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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마을 만들기
알마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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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_활기가 넘치는 미나미의료생협
협동하면 좋아요! | 미나미의료생협 병에 걸리다 | 미나미의료생협이 추구하는 것 | 미나미의료생협의 변천 | 조합원과 반 모임 | 서로 함께 봉사를 나누는 수많은 활동 | 5년 동안 조합원 119퍼센트 증가

1장 의료

미나미생협병원 완화 케어

미나미생협병원의 완화 케어 병동 | 마지막 콘서트 | 미나미생협병원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 이 순간을 소중히 | 하바타키회 |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목표인 환우회 |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만들기 |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답게 살 수 있도록 | 그 사람에게 맞추는 간호

가나메병원 장애인 의료
가나메병원이란 | 장애가 있어도 즐거운 인생 | 마음이 병든 사람이 백배 더 아프다 | 오스트레일리아 유학 생활 | 장애를 장애로 느끼지 않는 사회로

2장 돌봄과 복지

기마마텐구원

생협 유유마을 기마마텐구원 | 시 짓기 | 좋은 경험을 저축하도록 장려하다 | 건강한 제니다이코 | 모두가 주인공 | 협동의 어려움과 협동의 위대함 | 우리 지역 도로는 병원의 복도 | 마을이 가지고 있는 돌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룹 홈 나모
그룹 홈 나모의 탄생 | 개호도가 개선되다 | 첫 비행기 여행 | 돌봄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 재미있는 돌봄 노동 |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하다

3장 건강한 몸 만들기

피트니스클럽 위시

병원 내 피트니스클럽 | 반신마비지만 헬스를? | 꿈꾸던 다이빙에 재도전하다 | 나를 응원하기

워크! 걸어서 지구 한 바퀴
걷는 것은 멋진 일이다 | 즐거운 걷기 | ‘모두 함께 걸어서 지구 한 바퀴’ 모임

지압으로 조합원 늘리기
지압 모임에 주는 감사장 | 미나미의료생협의 병원 만들기 | 널리 퍼지는 지압 모임 | 혼자 사는 98세의 우사미 씨

외국인 무료 건강검진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 같았어요 | 외국인 건강검진을 기획하다 | 두 번째 건강검진 | 세 번째 건강검진 | 검사를 마치고

4장 지역 만들기

생협 논비리마을

생협 논비리마을이란 | 생협 논비리마을의 탄생 | 반 씨 남편의 병 | 황천길에 보내는 선물 | 생명과 마음의 연쇄 운동 | 돌봄의 척도

어린이 건강 증진 활동
지·덕·체와 더불어 식을 | 아이들의 건강 체크 | 아이들의 자각 | 아이디어를 모아서 | 수상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

서로 돕는 지역 만들기
오카게사마 미나미 |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송 서비스 | 무엇이든 서로 돕기 사업 | 늘어나는 쓰레기 집 | 그 사람다운 인생 엔딩 계획

모두가 붉은 수염
배우에게 받은 꽃다발 | 사카키바라 씨의 공연 관람 프로젝트 | 극단 젠신자의 보배로 | 모두가 붉은 수염

5장 생협 만들기

미나미의료생협의 원점

소중한 원점 | 환자에게 배운 것 | 협동으로 만들어낸 진료소 | 열정이 있는 집단 | 나 스스로의 힘을 믿고

조직과 경영
지역 중시와 토론 | 경영 개혁 | 요구 추구에서 요구 실현으로

조직 풍토 만들기와 인재 양성
사람에게 밀착한 조직 풍토 만들기와 인재 양성 | 오감 진료로 환자에게 다가가다 | 6성 의사 | 6성을 목표로 | 즐겁지 않으면 생협이 아니다 | 포기하지 않는 간호 | 어르신들이 웃을 수 있는 돌봄 서비스

나가는 글_협동하면 좋아요!
로망 그 자체인 미나미의료생협 | 협동조합의 원점 | 미나미의료생협의 강점 | 미나미의료생협의 과제 | 협동하면 좋아요!

