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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의 영화의 길
배창호
작가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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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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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04 책머리에

제1장 시작의 길, 1953~1981

11 유년 시절
26 중·고등학교 시절
33 대학 시절
42 직장 시절
51 충무로 아웃사이더 시절
58 조감독 시절

제2장 성공의 길, 1982~1985

77 [꼬방동네 사람들]
96 [철인들]
110 [적도의 꽃]
123 [고래사냥]
141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53 [깊고 푸른 밤]
167 [고래사냥 2]

제3장 가지 않은 길, 1986~1992

180 [황진이]
193 [기쁜 우리 젊은 날]
206 [안녕하세요 하나님]
222 [꿈]
237 [천국의 계단]

제4장 새로운 길, 1993~2001

251 [젊은 남자]
264 [러브스토리]
279 [정]

제5장 아직도 가야 할 길, 2002~

311 [길]
328 [여행]

저자 소개 1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종합상사 케냐 지사에서 근무하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감독으로 데뷔해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등 일련의 흥행작들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다졌고, 〈황진이〉(1986)를 기점으로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 등 자신이 추구하는 테마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상 스타일을 심화시켜 나갔다. 1994년 배창호프로덕션을 설립해 〈젊은남자〉(19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종합상사 케냐 지사에서 근무하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감독으로 데뷔해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등 일련의 흥행작들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다졌고, 〈황진이〉(1986)를 기점으로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 등 자신이 추구하는 테마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상 스타일을 심화시켜 나갔다. 1994년 배창호프로덕션을 설립해 〈젊은남자〉(1994), 〈러브스토리〉(1996), 〈정〉(2000)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고, 〈흑수선〉(2001), 〈길〉(2006), 〈여행〉(2010)을 거쳐 그의 영화를 향한 길 찾기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산호세주립대학교 방송영화학과 석좌교수, 건국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대종상 신인감독상(〈꼬방동네 사람들〉), 감독상(〈깊고 푸른 밤〉),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꼬방동네 사람들〉), 감독상(〈깊고 푸른 밤〉, 〈천국의 계단〉),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각본상(〈기쁜 우리 젊은 날〉, 〈러브스토리〉), 황금촬영상 감독상(〈안녕하세요 하나님〉),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감독상(〈적도의 꽃〉), 최우수작품상(〈깊고 푸른 밤〉), 프랑스 낭트3대륙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프랑스 베노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최우수관객상(〈정〉),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최우수관객상(〈정〉), 미국 필라델피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길〉)을 비롯해 기독교문화상(1985), 서울시문화상(1985),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3), 한국영화문화상(2004)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스크린 에세이』(우석, 1992),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 배창호 감독의 영화 이야기』(여백미디어, 2003) 등이 있으며, 2018년부터 2022년 7월까지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614g | 152*210*23mm
ISBN13
9791190566490

책 속으로

영화 예술의 길을 개척한 여러 감독들-장 르누아르, 비토리오 데 시카,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프랭크 카프라, 데이비드 린, 미조구치 겐지, 스탠리 큐브릭,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의 작품 세계와 그들의 영화적 표현들에 관심을 가졌었다. 나는 상업영화, 예술영화로 구분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미 영화 자체가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적 표현 매체이기 때문이다. 단지 관객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영화인가 인생을 느끼게 하는 영화인가 하는 구분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영화 체험과 작품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생각들과 느낀 것들을 대담으로 정리한 것이다. 독자들이 내 작품들을 기억하면서 이 대담을 읽는다면 더욱 이해가 깊어지겠지만 읽는 자체만으로도 쉽게 전달되도록 노력했다.
---「책머리에」중에서

내 영화 속에 도시적인 정서도 있으면서 한편 전원적인 시정이 있는 이유가 뚝섬에 살 때 체험했던 것에서 온 것 같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면 푸른 밭이 펼쳐있고 한강이 가까이 있었어요. 포플러나무가 우거진 강변의 유원지로 놀러 가면 한복 입은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요. ‘뚝방으로 막은 섬’이라 해서 뚝섬이라 불렀는데, 답십리 쪽을 마주보고 있는 긴 둑 위에 언제부터인가 빈민촌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판자 몇 개와 가마니로 만든 움막들이었지요. 영화감독이 되어 첫 작품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을 만들 때 그 둑 위에 살던 빈민들에 대한 기억이 작용했을 겁니다.
---「유년 시절」중에서

