 한 거죠. 기존의 음악 전문가라고 했던 분들한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2장 제1회 DJ 콘테스트에 출전하다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 중에서 지 : 유학 생활을 통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어떤 건가요? 성 : 세상은 넓다는 거죠. 저는 미국에 대해서 네거티브라고 하면 뭐하지만, 역사가 길지 않아서 예술적으로 그렇게 비중을 크게 두지는 않았거든요. 큰 나라긴 하지만,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인 면에서 열등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요. 가서 보니까 거기도 오타쿠들이 그렇게 많아요. 마니아들이 저의 허를 찌르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탠저린 드림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요. 관객이 별로 많이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이 수많은 관중들로 차 있더라고요. … 편협하고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넓으면서 깊이도 있고, 예상 외로 별별 게 다 있는 나라가 미국인 것 같아요. 우습 게 봤다가 많이 깨달았죠. 그전까지만 해도 미국 음악을 우습게 알고, 역사도 짧고, 재즈도 옛날에 흑인 음악을 받아들인 것도 유럽이 먼저인데, 재즈도 사실 유럽에서 온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요. 보니까 미국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사람들도 많고, 음반 수입을 하면서도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2장 제1회 DJ 콘테스트에 출전하다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 중에서 지 : 압구정동에 시완레코드 뮤지엄이라는 숍을 먼저 만드셨는데요. 음반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성 : 제가 유학 갔다 와서 1988년에 세계 유명한 음반사들에 편지를 보냈어요. 약간 마이너 쪽에 있는 회사에도 많이 보냈는데요. 그렇게 해서 연결된 회사들이 프랑스의 뮤제아MUSEA라든지, 유럽 쪽에 많았어요. 그동안 방송에서 소개만 했지 음반 구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음반을 쉽게 구하기 하기 위해서 결심을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루트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간혹 유럽이나 일본의 음반을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절차도 너무 까다롭고, 너무 고가였어요. … ---「3장 시완레코드를 설립하다」 중에서 지 : 해외에서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겠네요 성 : 그럼요. 일본에 라이선스를 안 주니까 저희 음반을 일본에서 많이 사갔어요.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홍대 마이도스 매장에 와서 많이 사갔죠. 한류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런 걸 미리 경험해봤죠. 일본 사람들이 저희 음반숍에 일부러 와서 쇼핑을 많이 하고 갔어요. ---「3장 시완레코드를 설립하다」 중에서 지 : 지금 대충 몇 장 정도 있나요?(웃음) 성 : 그건 의미가 없다고 봐요. 음반 수가 뭐가 중요해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 중에서 희귀음반들이 있어요. 한 장이 2,000~3,000장 정도의 값어치가 나갑니다. ---「4장 세계적인 음반 컬렉터 성시완」 중에서 지 : 킬라파윤도 그렇고, 로스 카나리오스도 그렇고, 세계 최초의 CD를 많이 내셨네요. 성 : 《Refugee》도 세계 최초의 CD였고, 피플의 《I LOVE YOU》도 세계 최초였고요. 굉장히 대중적인 앨범이었고 미국에서도 히트했어요. 대중적인 음반이라고 생각하지만, 피플의 《I LOVE YOU》도 라이선스 허가가 나올 줄 몰랐어요. 그다음에 트리움비라트의 《A la Carte》도 세계 최초의 음반이었죠. 마스터를 못 구해서 깨끗한 음반 3장에서 따서 LP 아날로그 노이즈가 있어요. 그 밖에도 많습니다. 세계 최초 CD가. ---「4장 세계적인 음반 컬렉터 성시완」 중에서 지 : 몇 장 정도 전시를 하신 건가요? 성 : 장 수는 몇천 장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희귀음반이 한 1,000장 정도 됐고, 그다음에 계속 디스플레이를 바꿨으니까요. 대략 1만장 정도 전시했던 것 같아요. ---「5장 세계 최초의 앨범 재킷 전시회와 ?ART ROCK? 매거진 창간」 중에서 지 :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것 중에 상당 부분을 전시한 거네요. 성 : 재밌는 것은 전시회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탈리아에서 친구 두 명이 왔어요. 이탈리아 음반업자들인데, 자기네한테 음반이 없어서 저한테 커버를 사러 온 거예요. 만약에 전시회 안 했으면 제가 팔았을 거예요. 가격도 굉장히 고가고, 전시회 덕에 안 팔아서 전시를 할 수 있었죠.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어요. 마음 아픈 것은 그전에 후배들 통해서 이베이에 판 것들, 그다음에 이탈리아 친구들이 저희 사무실에 와서 직접 컬렉션해서 사 가지고 간 것들이 아쉽더라고요. 그건 평생 못 구하죠. 가격뿐만 아니라 물건이 나오질 않으니까요. 거의 3~4년에 한 번 이베이에 나올까 말까 해서요. 나온다고 해도 제 물건이 되지 않을 가 능성도 높죠. 제가 찾는 거면 다른 마니아들도 찾으니까. 경쟁 붙으면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5장 세계 최초의 앨범 재킷 전시회와 ?ART ROCK? 