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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4
1부 음악―우리에겐 늘 박수가 필요하다 좋은 작품의 조건을 물으신다면 / 19 예술가의 삶과 행복 / 27 노래가 세상을 바꾸려면 / 35 나를 울린 음악 / 40 슬픔이 너의 가슴에 / 48 나의 비지엠(BGM) / 52 그녀의 웃음소리뿐 / 58 평론가로서 속이 상할 때 / 62 영화는 영원히 그곳에 / 68 2부 생활―당신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더라도 다르지만 멋진 사람 / 75 채식의 날들 / 80 내가 너의 손을 잡았다면 / 84 누구나 한번은 어쩔 수 없으니까 / 88 환자의 삶 / 93 당신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더라도 / 98 세미나에서 배운 것들 / 105 내일은 모른다 / 115 함께하는 여행 / 122 질투하는 사람 / 129 운동하는 습관 / 136 빵과 나 / 142 가진 게 많은 삶, 모순적인 나 / 150 일 잘하는 사람 / 158 못 이룬 패셔니스타의 꿈 / 163 면 탐식자의 고백 / 167 3부 삶―그 새벽이 묻는다 나는 가난을 모른다 / 175 도벽의 기억 / 181 어리지만 나빴던 날들 / 184 40년 만의 강진 / 188 누가 나를 글 쓰게 이끌어주었을까 / 193 고향 사투리를 안 쓰는 사람 / 197 내가 만난 역사, 내게 남은 기억 / 203 해바라기의 추억 / 229 나는 어머니의 아들 /234 무디고 이기적인 나와 50년 살기 / 245 아버지, 아버지 / 251 불타는 적개심 / 257 좌파가 되지 못하더라도 / 266 잊을 수 없는 밤 / 276 나의 인생관 / 281 추천의 글 1―김성우(응용언어학자) 부끄럽지만 기쁘게 살고 싶어서 / 289 추천의 글 2―장혜영(국회의원, 정의당) 서정민갑이 공들여 적어 올린 사(私)적이고 사(史)적인 ‘기억의 세계’ / 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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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악을 꾸준히 다양하게 들어왔다면, 특히 현재의 음악적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며 트렌드를 파악해왔다면 옛날 음악만 최고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음악은 옛날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자신이 알아차리거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따름이다. 좋은 음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악 안팎의 가치를 품고 계속 말을 건다. 소리의 가치이기도 하고, 삶의 가치이기도 하다. 기술의 가치일 수도 있다. 지금도 수많은 음악들이 외치는 중이다. 그 음악들은 많은 이들이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거나, 소수만 알아차리는 비밀스러운 마력을 품고 유령처럼 어슬렁거린다.
---「좋은 작품의 조건을 물으신다면」중에서 눈물이 감동의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 눈물이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지도 않다. 나를 뒤흔든 노래 역시 무수히 많다. 나를 만들고 구성한 노래들. 오래도록 울컥하게 했던 노래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노래들. 이따금 그 노래를 꺼내 듣고 싶다. 그리운 이들과 어리고 미숙했던 나를 잊지 않고 싶다. 노래 앞에서 지금 나는 다르다고 시치미 떼지 않을 것이다. ---「나를 울린 음악」중에서 그래도 계속 글을 쓴 건 잘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계속 써야만 먹고살 수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써낸 글 말고 애써 음악을 만든 뮤지션들의 노력과 정성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들조차 모르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음악 팬들이 내 글을 읽고 음악과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나의 글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들을 수 있게 되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하면 글을 읽는 재미라도 있기를 바랐다. 이 부분의 문장이 좋다고 밑줄을 그으면서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론가로서 속이 상할 때」중에서 아기 고양이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면, 내가 둥실둥실 떠다닌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나는 아기 고양이의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 고양이가 마음을 살짝 열어준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나는 끝내 고양이 털과 오줌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아기 고양이는 뮤지션 S의 품에 안겼다. 내가 고양이의 검사 비용을 다 낸 다음, 우리는 동물병원에서 헤어졌다. 안 되겠다고, 다른 이에게 맡겨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찔끔 눈물이 났다. 만약 내가 두려움과 부담감을 뛰어넘어 집사의 길을 감당했다면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나는 고양이 같은 인연을 숱하게 놓치고, 다른 세상을 만날 기회를 붙잡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오늘도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갸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았다면」중에서 기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년 봄이 되면 그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나이 고 늙어가는데 그들은 항상 그대로였다. 나의 나이와 그들의 나이가 자꾸 만 멀어지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은 차츰 희미해졌다. 대신 새로운 생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젊어도 너무 젊었다. 아니 젊다기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비슷한 연배일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들이 미처 살지 못한 시간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이가 어리다고 세상을 모르는 게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더 많이 알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반드시 오래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을 조금씩 잊고, 그다지 잘 살지도 못하는 시간들을 비루하게 살아가는 현실이 매년 봄이 되면 견딜 수 없게 미안했다. 결국 이런 세상밖에 만들지 못했는데, 먼저 가버린 이들의 영원히 젊은 얼굴 앞에서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만난 역사, 내게 남은 기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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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돼?
