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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도로시 톰슨

이론의 빈곤 혹은 오류의 태양계

나가는말
후기

옮긴이 해제|왜 지금 E. P. 톰슨인가?

저자 소개 1

에드워드 파머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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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Palmer Thompson

영국의 역사가·작가·사회주의자이자 평화운동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무렵 영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학부과정을 마친 그가 역사가로서 수업을 쌓은 것은 영국 공산당 내에 구성된 ‘역사학자 모임’에서였다. 그는 여기서 명망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지적 영향을 받았다. 톰슨은 18·19세기 영국의 급진적 운동에 관한 역사서 저술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쓴 첫 역사서는 이 책 『윌리엄 모리스: 낭만주의자에서 혁명가로』(1955)였다. 1957년에는 『뉴 리즈너』(New Reasoner)지와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지를 창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영국의 역사가·작가·사회주의자이자 평화운동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무렵 영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학부과정을 마친 그가 역사가로서 수업을 쌓은 것은 영국 공산당 내에 구성된 ‘역사학자 모임’에서였다. 그는 여기서 명망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지적 영향을 받았다. 톰슨은 18·19세기 영국의 급진적 운동에 관한 역사서 저술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쓴 첫 역사서는 이 책 『윌리엄 모리스: 낭만주의자에서 혁명가로』(1955)였다. 1957년에는 『뉴 리즈너』(New Reasoner)지와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지를 창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형성되어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유려한 문체로 서술한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1963)은 역사학은 물론 사회과학 전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이외에도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전기를 유작으로 출판하였으며(1993), 그 밖에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톰슨은 영국 공산당의 주된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계기로 공산당을 떠났지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선 역사가로서 계속 남아 있었다. 그는 1950년대에 영국의 신좌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영국 노동당 정부에 대한 좌파 입장에서의 비판자였고, 1980년대에는 반핵 평화운동을 주도해 냉전체제의 일각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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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변상출
서강대 독문과에서 루카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예술과 실천》이, 번역서로 G. 루카치의《이성의 파괴》(전2권)와《발자크와 프랑스 리얼리즘》, H. M. 엔첸스베르거의《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악셀 브라이히·울리히 렌츠의《일 덜 하는 기술》,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전3권),《이론의 빈곤》등이 있다. [무정부주의와 유토피아],[탈현대논리와 비판이론의 한계 극복을 위한 ‘고전적 전략’],[전통 유물론적 문예이론에 대한 반성과 전망],[마르쿠제, 그 해방의 미적 프로젝트],[루카치 유물론에서 ‘매개’의 위상],[지젝 : 청산과 화해의 정치학]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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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668g | 153*224*30mm
ISBN13
9788970138510