매거진 창간」 중에서 지 : 지금 생각해보면 〈ART ROCK〉 매거진이 잡지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성 : 거의 다른 나라에서 나오기 힘든 잡지죠. 이쪽 음악 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그거 보면 입이 벌어져요. 그걸 가지고 그리스에 갔는데, 그리스 마니아들이 그림만 봐도 즐거워했어요. 자기가 지금 진짜 하고 싶은 게 한글을 배우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그때 획기적이었어요. … 맨 처음에 시도한 것이 라테 에 미엘레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은 저희가 해설지를 영어로 넣었어요. 한글도 있었지만 영어도 넣었거든요. 그걸 라테 에 미엘레 멤버한테 보여줬더니 너무너무 좋아해요. 한글 보면 모르지만, 영어로도 쓰여 있으니까요. ---「5장 세계 최초의 앨범 재킷 전시회와 ?ART ROCK? 매거진 창간」 중에서 지 : 라테 에 미엘레 앨범은 시완레코드에서 발매하기도 했고, 공연을 하셨으니까. 성 : 인연이 굉장히 돈독하죠. 공연에서는 거의 전율을 느낄 정도로 그대로의 것을 재현했는데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너무 감동적이었고 모든 게 잘 이루어졌어요. LG아트센터에서 첫 번째 공연을 했는데요. 멤버들을 공항에서 배웅하면서 다음에는 파이프오르간 공연장을 마련하겠다고 했어요. … ---「6장 이탈리아 아트록 그룹의 공연을 유치하다」 중에서 지 : 관객 반응들은 어땠나요? 성 : 엄청 좋았죠.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니까. 저는 관객들 반응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일반 공연들하고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나이 많은 분들이 되게 많았고, 주위 분들이 ‘PFM의 공연을 한국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게 뉴 트롤스로 이어졌고, 그때는 좀 더했죠. ---「6장 이탈리아 아트록 그룹의 공연을 유치하다」 중에서 지 : 〈음악천국〉이었죠. 그때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성 : 많은 게 기억이 나죠. 당시에 별똥별들이 많이 떨어질 때는 실제로 중계까지 했어요. ‘별똥별이 많이 떨어지는데’ 하고 전화 연결을 했죠. 그전에 〈0시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의 2년 동안 생방을 했는데요. 그때 탈진 상태였나, 하루도 안 쉬고 생방을 했으니까요. 물론 제가 좋아서 한 거였지만, 그때 진이 좀 빠졌고요. 〈음악천국〉 때는 대부분 생방이었지만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제가 출장 가는 경우에는 특집을 꾸려서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걸로 상을 받았는데요. 그게 잊히지 않아요. 만화가들이 많이 들었나 봐요. 천계영이라는 만화가를 몰랐는데요. 마지막에 눈물 흘리는 그림을 그려서 팩스를 보내와서 감동을 받았죠. 제가 그때 그분을 몰라봤는데, 팀원 중 한 사람이 유명한 만화가라고 하더라고요. ---「7장 그간의 방송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중에서 지 : 선생님이 해온 음악 인생을 확장하거나 정리해볼 필요도 있을 텐데요. 음악과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은 뭐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성 : 음악과 관련해서 아카이브를 남기는 거죠. 제가 해왔던 것을 앞으로 10년, 20년 동안은 자료 같은 걸 정리해서, 물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도 있지만 제가 쓸 수 있는 리뷰들도 있을 거고요. 크리티시즘도 있을 테니까요. 크리틱으로서의 자료를 남기고 싶은 게 있어요. … 옛날에는 너무너무 듣고 싶어도 없어서 못 들었는데요. 요즘은 너무 방대한데, 그걸 찾아서 들려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역할을 아직도 제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7장 그간의 방송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중에서 지 : 정리하는 말씀 하나만 해주세요. 성 : 우리가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면서 들었던 음악인데, 그게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듣는 걸 수도 있고요. 우리가 짧은 인생 동안 들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잖아요. 많이 듣고, 많이 감동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편식하지 말고. ---「7장 그간의 방송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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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하고 마니아들에게 열정적 지지를 받으며 많은 여운을 남긴 전무후무한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한 성시완과 그의 애청자이자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만들어내는 이중주!
