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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작가의 말 도움받은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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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도면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비밀한 공간을 대동강들은 자기들끼리 땅굴이라고 불렀다. 지하 2층은 1호 땅굴. 지하 3층은 2호 땅굴. 통일 대한민국 이남 상류층 남자들이 이북 여성 접대부들을 만끽하는 당대 최고급 룸살롱의 바로 밑에서 희대미문의 조선 인민군 출신 폭력 조직이 어느 스너프 필름에도 뒤지지 않는 리얼 잔혹극을 관객 없이 자주 공연하고 있었다. 1호 땅굴과 2호 땅굴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은 철근콘크리트 벽의 두께를 뚫지 못하거나 설령 새어 나간다 하더라도 호화로운 술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온갖 소음들 속에 파묻혀 버렸다. 광복빌딩은 통일 대한민국의 모델하우스였다. --- p.25
차가 시내로 접어들었다. 교통 정체가 심했다. 길가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긴 줄을 이루며 서 있었다. 일명 통일급식소. 이북 난민들에게 통일 정부에서 하루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서울에만 20여 군데의 통일급식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조촐한 안전망이었다. “저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남조선 반동들이 생각이란 걸 하고 살게 될까?” “네?” “이남 사람들이 저들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겠니?” 이남에 득실거리던 도둑고양이들은 씨가 말랐다. 이북 사내들이 그물과 덫으로 도둑고양이들을 잡아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라든가 동네 공터 등에서 껍질을 벗기고 구워서 술안주로 삼았기 때문이다. 도둑고양이들을 퇴치해 줬다고 이남 사람들이 감사할 리 없었다. 그들이 그러고 있는 광경이 어느 가위 눌림보다 괴로웠기 때문이다. --- p.76 통일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의 전부를 주민등록화하는 데에 실패했다. 북한은 통일 당시 이미 국가로서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난민들투성이었고, 관공서 방화가 비일비재해 아날로그가 정보 시스템의 대부분이던 처지에 공문서들이 대량으로 소실되었다. 그것을 통일 정부가 회복하고 정리해야 했지만 혼란 속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나중에는 아무리 홍보를 해도 일부러 주민등록을 하지 않는 이북 사람들이 있었다. 근대적 기록이 부재한 국민들, 이른바 대포 인간들이 그들이었다. 주민 번호도 없고 사진도 없고 지문도 없다.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대포 인간들은 추적이 불가능한 허깨비들이었다. 디지털 강국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은 통일 이후 국민 정보 관리에 관해서는 후진국이 되어 버렸다. 경찰이 용의자를 잡아 놓고 묻는다. 너는 누구냐? 이력을 확인할 기준이 없는 인간의 자백은 사실이 아니라 의혹에 불과했다. 자본주의의 어둠이 이러한 우수 인력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 p.105 국방 장관이 쉿, 그러며 뭉툭한 오른손 검지를 소 곱창의 단면 같은 입술에 갖다 댔다. “무슨 소리 안 들렸어?” “무슨 소리요?” “방금 밑에서 사람 비명 같은 게 났는데?” 철렁, 한 홍혜숙은 애써 태연한 척 되물었다. “에이, 소리가 나긴 무슨 소리가 났다고 그러세요?” “아냐. 내가 눈은 나빠도 귀는 보배거든? 가만들 있어 봐.” (……) 서일화가 전자 음악단 앞에서 곱게 인사를 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곡목은 「당신은 모르실 거야」. 당신은 모르실 거야. 인민군들이 당신 발밑에서 뭘 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야. 땅굴 속에 붉은 두더지들이 몇 마리나 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야. 국방 장관을 따라 그의 부하들도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었다. --- pp.167-168 --- pp.167-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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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한 이후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은 양심을 잃은 부패 경찰의 횡포와 이북 출신 폭력 조직의 난립,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은 대포 인간을 악용한 각종 범죄, ‘레드아이’, ‘백도라지’ 등 신종 마약의 유통, 급식소에 줄을 선 통일 빈민의 증식 등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신세계’다.
한편, 독립운동가 이장곤의 손자이자 인민군의 영웅이었던 리강은 이북 출신 폭력 조직 ‘대동강’의 동료 림병모가 맞은 수상한 죽음의 진상을 캐기 시작한 이래로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사건에 말려들게 된다. 이북에서도 가장 악명 높았던 수용소에서 지옥을 보고 돌아온, 광기어린 조직의 괴수 오남철, 그런 오남철이 지옥에서 함께 데리고 온 영험한 박수무당 장군도령, ‘대동강’의 3인자로 2인자인 리강에게 뒤틀린 증오를 품고 있는 조명도, 이북 출신 여성 전문 유흥업소 은좌를 진두지휘하는 여장부 홍혜숙, 고위층 당원의 딸이자 촉망받는 화가의 지위에서 통일 이후 순식간에 접대부로 전락한 은좌의 넘버원 서일화, 억눌린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는 평양 출신 수재 소년 김동철, 좌절된 순수를 끊임없는 변설로 위장한 거리의 마약상 이선우, 어느 날 갑자기 리강의 눈앞에 나타난 비밀의 여인 윤성희까지. 황폐한 통일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벌어지는, 상처와 왜곡을 안은 인물들 간의 갈등과 사건의 연속. 수수께끼의 죽음을 둘러싸고 음모와 배신의 밤이 깊어지면서 점차 가공할 진실이 드러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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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이 기다려 온 바로 그 강렬함. 이응준이 그려 낸 ‘어두운 신세계’!
