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역자 서문
서언 서론 얼터-모더니티 뿌리: 포스트모던 이성에 대한 비평 래디컬과 래디컨트 빅토르 세갈랭과 21세기 크레올 래디컨트 미학 미적 불안정성과 방랑하는 형태 여행 형태들 이동 항해에 관한 논문 문화적 비 아래에서(루이 알튀세르, 마르셀 뒤샹, 그리고 미술 형식의 사용) 예술적 집합주의와 생산의 경로 POST-POST, 또는 얼터모던 시대 |
Nicolas Bourriaud
|
우리 세기의 모더니티는, 정체성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나쁜 해결책과 경제적 세계화로 판결되는 상상의 표준화 두 가지 모두를 버리면서, 모든 근본주의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에서 고안될 것임을 보증하자. 왜냐하면 현대의 창작자들은 이미 래디컨트 아트를 위한 기초를 다졌기 때문이다. “래디컨트radicant”는 그 뿌리가 성장하고 그것이 뻗어나갈 때 새로운 뿌리들을 더하는 유기체를 지칭한다. “래디컨트하다는 것to be radicant”은 누군가의 뿌리를 움직일 수 있게 설정하고, 그 뿌리를 이질적인 배경과 형식으로 연출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정의 내리는 그들의 힘을 부인하고, 생각을 해석하고, 이미지를 코드로 바꾸고, 행동을 이식하며, 강요하기보다는 교환하는 것이다. 만약 21세기 문화가 다수의 동시적 혹은 연속적인 재뿌리내리기를 선호하여 그들의 근원을 지우는 임무를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작품들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삭제 과정은, 현대의 예술적 창조의 핵심에서 끈덕지게 출현하면서 우리의 불확실한 시대의 중심인물인 방랑자들이 가지는 조건의 일부이다. 이 인물은 형태의 한 영역을 수반한다. 즉 여행 형태의 영역이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유형도 수반한다. 즉 옮기기인 번역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의 양식을 열거하고자 하며 현대 문화에서 이들이 갖는 주요한 역할을 증명하고자 한다.
일반 언어에서 “현대화modernizing”는 서구 형식에 문화적, 사회적 현실을 환원시킨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모더니즘은 식민주의와 유럽중심주의와 공모 관계 형태가 되었다. 지난 세기의 모더니티를 모순되게 복제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우리 시대 특유한 것인, 그리고 지난 세기의 문제성을 반향하게 될 모더니티에 기대를 걸어보자. 감히 용어를 만든다면 얼터-모더니티altermodernity라고 하겠으며 이렇게 정의를 내리는 문제 및 특성 등을 이 책에서 개략해보고자 한다. 여전히 이민자, 망명자, 여행자, 도시의 방랑자는 현대 문화에서 지배적 인물들이 아니다. 식물 영역의 어휘 내에 남기 위해, 혹자는 21세기의 초반의 개인들은 하나의 뿌리에 의존하지 않고, 담쟁이덩굴이 그렇듯이, 전방위로 진출해 많은 갈고리 모양의 기관돌기들을 어떤 표면이든 상관없이 부착시키는 식물들과 닮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담쟁이덩굴은 래디컨트radicants(수염뿌리식물과)에 속하는데, 이것은 성장해가면서 뿌리를 발달시킨다. 이와는 달리 급진파radicals의 발전은 특정한 토양에 의해 결정된다. 개밀의 줄기는 딸기 작물의 뿌리순과 같이 래디컨트이다. 그것들은 본뿌리 옆에 나란히 곁뿌리들이 성장한다. 래디컨트는 주 토양에 맞추어 성장한다. 래디컨트는 곁뿌리의 휨과 돌기에 순응하고 표면과 지질학적 특성에 적응한다. 그것은 자신이 움직이는 공간의 용어로 스스로를 번역한다. 역동적이며 대화적인 의미화signification와 더불어, 형용사 “래디컨트”는 이와 같은 현대의 주체를 포착하며, 환경과의 연결 필요성과 뿌리 뽑힘의 힘 사이, 세계화와 독자성 사이, 정체성과 타자에 대한 개방 사이에 끼어 있다. 래디컨트는 주체를 협상의 객체로 정의한다. 현대 미술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뿌리들을 내리는 이러한 개인에게 새로운 모형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현대 미술은 정체성의 실험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태어난 전통을 표현하기보다는 전통과 그들이 지나간 다양한 배경들 사이에 그들이 취하는 통로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번역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한다. 모더니즘이 뿌리 또는 원리를 발굴하려는 노력에서 빼기에 의해 전진했던 곳에서, 현대 미술가들은 선택, 추가, 그 다음엔 곱하기에 의해 전진한다. 그들은 자아 또는 사회의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들은 한 정체성에 다른 정체성을 곱하기 위해 기호를 조직한다. 