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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 이은상과 대통령
반양장
전점석
피플파워 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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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가고파」에서 「새길론」까지 9

1. 「가고파」를 사랑하는 마산시민 15

마산 시내에 있는 「가고파」 시비를 찾아서 17
신중현과 베토벤은 음악만 할 줄 알았던 게 아니다 25
시의 거리에서 맑은 영혼을 담은 시를 만나고 싶다 27

2. 한국청년운동협의회 활동과 가고파시비보존결의대회 31

1962년, 첫 번째 휴전선 종주를 다녀와서 31
청우회 중앙본부 제2대~10대 회장으로 17년간 활동 35
반탁, 반공투쟁으로 8개 청년단체들이 모인 대한청년단 40
1963년,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 44
「가고파」 시비 보존 결의대회의 후원단체인 건국회 46

3. 해방 직후 광양건준 부위원장, 호남신문 사장 49

이은상, 광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 49
전남건국준비위원회 최흥종 위원장, 전남인민위원회 박준규 위원장 52
미군정으로부터 호남신문 관리권을 받은 사장 박준규, 부사장 이은상 56
이은상 사장 취임 이후 친미 성향으로 돌아선 호남신문 59

4. 한독당 전남도당 위원장, 여순사건 김지회 신원보증 63

김구의 건국실천원양성소에 강사로 참여 64
여순사건과 한독당 계열의 오동기, 송욱, 이은상 66
여순사건 신원보증문제로 물러난 이은상의 서울, 부산 생활 71
6·25전쟁이 끝난 후 호남신문의 재건을 위해 노력 74
국립 전남대학교 후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77

5. 이승만 단독정부 반대, 민주공화당 입당 거절한 운암 81

바위처럼 서 있는 운암 김성숙을 존경하는 노산 81
운암을 향한 추모시, 추도사와 묘비문, 묘비명도 작성한 노산 86
운암은 민주공화당 입당을 거절, 노산은 창당선언문을 작성 88
지조보다 중요한 노산의 ‘새길론’과 강력한 ‘지도자론’ 91

6. 이승만 대통령 후보 지지와 4·19학생혁명기념탑 비문 93

이순신 같은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후보 지지 유세 94
조지훈의 지조론과 천관우의 노산에 대한 실망 98
4·19정신을 계승했다는 박정희 장군에 의해 기념탑 건립 103
피 끓는 젊은이를 노래한 노산의 「학생의 노래」 106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노산이 쓴 조사를 대독 108

7. 이승만 대통령, 김구 주석과 노산 이은상 111

시조 「목이 그만 멘다」와 헌수송 「송가(頌歌)」 113
계속 대통령 하려고 사사오입 개헌한 이승만을 찬양 117
백범 조가(弔歌) 1949년, 백범 추모시조 1950년 119
3·15를 불상사라고 한 노산 121

8. 「피어린 六百里」, 1962년 첫 번째 휴전선 종주 125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져 가는 600리 128
휴전선을 다녀온 후 청년운동에 앞장서다 134
노산이 생각하는 분단의 원인과 분단극복 방안 136

9. 『기원』, 1980년 두 번째 휴전선 종주 143

평화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반공청년운동에 매진 145
굳어져 가는 휴전선을 찾은 두 번째 종주 146
이승만 시절 평화통일은 위험한 용공사상 147
평화통일을 말할 수 없던 시절의 북진통일 149

10.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현충사를 성역화 153

노산은 충무공기념사업회 1955~61년, 1972~82년 회장 153
현충사는 성역화, 탄신일은 국가기념일 157
박정희 역사관은 식민사관에서 이순신의 신격화로 161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해놓은 인물 166

11. 신사임당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169

사임당과 율곡의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 170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171
무려 6판을 거듭한 『사임당과 율곡』 173

12. 영남대학교 설립은 이은상과 이후락의 작품 177

무리한 시설투자로 경영난에 봉착한 청구대학 177
조윤제는 학교문제를 정치권력에게 가져갔다고 힐책 179
같은 날, 각 이사회가 합병을 결의하고, 합동이사회 열어 최종 의결 181
영남대 교가는 이은상과 김동진의 작품 185

13. 대통령의 입각 권유를 거부한 사람들 189

3선 개헌을 앞둔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 작업에도 참여 189
입각 권유를 거부한 게 유신시대에 저항(?) 194
앞장서서 유신과 유신정권을 찬양한 노산과 문인들 196
1인 독재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을 밝힌 문인들 198
한글전용정책 수립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활동 200

