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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집 端溪集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인섭(金麟燮)의 시문집 영인본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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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刊行辭 - 부산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所長 金錫禧)
端磎先生文集 - 1
端磎先生文集續集 - 575
端磎先生文集附錄 - 619
解題 - 657

저자 소개 2

1827(순조 27)∼1903. 조선 말기의 문신.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단성민란(丹城民亂)의 지도자이다. 1846년(헌종 12)에 문과에 병과로 급제, 같은 해 12월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었다. 다음 해 장녕전별검(長寧殿別檢)으로 옮겼다가, 1848년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를 봉양할 길이 없고, 또 조부와 부친의 권고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 1851년(철종 2)에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나 귀향, 1852년에 다시 전적이 되었다가 곧이어 사간원정언에 옮겨졌다. 1864년(고종 1) 다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곧 체직(遞職)되었
1827(순조 27)∼1903. 조선 말기의 문신.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단성민란(丹城民亂)의 지도자이다. 1846년(헌종 12)에 문과에 병과로 급제, 같은 해 12월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었다. 다음 해 장녕전별검(長寧殿別檢)으로 옮겼다가, 1848년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를 봉양할 길이 없고, 또 조부와 부친의 권고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 1851년(철종 2)에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나 귀향, 1852년에 다시 전적이 되었다가 곧이어 사간원정언에 옮겨졌다.

1864년(고종 1) 다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곧 체직(遞職)되었다. 민란 이후 새로 부임한 현감과 서리들의 모함을 받기도 하였으나 정원용(鄭元容)의 도움으로 화를 모면하였다. 1867년에는 어사 박선수(朴瑄壽)에 의해 무단토호(武斷土豪)로 지목되어 강원도 고성(高城)·통천(通川)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에 풀려났다. 1882년 단성 향교의 강장(講長)에 추대되었고, 1894년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1902년 통정에 올랐다. 또한 박치복(朴致馥)·허훈(許薰)·허유(許愈) 등과 『성재집(性齋集)』을 교정하였으며, 진양군집현산(集賢山)에 대암정사(大?精舍)를 짓고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저술로는 『단계문집(端磎文集)』 28권, 『단계일기(端磎日記)』 53년분 53책, 『언행유편(言行類編)』·『이동자변(異同字辨)』·『기아초선(箕雅抄選)』·『관동일록(關東日錄)』·『유산록(遊山錄)』·『대암잡지(大?雜誌)』·『두류만록(頭流漫錄)』·『회암출처편록(晦庵出處編錄)』·『일월행도기(日月行道記)』·『춘추대강(春秋大綱)』 등이 있다.
- 김인섭 [金麟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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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부산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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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언양현 호적대장』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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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0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64쪽 | 188*260*35mm
ISBN13
9791168872141

출판사 리뷰

본집 권1·2에 시 401수, 권3에 소(疏) 3편, 주장(奏狀) 2편, 권4∼7에 서(書) 279편, 권8에 설(說)·변(辨)·기행문 등 잡저 28편, 권9에 서(序) 40편, 권10에 기(記) 43편, 발(跋) 22편, 권11에 잠(箴) 4편, 명(銘) 12편, 찬(贊) 3편, 전(箋) 3편, 혼서(婚書) 4편, 상량문 5편, 축문 9편, 제문 15편, 권12에 신도비명 2편, 비 6편, 묘지명 5편, 묘갈명 30편, 묘표 11편, 권13·14에 행장 23편, 유사 9편, 전(傳) 6편, 속집 권1에 부 1편, 시 167수, 권2에 서(書) 79편, 설·논 등 잡저 9편, 서(序) 11편, 기 4편, 발 9편, 명 1편, 제문 2편, 부록 권1에 연보, 권2에 만장 11편, 제문 52편, 서술(敍述)·갈음기(碣陰記)·고유문·상향문(常享文)·상량문·고성문(告成文)·부록발(附錄跋)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기교를 배격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려 하였다. 문장은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를 본받은 것이 많다. 서(書) 가운데 「답산천재회중(答山天齋會中)」은 당시 영남의 여러 선비들이 『남명집(南冥集)』과 『학기유편(學記類編)』이 정인홍(鄭仁弘)의 손으로 된 흔적이 있다고 하여 이를 수정하려고 하자, 이에 강력히 반대한 것이다.

변 가운데 「심즉리설변(心卽理說辨)」은 주리(主理)를 주장한 이진상(李震相)의 심즉리설을 반박한 것이다. 그는 심즉리설은 양명학(陽明學)에서 근원한 것으로 이론이 될 수 없고, 그 설이 사람에게 미치는 화는 매우 심각하다고 하여, 주리설(主理說)·주기설(主氣說)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소 가운데 「정사상봉사(丁巳上封事)」에서는 충직한 인물을 가까이하고 간사한 무리를 멀리할 것, 공도(公道)를 넓혀 사사로움이 없음을 보일 것, 염치를 장려하여 예양(禮讓)을 높일 것, 임금의 위엄을 중히 할 것, 과거를 바르게 할 것, 청탁을 배격할 것 등을 제시하였다. 「의상십조봉사(擬上十條封事)」에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기본을 세울 것, 성학(聖學)을 가르쳐 심술(心術)을 바르게 할 것, 내외를 엄히 하여 화란(禍亂)을 막을 것, 태자(太子)를 잘 가르칠 것, 충신을 가까이할 것, 재상을 선택하여 책임을 지울 것, 기강을 진작하여 풍속을 장려할 것, 학교를 권장하여 교화(敎化)를 밝게 할 것, 절의(節義)를 표창할 것 등을 제시하였다.

주장 가운데 「주청금절청사물허여자빈마장(奏請禁絶淸使勿許女子牝馬狀)」에서는 여자와 암말을 요구한 청나라 사신을 목 베고 명나라의 유민들과 협력해 청나라를 멸망시키자고 주장하였다. 「상금부원정장(上禁府原情狀)」은 1862년(철종 13) 단성민란(丹城民亂)으로 인해 아버지 김령(金?)과 자신이 의금부에 구속되어 심리(審理)를 받기 전에 올린 글이다. 관속들의 포흠(逋欠: 관물을 사사로이 소비함)과 이무미(移貿米: 환곡폐단의 하나)를 횡령한 사실, 이에 대한 백성들의 시정요구 사실, 자신과 아버지가 관여하게 된 경위, 서리(胥吏)를 자체적으로 선출하게 된 동기 등 단성민란의 전말(顚末)이 자세하게 밝혀져 있다.

단계집 [端溪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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