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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나의 삶 나의 학문, 그리고 문학
나의 삶 나의 학문, 그리고 문학 13
사랑의 힘 19
아버지의 바다 23
스승의 날 31
제자들 이야기 36
고향 친구들 41
추억 45
교양인 50
소나무 56
뜨개질 60
보자기 이야기 64
광복 70년,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 67
온기가 있는 글로벌 대학을 위하여 72
남편 이야기 77
77년을 살아보니 81

제2부 사색의 창
아, 세한도 89
행복의 비밀 95
아우라지강에서 만난 자연과 현대문명 100
1초의 힘 104
창의적인 사고와 교육의 힘 109
한 줄기의 빛 113
대인과 소인 116
옛날 앨범에서 찾아낸 보람 120
잡초를 뽑으며 126
영웅 만들기 133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 136
아카풀코 해변 139
일의 선후와 경중 146
건망증 150
11월에 피는 장미 154
인간의 본질 157
투탕카멘 왕의 미라 161

제3부 삶의 지혜
삶의 희열을 맛보려면 171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175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179
하나의 위대함 여럿의 아름다움 182
할머니라는 호칭 185
봄 188
진취적인 생각이 우리의 희망이다 191
아름다운 삶 195
책 속에 모든 답이 있다 198
두 얼굴 201
한라산 등반기 205
백두산 천지 210
가우디의 건축 정신 217

제4부 내 사랑 한글
내가 만난 시인들 225
배차꽃이 노리다 233
나의 짝사랑 237
한글이 위대한 이유 240
현자가 그리워질 때 245
한글의 세계화 250
한글과 민족 문화 255
남북한의 언어통일을 위하여 259
인간의 질서와 언어의 질서 264
이중언어교육과 한자교육 270
‘아까이대이’와 ‘와보랑께박물관’ 274
한글과 디지털 277
위대한 발명품 한글 281
이주민에 대한 한국어 교육 286
언어의 사회성 290
한국어의 세계적 위상 294

저자 소개 1

경북 예천 출신.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미국 일리노이대 언어학박사. 버클리대, 하버드대 객원교수 역임. 고려대학교 교수로 정년퇴임.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역임, 현재 국제한국어교육문화재단 이사장,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작가교수회 부회장. 국어학, 국어교육학 관련 저서 38권. 장편소설 4권, 단편소설집 2권, 수필집 2권, 시집 1권 출간. 수상: 손소희문학상, 세종문화상, 서울특별시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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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8쪽 | 462g | 130*210*20mm
ISBN13
9788968178979