14. 비통한 심정으로 쓴 박정희 대통령 묘비문 205

비통함과 존경을 담은 박정희 대통령 비문과 조가 205
30년 친구 박정희를 위한 시인 구상의 진혼시 209
똑같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212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 초안 작성 215
노산이 선택한 언론, 교육, 문화 국민운동 218

15.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 노산 223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경하하였다 223
이선근, 조병화, 서정주, 김춘수, 이병주, 천금성 225
불과 1년 5개월이었던 국정자문회의 위원 229

16. 1947년 대도론과 1961년 새길론 235

노산이 노래하지 않은 강과 산이 없을 정도 235
노산은 『대도론』에서 좌우익의 폭력을 염려했다 238
친일과 항일을 구별하지 말자는 노산의 『새길론』 240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웠다는 『새길론』 243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현실에서는 독재자를 옹호하는 이중성 245

저자 소개 1

1951년 대구 출생, 1981년부터 시작한 부산, 진주YMCA 활동은 2010년, 창원YMCA에서 퇴직. 1년 후인 2011년 8월부터 《경남일보》 칼럼 〈경일포럼〉을 현재까지 매월 게재하고 있으며 2017년 8월, 칼럼 분야 회원으로 경남작가회의에, 2019년 11월, 수필로 진해문인협회에, 2025년 1월 창녕작가회의에 가입하여 활동함. 2020년 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 역임. 수필 〈이름 짓기〉가 《한국작가》 제55회 신인작품상을 수상하고, 《한국작가》 2018년 여름호에 게재. 2020년 5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친일·반
1951년 대구 출생, 1981년부터 시작한 부산, 진주YMCA 활동은 2010년, 창원YMCA에서 퇴직. 1년 후인 2011년 8월부터 《경남일보》 칼럼 〈경일포럼〉을 현재까지 매월 게재하고 있으며 2017년 8월, 칼럼 분야 회원으로 경남작가회의에, 2019년 11월, 수필로 진해문인협회에, 2025년 1월 창녕작가회의에 가입하여 활동함. 2020년 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 역임.

수필 〈이름 짓기〉가 《한국작가》 제55회 신인작품상을 수상하고, 《한국작가》 2018년 여름호에 게재. 2020년 5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친일·반공·독재, 그 계보의 변신을 추적한다〉가 가작으로 입선함. 2023년 〈해상인민군 사건과 이상규 소령〉으로 제10회 경남작가상 수상. 수필 〈하동과 박경리가 겪은 아픔〉으로 《한맥문학》 신인상 받고, 《한맥문학》 2025년 2월호에 게재. 수필 〈늪에서 가던 길을 멈춘다〉로 2025년 에세이스트 신인상 받고, 《에세이스트》 123호에 게재. 에세이스트 이사, 에세이스트 경남에 가입. 《사람의 문학》 2025년 겨울호에 〈합천과 대구공고를 빛낸 전두환씨〉 게재.

지은 책은 《북청 사나이 유택렬》(2022년, 거목기획), 《노산 이은상과 대통령》(2023년, 피플파워). 《친일과 항일 사이》(2024년, 도서출판 두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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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0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47쪽 | 382g | 152*225*13mm
ISBN13
9791186351536

책 속으로

노산의 시비를 돝섬 이외는 모두 둘러보고서 느낀 점은 정말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노산 특히 「가고파」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2개를 제외하고 모두 노산이 돌아가신 후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노산이 이렇게 많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걸 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분명 고마워하면서 미안하다고 하실 것 같다. 마산 시민들이 자신에게 과분한 사랑을 준다시며 불의에 저항한 3·15를 불상사라고 한 것을 이해해달라고 하실 것 같다.
---「시의 거리에서 맑은 영혼을 담은 시를 만나고 싶다」중에서

청우회는 박정희 정권의 반공정책을 지지하는 민간단체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정권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산은 제2~10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1965년부터 1983년까지 17년간 활동하였다. 역대 16명의 회장 중에서 가장 오래 활동하였다. 1975년에는 단체 명칭을 한국청년운동협의회로 바꾸었으며 제1회 반공청년운동 순국자 합동추념제를 시작했다. 이후 건국청년운동협의회(1987년), 대한민국건국회(1995년)와 대한민국통일건국회(2017년)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3년,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중에서

광양자치위원회 구성을 협의하고, 위원장 김완근, 부위원장 이은상, 정진무를 선출했다. 노산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임원 세 사람이 승낙을 받기 위해 노산의 집을 방문하였더니 상임위원 24명 중에서 친일파 몇 명을 교체하자는 등의 수정 제안 몇 가지를 한 뒤 쾌히 승낙하였다고 한다. 노산은 비록 지역민은 아니지만 전국적인 명망가였기 때문에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은상, 광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중에서