다수가 미국영화였지만 다른 나라 영화도 꽤 수입됐어요. 스페인 영화, 남미영화, 인도영화도 들어왔고, 프랑스의 갱영화, 이태리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는 자주 수입됐고, 클로드 를루슈의 [남과 여](1966)나 소위 작가주의 영화도 가끔 수입되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나이 때의 내가 좋아하던 영화는 전쟁영화, 서부영화, 시대극 같은 서사적이며 스펙터클한 그런 영화들이었습니다. 특히 데이비드 린의 [콰이강의 다리](1957)는 무척 좋아했던 영화 중의 하나인데, 조감독 시절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을 독학할 때 이 영화의 시점 숏 등을 여러 번 보며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중에서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볼 때는 직접 채록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며 공부를 했어요. 영화 잡지도 영화 이론서도 몇 권 없을 때였으니까 영화 전공이 아닌 사람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길이 별로 없었고, 아직 비디오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채록하고자 하는 영화를 일단 한 번 보고 나서 다시 보면서 장면의 개요를 빨리빨리 적습니다. 노트에 적힌 장면의 요약을 읽고 머릿속으로 영화를 리플레이 하는 것이니까 집중력과 기억력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감독이 되어서도 간혹 채록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1985년도에 동경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영화를 보면서 뭘 적고 있으니까 옆에서 같이 보던 기자가 뭐 하는 건지 궁금해하길래 설명해준 일도 있었어요.
---「대학 시절」중에서

그때가 대학에 막 복교할 때인데, 한국영화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들이 모여서 ‘영상시대’라는 그룹을 결성하면서 연기자와 연출자를 양성하기 위해 공모를 했어요. 그때는 우선 연기자로서의 기회를 갖고싶은 생각에 분명히 연기 부문에 지원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연출 부문의 면접을 보라고 통지가 왔어요. 이장호 감독님이 기억을 하고 계시던데, 내가 지원서에 쓴 글이 당연히 연출 지망의 글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연출 부문 면접에는 가지 않고 연기 부문의 면접 통지를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 ‘영상시대’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시절」중에서

케냐 오길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일을 안 하는 시간에는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많이 보면서 시야를 넓히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이 주된 영화 공부였거든요. 케냐에 있을 때 본 대표적인 영화가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인데, 첫 장면에서부터 매료되었습니다. 버나드 허만의 음악이 트럼펫 연주로 들리면서 주인공의 택시가 수증기 속에 모습을 나타내는데, 택시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매우 강렬했어요. 처음 본 로버트 드 니로란 배우의 분위기에도 많이 이끌려서 1980년대 초 안성기 씨하고 일할 때 그 비디오를 구해서 같이 보기도 했지요.
---「직장 시절」중에서

스스로에게 소년 같은 약속을 했죠. ‘영화감독이 되면 케냐에서 일하는 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시 오자.’ 그 약속을 한 후 15년이 지나 실제로 그 영화의 시나리오 헌팅을 위해 케냐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 아프리카]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제작이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몸바사의 니얄리 비치 호텔 앞에 해변이 있는데, 그 해변의 어느 야자나무 밑에 케냐의 1실링짜리 동전 하나를 묻어두고 영화감독이 되어 다시 이곳을 오게 되면 찾아보리라 다짐하며 떠났었지요.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15년 만에 아내와 마주 앉아 어느 야자나무 밑의 모래를 파기 시작했어요. 내 마음에 보인 것은 동전이 아니라 15년 전 그 동전을 묻던 스물여섯 살 난 청년의 모습이었어요. 그렇게도 영화감독이 되기를 갈망하던 평범한 샐러리맨인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올려졌던 것이지요.
---「직장 시절」중에서