후기를 대신하여

저자 소개 1

니시무라 이치로

관심작가 알림신청
 

Ichiro Nishimura,にしむら いちろう,西村 一郞

저널리스트이자 생협연구자로, 1949년 고치 현高知?에서 태어났다. 1970년 국립고치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생협에 가입했으며, 1978년 대학생협도쿄사업연합 식당부 차장, 1985년 전국대학생협연합회 식당부장, 1992년 생협총합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고, 2010년 생협총합연구소에서 정년퇴직했다. 일본과학자회의, 일본유통학회, 현대르포르타주연구회에 소속되어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협동조합에서 일한다는 것協同組合で?くこと』(공저), 『어린이들의 고독한 식사子どもの孤食』, 『북쪽의 대지에서-홋카이도 농업은 건강합니다北の大地から-北海道の農業は元氣です』, 『JEN 구유고와
저널리스트이자 생협연구자로, 1949년 고치 현高知?에서 태어났다. 1970년 국립고치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생협에 가입했으며, 1978년 대학생협도쿄사업연합 식당부 차장, 1985년 전국대학생협연합회 식당부장, 1992년 생협총합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고, 2010년 생협총합연구소에서 정년퇴직했다. 일본과학자회의, 일본유통학회, 현대르포르타주연구회에 소속되어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협동조합에서 일한다는 것協同組合で?くこと』(공저), 『어린이들의 고독한 식사子どもの孤食』, 『북쪽의 대지에서-홋카이도 농업은 건강합니다北の大地から-北海道の農業は元氣です』, 『JEN 구유고와 걸은 2000일JEN 舊ユ-ゴと步んだ2000日』, 『시레토코에서-땅의 끝 관광문화 마을 만들기知床から-地の果て-光文化のまちづくり』 들이 있다.
역자 : 번역연구모임 연리지
번역연구모임 연리지는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안에 있는 모임이다. 현재 정금수, 장윤정, 이은선, 최인희, 이려화, 고은영, 이주희, 정화령, 이향숙 등 모두 아홉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리지는 한국생협연구소(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에서 일본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모임으로 시작해 7년간 활동해왔다. 그동안 구성원이 조금씩 바뀌면서도 연구모임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참여자 모두가 열정을 갖고 임했기 때문이다. 2009년 《생활 속의 협동-배제를 뛰어넘어 더불어 사는 사회로生活の協同―排除を超えてともに生きる社?へ》를 번역해 출간했고, 매년 번역한 자료를 자료집으로 발간해 일본 협동조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마을 만들기》는 미나미의료생협이 협동으로 이룬 결실을 정리한 책으로, 연리지 회원들의 협동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27g | 153*210*20mm
ISBN13
9791185430003

책 속으로

1장 의료

미나미생협병원의 완화 케어 병동

2010년 4월에 문을 연 미나미생협병원의 꼭대기 층에는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완화 케어 병동이 있다. 서쪽과 남쪽의 유리창 밖 넓은 테라스 화단에는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색의 꽃이 피어 있고, 맞은편에는 시내가 좌우로 넓게 펼쳐져 저 멀리 나고야 역 트윈타워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환자들의 고통을 조절하고 그들이 마지막 남은 시간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스무 개의 방은 모두 편안한 1인실이다. 창으로는 밝은 햇빛이 들어오고 창가에 놓인 침대에는 자원봉사자가 손수 만든 패치워크 침대보가 씌워져 있다. 에어컨, 텔레비전, 냉장고, 옷장을 각자 쓰는 완화 케어 병동 1인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p.29

장애가 있어도 즐거운 인생
“네 발로 기어가는 자세로 천천히 허리를 옆으로 흔들어주세요. 그러면 고관절이 부드러워집니다.”
가나메병원 3층에 있는 분홍색 재활대 앞에서 물리치료사인 마에다 가즈히코前田勝彦 씨가 말을 건넸다. 뇌성마비로 하반신에 2급 장애를 가진 데라모토 라라라 씨가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1990년 도쿄에서 태어난 라라라 씨가 휠체어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고등학교에 유학을 갔다 방학을 맞아 장기간 귀국해 있던 2005년 12월의 일이었다. 뇌성마비란 수정부터 생후 4주 사이에 뇌에 손상을 입어 다양하게 발생하는 운동 기능 장애를 말한다.
“자, 다음은 다리를 옆으로 해서 앉은 상태에서 중심을 좌우로 이동시켜주세요. 그렇지, 그렇지, 그런 느낌으로.”
1.554킬로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난 라라라 씨는 첫돌이 되기 전부터 소아과에 다니며 고통스러운 훈련을 반복해왔다. 고작 생후 10개월 때다. “이 아이는 뇌성마비라 장래에 걸을 수 없다”라는 의사의 선고를 들은 어머니 마나眞奈 씨는 혼자 있을 때 뭘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딸을 걷게 해주고 싶어 각지의 의사들을 찾아가 여러 가지 치료를 시도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한 바람이며 거기에 응하는 의사도 열심히 치료와 훈련을 도왔다.
그러나 라라라 씨 본인은 태어났을 때부터 하반신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양발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매일 그렇게 생활하는 것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p.49

