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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잠시 멈춤, 그 후에 보이는 것들
집 ‘오프’에 스위치를 켜던 날 방구석에 태어나는 독서의 계절 커피는 종종 샴페인이 된다 빵은 최소한 오답이 아니다 넷플릭스엔 나와 닮은 타인이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시간표 청소를 시작하니 내 역사가 튀어나왔다 내 옷장의 지각변동 나는 가끔 오후 3시를 기다린다 *집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 2020년 《싱글즈》 06월호 칼럼 동네 내가 아는 버스, 나를 아는 버스 내 마음의 재개발 나를 목격한 동네 사람들 조금 짠맛 나는 우리 동네 엘레지 영화가 끝나고 시작하는 이야기 우리 동네에 대한 조금은 영화적인 상상 가지 않던 길을 향한 산책 *타인을 잃은 도시 ― 2019년 《싱글즈》 01월호 칼럼 친구 나와 너의 유효기간 SNS만큼 가볍고, ‘좋아요’만큼 솔직한 세상은 가끔 셋으로 충분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멍멍 가족이라는 질량 보존의 법칙 유튜브란 ‘밤’에 불을 지피고 시작하는 아침들 엄마의 가계부 *끝나지 않는 엔드롤, 개와 함께 ― 2018년 《바자》 03월호 칼럼 *우리 곁을 떠나간, 그 산책길 ― 2017년 《바자》 12월호 칼럼 코로나 시절의 아침 오늘은 문득 하늘이 보고 싶었다 늦은 새벽의 ‘블루 아워’ 잡지 같은 인생에 관하여 동네 카페에선 ‘오랜만이에요’라고 하지 않는다 포기가 선택이 되어가는 길목의 ‘다시 만나는 세계’ 만약, 코로나가 그저 한 번의 비수기라면 어쩌면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는 것과 같은 그 영화의 역사는 나의 38년보다 길다 *머핀도 나이를 먹는다 ― 2019년 《싱글즈》 10월호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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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여 년 동안 직장을 출퇴근하며 생활하다가 갑작스레 병원 신세를 졌고, 이후 홀로 생활한 지 5년째 흘러가고 있다. 매일이 매일 같은, 요일도 계절도 잃어버린 철저히 혼자인 외딴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흘렀다. ‘잠시 멈춤’이라 하기엔 장대한 날들이었고, 거리를 두려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멀어져갔다. 아는 사람은 알던 사람이 되었으며, 친구란 어감의 온기도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진짜 의미의 ‘혼자’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 p.5 「프롤로그: 잠시 멈춤, 그 후에 보이는 것들」 중에서 ‘멈춤’이라는 말은 초라하고 외롭게 울리는 말이지만, 나는 요즘 종종 ‘나’에게 멈춰 본다. 혼자가 된다는 건 뉴스에서도, 잡지에서도 시끄럽게 떠드는 키워드가 되어버렸지만, 내게만 그려지는 혼자를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브레이크 이후 회사도 다니지 않는 내게 유일한 수확이 있었다면, 그건 나라는 이름의 혼자, 그곳에 펼쳐지는 내일을 향한 작은 설렘과 바람 같은 것이었다. ‘멈춤’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지만 결코 물러서는 걸음이 아니다. 나는 이제야 그 머무름의 내일을 알 것만 같다. --- p.10 「프롤로그: 잠시 멈춤, 그 후에 보이는 것들」 중에서 조금 더 시시하게 이야기를 풀어 보면, 이효리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왜 그리 금세 끝나고 마는지, 우리 엄마는 2시간 넘게 방송하는 《미스터 트롯》을 보고도 왜 그리 아쉬워하시는지, 반면 우리 동네 38번 버스는 왜 그리 늦게 도착하는지. 집에서 생활할 땐, 나름의 시간, 나름의 스피드, 나름의 질양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 p.45 「넷플렉스엔 나와 닮은 타인이 산다」 중에서 왜인지 기분을 망쳐버린 날의 청소는 다 끝난 하루도 살려내는 ‘건강한 착각’의 효과도 있다. 죽은 식빵도 살려낸다는 발뮤다 토스터기의 그런 효과 같은. 청소는 또 한 번의 기회, 다시 시작하는 찬스 같은 ‘허드렛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내게 빗질과 걸레질은 좀처럼 쉽지가 않지만, 나는 청소를 하며 어제를 돌아본다. 땀을 닦으며 내일을 만나러 간다. --- p.58 「청소를 시작하니 내 역사가 튀어나왔다」 중에서 입지 않는 옷은 버려야 한다는 정리의 법칙이 있다. 마음이 식었다면 버려야 한다는 콘도 마리에식(式) 정서적 접근법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입지 않던 옷을 한 해, 두 해가 지나 가장 아껴 입는 일이 더러 있고, 새로 산 셔츠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바지는 몇 해 전 사놓고 몇 번 입지도 않았던 데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입지 않는 옷을 버린다’는 방식도, ‘버리기 전 마음에 물어 보라’는 콘도 마리에 여사의 물음도 요리조리 피해가며 쌓아둔 옷들이, 내겐 제법 많다. 