[별나라 삼총사] 배급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앞날이 막연한 충무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느 날 김승옥 선배님이 나를 집으로 부르셨어요. 그분이 자신의 원작 소설인 『강변부인』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려던 참에 나를 불러 초고의 대필을 시키셨습니다. 날 가르치기 위해서였던 것이지요. 김 선배님이 몇 장면씩을 구술해주면 나름대로 살을 붙이고 정리해서 오고 다시 다음 장면들을 불러주고 해서 몇 달에 걸쳐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분이 불러주는 장면들은 영상을 시각적으로 상상케 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나로서는 귀중한 훈련을 받은 기회였습니다. 혼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다가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이지요.
---「충무로 아웃사이더 시절」중에서

물론 내 자신도 부패한 독재 정치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구조로 인해 억압받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목적성을 지니는 것보다는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깊이 껴안는 보편성을 지니기를 바랐습니다. 영화라는 낱말 앞에 ‘민중’ 같은 표현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영화는 대중으로 표현하든 민중으로 표현하든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느꼈으니까요. 민중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겠지만, 나는 그런 의식을 내세우지 않고 영화 내용 안에 녹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고래사냥]이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처럼 사회의식들을 인물의 삶 속에서 그려나갔습니다.
---「조감독 시절」중에서

체제 비판까지는 아니지만 소외된 자들에 대한 냉정한 사회상을 그렸습니다. 주석이 가족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와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다가 배고픔 때문에 결국 다시 소매치기를 하다가 몰매를 맞잖아요? 그런 장면이라든지. 직업을 찾기 위해 혼자 거리를 배회할 때 아무도 이 도시에서 받아줄 데 없고 알아주지 않는 그런 고립감 등을 표현했지요.
---「[꼬방동네 사람들]」중에서

무슨 소재든 어떠한 자세로 만들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몽성이라는 것이 왜 문제 됩니까? 프랑스에서는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있었고 톨스토이도 계몽주의 작가가 불리는데. 이 작품 역시 나는 사랑의 시각으로 풀어나갔습니다. 일을 사랑하는 기업주와 경영자,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근로자,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철인들]에는 정부에서 보면 싫어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박 부장에게 스트라이크 일으키는 장면들도 그렇고. 고도 경제 성장의 가치인 실적 위주에 반대적인 가치를 내미는 게 동렬이거든요? 진정한 경제 성장은 근로자들에 대한 배려, 화합과 협력 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했습니다.
---「[철인들]」중에서

나는 영화에 필요한 것 외에는 생략을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에 없는 것을 찾아요. 영화에 없는 나머지 부분은 관객들의 상상의 몫입니다. 초상화를 보면 반신도 전신도 있어요. 작가의 선택이지요. [적도의 꽃]에서도 내가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소설은 시간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길이에 구애받지 않지만, 영화는 시간예술이라 선택이 중요합니다.
---「[적도의 꽃]」중에서

고래는 모두의 마음 속에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낀 소심한 대학생이 힘든 여정을 통해 행했던 것은 이웃 사랑이었으며 자신 속에 그 사랑이 숨 쉬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고래사냥]」중에서

처음 의도는 감정이 절제된 작품을 하겠다고 했는데, 역시 감정이 풍부한 영화가 됐어요. 감정이 풍부한 한국영화를 서구인의 시각에서 감상주의라고 치부하는 것이 싫었거든요. 물론 이것은 감독 초기 시절의 생각이었구요. 감상성은 한국인의 정서이며 내 영화의 한 특질임을 당당히 말하게 되었습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오래된 선전 문구가 있는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동생 오목이의 삶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중에서

일본에서의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던 일본의 평론가와 관객들이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보냈어요.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사토 다다오 씨는 후일 한국에서 나와 만난 자리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젊은 날 연출력이 힘이 있을 때를 보는 것 같다”라고 해서 나도 놀랐습니다. 해외 배급을 제작사와 가까운 관계인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가 맡았는데, 미국 차이나타운의 전역에 배급했고 'LA 타임즈'의 ‘Pick of the Week’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의 기자는 내한하여 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사 제목을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붙였습니다.
---「[깊고 푸른 밤]」중에서