―청량감을 주는 문장들 대중음악평론가가 아니라 대중음악의견가임을 자처하는 서정민갑의 산문집이 나왔다. 그간에 펴냈던 음악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내밀한 ‘감정’들과 생활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한 성찰, 그리고 지난 기억을 찾아가는 발걸음으로 엮여 있는 이 책은 ‘평론가’의 이면에서 들끓고 있던 욕망을 솔직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들로 가득 차 있다. 독자들은 저자의 사(私)이고도 사(史)적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서정민갑의 글의 힘은 문체에도, 의견에도, 주장에도 있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독자들에게 내어 맡기는 ‘믿음’에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으면서 웃음이 떠오르다가도 그게 바로 독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함을 들키게 된다. 서정민갑의 글에는 거울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구명줄처럼 나를 붙잡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일을 맡겨주는 사람, 글이 좋다고 칭찬해주는 사람, 나와의 결혼을 결심해준 사람,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사람, 정직하게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삶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반응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없으면 버틸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내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당신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더라도」에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글에는 어쨌든 글쓴이의 자아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정민갑의 글에는 저자 자신의 자아를 망설임 없이 방류함으로써 독자에게 시원한 물줄기를 선사한다. 방류된 저자의 자아가 독(毒)이 아니라 시원한 물줄기인 것은, 이 책을 차분히 읽은 독자만이 느낄 수 있는 청량감이다. 1부에 배치된 음악에 대한 소감들에서는, 음악평론가도 결국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생활 이야기가 주를 이룬 2부에서는 서정민갑이라는 ‘사람’이 온전하게 다가와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와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저자가 대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콤플렉스, 비루함, 숨기고 싶은 감정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저자가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노릇이다. 갈수록 나의 능력과 그릇이 변변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만큼 살 수 있다는 것도 내게는 과분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운이 좋다고, 더 욕심내지 말고 주어진 일이라도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악담하지 않고 나를 받아주는 이들, 내게 일할 기회를 주는 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내일은 모른다」에서 결국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이웃이나 친구, 또는 “아기 고양이” 같은 다른 생명체와 맺는 관계 양식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소소한 경험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서정민갑의 글에는 거울이 숨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선과 악으로, 도덕과 비도덕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들과 함께 구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기억이나 역사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역사 앞에서 3부에서 저자는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 여행은 과거를 특권화하거나 신비화하지 않는다. 도리어 저자 자신의 현재를 구성한 과거와 역사에 대한 탐방이라고나 할까? 먼저 「40년 만의 강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광주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안고 돌아오는 길, 40년 전의 나는 40년 뒤에야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40년 내내 동네에서 미용실을 하신 그분도 이곳에서 계속 머리 손질을 하며 늙을 줄 몰랐을 것이다. 40년도 순식간이었다. 40년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알게 된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알고 받아들이는 데 40년이 걸렸다. 다시 40년이 지났을 때 누가 그곳에 남아 있을까. 누가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까. 다시 모르고 영원히 모를 삶. ―「40년 만의 강진」 아버지를 따라 잠시 살았던 강진 기행은,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아직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삶을 발견하게도 해준다. 그러면서 홀연 찾아온 생각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앎’을 갈구하고 ‘앎’이 우리의 삶을 좋게 해줄 거라고 믿어왔지만, ‘모름’을 모르는 ‘앎’은 삶을 더욱 가파르게 할 뿐이다. 이것은 일종의 철학적 깨달음인데, 자신의 ‘모름’을 알게 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어떻게 보면 서정민갑은 이 한 권의 책에서 자신의 ‘모름’을 줄곧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은 ‘앎’의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욕망을 알고자 하는 자세는 욕망을 여전히 불타오르게 한다. 도리어 욕망에 대한 앎의 의지를 끄고 모름의 어둠을 택했을 때 욕망의 체온은 뚝 떨어진다. 그럴 때 삶이 좀더 온전해진다. 또 한 가지 저자의 현재를 구성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역사다. 그것을 인상 깊은 글인 「내가 만난 역사, 내게 남은 기억」에서 낱낱이 보여준다. 저자는 먼저 이렇게 말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은 최근 기록부터 지워진다고 했던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특정 공간을 마주하거나 같은 날짜를 맞이할 때면 소나기처럼 엄습한다.”(204쪽) 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가 온몸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들이었다. 사실 저자의 연령대와 고향, 자라온 장소를 고려해보면 그 역사적 사건들이 저자 ‘현재’에 끼친 영향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대학 시절에 마주해야 했던 사건들은 아마 서정민갑의 정신 지형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것 같다. “1991년 5월의 기억”과 “1996년 여름”이 그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서정민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의 기억에 대해,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덕분에 한 사람을 이해하고 역사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함께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기억 사이에 불씨처럼 남은 다른 사건들의 개별적 기억들은 누구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알려준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역사가 정면으로 관통할 수 있다고 일러준다. 의지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우연일 수 있다고, 그것이 역사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쳐준다.(90~91쪽) ―「내가 만난 역사, 내게 남은 기억」 이렇게 서정민갑의 이번 산문집은 추천사를 쓴 장혜영 의원의 말마따나 “사(私)적이고” 동시에 “사(史)적”이다. 하지만 역사 앞에서도 저자의 확고한 자아가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 역사에게서 배운 것은 그 의미도 의미이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름’만이 ‘배움’을 받아들인다. 이 책의 기저에는 이 진리가 울리고 있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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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서정민갑이 경험하고 편집해낸 기억이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이 세상에 관한 비망록이다. 그가 강조하듯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겐 더 많은 서로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공동의 기억이 풍성할수록 우리의 존재는 풍성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온 소중한 기억을 나누어준 글쓴이에게 무척 감사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서로의 이야기들을 아직 모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두근거림을 수반한다.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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