출판사 리뷰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 위기의 구원투수인가?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의 빈곤을 넘어 주체와 역사, 현실과 실천을 복원하라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대탈출 행렬이 이어지던 1990년대 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존 해석을 비판하며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마르크스를 재해석할 것을 주장한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1918~90)는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책임질 사상가로 평가받았다. 당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의 공백 메우기” “마르크스주의로의 비판적 복귀” 같은 수식어를 달고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타개할 ‘구원투수’가 되는 듯 보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발리바르, 바디우, 랑시에르, 지젝 등 알튀세르를 계승한 후예들이 한국 지성계의 한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영향력은 서구에서는 더 오래된 일이다. “영국의 신좌파 평단은 알튀세르의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면 무엇이든 이슈화했을 정도”라는 톰슨의 표현처럼,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를 관통하며 알튀세르는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서구 지성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스탈린주의의 폐해와 68세대에 나타난 운동 패러다임의 변화 국면에 힘입어 알튀세르주의는 ‘이론적 실천’이라는 막강한 ‘이론적 제국주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론의 빈곤》(1978)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톰슨의 우려와 분노에서 비롯된 ‘비판’의 수작이다.《영국 노동계급의 형성》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톰슨은 이 책에서《마르크스를 위하여》와《자본론 읽기》등 알튀세르의 주요 저작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알튀세르 철학의 모순과 약점을 철저히 논파한다. 특히 알튀세르의 이론에 존재하는 구조주의적?반역사주의적?반도덕주의적?반인간주의적 사유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톰슨에 따르면 알튀세르의 사유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성과 결합하지 못한 채 추상으로 흘렀으며 지나치게 기능주의적?결정론적 관점으로 사회를 해석함으로써 진정한 이론적 혁신에도 실패했다. 톰슨이 특히 이 책에서 비판하는 지점은 ‘주체’와 관련된 부분이다. 그는 알튀세르의 사유가 노정하는 문제점들, 즉 주체의 경험을 묵살하는 정태적 구조주의, 역사를 ‘주체 없는 과정’으로 상정하는 반역사주의, 과학성을 내세워 도덕을 재단하는 반도덕주의, 분노와 연민을 품은 인간주의를 ‘부르주아 인간주의’로 청산하는 반인간주의를 논박한다. 정치한 논리적 분석과 생동감 넘치는 문학적 수사를 오가는 톰슨의 비판은 혹독하기까지 하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역사가의 한 명인 톰슨이 역시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의 한 명인 알튀세르에게 가하는 비판은, 68혁명 이후 유럽 지성계의 주류를 이루었던 구조주의와 신좌파의 이론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현실과 유리된 채 현란한 이론에 경도되어온 한국의 지식인? 진보 진영에 대해 인간과 역사?현실과 실천을 복원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며, 폐쇄적 체계에 갇혀 인간과 도덕을 마비시키는 모든 교조적 이념을 향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구조적 전환기를 맞아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모색하는 지금, “새로운 세대는 알튀세르보다는 톰슨에게서 배울 것이 더 많다”는 크리스 하먼의 말처럼, 우리는 마르크스로의 비판적 복귀를 역설하며 알튀세르가 범했던 ‘오류’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한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계급 주체의 해체가 아니라 거대 자본의 체계 해체와 인간과 주체의 부활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톰슨의《이론의 빈곤》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톰슨, ‘아주 오래된 적’ 알튀세르를 비판하다
“인간 포부의 푸른 이파리”, 역사의 작인으로서의 인간 주체를 회복하라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전화’하려고 했던 알튀세르는 20세기의 가장 문제적이며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톰슨은 왜 ‘좌파에게는 적이 없다’라는 공식을 깨뜨리고 20세기 최대 마르크스주의자라 불리는 알튀세르를 공격했을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텍스트들에 대한 독해에 기초해 존재/의식, 토대/상부구조의 선차적 관계와 같은 고전적 명제 대신 ‘상대적 자율성’ ‘중층결정’ 같은 새로운 어법을 제시하는 가운데 구조주의적 시각을 도입해 마르크스주의의 목적론적?결정론적 경향을 극복하려 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 경제주의, 환원주의, 인간주의를 비판했으며, 역사를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주체로서의 인간 대신 사회 각 영역들의 구조와 자율성에 주목했다. 또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나 ‘호명’ 등의 개념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을 새롭게 해석했다.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은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자 톰슨이 보기에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에서 벗어난 “아주 오래된 적이자 스탈린주의 권력의 근거”일 뿐이었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를 실현한다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톰슨은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 인간 ‘주체’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인간 주체는 역사나 구조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작인作因’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갈 때 떠맡는 이중의 역할, 즉 희생자이자 작인으로서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다.” “사회적 힘이란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이러한 톰슨의 ‘인간주의’(톰슨의 인간주의는 알튀세르가 염두에 둔 ‘부르주아적 인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와 마르크스주의적 주체 관점에서는 인간을 환경이나 사건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구조주의’는 용납될 수 없었다.

톰슨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만든다”는 인간주의적 주체성의 관점과 ‘계급 없는 사회’를 향한 ‘목적론적’ 이념, 그리고 그 ‘과정’으로서의 통제 메커니즘에 대한 역사적 계급투쟁의 신념이다. 그리고 이런 논점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일 것이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저작에 출몰하는 ‘주체 없는 과정으로서의 역사’ 관점이나 자신이 어디에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우발성의 유물론’은 톰슨이 ‘내부의 적’으로서 논파해야 할 대상이었다. 더욱이 ‘목적’도 ‘주체’도 없는 알튀세르주의가 스탈린주의의 폐해와 서구 68세대에 나타난 운동 패러다임/주체의 변화, 즉 ‘계급운동(노동자)’에서 ‘문화운동(지식인)’으로의 변화 국면을 틈타 막강한 지배력을 누리고 있었던 만큼 톰슨의 분노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60년대 말~70년대에 알튀세르(주의)가 행사한 영향력을 두고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 손바닥 크기의 한 점 구름이 파리에서 영국 운하를 건너와 금세 나무들, 과수원, 울타리, 밀밭을 스치고는 메뚜기 떼로 하늘을 까맣게 덮는다. 마침내 이들이 다음 구역으로 날기 시작했을 때, 큰 나뭇가지는 앙상한 문화를 드러냈고 들판은 인간 포부의 푸른 이파리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톰슨의《이론의 빈곤》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인간 포부의 푸른 이파리’를 되살려내는 일이다. 그것은 곧 다양한 ‘통제 메커니즘’에 의해 사물화한 인간 ‘주체’를 회복하는 것이며, 알튀세르의 폐쇄적 체계, 즉 ‘이론적 실천’을 해체하는 길과 통한다.