[깊고 푸른 밤] 개봉 때인가 그 이후인가 황기성 사장님으로부터 제의를 받았어요. 전편을 능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부담감 때문에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1편이 워낙 성공했으니까 2편도 흥행은 어느 정도 되겠다. 아, 그냥 한 작품 더 하고 넘어갈까?’ 그런 갈등이 일어났어요. 그전까지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만들어 흥행이 뒤따라온 건데, 순서가 뒤바뀐 거죠. 그러면서 ‘그래, 2편도 작품적으로 잘 만들 수 있겠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시작을 했죠.
---「[고래사냥 2]」중에서

[황진이]는 이전 작품에 비해 정제된 작품입니다. 예술은 정제를 통해 정수를 드러냅니다. 원석을 정제해 금이 나오듯 말입니다. 육체적 자극을 통해 재미를 주려는 영화들이 여러 첨가물을 넣은 탄산수와 같다면, 나는 [황진이]가 첨가물이 배제된 생수와 같은 역할을 하기 바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관객만이 좋아하는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황진이]」중에서

롱 테이크를 할 때는 내 느낌대로 합니다. 그 느낌을 분석한다면 모두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잉마르 베리만도 그런 얘길 했는데, “숏을 나누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내 육체가 숨 쉬고 맥박이 뛰는 것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관습적으로 스토리텔링 위주로 숏을 잘라야 되겠다는 것에서는 탈피했던 거죠.
---「[기쁜 우리 젊은 날]」중에서

이 영화는 1990년대 초 일본에 수출되었고 프랑스의 영화제에서 현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와이영화제에서는 이 작품 상영 후에 감동한 어느 관객이 나를 보더니 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도 울게 되고 영화를 함께 본 영화제 관계자도 함께 울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예술은 감상자와 창작가의 마음을 결합시킨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이 맞다고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중에서

영화에서 모례 화랑의 역할이 중요한 점은 관객들에게 복수의 허망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그가 자신의 약혼자를 빼앗아간 조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생을 보내고 막상 원수인 조신을 찾고 나니 한낮 힘없는 늙은이였어요. 모례 화랑으로서는 이런 자를 찾느라 내가 일생을 보냈나 하는 허무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신을 살려줍니다. 복수를 실천하는 영화들이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복수의 허망함을 느끼며 그 칼을 거두는 것이지요.
---「[꿈]」중에서

내가 말하는 평상심은 상식. 상식은 영어로 커먼 센스죠. 다시 말하면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법이지요. 사회의 법도 상식에 근거하잖아요. 국내 화단에 추상화가 유행할 무렵 이중섭 화백이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림은 시골의 평범한 농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천국의 계단]」중에서

당시 기성세대에 비해 개성과 자기표현이 강한 젊은이들을 매스컴에서 X세대라고 일컬었는데, 그 신세대 배우 중에서 이정재 씨가 이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신인 연기자였어요.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잠재력이 보였고 활기가 넘치고 스타일도 좋고 자신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젊은 남자]」중에서

부부가 함께 출연한다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라서 흥행성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판단은 했습니다. 기성 연기자가 두 주인공을 맡으면 대중성도 생기고 더 영화적인 작품이 될 것으로 알았지만, 이 작품은 장 르누아르가 말한 연기의 ‘내적인 진실성을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 더 생생해질 것이라는 최종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아내와 나는 이 인물들의 심리와 직업에 대한 충분하고도 확실한 이해를 갖고 있으니까요.
---「[러브스토리]」중에서

나는 이 작품이 스토리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 문화의 미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대영박물관 아시아 전시관을 가보면, 일본 문화재들은 감각적으로 눈길을 끌고 중국 문화재는 힘과 강렬함으로 눈길을 끕니다. 반면 한국 전시관의 문화재들은 감각적인 면과 강렬함 대신 직관적이며 자연스러움을 갖춘 작품들이 많아요. [정]에서도 단번에 눈길을 끌지 않아도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정]」중에서

감독들이 슬로 모션을 사용할 때 멋으로 사용할 때도 많지만 참혹한 장면을 걸러내기 위한 필터로도 씁니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을 때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참혹함을 참혹함 그대로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은 혐오감을 주기 쉽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현실 세계의 날것을 걸러서 간접적으로 관객이 느낄 수 있게하는 필터로서의 표현법을 생각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슬로 모션입니다.
---「[흑수선]」중에서

