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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빛
창원 여고생들이 기록한 독립운동가 김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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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결심 - 김지현(마산무학여자고등학교)
참새언덕의 제비들 - 이예지(한일여자고등학교)

2부

상해로 돌아가는 길 - 김미조(대진전자통신고등학교)
습격 - 김지현(창원대산고등학교)
그 골목, 다시 기로에 서다 - 김시온(부산예술고등학교)

3부

잠입 - 엄인영(마산무학여자고등학교)
그리움 - 김서영(창원명곡고등학교)
갇힌 몸, 별 헤는 밤 - 김현진(마산무학여자고등학교)

4부

조선의용군, 만주의 작은 별들 - 김하은(마산삼진고등학교)
두 개의 등 - 이수빈(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그 새벽의 어둠 - 서예진(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백마 탄 여장군 - 모은주(마산삼진고등학교)

남은 이야기 - 김민경(마산여자고등학교)

김명시 프로필

저자 소개 1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2009년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경남대학교와 도서관, 장애인 기관 등에서 오랫동안 책 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장애인, 어르신, 다문화 등 문화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읽기와 쓰기를 함께하는 일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이들과 다양한 책을 펴냈다. 현재 경남 창원시의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 관장으로 있으며, 책으로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지식이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가는 세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마음의 도화지에 그려진 다문화 세상』과 엮은 책 『흰 지팡이의 노래』(1, 2, 3, 4), 『글로 쓰는 내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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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316g | 140*205*20mm
ISBN13
9791158543853

책 속으로

1949년, 김명시 지사가 부천의 경찰서에서 유명을 달리한 지 73년의 시간이 흐른 2022년 8.15 광복절,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독립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2022년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포상 안내’이 한 장의 서류에는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과 간절한 바람의 눈물이 어려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그 문구를 들여다보다가 눈물 한 방울을 보태었습니다.

창원시 여성기획단원 활동을 하며 김명시 지사를 알고 매료됐습니다. 지역과 성, 시대의 굴레를 모두 뛰어넘은 한 멋진 여성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마산의 어시장에서 지아비 없이 생선 행상을 하면서 네 자녀 중 세 자녀를 독립운동가로 길러낸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 남동생, 김명시 지사의 온 가족은 독립운동가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돌아온 건 핍박과 죽음이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당시를 재단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딸들과 함께 쓰고 그리는 창원 여성 이야기 1,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그리고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에서 지역의 여고생들과 함께 김명시를 배우고 글과 그림, 손글씨로 표현했습니다. 이 결과물로 우리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공모 사업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렸는데 이어서 김명시 지사 서훈 소식까지 듣게 되니 이 놀라운 만남이 그저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머리말」중에서

지금 자신이 방 안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오빠처럼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 가고 있을까.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 숨는 것밖에 없을까. 동생들을 핑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졌다.
‘이 다음엔 다시는, 다시는 피하지 않을 거야. 저 거리에 나도 서 있을 거야!’
명시는 이를 악물며 그렇게 다짐했다.
---「결심」중에서

풀려난 것을 기뻐할 줄 알았던 오빠는 더 무거운 벌을 받고, 더 오래 감옥에 있지 못한 것이 분한 듯 말했다.
“감옥에서도 못 배운 놈이라고 차별을 하더구나.”
오빠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명시는 마음 깊이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학교도 안 다니고 선창가 굴러다니는 놈이라고 순사들조차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 아무런 생각도 없는 무지렁이라는 거지.”
오빠가 돌아오고 한 달이 지나서 어머니도 집으로 왔다. 어머니는 태극기를 만들어 돌린 만세 시위 주동자로 몰려 남들보다 배로 고문을 당한 탓에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온몸에 멍 자국이 나 있었다.
---「결심」중에서