2장 돌봄과 복지

생협 유유마을 기마마텐구원

2005년 가을에 문을 연 기마마텐구원きままてんぐ苑은 개호보험에서 ‘요要지원’ 이상의 판정을 받은 분들이 이용하는 3층짜리 건물로 1층에는 데이 서비스(한국의 노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 해당한다-옮긴이)가, 2층과 3층에는 단기 보호 시설이 있다. 연중무휴인 데이 서비스의 정원은 25명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오하요おはよう 데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지기리에와 가죽공예 같은 활동도 하고 외출하여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기도 한다. 또 다섯 종류의 운동기구를 사용해 체력을 단련하는 트레이닝이나 요리, 간식 만들기 등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마중 시간을 늦추고 싶은 사람은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정원 10명으로 운영되는 ‘윳쿠리ゆっくり 데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점심과 저녁도 제공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
정원이 48명인 쇼트 스테이에서는 전원이 1인실에서 단기 숙박을 할 수 있어 각자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재활 등을 준비해 기분 전환 삼아 여행하듯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마마텐구원’이라는 이름은 지도리 다리 북쪽에서 80년 이상 공장을 경영해온 덴구 통조림 회사가 토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 회사 이름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또 이용자가 일상의 연장에서 ‘편하고 자유롭게(기마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2004년 2월에는 “마을과 동화되어 마을과 만난다”라는 표어 아래 소규모 다기능 돌봄 복지시설을 짓기로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지부와 이사, 직원, 환우회, 봉사자, 돌봄 모임 등에서 100명이 넘는 대표들이 모여 통칭 백인회의百人?議(별칭은 비약인회의飛躍人?議, 비약인회의의 일본어 발음은 히야쿠닌 회의로 백인회의의 햐쿠닌 회의와 유사하다-옮긴이)를 만들었다. 이 회의에서 시설의 하드웨어 부분과 소프트웨어 부분에 관해 1년 넘게 논의했다. 총 9개 블록을 대표하는 조합원과 직원 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생협 본부에 모여 돌봄과 개호보험에 대해 배우고 자기가 바라는 개호 사업과 마을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했다.2004년 12월에 열린 입촌 집회에는 백인회의 멤버 80명이 자신들이 만든 연극을 통해 생협 유유마을 건설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렇게 해서 기마마텐구원을 비롯해 몇 가지 돌봄 시설이 모인 생협 유유마을은 2005년 5월부터 2006년 12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pp.61-62

그룹 홈 나모의 탄생
미나미의료생협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호시자키 지역은 노인 인구 비율이 매우 높다. 지역의 모임 장소를 만들어가자는 잇푸쿠운동으로 2000년 9월 ‘호시자키 동료의 집’이 생겼고, 그후 여섯 곳이 더 만들어졌다. 개호보험 시행 후인 2003년에 ‘헬퍼 스테이션 호시자키’가 생겨나면서 지역의 돌봄 현실도 드러났다.
지역의 케어 매니저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고령자의 7퍼센트가 인지증 증상을 보이는 데다 갈 곳이 없어 보살핌이 필요한 고령자도 있기 때문에 재택 돌봄이나 그룹 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호시자키 지역의 반 모임에서 우리 지역에도 그룹 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이에 민가를 고쳐 적은 비용으로 시설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앞으로도 개호가 필요한 고령자와 인지증 환자가 증가할 것이므로 이들을 주로 돌보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의료생협 네트워크를 활용한 복지시설 만들기를 추진한 것이다.
운동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목표는 먼저 그룹 홈의 필요성을 알리고 빈집을 찾아내 개보수비와 비품 구입에 필요한 1000만 엔 전부를 지역 조합원들이 모으자는 것이었다. 서둘러 설립을 위한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조합원과 직원이 함께 자전거 부대를 조직해 지도를 한 손에 들고 지역을 샅샅이 돌면서 빈집을 찾았다. 때로는 모기떼에 습격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드디어 적당한 물건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집은 낡았지만 견고했고 이 정도라면 그룹 홈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계약을 하고 착공에 들어갔다. 개보수 공사가 끝나고 개소식을 하기 전에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동네 주민, 조합원, 생협 관계자, 타 단체 등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지역에서의 세대 조직률이 60퍼센트를 넘자 한 조합원은 “지역이 앞마당처럼 훤히 보이게 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pp.79~80

