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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붉은 수숫대부활해결사살생인부수첩28 사과문에 부쳐 견적서구인 유감마취스파크안개의 냄새돌풍땅콩금강2부콩 고르기삵호박의 진실살충약점생존나비 조심착과머위앵두멧돼지 다녀가셨다고구마 횡재하다거지주머니병3부배꽃개축모시를 키운다산 아랫집감이 떨어진다낙하삼발이양보부여에서 버스를 탄다밀물 그 그리움 속으로마을버스매미판교는 안녕하신가4부꽃들은 말한다꽃나비동파 누설숙련선유도전철을 탄다제주모슬포의 일박이중섭합격창동 거리에 서다일광욕진눈깨비해설 흙의 마음과 뿌리내리기 / 김영호(문학평론가)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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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왔지만 도시는 청년에게 풍요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은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고, 인간다운 삶은 저당 잡혔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살아온 대가로 이젠 “이십 일 간격으로 뒷머리에서/지지직거리며 스파크가 터”(「스파크」)지는가 하면, “세 사람의 직원을 자”르고, “다음엔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살생」)는 강박과 불안감에 점점 삶이 아득해지기에 이른다. 정완희 시인은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고 느낀다. “냄새는 습한 저기압의 흉흉한 소문을 타고/급성 전염병이 되어 축축한 들판으로/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안개의 냄새」).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저 계곡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돌풍」)는 예감이 든다.표제작 「붉은 수숫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인 동시에 언제 실직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년기에 다다른 시인 자신을 상징한다.경작주는 잘 익은 놈들만 골라, 남몰래모가지만 뎅강 잘라 갔다온몸에 흘러내린 선명한 핏자국이제 수숫대는강남역 네거리 붉은 현수막 두른 철탑 위 붉은 조끼 입은 해고 노동자가 되어차가운 바람 앞에 섰다늦가을 찬 서리가 내리고겨울 지나 봄이 올 때까지이파리 껍데기 모두 칼바람에 날리고 하얀 몸통만 남아 비틀린 세상에 맞서며- 「붉은 수숫대」 부분검붉은 녹으로 뒤덮인 고철을 열었다경유와 시너를 발라 기름때 벗기고망치와 스패너 산솟불로 달구며 조심스레 나사 풀어 부품들을 해체하고묵은때 먼지 두껍게 녹슨 몸체는샌드 블라스트. 모래를 날려 새 몸이 된다긴 세월 삭아서 패인 가슴과 얼굴은 퍼디로 메워 예쁘게 화장을 하고마모된 베어링과 손상된 부품을 바꾸어 모터와 콘트롤 패널을 붙여 기계를 돌린다생명을 부여한다, 감히 신의 영역이다청음봉으로 소음과 진동 맥박을 체크하고다이얼게이지 붙여서 정밀도를 검사한다사십 년 쓰다가 십 년은 처박혔던 고철 덩어리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순간이다앞으로 사십 년은 더 돌아갈 것이다나도 이같이 뱃살도 빼고 물렁뼈 마모된 무릎 관절을 바꾸고총기 떨어진 머리와파워가 떨어진 심장과 물총도 바꾸고 바꾸고 또 바꾸어서 - 「부활」 전문기계를 복구해내듯 인간의 몸도 ‘부활’시키길 바라지만 언감생심! “무릎 관절을 바꾸”거나 “총기 떨어진 머리와/파워가 떨어진 심장”을 갈아 끼울 수 없지만 사유를 전환시키면 더 이상의 빠른 자기 소모는 막을 수도 있다는 깨우침이 든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인은 텃밭 농사를 지으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집 주변의 짐승이며 자연의 품에서 조화로운 삶을 이어 가며 욕심 내려놓는 법을 익혀 간다. 그러한 새 삶 속에서 빚어진 시는 담백하면서도 순수하고, 상생의 미학이 알알이 담겨 있다. 특히 “세상으로 버려진 콩들을 본다/구르지 않는다고 왜 모두 썩은 콩이겠느냐/나도 한때는 고단한 노동에 찌그러진 콩이었으며/지금도 잘 구르지 않는 콩이나니”(「콩 고르기」)라는 단락은 이 시집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아울러 “나도 얼른 옆으로 비켜야 한다/양보를 해야 한다/사이좋게 햇빛을 나눠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시「양보」는 ‘더불어 살아감’의 지혜와 일상의 미학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노래한다.쟁반에 콩을 굴려 콩 고른다벌레 먹어 하얀 속살 드러내거나 찌그러진 콩과 납작한 콩 썩은 콩까지구르지 않는 것들은 모두 버린다밭을 갈아 콩를 심어 윗순 잘라 주고늦서리 내린 뒤에야 낫으로 베어 토방과 마루에서 보름을 말렸다마당에 어머님 쓰시던 그물망 깔고 도리깨 휘둘러 타작을 했다겨울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콩 고르기를 하셨다서리태와 메주콩과 작은 콩나물콩까지 겨울 깊어져도 네모난 쟁반을 놓지 못했다썩은 콩 한 개에 밥 한 그릇이 버려지고썩은 조개 한 개에 한 솥 국을 버릴 수 있단다세상으로 버려진 콩들을 본다구르지 않는다고 왜 모두 썩은 콩이겠느냐나도 한때는 고단한 노동에 찌그러진 콩이었으며지금도 잘 구르지 않는 콩이나니- 「콩 고르기」 전문감나무에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백일홍의 가지를 잘랐다감나무를 파서 옮겨 주려다그러면 감나무가 죽을 수도 있고 뿌리가 다시 자리 잡는 데 이삼 년은 걸릴 거라서사이좋게 햇빛도 나누라고백일홍에게 가지 하나를 양보하라고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리도 행여 누군가에게 얼굴을 가리거나시야를 햇빛을 가리거나높이 올라갈 길을 막았다면나도 얼른 옆으로 비켜야 한다양보를 해야 한다사이좋게 햇빛을 나눠야 한다- 「양보」 전문[저자의 말]몇 년째 아산과 고향 서천으로 오도이촌을 하며 시골살이를 준비하다이제 서천으로 귀향을 했습니다.텃밭 농사를 하며 소소한 행복에 젖어 봅니다.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가벼워졌어요.시골로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세 번째 시집입니다.바쁘신 가운데 해설을 써 주신 김영호 평론가님,추천사를 써 주신 나태주 선생님, 이은봉 시인님께도감사드립니다.2020년 5월 18일 서천에서 정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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