책 속으로

나의 삶 나의 학문, 그리고 문학
참으로 오랜만에 집안이 떠들썩하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 둘이 가족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쓸쓸하고 고적했던 집안이 갑자기 활기가 넘친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 여섯 명의 손주들이 깔깔거리고, 오랜만에 만난 나의 삼 남매도 얘기꽃을 피우는 걸 보니 모처럼 즐겁고 행복하다. 두 명에서 시작하여 열네 명의 식구가 되어 한자리에 모이니 감개가 무량하다.
내 집 거실에서는 북한산 형제봉이, 침실에서는 보현봉이 보인다. 이층 서재에서는 북악산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돈이 없어 서울에서 가장 싼 지역을 찾아다닌 끝에 마련한 나의 산꼭대기 집. 결혼 13년 만에 빚을 잔뜩 지고 마련한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다. 밤이면 반짝반짝 별들이 쏟아지는 것도 볼 수 있고 달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것도 볼 수 있으니 어릴 적 고향에 살던 때로 종종 착각할 때도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월요일 아침을 좋아했다. 월요일 아침이면 상기된 얼굴로 삶의 의욕이 충천하는 참 특이한 아이였다. 자질구레한 잔심부름 그리고 농사나 집안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했던 나는 월요일 아침에 학교로 내빼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이제 정년퇴직을 했으니 요일을 따질 필요가 없는데도 아직도 월요일 아침이면 생기가 난다. 마음껏 놀고, 쉬고, 읽고, 쓸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으랴?
나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고 계모 밑에서 컸다. 계모는 성격이 강하고 매우 이기적인 분인데다, 10년 넘게 노력해도 회임이 안 되자 점점 더 엇나가기 시작하여 가족을 너무나 힘들게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계모의 히스테리가 최고조에 이르러, 그 히스테리를 혼자서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참으로 괴롭고 힘든 시기였으나, 밤에 소설책을 읽으며 모든 스트레스를 풀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김남조, 정한모, 양명문 시인들의 강의를 들으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학부 시절 정한모 선생님의 문학 강의가 매우 체계적이어서 문학 공부가 아주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이 책을 정독하여 나중에 논문을 써서 학과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이후 대학원에서 뜻하지 않게 어학 분야 책 한 권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결국 어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것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960년대의 대학원은 어학, 문학 구별 없이 다 같이 강의를 듣고 여러 다른 대학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기도 하였다. 사실 강의랄 것도 없이 한 학기에 한두 번 만나고, 책 소개받고, 기말에 리포트만 내면 될 정도로 대학원이 부실했다. 중앙대 백철 선생님 강의를 7, 8개 대학원 학생들이 함께 강의를 들었는데, 유일하게 매주 제대로 강의를 해주셨다. 그때 함께 강의를 들었던 학생 중 기억나는 사람은 임헌영 평론가다. 이맘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게 역동적으로 살았다. 고3담임을 하면서, 일주일에 30시간도 넘게 수업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야학도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야학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집안일을 할 때 당시 활발했던 4H운동에 참여하여 글 모르는 동네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쳤던 보람이 바탕이 되어 3년간 YWCA가 운영하는 야간 공민학교(속성 3년제 초등학교 과정) 교사를 했다. 공민학교에는 20대에서 60대까지의 여성이 다 있었는데, 이들의 학구열과 나의 열정이 어우러져 밤 6시반부터 9시반까지 신나게 수업을 했다. 이러는 중에도 나는 지금의 남편과 사랑에 빠져 연애를 하느라 1인 4역을 하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석사논문은 결국 어학으로 쓰게 되었는데 제출하고 곧바로 결혼도 했다.
내 친정집은 그래도 동네에서 유일하게 신문을 볼 정도로 잘 사는 집이어서 사실 가난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컸다. 6.25 전쟁 뒤 온 나라가 폐허가 되고 많은 국민이 식량부족에 시달렸지만, 우리 집은 이웃 노인들에게 쌀을 나누어 줄 정도로 농토를 제법 많이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굶어보거나 감자 하나로 끼니를 때워 본 적은 없다. 가난을 막연히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결혼 후 현실적인 가난 앞에서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고통 중 하나가 가난인 걸 알게 되었다.
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 부부는 미국 유학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남편은 매우 학구적이고 명석하여 미국 대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나는 언어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으며 세계적인 학자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론을 공부하면서 행복감으로 충만하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언어학은 물론, 인문사회학 전체를 선도하다시피 한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교수를 만난 것은 언어학을 공부하는 큰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몇 년 뒤 윌리엄 라보프(William Labov)라는 또 한 사람의 거인을 만나게 되었다. 라보프의 사회언어학 이론 역시 나를 흥분시켰다. 간단히 말하면 촘스키가 언어의 구조를 매우 간결한 몇 가지 원리로 논리적으로 설명했다면, 라보프는 동일한 언어가 다양하게 사용되는 양상들을 실증적으로 정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정말 이 두 거장의 양 이론을 모두 이해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언어학 공부를 했다고 할 만했다.