3장 건강한 몸 만들기

꿈꾸던 다이빙에 재도전하다

예전에 시게토 씨는 경비행기와 헬리콥터 등의 정비사로 일했다. 쉬는 날에는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했다. 특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은 다이빙에 매료되었고 전문학교까지 다녔다. 그때 잠수 자격증을 따서 휴가 때마다 친구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2007년 3월 오키나와 요나구니 섬 해저 30미터에서 10여 명이 함께 귀상어와 해저에 잠든 고대 유적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강한 수압 때문에 지주막하출혈이 일어나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고 다이빙 강사에게 알려 겨우 물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요나구니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어 이시가키 섬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2개월이나 입원했다. 한때는 위급 상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몸의 왼쪽이 마비되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고 안저출혈眼底出血로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독신이었던 그는 스스로 음식을 만든 적도 있었지만 요리가 귀찮아지면서 거의 외식을 했다. 그것도 햄버거나 치킨 같은 싸고 간편하면서도 고칼로리인 음식을 주로 섭취했다. 그 때문에 뇌혈관에 동맥류가 생겨 다이빙 중에 갑자기 파열한 것이었다. 인지증을 앓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미나미의료생협의 노인 요양시설 이랴아세에 있었기에 시게토 씨는 와이와이나가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2007년 10월의 일이다.
학창 시절 글라이더를 탔던 시게토 씨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시간이 나면 늘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이제 마음대로 걸을 수 없게 되자 곧바로 침울해졌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었고 인생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다. 병실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었다. 그래도 미즈타니 케어 매니저와 다른 사람들의 위로 덕분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pp.99-100

걷는 것은 멋진 일이다
“정년퇴직하고 3년째 되는 해 기관지 천식에 걸려 호시자키 진료소를 찾았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어느 날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데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지더군요. 예전에 앓았던 망막박리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대로 두었더니 3개월 후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난 거예요. 화장실에서 나오다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미나미생협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질문을 받은 것이 기억납니다. 2주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했는데 왼쪽 눈에 후유증이 남아 운전은 할 수 없었고 걷는 것도 비틀비틀했어요. 몸 상태가 그랬지만 조금씩 걸을 수 있도록 연습했습니다. 특히 동료들과 함께하니까 즐겁게 걸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하루에 만 보도 거뜬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2011년 3월 미나미생협병원에서는 제22회 건강 페스티벌이 열렸다. 1층 홀 주변에서 걷기를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는데,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72세의 구노 가네시게久納錦重 씨가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여러 병을 앓는 와중에도 동료들과 함께 걸으며 건강을 되찾은 모습이 매우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p.106~107쪽

4장 지역 만들기

생협 논비리마을이란

도카이 시 가기야초의 귤 밭 옆에 있는 생협 논비리마을은 총 2,975제곱미터로 그룹 홈, 소규모 다기능 홈, 다세대 공생주택, 지역 공유 스페이스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곳의 목표는 지역 안에서 노인들이 자기 역할을 가지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안도감을 얻으며, 누구에게든 여유롭고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을 향해 열려 있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발전시켜 이용자, 조합원, 직원, 지역민이 서로 돕고 협동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나미의료생협의 의료 돌봄 사업과 연계하고 있으며, 조합원 네트워크와 많은 자원봉사자와 함께하고 있다.
미나미의료생협은 2005년 총회에서 한 블록당 한 개의 돌봄 복지 사업소를 만든다는 ‘이치부 잇카이운동いちぶいっかい運動’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도카이 시 블록 백인회의가 만들어졌다. 이미 블록 내에는 진료소나 재택 돌봄 지원센터, 헬퍼 스테이션이 있었지만 논의를 하다 보니 아직 지역을 위해 만들어야 할 시설들이 많았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여 교류할 수 있는 장소라든가 인지증이 있는 분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그룹 홈이 필요했다. ---pp.135-136