성시완,이라는 이름에는 ‘선구자’ ‘최초’ ‘개척자’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수식어의 역사는 중학교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의 비서였던 큰누나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이집트의 디바 움 쿨숨의 음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계기로 중동 음악에 매료된 그는 중학교 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시작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의 펜팔을 통해 음악 정보를 교환하면서 세계의 음악을 접하게 된다. 그렇게 스웨덴 친구와 펜팔을 하며 마누스 어글라를 알게 되었고, 그게 처음으로 아트록을 접한 계기였다고 한다. ‘헤드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소년 성시완은 밤새워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손수 음악을 고르고 멘트를 넣어 디제잉을 해서 만든 녹음 테이프 1,000여 개를 선물하며, DJ로서 훈련을 한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박원웅과 함께〉‘나의 애장음반’ 코너에 출연해 오시비사와 컨티넨트 넘버 6의 음반을 소개하며, 상업 방송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소개했다. 그후 대학에 입학해 1981년에 열린 제1회 전국대학생 DJ 콘테스트에 출전에 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대학 2학년의 나이로 MBC 〈음악이 흐르는 밤에〉DJ가 되어 2년 동안 진행했다. 이는 당시에도 지금도 또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송사상 나오기 힘든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에 아트록을 전파했고, 성시완의 이름에 ‘아트록의 선구자’라는 수식어를 붙게 했으며, 마니아들로부터 열정적 지지를 받아 전설이 되었다. 고故 신해철도 이 방송의 애청자로 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으며, 후에 성시완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인연을 쌓았다. 〈음악이 흐르는 밤에〉이후에 진행한 〈성시완의 디스크쇼〉등의 프로그램 역시 아트록 전문 프로그램으로서, 상업성을 추구하는 방송 현실에서 성시완이 굽히지 않는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지켜냈고, 이를 뒷받침해준 것은 열정적 지지를 보내준 애청자들이었다고 술회한다. 세계적인 음반 컬렉터이자 음반 사업가 그리고 아트록 그룹을 한국 무대에 세운 공연 프로모터 올해는 성시완에게 음반 수집 50년, 〈음악이 흐르는 밤에〉40주년 그리고 〈ART ROCK〉매거진 창간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에 맞춰 출간하는 이 책에는,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소개된다. 음반 컬렉터로서의 성시완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음반숍이 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영업시간 내내 알파벳 A부터 Z까지 장르별로 모든 음반을 다 뒤졌다고 한다. 꿈도 음반을 사는 꿈을 꿨다고 하니, 얼마나 한곳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음반 컬렉터의 삶은 음반 사업과 이어져 있는데, 그의 컬렉팅의 목적은 개인적 소장보다는 국내에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시완레코드를 설립해 많은 음악을 라이선스로 발매했고, 홍대와 압구정 등에 매장을 운영하며 음반 사업가로서 활동했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자신감 있고 야심만만하게 운영한 음반 사업은 2021년에 폐업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아트록 앨범들을 국내에 좋은 음질과 앞서가는 재킷 디자인으로 발매했다는 것과 라테 에 미엘레와 같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보다 10배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의 족적을 남겼다. 음반 사업을 하면서 친분을 맺은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라테 에 미엘레와 뉴 트롤스의 공연을 유치해 국내 아트록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했다. 당시 공연 유치에 대한 많은 계획이 있었으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 중 일어난 관객 압사 사건으로 공연전면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무산되었고, 이로써 공연 프로모터로서의 이력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이 무궁무진하니, 편식하지 말고 다양하게 많이 듣고 많이 감동하기를 바랍니다 ㈜시완레코드를 운영하면서 SBS의 프리랜서 PD로 들어가 〈음악천국〉등을 진행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으며 PD로서 그리고 DJ로서의 역량을 펼친다. 퇴사 후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성시완의 월드 뮤직?을 7~8년 동안 방송했으며, 경인방송에서 〈성시완의 사이언스 라디오?를 진행하던 이야기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앨범 재킷 전시회를 준비하던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여전히 음악을 많이 듣고 뛰어난 음악을 찾아다니며 이를 우리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성시완은, 아트록에 대한 리뷰를 담은 책과 오디오북 등의 발매를 통해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하늘의 별만큼 많은 새로운 음악들을 듣고 감동하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