대한민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흡수통일 이후 5년, 2016년 서울, 이곳은 지옥이다 ‘기린아’ 이응준이 돌아왔다. 그가 1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이 그 예사롭지 않은 변화의 제일보다. 작가 이응준의 혼신이 담긴 이 선 굵은 누아르는 계간 《세계의 문학》에 전재된 후부터 2008년 12월부터 ‘2009년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며 주목을 받았다. 특유의 치밀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이응준이 묘사해 낸 디스토피아의 풍경은 지독하게 생생하다. 통일 대한민국의 밤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고, 통일되었으나 여전히 분단된 두 세계의 갈등은 증오로 일변하고, 그 가운데 온갖 사회악이 암약한다. 이 ‘어두운 신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하기 위해 이응준은 300여 권의 책과 논문을 참조하는 등, 강한 집중력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정교한 복선과 빠른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한순간도 놓지 않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를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책장을 여는 순간 밀려드는 전율과, 닫는 순간 다시 한 번 찾아오는 전율. 한국 문학은 지금까지 바로 이런 강렬함을 기다려 왔다. ■ 본격 누아르의 한국적 진화형, 필름의 릴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절망의 풍경 『국가의 사생활』은 빠르다. 나아가 그 속도는 가속된다. 트랙을 달리는 카메라처럼, 타락한 서울의 밤거리와 명멸하는 룸살롱의 불빛, 어두운 범죄 조직의 내부를 속속들이 포착하면서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사건이 전개된다. 전력질주에 대비한 초반의 차분한 호흡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후반의 짧은 호흡으로 이행되는 전체 구성은 기존의 한국 문학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흡인력과 긴장감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소설가와 영화 각본가 · 감독으로 활동한 이응준은, 이 작품에서 시인의 밀도 높은 언어로 소설가의 잘 짜인 세계를 초단위의 속도로 돌아가는 영화적 감각 아래 완성해 냈다. 뉴욕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 파리국제단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Lemon Tree」(40분)의 각본 및 감독을 담당했던 작가의, 영상 키드로서의 일면이 유감없이 발휘된 부분이다. 그러나 『국가의 사생활』의 미덕은 단순히 속력뿐만이 아니다. 빠르면서도 한 장면 한 장면 정확한 컷을 포착하는 영화 필름처럼, 각 장면의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하다. 이와 같은 각 신(scene)의 완성도를 위해 작가는 웬만한 연구자 이상의 노력을 쏟아 광범한 자료 조사와 정밀한 세계관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묘사된 통일 대한민국의 놀라운 사실감 역시 이 작품의 명백한 미덕 중 하나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한 번은 그려 보았을, ‘만일 내일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비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이응준의 가장 어둡고 현실적인 비전은 한동안 후유증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강력하다. “장르는 사고의 틀일 뿐, 감옥은 아니다. 이용해야 할 도구다.”라는 작가의 언명 그대로 탁월하게 잘 짜인 사회 추리극의 흡인력과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체내에 각인된 예리한 문제의식을 영리하게 이종 교배한 작품. 이응준의 이번 시도는 한국 문학계에 강렬하고 ‘아주 새로운’ 색채를 더하는 데 성공했다. ■ 다시, ‘광장’으로……. 우리 시대 통일 문학을 새로 개척한 이응준의 야심찬 노선 변경 존재의 신산함과 은폐된 추억을 고독의 언어로 고백하던 작가 이응준이 마침내 전혀 다른 언어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가의 사생활』은 서정적인 문체와 젊은 상상력으로 청년의 방황을 그려 온 작가의 전작들과는 완전히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이 작품이 바라보는 지점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사회, 그중에서도 분단된 현재의 대한민국이 배태하고 있는 걱정스러운 미래이며, 여전히 성찰적이지만 어조는 전에 없이 간명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 그가 거리로 나온 것이다. 나아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오늘의 작가가 오늘의 언어로 진단했다는 의미에서, 이응준의 이번 작품은 ‘새로운 통일 문학의 전범’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국가의 사생활』에 짙게 드리운 이른바 ‘근 미래 가상 통일’의 음영은 엄연히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확대와 심화로, 기존의 통일 문학이 주로 조명했던, 과거에서 현재로의 소급을 뛰어넘어 현재에서 미래로의 전망이라는 새로운 비전이 제시된 것이다. 이 비전은 비록 스산할 만큼 어둡지만 오늘의 내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