오카게사마 미나미
오카게사마 미나미(미나미 덕분이라는 뜻-옮긴이)는 미나미의료생협 조합원이 이용하는 ‘서로 돕기 서비스 사업’으로 통원과 외출을 도와주는 ‘이동·이송 서비스 사업’과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주는 ‘무엇이든 서로 돕기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동·이송 서비스 사업은 거동이 불편해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누리며 자립하여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휴일 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지원하고 있다. 병원이나 진료소 통원, 쇼핑, 산책, 연극 관람, 성묘, 귀성, 친구와 외출, 야구 관전, 당일 여행 등을 돕는다.
이용 대상자는 나고야 시내에 거주하며 개호보험에서 개호 인정을 받은 사람이나, 신체장애자 수첩 또는 정신장애자 복지수첩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치 현이나 나고야 시의 특정 질환 수급자, 그리고 상기 질환 환자의 가족과 보호자인데, 미나미의료생협 조합원으로 사전에 등록을 해둬야 한다. 거동이 어려운 사람의 이동을 돕는 ‘복지 유상 이송’은 국토교통성의 허가를 받은 특정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복지 이송 서비스로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 ---pp.157-158

5장 생협 만들기

협동으로 만들어낸 진료소

이와키 씨와 나란히 창립 때부터 함께한 79세의 의사 무로 노보루 씨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협동으로 미나미의료생협이 설립되었는지를 들었다.
“저는 학생 시절부터 세틀먼트에 참여해 호시자키에 드나들고 있었어요. 1953년 여름에 출발한 임시 진료소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다는 지역 주민의 강한 바람으로 이와키 씨가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 클럽 사람들이 오래된 제과점을 빌려 진료소를 만들었습니다. 이와키 씨가 애써서 농협에서 5만 엔을 빌렸고 그 반인 2만 5000엔을 수리비로 썼죠. 저는 값싼 베니어판과 목재를 사러 먼 곳까지 갔어요. 그것을 친구인 야마다 신야山田信也와 리어카로 운반했어요. 1만 8000엔 정도로 값을 깎은 목재를 사서 방을 작게 나누고 대합실, 진찰실, 약국 겸 접수처, 환자 대기실로 만들었습니다.”
1955년에 대학을 졸업한 무로 씨는 국립나고야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호시자키에 드나들었고, 동료 인턴들의 일정을 조정하면서 이와키 씨의 진료소 일을 도와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요청으로 각지에서 주민과 의료 관계자가 협동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료기관이 몇 군데나 생겼다. 그리고 1953년에 그 연합체인 민의련이 발족했고 호시자키 진료소도 참여했다. 인턴 생활을 하던 무로 씨는 의사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기숙사의 동료 인턴들과 열심히 토론했다. 그 가운데 무로 씨는 민의련을, 야마다 씨는 대학을 맡아 계속 젊은 의사를 키워나가기로 했다. 일본에서 환자에게 다가가는 의료를 펼치기 위해서는 “대학과 민의련이 수레의 양쪽 바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pp.180-181

사람에게 밀착한 조직 풍토 만들기와 인재 양성
조직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늘 조직을 지탱하는 인재를 육성해야 하며 이는 의료생협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와 주민 생활의 변화를 시기적절하게 파악해 조직에서 의논하고 필요한 대응을 강구하는 일이 반복된다. 거기에는 반드시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 사업 규모가 커지고 최신 기기에 의해 현대화가 진행되어도 시스템과 기기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에 최종적으로는 내부를 지탱하는 인재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이념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조합원과 직원을 육성하는 조직 풍토를 만들고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나미의료생협에서는 먼저 각자 실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었고, 이와 함께 강좌 등을 통한 교육체계도 세워 나갔다. 첫째, 실천을 교류하는 장에서는 조합원 운영 위원이 200명가량 참가하는 합숙 연수만이 아니라 10개 조로 나누어 세세한 토론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매달 백 수십 명의 조합원과 직원이 모이는 천인회의에서도 같은 방법을 취해 조별로 의견을 교환한다. 지부장이나 반장 연수도 똑같이 조를 만들어 운영한다. 직원들끼리도 실천적으로 교류해 사업소 단위로 교류의 장을 만들기도 하고 간호와 개호 파트에서 매년 실천 교류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지나온 세월’이라는 뜻을 가진 소식지 《고시카타?し方》에 기록하고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pp.196-197