이 작품을 하기 몇 해 전에 이 시대의 사라져가는 직업을 다룬 잡지 기사에서 떠돌이 대장장이의 삶을 다룬 내용을 흥미롭게 봤던 적이 있어요. 그 기사를 본 후 1950년대에서 1970년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내가 태어나 청년이 되는 시기인데,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의 이 시기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살아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시대가 새로워질수록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향수가 있었어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막, 여인숙, 이발관, 장터, 간이 터미널, 염색집, 엿 만드는 집 등이 내 기억이 불러낸 장소들입니다. 또한 지금은 거의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길이지만 지난날은 흙을 밟는 길이 많았습니다. 뚝길, 꽃길, 언덕길, 골목길, 눈길까지. 이런 장소들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통과 용서의 문제를 다루려고 했어요
---「[길]」중에서

우리는 반드시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면 탈이 납니다. 주부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많은 힘과 시간을 쏟잖아요? 그러다 지치면 문득 회의가 들고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혼자의 여행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휴식을 통해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습니다. ‘외출’의 은희도 지친 상태로 제주로 혼자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돌아갈 때는 새 힘을 얻어 갑니다.

---「[여행]」중에서

출판사 리뷰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 「시작의 길, 1953~1981」은 배창호 감독의 유년 시절부터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던 소년 배창호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데 영향을 준 다양한 경험을 살펴볼 수 있다. 유년기의 추억이 가득한 뚝섬은 그의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의 둑 위의 빈민들을 만들어 냈으며, 대학 시절 연극부 활동을 하며 무대 경험을 쌓은 것은 관객의 호흡을 느끼고 그들과 소통하는 감독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직장 시절 케냐로 파견을 떠난 경험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영화를 공부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산이었으며, 회사를 그만두고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 것은 감독으로서의 태도와 리더십, 사회성과 포용력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 모든 여정이 배창호 감독을 훗날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깊이 껴안는 보편성을 담는 감독으로 만들어 냈다.

2장 「성공의 길, 1982~1985」는 [꼬방동네 사람들]로 화려하게 영화계에 등장하여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 여러 흥행작을 만들어 낸 80년대 중반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외된 자들에 대한 냉정한 사회상을 그려낸 [꼬방동네 사람들]을 연출한 배창호 감독은 ‘영화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관, 인간관’이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철인들] 역시 사랑의 시각으로 풀어내, 일을 사랑하는 기업주와 경영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근로자들을 배려하고 화합할 때 진정한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음을 은연중에 표현했다고 말한다. 원작보다 더 보편성을 취하고 싶었던 [적도의 꽃]은 소설 속에서 성적인 상상이 많은 미스터 M(안성기) 캐릭터를 오히려 성적인 것을 추하게 보고 아름다운 사람을 꿈꾸는 사람으로 재탄생시켜 당시 한국영화 흥행 2위 기록을 세웠다. 흥행 가도를 이어간 배창호 감독의 첫 로드무비 [고래사냥]에서는 모두의 마음 속에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고래’로 표현해, 정체성에 회의를 느낀 소심한 대학생이 힘든 여정을 통해 행했던 것은 이웃 사랑이었으며 자신 속에 숨 쉬고 있는 그 사랑을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오목이의 삶을 그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이야기하며 감상성(sentimentality)은 한국인의 정서이자 배창호 영화의 특징임을 당당하게 선언한다.

또한, 한국영화도 제작 여건만 좋으면 얼마든지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미국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깊고 푸른 밤]은 서울에서만 6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해 당시 역대 한국영화의 흥행 기록을 다시 세우기도 했다. [깊고 푸른 밤]은 미국에도 배급되어 'LA 타임즈'의 ‘Pick of the Week’으로 선정되었으며,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의 기자는 내한하여 감독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때 얻은 별명이 당시 기사의 제목이었던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이다.