당시 서울에서는 이승만 정권 유지를 위한 반공이데올로기 담론의 형성에 문인들이 앞장서고 있었다. 1948년 12월 27~28일 「민족정신 앙양 전국문화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름이 오른 경남, 부산지역 문화인은 이은상을 위시해서 김달진, 김춘수, 김용호, 김상옥, 김용환, 김의환, 유치환, 유치진, 조연현, 최현배, 최인욱, 오종식, 정인섭, 손진태, 이광래, 이정호, 최영해, 오영수, 탁소성, 한형석, 허영균, 설창수 등이었다.
---「여순사건 신원보증문제로 물러난 이은상의 서울, 부산 생활」중에서

일제강점의 암흑기에 ‘달걀로 바위 치기보다 더 가망 없는 싸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나섰다는 것을, 그들이 이름 없고, 빛나지도 않으면서 굶어 죽고, 맞아 죽어 가면서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운암을 보면서 노산은 절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운암을 향한 추모시, 추도사와 묘비문, 묘비명도 작성한 노산」중에서

판문점에서 벽제관에 이르는 지역에 관한 부분에서 냉전의식을 확실히 볼 수 있다. 명나라 군대가 벽제관에서 일본군에 패배하여 도로 송도로 퇴각하는데 이때 조선의 이덕형이 진군을 주장했다는 내용은 맥아더의 북진론을 지지한 것이다. 벽제관에 관한 글에서 세 개의 다른 역사적 사례를 비교·소개하면서 맥아더의 북진론을 영웅적인 것으로 신화화했다.
(131쪽,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져 가는 600리」중에서

노산은 『기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평화’라고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평화는 전쟁 없는 평화가 아니었다. ‘총칼이 아름다운 강산을 더럽힌다’는 표현으로 인해 노산이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만 그가 참여한 청년단체와 청년들에게 행한 연설을 보면 기본적으로 멸공과 북진통일을 이루어야만이 찾아오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평화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반공청년운동에 매진」중에서

노산은 『사임당과 율곡』에서 사임당에 대해서는 효녀, 착한 아내, 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으며, 율곡에 대해서는 지방관이 되어 지방행정을 쇄신하는 모습을 그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국모의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박정희의 논리에 합당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정치적 목적이고, 노산은 민족문화 측면이라고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무려 6판을 거듭한 『사임당과 율곡』」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 충무공에 대해 남다른 존경심을 갖고 있던 노산을 찾게 되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밀해졌다. 노산은 평소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해놓은 인물’이라고 말하였다.
---「똑같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중에서

77세의 노산은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라는 제목과 ‘새 시대, 새 역사의 지도자상’이라는 부제로 글을 썼다. 직책은 민족문화협회 회장이었다. ‘10·26사태 이후 두어 차례나 위급한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앞에는 안팎으로 닥쳐오는 난관이 겹겹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모든 여론들이 한결같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경하하였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제적 문인 이은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책

뛰어난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은 언제나 논란이 따라다니는 문제적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시인임을 앞세우며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아무 잘못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승만에서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권력의 편에 서서 독재를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그의 문필 활동까지 지배자를 위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논의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이렇게 상반된 주장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은상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저마다 자기 관점에 맞추어 관련 사실에 대해 해석하면서 자기 얘기만 되풀이하고 마는 것이다.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온 전점석 작가의 『노산 이은상과 대통령』은 상반된 주장을 아우르는 한편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노산의 생애 전반을 빠짐없이 폭넓게 살펴봄으로서 그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에 이르고 있다.

해방 직후 전남 광양에 머물던 때부터 광주에서 신문사 사장을 하던 시절의 행적, 여순사건에서 보인 그의 태도는 널리 알려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6.25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그의 정신세계와 이후 반공청년단체 회장 시절의 사상은 새로운 사실로 다가온다.

세종대왕 숭모 활동과 한글전용정책, 이순신 장군 영웅화와 아산 현충사 성역화 사업, 이율곡과 그 어머니 신사임당 선양 사업에 나선 행적도 크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새롭다. 전문 연구자들은 아는 일이라 해도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이은상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동시에 독재를 찬양했다. 어떤 사람들은 노산을 두고 소신도 줏대도 없이 자기 이해와 편의를 좇는 기회주의자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점석 작가에 따르면 이은상은 그런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노산 이은상의 이중성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이중성이 노산의 정신세계에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 모순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공과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았고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자라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노산 이은상을 비판하든 옹호하든, 전문 연구자이든 일반 애호가이든 그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번 읽어 보시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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