그러나 돌연 들이닥친 코로나. 당장 내일 일도 확신할 수 없게 된 시절에 내년, 후년, 그리고 ‘지금 말고 언젠가’는 얼마나 무력한 말들인가. 얼마나 애타는 기다림인가. 내일이란 때로 가장 가깝고 가장 먼, 알 수 없는 하루의 이름이곤 하다. --- p.63 「내 옷장의 지각변동」 중에서 수업 후 바로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말을 어기지 않아도 나만의 ‘샛길’을 걸을 수 있었고, 등하교 왕복 2시간이라면 혼자만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수업 이후 기다리고 있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시간들. 마음속 그 시간의 질량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길목이 나의 성장 무렵이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p.86 「내 마음의 재개발」 중에서 코로나19가 터지고 모임이 자제되고 노래 교실이 문을 닫은 뒤, 《미스터 트롯》을 틀어놓고 계신 엄마를 보며, 난 엄마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엄마의 일상이 왜 하필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을까. 나의 엄마가 아닌 엄마 자신의 계절이 보고 싶었다. --- p.162~163 「엄마의 가계부」 중에서 비가 살금살금 내리던 아침, 나이키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비가 거세질까 총총걸음에 아파트에 들어서니 엘리베이터의 열린 문 사이로 내가 알던 남자가 보였다. 매일같이 같은 옷에 같은 모습으로 담배를 피고 있던 남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티셔츠와 야구 모자와 칙칙한 피부 톤. ‘탈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도 몇 걸음을 걸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티셔츠엔 내가 아는 영국 신사의 로고, 폴로의 상표가 그려져 있었고, 문양도 생각(오해)했던 것과 미세하게 달랐다. 지나칠 땐 몰랐던 것들. 세상엔, 가까이서 봐야 보이는 그림이 있다. 근데 이 반전은 현실일까, 그 너머의 현실일까. 창밖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 p.182 「오늘은 문득 하늘이 보고 싶었다」 중에서 집에는 집에서의 생활이 있는 것처럼, 코로나 시절엔 코로나 시절의 일상이 있다. 그 둘은 서로 묘하게 닮고도 달라 간혹 책임 소재를 두고 홀로 애달파질 때도 있다. 3월 예정이었던 마감이 아직도 지지부진한 건 나의 태만 탓인지, 코로나의 ‘거리 두기’ 탓인지. 다들 ‘홈트’가 유행이라는데 고작 10분 운동도 지속하지 못하는 건 나의 체력 문제인지, 코로나의 ‘자숙 무드’ 때문인지. 하지만 이 둘 사이의 ‘묘하게 닮은 부분’, 반전의 숨은 자리, 그 공통점은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쉬지도 않고 ‘열일’ 중인데, 너는 뭐하고 있니. 뭐 이렇게 까발려지는 자기 모순 같은 것들. --- p.208 「만약, 코로나가 그저 한 번의 비수기라면」 중에서 세상은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면서 ‘위드 코로나’란 말을 꺼내들었다. 마치 다시는 어제의 일상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오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영어로 함께를 의미하는 ‘위드’는, 분명 온기를 더하고, 마음을 건네고, 혼자가 아닌 ‘더불어’를 그려내는 두 글자인데, 어쩌다 코로나란 말 앞에 붙어버렸다. 지금의 힘듦을 주도한 그 불명의 역병이 하필 우리와 함께하려 한다. --- p.217 「그 영화의 역사는 나의 39년보다 길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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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은 언제나 가족과 연인, 그리고 떠들썩한 모임을 찾게 마련인 우리에게 혼자 지내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고 귀띔한다. 홈트레이닝과 랜선 술자리, 홈터파크 등의 트렌드는 일시적 위안일 뿐이다. 정재혁 작가는 그 역시 ‘멈춤’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외로웠으며,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겪고 느끼고 관찰해서 깨달았던 작가의 일상은 답답하기만 한 코로나 시절을 힘겹게 통과하는 우리에게 반가운 힌트를 제공한다.