3장 「가지 않은 길, 1986~1992」는 [고래사냥 2]를 마치며 비로소 ‘왜 영화를 하는 것인가?’,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부딪힌 배창호 감독이, 우리에게 육체를 위한 양식이 있는 것처럼 예술로서의 영화가 우리의 정서를 위한, 마음을 위한 양식의 역할을 하기 위한 영화를 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강렬한 스토리보다 내용의 간결함과 인물들의 내면 묘사, 정제된 표현을 추구한 [황진이]는 당시 우리 영화계에서 영화적인 표현법이 작품의 개성을 이룬 드문 사례였으며 ‘인간의 길은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던졌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산모에게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살 수도 있는 아기의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위험을 무릅쓴 혜린과 영민을 통해 기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전했으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담은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거치며 명실상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호명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떠나 산호세주립대학교의 석좌교수로서 ‘영화 연출’과 ‘아시아 영화’를 가르치며 재충전의 시기를 보낸 그는 [꿈]으로 충무로에 복귀하며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파멸과 뉘우침을 전한다. [꿈]은 조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생을 보낸 모례 화랑이 복수의 허망함을 느끼며 복수의 칼을 거두는, 무게와 깊이를 지닌 테마에 충실하였으며, 한국적인 자연의 깊이를 담은 아름다운 화면 구성으로 개성을 발휘한 미장센이 돋보인다. 최인호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천국의 계단]은 삶의 준엄함과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4장 「새로운 길, 1993~2001」은 결혼을 하며 한층 더 넓어진 삶에 대한 인식을 영화에 투영하는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징어 게임]과 [헌트]의 인기로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이정재의 데뷔작 [젊은 남자]는 당시 기성세대에 비해 개성과 자기표현이 강했던 X세대를 통해 청춘이 갖는 욕구와 꿈, 방황과 좌절은 당시의 젊은 세대나 기성세대의 젊은 시절이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배창호 감독의 첫 독립영화인 [러브스토리]는 부부가 함께 출연해 체험이 담긴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자본의 간섭을 배제하고 ‘하고 싶은 영화’를 하기 위해 만든 [정]은 단번에 눈길을 끌지 않아도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2001년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보인 [흑수선]은 6·25전쟁을 겪으며 각각의 선택으로 운명이 달라진 인물들의 항로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

마지막 5장 「아직도 가야 할 길, 2002~」는 [길]과 [여행], 건국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시절과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새로워질수록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길]은 뚝길, 언덕길, 골목길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통과 용서의 문제를 다루었다. [길] 작업을 마치고 그는 잠시 충무로를 떠나 건국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학생들 작품을 지도하며 보람을 느꼈고, 젊은 영화 세대의 감성을 배운 시기로 3년여의 교수 시절을 회고한다. 건국대 제자들을 대거 등용한 배창호 감독의 첫 번째 디지털 영화이자 최근작인 [여행]은 서로 다른 세 챕터의 주인공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가는 모습을 담아냈다. 현재는 신약성서 4 복음서를 원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으며, 영화만이 아니라 OTT 시리즈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둔 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향해 걷고 있다.

데뷔 40주년을 맞는 배창호 감독은 오는 8월 20일부터 21일 양일간 미주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문학영화콘서트에 초청받았다. 미주 교민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북사인회를 진행하며,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소스몰에 있는 CGV에서 이정재의 데뷔작 [젊은 남자]를 상영한다. 영화 상영 후에는 채프먼대학 이남 교수 사회로 GV가 진행되며, 배창호 감독, 도종환 시인, 데종필름의 종유석 감독, 손정순 시인, 방민호 교수가 게스트로 참여한다. 이후 22일부터 25일까지(3박 4일간) 초청강사들과 미주문화예술인이 함께 [깊고 푸른 밤]의 영화촬영지 LA·라스베가스·그랜드캐니언 일대를 돌아보는 투어도 진행한다. 또한 9월 15일부터는 CGV에서 배창호 감독의 데뷔 40주년 기획전이 2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배창호 감독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을 향해 묵묵히 걷어가고 있다. 그의 영화 인생 40년이 오롯이 담긴 대담집 『배창호의 영화의 길』(도서출판 작가)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세계를 넘어 한국영화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귀한 자료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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