학위를 받고 돌아와 곧바로 교수가 되었다. 집에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삼남매를 키우다 보니 내 주전공인 국어학과 국어교육학 외 다른 분야는 아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특히 국어학과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내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남보다 조금 빨리, 조금 많이 움직이면서 큰 보람도 맛볼 수 있었고, 대학원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면서 더욱 큰 보람과 희열을 느끼기도 하였다. 나의 주 전공은 문장과 문장보다 큰 언어 단위의 구조와 의미에 관한 연구로서 저서도 국어통사론, 의미론, 담화텍스트론, 화용론, 문법교육론, 문장의미론, 국어은유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 등 거시적인 것이 많다.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으로 일한 3년 동안은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어능력시험을 주관하고, 미국의 한국어 교사 연수 사업을 하고,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무료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한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100대 한글문화유산 정비사업, 한국어교육총서 발간, 디지털한글박물관을 운영한 것들도 모두 힘들었지만, 보람된 일들이었다. 30년간 교수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논문 쓰고 수십 권의 책 쓰고 제자들의 논문 지도하고, 다른 대학의 논문 심사하고, 교육부 회의 불려 다니고, 중고 교과서 집필하고, 심의하는 등 끝없이 밀려오는 일들로 문학에는 아예 가까이할 엄두도 못 냈다. 단지 경희대에서 학과 동료였던 황순원, 조병화 교수, 고려대에서 동료였던 정한숙, 오탁번, 송하춘, 최동호 교수들의 시집이나 소설책을 한 권씩 선물 받을 때는 잠자고 있던 문학에의 동경이 잠깐씩 살아났다가 현실의 벽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곤 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문예반이었던 나는 읽기만큼이나 쓰기도 좋아했다. 학교에서 일선 장병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내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엽서를 나누어 주는데, 이때 나는 반장에게 엽서의 절반은 나를 달라고 부탁했다(나는 어릴 때 워낙 체격이 왜소하고 병약하여 반장 같은 건 한 번도 못했다). 엽서 못 받은 친구들에게는 ‘내가 다 써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마라.’ 하면 모두 좋아했다. 삼사십 장의 엽서를 집에 가지고 와서 순식간에 다 써버렸으나 똑같은 내용을 쓴 것은 거의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1학년 때까지도 시나 수필, 콩트 비슷한 것을 혼자서 써보거나, 학교 신문 같은 데 발표하기도 했지만, 대학 2학년부터는 전혀 글을 쓰지 않았다. 갑자기 ‘내가 인생에 대해 무얼 안다고 글을 쓰랴? 사랑도 안 해 보고, 사회생활도 안 해 보고, 결혼도 안 해 보고 자식도 낳아 키워보지 않은 내가 어쭙잖게 무슨 글을 쓰랴?’ 하는 생각이 갑자기 나를 지배했던 것이다. 성공한 문인들은 오히려 20대에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는데, 나는 쓰던 글도 멈췄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정년퇴임 후에야 문단에 들어오고 보니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성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무심코 보아 넘겼던 서일(曙日)과 황혼의 장엄함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들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도 새삼스럽게 감동으로 다가오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늘거리는 나비도, 창공을 훨훨 나는 기러기 떼도, 텃밭에 심은 고추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빨간 고추도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소설로도, 시로도 등단을 했지만, 주로 소설을 썼다. 시집 1권, 수필집 1권, 장편소설 4권에, 단편소설집 1권을 냈다.
우리 세대는 호롱불에서 디지털로 올 때까지의 변화과정을 모두 체험하며, 6.25 전쟁 뒤의 참혹한 현실도 몸소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의 국민으로서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이제 이름 없는 들풀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싶고, 이들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공기와 물, 햇빛과 바람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사랑의 힘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고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설렐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면 보통 남녀 간의 연정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랑이 ‘사랑’이란 범주 안에서 가장 핵심적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좀 더 넓게 본다면 사랑의 대상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가족, 연인, 친구, 이웃, 나라, 인류, 더 나아가 동물, 식물, 무생물까지도 모두 가능한데, 하여간 사람이 살아갈 의욕을 갖게 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뭔가 희망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희망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 힘도 용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목표와 희망이 있는 한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법이다. 반대로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살 의욕을 가지기 어렵다.
나는 사랑과 희망 두 가지 외에 “책임감”이라는 것을 하나 더 들고 싶다. 한 사람의 아내로서, 세 자녀의 엄마로서, 한 명의 교수로서 책임진 일이 참으로 많았다. 이 책임을 다하기 전에는 죽을 수가 없었다. 내 가족은 물론,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들이 학위를 받고 직장을 가지기까지는 내 책임이었다. 물론 이 제자들에게 그저 공식적인 책임만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남편과 자식,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동료, 친지들 역시 나의 삶의 당위성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나와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며,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랑할 대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란 반드시 감정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감정으로 안 되면 이성으로라도 사랑해야 한다. 천주교에서는 ‘사랑은 노력’이라고 가르쳐준다. 나와 내 주위, 더 나아가 내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 보는 것도 나를 바르게 관리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어떻든 많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다시 생각하면 ‘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태어났고, 나의 삶, 나의 죽음이 모두 그분의 것이다. 내가 몇 살까지 살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지만 많은 자율권을 가졌고,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권리와 의무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있을 때 하느님께 간곡히 기도드리면 대체로 다 들어 주신다.