내 일상에 ‘오프’ 스위치를 켠 채, 책을 펼치고 청소를 하고 넷플릭스를 골라 보거나 옷장 정리를 하는 모든 시간 속에서 집은 색다른 모험 공간이 될 수 있다. 익숙지 않은 동네 너머 카페를 찾고, 노선이 바뀐 버스에 선뜻 올라타거나 후미진 예술 전용 극장을 찾는 일만으로도 일상의 도전은 계속된다. 해시태그를 통해 온라인 세계에서 항해를 즐기고, 새삼스레 가족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뭉클한 발견도 우리는 ‘혼자’ 즐겁게 해낼 수 있다. 정재혁 작가는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에 담긴 에피소드 31편을 통해 ‘마주 오는 누군가를 피해 걷고, 주위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자신이 직장 생활을 했던 때는 알 수 없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변화와 성장을 덤덤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내 가까운 이웃일 수도 있는 그의 고백이 여전히 코로나 시절을 감당해내야 하는 우리에게 뜻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책에는 《바자》와 《싱글즈》 등 여러 잡지에 게재되었던 정재혁 작가의 흥미로운 칼럼들도 함께 실었다. 표지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Room by Sae》로, 정재혁 작가의 기호와 책 내용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이미지다. 잠시 멈춤과 거리 두기의 계절을 슬기롭게 지나는 법 가족과 연인이 소중한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정작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부대끼는 동안 깨닫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을 쓴 정재혁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10여 년 동안 트렌디한 잡지에서 글 잘 쓰는 기자로 손꼽히던 그는 직장에 다니며 홀로 서울살이를 하는 동안은 일에 파묻혀 ‘혼자’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인천 본가로 들어가 살면서 그는 소위 ‘비대면 집콕 생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혼자’만의 일상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회복하지 못한 아픔이 여전히 그를 감싸고는 있지만, 별것 아닌 듯했던 집 청소와 옷 정리, 독서, 동네 산책, 버스 타기, 넷플릭스와 유튜브 검색 등이 그에게 새로운 일상의 모험을 선물했다. 그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집과 동네와 친구와 가족과… 자기 자신을 만났다. 어느덧 정재혁 작가는 코로나 시절의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이 익숙하다고 얘기한다. 많은 이가 낯설다던 코로나의 일상을 왜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던 그는 약간의 실수와 오해를 했던 자기반성까지 허물없이 내비치며, 때로 분명히 즐겁고 의미 있던 ‘혼자’의 시간들에 대해 고백한다. ‘멈춤’이라는 단어가 초라하고 외롭게 울리기도 하지만, 정재혁 작가처럼 ‘자신’에게 잘 멈춰 선다면 분명히 만족스러운 한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귀띔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도 프롤로그에 담긴 작가의 웃음소리처럼 ‘잠시 멈춤’의 계절을 웃음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은 ‘혼자’인 것이 불편하고 답답한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베테랑 거리 두기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아닌 코로나가 찾아왔던 지난 봄. 하는 수 없이 집에 머무는 시절은 일상에 해시태그를 달았다. 만남이 제한된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21세기 우리는 와이파이 망 안에도 살고 있다. #를 붙여가며 별 탈 없이 어제와 오늘이 지속된다. 집에서 라이브, 집에서 영화, 집에서 스포츠, 심지어 술자리…. 디지털, 웹의 역사도 반 세기를 향하고 있으니 니름의 역사가 쌓일 만도 하다. 사람은 참 뭘 하지 못해 안달난 존재다. 얼마 전 어느 기사에서 일본의 SF 소설가 오가와 사토시는 “코로나는 인류 최대의 즐거움 중 하나인 ‘집회’를 앗아가버렸다”고 성을 냈는데, 지금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오히려 #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만남으로 가득하다. 나조차 #에 접속해 라이브 공연을 보고, 영화를 감상하고, 심지어 몇 달 전에는 처음으로 랜선 인터뷰까지 했으니, 인간은 웬만해선 어떤 상황에서든 무언가를 하려는 동물인지도 모르겠다. 정전이 되면 우린 오래전부터 촛불을 찾곤 했다. ― 51~52쪽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시간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