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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음악』을 위한 서문 (1903) 음악에 진보파라는 게 있는가? (1907) 레오폴트 슈미트의 『현재의 음악계』를 위한 머리말 (1908)어느 시장님께 띄우는 공개 서한 (1913)도시 연합 극장: 하나의 제언 (1914)오페라 공연 목록에 관한 생각 (1922)열 개의 황금률 (1925경)작곡과 지휘에 관하여 (1929)한스 디스텔의 『어느 오케스트라 단원이 지휘에 관하여』에 부치는 서문 (1931)고전 걸작들을 지휘한 경험예술적 유언: 카를 뵘 박사에게 (1945)바이로이트의 「탄호이저」에 관하여 (1892)「파르지팔」 저작권 보호 문제에 관하여 (1912) 리하르트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 대하여 (1940경)바그너의 『오페라와 드라마』에 관하여 (1940경 추정)모차르트의 「여자들은 다 그래」 (1910)모차르트에 대하여 (1944)모차르트라는 챕터에 관하여 (1944)슈베르트에 대하여 (연도 미상)구스타프 말러 (1910)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하여 (1925) 프리드리히 뢰슈 추도사 (1925)뮌헨 오페라 (1928)빈 필하모닉 경축사 (1942)작센 슈타츠카펠레 경축사 (1948)음악 교육을 위한 시의적 단평: 한 교육자 친구에게 (1933)인문 김나지움에 관한 편지: 리이징거 교수께 (1945)「요셉의 전설」에 관하여 (1941)「간주곡」에 부친 미출간 서문 (1924)「간주곡」 서문 (1924)「이집트의 헬레나」에 관한 인터뷰 (1928)「기상곡」을 위한 머리말 (1942) 내 작품들의 좋은 조합 (1941) 선율 착상에 관하여 (1940경) 오페라 「다나에의 사랑」 최종 리허설에 대하여 (1944)요제프 그레고어의 『연극의 세계사』에 관한 고찰 (1945) 마지막 메모 (1949) 한스 폰 뷜로에 대한 기억 (1909)아버지에 대한 기억 내 어린 시절과 수련 시절 내 오페라의 첫 공연들에 대한 기억 (1942) 파울리네 슈트라우스-데 아나 (1947) 여든다섯 살 생일에 가르미슈에서 드리는 말씀 (1949)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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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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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사람,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들려주는 예술과 인생!“청중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하지만 어중간한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청중은 재깍 흡수되지도 않고 굉장하게 압도하지도 않는 예술에는 이해심과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_ R. 슈트라우스“슈트라우스의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의 부친이 연주하는 호른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지며 뷜로의 리허설 현장에 있어 보고 싶어진다.” _ ‘옮긴이의 말’에서내가 방에 다시 들어섰을 때, 다른 쪽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깊이 감동하여 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셨다. 그거였다. 뷜로가 기다렸던 것. 성난 사자처럼 그는 아버지에게 퍼부어댔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저한테 감사하실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왕년에 여기서, 여기 이 망할 놈의 뮌헨에서, 당신이 제게 저지른 일을 저는 하나도 잊지 않았다고요. 제가 오늘 한 일은, 당신 아들이 재능이 있어서 한 거지, 당신을 위해서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대기실을 떠났다. _ 226쪽브람스가 등장하여 젊은 후배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여기에 이어 나는 내 f단조 교향곡을 지휘했다. 청중 중에는 무려 요하네스 브람스가 와 있었고, 나는 내 교향곡에 대한 그의 판단을 듣기를 한껏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말수 없는 특유의 태도로 “썩 좋아요”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명심해둘 만한 교훈을 덧붙였다. “젊은이, 슈베르트의 춤곡들을 정확히 잘 보시고 8마디짜리 단순한 선율들을 고안하려 해보세요.” 이후 나는 거부감 없이 대중적 선율도 내 작업 안에 정말로 수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요하네스 브람스 덕분이다(오늘날 지고하신 비평가들이 지닌 학교 지식은 그런 선율을 참으로 하찮게 평가하겠지만, 그런 선율은 정작 몹시 드물게 그리고 운이 좋아야만 떠오른다). 위대한 마이스터가 한 또 하나의 일침인 “당신의 교향곡에는 테마의 유희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순전히 리듬상으로만 대비되는 많은 테마를 하나의 같은 화성 위에 이렇게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당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리듬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화성적으로 바짝 강도 높게 대비되는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주제가 시적 필연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합쳐질 수 있을 때라야만, 대위법은 타당하다는 것을. _ 231-232쪽평생을 독일 음악에 헌신하며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치적 통찰력이 부족하여 나치 정권하에서 제국음악원장직에 오르거나 뮌헨 문화 인사들의 안티 토마스 만 캠페인에 서명하는 등 돌이키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가 열두 살 손자에게 보낸 생일 축하 편지에는 이런 씁쓸한 회한이 담겨 있다.