출판사 리뷰

시골의 낡고 작은 진료소에서 지역사회를 살리는 종합병원이 되기까지
협동으로 이뤄낸 미나미의료생협의 놀라운 이야기

협동조합 시대, 의료생협을 주목하라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5인 이상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설립 움직임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에 대한 실제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인식은 이전에 비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흔히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해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제도 문제나 인식 문제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제대로 뿌리내린다면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협동조합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료생협은 지역 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해서 직접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다. 기존 병원 조직이 가지고 있던 높은 문턱을 낮추고 조합원들, 즉 지역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다. 시민은 더이상 상품화된 의료의 이윤 축적 수단이 아니며, 건강권을 지닌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이 바로 의료생협운동인데, 이를 위해 의료생협은 치료만이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건강강좌, 등산모임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역 주민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생협은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아직은 그 규모가 미미한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설립 취지를 악용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등 의료생협이 정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의료생협이 참고할 만한, 지역 주민과 상생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의료생협이 있을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본 미나미의료생협이 대표 사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의료나 복지는 물론 생활과 문화까지도 ‘협력’의 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미나미의료생협은 ‘살아 있는 의료’ ‘마음이 담긴 돌봄과 복지’ ‘웃음이 깃든 건강한 몸 만들기’ ‘생기 넘치는 지역 만들기’ ‘열정으로 가득 찬 생협 만들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 책은 시골의 낡고 작은 진료소에서 시작했던 작은 의료생협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고 지금에 이르렀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의료생협운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실제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생협은 환자를 ‘관리’하지 않고 그들을 ‘응원’한다
미나미의료생협은 시골의 작은 진료소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조합원 6만여 명, 900여 개의 반 모임, 80여 개 지부, 그보다 큰 단위인 10개 이상의 블록을 형성하고 있으며, 1일 방문 환자 수는 약 1,300명가량이다. 짧은 기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나미의료생협의 시설, 의료진, 자원봉사자, 환우회 등 관계자 모두는 내원자나 이용자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편히 이용하고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응원’한다. 미나미의료생협 조합원이 되면 의료, 돌봄·복지 서비스, 건강 상담, 육아 지원과 같은 사업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동네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던 빨래터처럼 자연스러운 모임이자 취미 동호회인 반 모임이나 건강 축제 같은 여러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누구라도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미나미의료생협은 반 모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반 모임은 이웃, 친구, 동료 들과 즐겁게 교류하는 곳인데, 멤버가 세 명이면 만들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 “좀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 싶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요구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실현하는 기초 단위이며 미나미의료생협이 추진하는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활동입니다.

반 모임과 함께 미나미의료생협에는 봉사를 나누는 다양한 지원 활동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재택 환자를 돌보는 모임’이나 환자들끼리 서로 돕는 ‘환우회’ ‘공해병 환자와 가족 모임’ 등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료생협은 고령화사회, 격차사회, 무연고사회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미나미의료생협이 걸어온 길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 의료생협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아가 농협을 포함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 기존 협동조합에도 참고할 만한 지침이 될 것이다. 미나미의료생협 50년의 역사는 “협동하면 좋을 거예요”라는 호소에 조합원들이 “협동하면 좋아요”라며 실천으로 응답한 사례이며, 협동의 중요성을 반세기에 걸쳐 증명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고령화사회, 격차사회, 무연고사회라 불리는 사회현상 속으로 급격이 들어가고 있다. 실업률, 자살률 증가라는 부끄러운 통계는 이제 면역이 된 듯 그 심각성이 점점 희석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뒤틀린 사회에서 ‘협동’이라는 가치는 어쩌면 해결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지난 2012년은 국제연합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였다. 협동조합의 이념과 실천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좀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학자와 연구자 사이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미나미의료생협과 같은 사례를 통해 어떤 것들을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 현장에서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추상적인 구호를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미나미의료생협 사례는 협동조합론, 생협론이 더 성장하고 현실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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