조선을 막 벗어난 세 여자는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으로 향했다. 일명 모스크바대학인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은 동양의 여러 나라 유학생들이 신생 러시아 정부의 지원으로 무상으로 공부를 했고, 귀국 후에는 활동을 위해서 모두가 가명을 사용해야 했다. (중략) 그들의 눈앞에 멋진 마차가 도착했다. 통 넓은 러시아 치마에 조끼와 숄을 걸친 후 그 위에는 담요 같은 것으로 덮은 여자들이 내리더니 시끌벅적하게 대합실로 들어오고 마차는 폭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귀족들의 재산이 전부 민중의 것이 되었나 봐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만민 평등의 공산주의 세상, 얼마나 좋아요! 내 가명은 스베츠로바로 할래요. 혁명가 스베르들로프처럼 살려고요!”
---「참새언덕의 제비들」중에서

권총을 잡은 손에선 땀이 배어 나오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에서 같이 묻어나오는 감정은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아니었다.
‘저 왜놈들 손에 고꾸라진 불쌍한 우리의 동무들과,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그보다 더 많이 사라질 조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찌 이 두 손에 묻을 피를 꺼릴까.’
명시가 눈빛을 굳힌 새, 시곗바늘은 12에 가까워졌다. 째깍, 바늘이 12시로 가는 마지막 눈금을 밟고, 그와 동시에 하얼빈 일본영사관공격조 책임자인 황진연의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습격」중에서

아마 구마산의 산동네에서 명시의 집안 같은 곳은 없었을 거다. 그렇게 배움을 중요시하던 김형선도 돈이 없는 탓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간이 농업학교에 들어갔다가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와 김형선은 ‘명시만큼은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하겠다’라고 종종 말하며, 졸업 후 서울 배화여고보로 유학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딸이 돈 벌어 오빠를 공부시키는 보통 집들과는 달리, 명시의 집은 상당히 열린 생각을 가진 편이었다.
---「그 골목, 다시 기로에 서다」중에서

“이곳이 노출되었어요.”
명시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 일에 경륜이 있는 남희는 놀라기보다 천천히 명시의 손을 잡았다.
“명시 동지,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피하시오. 경성의 형선 동지 정체가 탄로나 쫓기고 있소. 동지의 피신이 더 급합니다. 여긴 용식이와 정리해 놓겠습니다.”
이남희가 쪽지를 내밀었고 거기엔 명시가 가야 할 곳이 적혀 있었다. 경성 종로였다. 5월의 밤이 빠르게, 싸늘히 식고 있었다. 명시는 밤길을 걸어 종로로 갔다.
---「잠입」중에서

일제는 보통 사상범은 7년 이하의 형을 주었는데, 그 기간을 늘이기 위해 재판 시기를 무한정 늘이는 수법을 썼다. 재판도 받지 못하고 조사받는 기간 동안 고문에 죽은 동지들이 숱하게 많았는데 명시 또한 1년 넘게 조사와 고문으로 수감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와 고문, 명시는 19년도 만세운동 때 어머니가 반쯤 거동을 못할 정도로 망가져 나왔던 것을 이미 보았다. 그러니 명시의 뱃속에 깃든 생명이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움」중에서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시간 속에서 명시는 다시 희망의 별을 품었다. 살아남아서 꼭 나가는 것. 1939년 겨울, 명시는 신의주 감옥을 나오자 곧바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지닌 것이라고는 7년간의 노역으로 받은 10원뿐이었다.
---「갇힌 몸, 별 헤는 밤」중에서

명시는 조선의용군 1백여 명을 이끌고 44년 1월에 연안으로 떠났는데 꼬박 석 달 동안 행군한 끝에 4월 7일 연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선의용군이 할당받은 연안의 라가평 군정학교 교관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밤이 되었다. 일본군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 명시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함성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감정이 복받쳐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는 그동안 죽어간 영혼인 듯 수많은 별들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조선의용군, 만주의 작은 별들」중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행되자 김명시는 종적을 감췄다. 1949년 10월 11일, 도하 일간지에 ‘북로당 간부’ 김명시가 부평경찰서 유치장에서 목매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자살이 아니라 타살 등 죽음에 의문이 있지만, 그 의문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며칠 후 내무부 장관 김효석은 김명시가 자신의 상의를 찢어서 유치장 내 3척 높이의 수도관에 목을 매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종로거리에서 백마 탄 여장군으로, 항일영웅으로, 김명시 장군 만세로 환영받은 지 겨우 4년 뒤에 그렇게 어이없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그는 항일 영웅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수배범이 되어있었다. 180도 달라진 그에 대한 시각은 김명시가 체포된 당시 1949년도 남한의 사회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에는 공산주의자 좌익이라는 혐의가 씌워지면 독립투사든 민족주의자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남은 이야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창원의 딸,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
지역 여고생들이 쓰고 그리다