모더니즘이 탄생시킨 가치들과 계급들의 침식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미술과 문화의 세계화, 문화적 생산품의 확산과 인터넷 정보의 준비된 유용성은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탐사하고 있는 새롭고 전례 없는 조건들을 창조하고 있으며, 이 조건들은 마치 로드맵처럼 우리를 위해 이 새로운 영토를 도표화한다. 거의 모든 유용한 정보가 들어 있는 인터넷은 (항해, 추론되었거나, 직관적이거나 우연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세계 문화의 상태에 대한 이상적인 은유를 제공한다, 즉, 그 표면 위에서 우리가 생각의 길을 잡는 것을 배우고 있는 액체 리본인 것이다. 하나의 원리나 방법이 부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보를 찾는 이러한 능력은 지식인이나 미술가들에게 지배적인 능력이 생기는 과정에 있다. 기호를 연결하며, 사회 문화적인 공간 혹은 미술의 역사 속에서 여행 일정을 제공하면서 21세기 미술가는 “기호 탐험가”가 된다. --- 본문 중에서 |
|
이 책은 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관계의 미학』(1998)과 『포스트프로덕션』(2002)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던 니꼴라 부리요의 가장 최근 저서인 『래디컨트』(2009)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서 부리요는 현대 미술가들의 근본적인 목적과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면서, 기존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토론의 장으로서 새로운 문화 이론을 소개한다.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제작 경향은 분명 과거 모더니즘 체제에서의 보편성으로서의 미술과는 다른 것이지만, 한 문화권이 단위로 이해되는 문화체계로서의 미술과도 구별되는 또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거 미술가들이 유럽아메리칸 기준을 좇는 획일적인 “닫힌” 보편성으로 작업하였다면, 현대 미술가들은 차이를 인정하면서 글로벌 규모로 다른 문화권의 요소들을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미술가들이 추구하는 보편성은 한없이 개방된 “열린” 구조이다. 즉, 이들은 “열린” 보편성으로서의 미술을 번역 행위를 통해 실천하고 있다. 부리요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론적 간극을 “얼터-모더니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부리요는 이처럼 번역 행위를 통해 “상호 연관된” 현대의 보편주의를 “래디컨트”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래디컨트는 나무들 주변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와 같이, 땅 위에 뿌리를 박는다는 의미를 가진 식물학 용어이다. 그는 영토로 변하는 시간과 공간의 상호성을 강조하고자 이 특별한 용어, 래디컨트를 사용한다. 시간이 공간화된다. 따라서 현대 미술은 시간 특수성의 실천을 통해 경험의 영토를 포착하는 형태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미술은 “위상기하학적” 사고의 형태임을 부리요는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부리요는 문화가 그 본질로 채택한 정체성 정책이 논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기존의 다문화주의에 많은 의문을 던진다. 그의 예리한 의식들은 세계화 이후 아직 설명되지 않은 다양한 문화 현상을 사고하는 데 찬란한 빛처럼 새로운 방향에서 이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문화연구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이 책은 각각의 문화가 동떨어지고 독립적인 자급자족의 닫힌 세계인 양, 박물관 안에 박제된 고정불변의 것이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이라 주장하는 케케묵은 맥빠진 사고에 일격을 가하고 있다. 그러한 낡은 사고가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나이의 미술학도들을 어느 한곳에 가택연금하면서 그들의 예술적 창의력을 저해하는 반실재적이며, 반이론적인 것임을, 부리요는 현대 미술가들을 많은 세계의 “기호탐험가”로 정의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실로 이 글은 글로벌 시대에 어떻게 미술가들을 교육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세계화 교육 또는 문화 교육을 기획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밝은 혜안을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