인간의 사랑이 아무리 크고 깊다고 해도 어찌 하느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사랑의 무게가 다르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비참한 죽음을 택하여 인간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그러면서도 ‘구하는 것을 모두 주신다.’라고 하시니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느님 존재조차 자주 망각하면서 자신이 잘난 줄 착각하면서 살 때가 많다. 눈앞의 이익이나, 말초적 쾌감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신다면 하느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자칫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기계와 과학만 있는 삭막한 환경에서 살게 되기 쉽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자리에 앉아 있어도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는 세상인가?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에는 버스, 기차를 타면 보통 옆 사람과 인사도 나누고 말벗도 하였다. 스마트폰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처럼 사람 사이의 벽을 만들고 있다.
사랑이란 상대를 좋아하고 그 상대를 봄으로써 내가 즐거워지는 정서적인 사랑과 그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정을 주는 이성적(理性的)인 사랑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다 겸한 사랑이 완전하고 무게 있는 사랑일 것이다. 사람의 경우 상대방이 나로 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나 자신도 즐거울 수 있지만, 가령 자연에 대한 사랑은 내가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해도 가시적인 반응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자연은 우리에게 먼저 모든 것을 베푼다고 할 수 있다. 맑은 공기도 주고, 아름다운 경치도 주고 사람에게 필요한 물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자원도 준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자연 속에서 받는 위안이나 즐거움, 여유로움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맑은 시냇가, 우거진 숲, 이름 모를 들꽃,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들, 모두 다르게 생긴 돌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즐거움 그 자체요, 위안이 아니겠는가? 자연은 말하자면 온몸으로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도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자연의 사랑에 대한 반응 혹은 보답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연을 오염시키고 훼손하는 것은 자연에 대해서도 도리가 아니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죄를 짓는 일이다.
사랑의 힘은 무한하다. 세상 문제의 대부분은 사랑으로 해결 가능하다. 이기심을 버리고, 내 나라와 내 민족 내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되고, 이 세상을 살만한 공간으로 바꿀 것이다. 이기심을 버린다는 것은 얼핏 많은 것을 잃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곧 나의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또한, 사람은 본질적으로 남에게 베풀 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도 기업가도 노동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적게 받은 사람이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다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사랑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닫고, 사람이든 자연이든 일이든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곧 행복하고 보람된 삶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계절의 여왕 5월이 왔다. 따스한 햇볕, 싱그런 산과 들, 꽃 중의 꽃 장미의 자태가 눈부시다. 작년엔 장편소설집을 냈지만, 이번엔 그동안 여기저기 실렸던 수필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다. 국어학자 티를 냈는지 한글 관련 글이 많다. 너무나 자유롭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마음껏 사용하는 한글이다 보니 그 소중함이나 가치를 절실하게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한 번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우리에게 한글이 있다는 게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지 알게 되며, 세종대왕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수필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므로 이런 책을 낸다는 게 두렵고 부끄럽다. 그래도 이제 주변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흩어진 글들을 모아 두 번째 수필집을 낸다. 첫 수필집을 낸 지 12년 만이다. 그동안은 주로 소설을 써왔다. 아마 이 책이 나오고 나면 결국 다시 소설로 돌아갈 것 같다. 딱딱하고 건조한 글이 많지만 독자들의 혜량을 바라며, 기탄없는 질정(叱正)을 기대한다. 몇 편은 2008년 정년 때 냈던 첫 수필집에 실렸던 글들이다. 물론 조금의 첨삭은 했다. 이후 여기저기 실렸던 글이 꽤 쌓여 있어 이번에 한곳에 모아 놓고 보니 흐뭇하기도 하나, 글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 아쉽다.

바다 같은 나의 아버지 마음을 백분의 일이라도 닮고 싶다.
인자하고 격조 높으셨던 아버지의 고매한 인격은 아무리 자랑해도 부족하다. 비록 재력과 권력은 없어도 그 넉넉하고 따뜻한 인품은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지 않았던가.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인자하시고 사랑이 넘쳤다. 신구학문을 다 하셨던 나의 아버지는 참으로 박식하셨지만 언제나 겸손하셨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그러니까 팔순이 넘어서까지도 한시를 쓰시고, 서원의 향사를 집례하시는 등 사회적 봉사를 하신 셈이니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아버지 앞에서는 늘 철없는 9살짜리 어린애였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다. 좀 더 성숙하고, 효심이 깊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회한만 가득하다. 그래도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아버지 떠나신 지 22년. 그리움이 북받쳐 오른다. 못난 글들이나마 책으로 엮어 아버지 영전에 바친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웃어주시리라.

내가 문학으로 항로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내 친구 서정자교수와 한상윤 작가가 늘 고맙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한결같이 믿어주고 응원해준 나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제자들에게 감사한다. 끝으로 변변치 않은 글들을 예쁜 책으로 꾸며주신 한국문화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2020. 5. 3.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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