마산의 어시장에서 지아비 없이 생선 행상을 하던 김명시 장군의 어머니 김인석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세상 보는 눈은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다. 해방을 꿈꾸며 자식들이 끊임없이 배울 수 있도록 하고, 3.1 운동 때는 태극기를 만들어 앞장선다. 그렇게 네 자녀 중 세 자녀를 독립운동가로 길러냈다. 김명시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김명시 지사의 온 가족은 독립운동가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돌아온 건 핍박과 죽음이었다. 엮은이 윤은주 창원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 관장은 지역과 성, 시대의 굴레를 뛰어넘은 김명시 장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역의 여고생들을 모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으로 출간했다.

지금의 잣대로 당시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14명의 여고생들은 스스로 김명시 장군의 마음이 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와 오빠가 체포되어 가장의 무게를 느낀 3.1 운동부터 러시아 동방노력자공산대학으로의 유학생활, 상해로 파견되어 조선공산당 일을 돕고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리며 독립하기까지 투쟁한 김명시의 삶은 이들의 손에서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단순히 연대순으로 사료를 나열하지 않고 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생동감을 더해 당시 상황에 몰입하게 한다.

온몸이 혁명으로 들끓은
불꽃같은 삶


대학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후 다른 이들보다 빠른 시기에 조선공산당 일을 돕게 된 김명시는 상해, 만주, 하얼빈 등 비상 걸린 도시와 소문이 떠도는 마을을 숨어 다니며 습격과 설득, 교육을 해나갔다. 김명시는 크고 작은 무장 투쟁에 참여하며 독립에 대한 결의를 불태웠다. 이후 혼돈의 중국보다 조국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조선공산당 재건에 힘쓰고 싶어 당 기관지 ‘콤무니스트’를 치마 속에 숨겨 국내에 잠입했다.

노동자와 농민단체를 교육하고 조직해 파업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 1년여의 조사와 고문을 받았다. 그렇게 선 재판정 위, 단단히 마음먹은 표정의 어머니 김인석 앞에서 김명시는 징역 6년, 김명시의 오빠 김형선은 징역 8년을 선고받는다. 7년여의 감옥 생활 이후에도 조선의용군을 찾아가 항일 전쟁에 참여했지만 해방 후 공산당 활동을 불법화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유명을 달리한다.

해방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당시, 경찰서에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을 한 경찰이 많았다. 그들은 조국 해방을 위해 투신한 이들을 보안법을 위반한 수배범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죽으면 자살이나 심장마비 등 급사로 위장했다고 한다. 김명시 장군도 종로거리에서 백마 탄 여장군으로, 항일영웅으로, 김명시 장군 만세로 환영받았지만 해방된 지 겨우 4년 뒤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지역에서 숨은 독립운동가를 직접 발굴해 낸 이들의 활동은 독립훈장 애국장 추서로 돌아왔다. 부천의 경찰서에서 목숨을 잃고 73년이 지나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77주년의 일이었다. 김명시 장군의 친족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에 대한 억압과 연좌제 등으로 나설 수 없었다. 엮은이 윤은주 관장은 우리 안의 분단이 여전히 깊고 생생할지라도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노력한다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진다고 말했다.

사상적 배경을 떠나 진정으로 조국을 위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누구인지, 그렇게 독립을 얻어낸 후 국가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이켜 볼 때다. 새벽의 빛처럼 떠오른 창원의 독립운동가 김명시를 시작으로 사회적 상황상 묻힐 수밖에 없었던 독립유공자들이 새로운 잣대로 공로를 인정받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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