알튀세르의 반역사주의,반경험주의?반도덕주의?반인간주의를 논박하다

그래서 톰슨은 ‘작인’으로서의 ‘주체’와 관련된 부분에서 특히 알튀세르를 시종일관 혹독하게 비판한다. 주체의 경험을 묵살하는 ‘이론적 실천’의 결과인 ‘정태적 구조주의’, 역사를 ‘주체 없는 과정’으로 상정하는 반역사주의, ‘도덕’과 ‘가치’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침투하기 쉬워 과학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과학의 이름으로 ‘도덕’을 재단하는 반도덕주의, 분노와 연민을 품은 ‘인간주의’를 ‘부르주아 인간주의’로 청산하는 ‘반인간주의’가 공격의 대상이다. 톰슨에 따르면, 알튀세르가 축출하고 있는 경험주의?역사주의?인간주의?도덕주의는 마르크스의 저작들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프루동을 비판한《철학의 빈곤》이 그렇고, 또 핵심 저작인《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착취의 경제적인 과정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빈곤, 유아노동, 인간능력의 낭비에 대한 분노와……지식인들의 신비화와 변명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기도” 한다.

톰슨이 보기에 알튀세르(주의)의 반역사주의?반경험주의?반도덕주의?반인간주의는 현실의 경험과 주체를 무시하고 모든 ‘지식 생산의 효과’를 오로지 ‘이론적 실천’으로 환원하는 이론 자체의 ‘정태적 구조주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냉전의 산물로 작동한 1950년대의 ‘구조주의’가 빚어낸 “국가?정통주의”(스탈린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당시는 체제의 안정을 위해 개인은 체제에 복무하고 역사는 당이나 국가기구에 의해 움직이는 주체 없는 과정이어야 했으며,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 묻는 경험주의와 ‘고통과 빈곤에 대한 분노’의 도덕주의는 배척될 수밖에 없었던 때다.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 경험?역사?도덕?인간을 배제하는 알튀세르주의는 톰슨에게서 “이론의 패러다임으로 환원된 스탈린주의”라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론이 반도덕주의와 반인간주의, 그리고 이성의 경험적 조리개 일체의 폐쇄를 가르친다면 이론은 ‘좌파’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톰슨의 물음은 시대와 이념의 좌표를 뛰어넘어, 폐쇄성으로 인해 자멸하지 않고 시대의 과제에 응전하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질문이다.

왜 지금 톰슨인가 ? 해체해야 할 것은 ‘주체’가 아니라 ‘거대 자본의 체계’이다

옮긴이 변상출은 “톰슨의 역사유물론을 관류하는 것은 주체?객체 간의 ‘대화’를 전제로 하는 과정의 논리학”이라고 말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어떤 객체에 대해서도 주체의 무조건적 지배란 있을 수 없다.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알튀세르식 ‘이데올로기적 호명’만을 기다리는 ‘객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처럼 톰슨의 ‘과정의 논리학’은 주체의 역능성과 민주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지배를 용납하지 않는 점에서 민주성을, 주체가 고유성과 논리성에 따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압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역능성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의 역능성과 민주성에서 ‘왜 지금 톰슨인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제하는 생산주의 프레임은 “인간 포부의 푸른 이파리”를 찾아 진군하려는 자세를 낙오의 지름길이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역사란 주체 없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서 싸우는 형식이라고 믿고, “역사를 만들어갈 때 떠맡는 이중의 역할, 즉 희생자이자 작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톰슨의 시각을 받아들일 때 신자유주의의 ‘프레임’을 깨고 손상된 인격을 회복할 ‘주체’로서의 인간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한국의 지식 사회와 진보 진영은 온갖 종류의 포스트주의가 명멸하는 가운데 풍요 속 ‘이론의 빈곤’을 경험해왔다. “역사에서 주체의 몫을 끊임없이 강조하는《이론의 빈곤》은……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논쟁을 촉구한다. 해체주의의 전략이 역사유물론의 ‘총체성’ 개념이나 ‘계급 주체’를 해체하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해체해야 할 ‘대타자’, 즉 거대 ‘자본의 체계’를 해체하는 데는 실패한 듯하며, 그 여파로 주체들이 더욱 왜소해졌기 때문이다.《이론의 빈곤》은 부단히 주체의 부활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실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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