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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인생의 준비기
013 다섯 살에 엄마를 잃다 022 6.25 전쟁이 나다 032 결석으로 점철된 예천여중고 053 부정선거와 아버지의 낙선 060 첫 번째 도전, 대학 입학 083 1인 4역을 하다 095 어기찼던 신혼시절 113 미국 유학과 문화충격 134 빈손으로 귀국하다 142 천신만고 끝에 얻은 박사학위와 2남 1녀 제2부 좌충우돌 활동기 151 정겨운 경희대 교수 시절 159 시어머니의 뇌졸중 167 행복했던 고려대 교수 시절 179 학생 데모와 민주화 운동으로 얼룩진 1980년대 192 이중언어학회와 역사적인 일본, 중국, 소련대회 204 눈 덮인 백두산 천지를 보다 225 자랑스러운 박사 제자들 230 뼈를 깎는 아픔 241 하버드대 객원교수가 되다 264 한국어학회와 국제학술대회 274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시절 292 교수생활의 마무리 3부 정년 퇴임 이후의 삶 299 평화로운 노후 304 국제한국어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다 308 문학에 입문 316 세종문화상과 서울시문화상을 받다 323 열정과 도전의 인생 80년 331 웰다잉을 꿈꾸며 부록 335 惠堂 박영순 교수의 연보 338 박영순 논저 목록 349 박영순 저술서 353 사진으로 보는 혜당 421 언론에 비친 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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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2년 10월 27일 중국 장춘시(당시는 신경특별시)대가大街 27번지에서 태어났다. 시조이신 박혁거세왕으로부터는 64세손이고 중시조中始祖밀성대군(밀양박씨의 시조)의 34세손이요, 파조派祖인 이조판서 충간공忠簡公의 20세손이다.
우리 집은 일제 강점기 때 만주에 있었으므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가문이다. 내가 네 살 되는 해에 광복이 되었으나 거류민들을 먼저 한국에 보내신 다음 귀국하려고 하던 차에 소련군이 들어와서 정국이 혼란해지자 귀국을 결심하셨다고 한다. 언니와 오빠의 기억을 통해 들어보면 이 무렵 소련군이 들어와서 민간인들 집에서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해 갔다. 우리 집에는 당시 매우 귀한 라디오가 있었는데, 이걸 떼갔다고 한다. 이러한 어수선한 정국을 맞아 다섯 식구가 안전하게 귀국길에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마침 아버지가 경찰에 계실 때 친했던 중국 경찰 고위직에 있던 분들의 도움으로 무려 열 명의 경찰 호위병들의 엄호를 받으며 남한으로 오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해방이 되고도 1년 반 정도가 지난 1946년 겨울에야 귀국하게 되었다. 내가 만 네 살이 조금 지나서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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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여덟 번 바뀌는 동안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적은 듯 많고 많은 듯 적다. 그 많고 적은 인연이 하나하나 튼실한 열매가 되어 나의 노후를 풍요롭게 한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듯 나의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았다. 자기의 전 생애를 글로 펼치는 것은 부끄럽고도 두려운 일이다. 아니 민망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쓴 것은 나의 후손들에게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할머니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사랑과 행복, 삶의 도전들, 성공과 실패들을 통해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제자들에게, 다음 세대의 여성학자들에게 조그만 위로와 격려라도 되면 좋겠다.
바람에 날아간 기억을 되살려 에피소드 하나라도 생각해 내면 기분이 좋았다. 이미 기억력의 한계도 있지만, 더 잊기 전에 이 정도라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내 제자들에게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선배 스승님들에게서 지난 이야기를 많이 못 들어 아쉬웠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나의 지나온 길을 글로 표현해 보긴 했으나 나의 뜻을 다 전달하진 못한 것 같다. 여자로서 평생을 사회생활 하면서 겪었던 일과, 여자이기 때문에 누렸던 복도 모두 알려주고 싶었다. 너무 태만하지 않고,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남에게 나쁜 짓 하지 않고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여 배우고 도전했던 나의 전 생애를 성찰해 본다. 그동안 나를 아껴주고 손을 잡아 주었던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80년 동안의 나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사랑’이 아닐까 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어를 사랑하며 살아온 일생이었다. 이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 배움과 도전이었다. 배움과 도전을 통해 사랑을 실현하고자 했다. 때론 소나기도 만나고 태풍도 맞고 뜨거운 햇살도, 하얀 눈도 맞으며 내가 정한 나의 길을 다 건너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