너도 네 지난 생일을 기억할 때는, 항상 야만을 혐오하면서 같이 기억했으면 한다. 그 야만의 만행이 우리 아름다운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구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너는 네 형과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네가 30년 후에 이 애처로운 글을 다시 손에 쥔다면, 70년 가까이 독일의 문화, 조국의 영예와 명성을 위해 노력한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_ 315-316쪽 ‘옮긴이의 말’ 중세계를 담아 낸 음악슈트라우스는 새로운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노력한 음악가로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바그너를 특히 존경했던 그는 바그너의 악극과 관현악법을 이어받았으며 교향시와 오페라, 200곡 이상의 가곡을 창작했다. 그는 음악 인생 전반부에는 화려한 교향시에, 후반부에는 웅장한 오페라에 집중했다. 교향시와 오페라의 소재는 철학과 사상, 전설 등으로 다양했고,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던 그는 철학적, 문학적 관심과 사유의 결과를 음악 속에 녹여냈다.문헌학자들은 음악가가 아니며, 음악가들은 철학적으로, 음악적으로 교양이 너무 부족한 상태다. 그렇지 않다면 쓸데없는 음악을, 멋모르는 오페라를 그토록 많이 쓰지는, 심지어 무대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_ 116쪽악극이라는 목표를 가진 바그너, 그가 말에서 태어난 운문 선율을 음 예술적 판타지가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 (중략) 선율들은 바로 우리의 고전 대가들의 상상에서 솟아난 것이다. 이 선율들은 인간 영혼의 계시를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이들 선율이 실루엣의 아름다움과 선율 진행의 정갈함, 심오한 감정 내용 면에서 보여주는 형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_ 116쪽갑자기 떠오른 선율이 천공에서 곧장 내려와 불현듯 나를 엄습한다. 외부에서 감각적 자극이나 영혼의 동요가 없는데 떠오른다(영혼의 동요도 선율이 떠오르는 데 아주 개연성 높은 직접적 계기가 된다. 이는 전혀 딴판인 비예술적 성격의 흥분 상황에서 직접 자주 경험한 바다). _ 197쪽 지휘란 청중을 위한 것한스 폰 뷜로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슈트라우스의 지휘와 작품 해석 능력 역시 탁월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다채로운 음향을 추구했지만 지휘자로서는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게 곡을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손동작과 얼굴표정을 최소화하고 악보를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젊은 카펠마이스터에게 남기는 글에서 “지휘할 때 땀을 흘리지 말지라, 관객의 가슴이 따뜻해져야 할 뿐”이라고 지휘자들의 과장된 몸동작을 경계했다. 또한 텍스트의 가청성에 전무후무하게 심혈을 기울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당시에는 오페라를 연주할 때 가사가 또렷이 들리지 않는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분위기였지만, 슈트라우스는 청중에게 가사가 정확히 들리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그의 입장에 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공감했고, 이후 독일 성악 연주 수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그대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청중들을 기쁘게 하려고 연주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_ 52쪽지휘를 할 때 손목 관절만 까딱 움직여 사인 지시를 짧으면 짧게 할수록 실행이 더 정확하다. 이게 지휘 테크닉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같이 지휘하는 팔(일종의 지렛대 동작인데, 이 동작의 끝을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은 오케스트라에 마비와 혼란을 가져온다. _ 62쪽가수가 각별히 기억해둘 게 있다. 제대로 조음한 자음만이 어떤 오케스트라든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오케스트라까지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략) 나는 특히 바그너의 악극에서, 가령 보탄이 들려주는 이야기나 「지크프리트」의 에르다 장면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성량은 크고 딕션은 안 좋은 가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 속에 무력하게 침몰하는 반면, 성량은 크지 않아도 자음을 선명하게 발음하는 예술가들은 확실하게 프레이징하면서 오케스트라 교향악의 음향 홍수에 맞서 힘 안 들이고 대사를 관철해냈다. _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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