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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독립운동가 의사 원심창 1
기록으로 돌아본 「육삼정 의거」의 재구성
이민호
통일일보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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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사 / 정 장 선 평택시장
감사인사 / 원 형 재(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 유족대표)

제1장. ‘일제 죄악상’ 꾸짖은 단 한 사람
「육삼정 의거」 판결 그날


1. 무기징역 선고 그날
일제만행 꾸짖으며 법정항고(抗告)

2. 나가사키 원폭지에서 만난 원심창
‘형무소=평화공원’의 두 얼굴

3. 재일동포 유일무이 의사(義士)

4. 「원심창 병상일기」

부록① 이강훈의 회고 ‘원심창 의사와 나’

제2장. 상하이 「육삼정 의거」 판결문

5. [한글 완역본] 육삼정 의거 판결문

6. [현대어 일어] 「六三亭義擧」 判決文

7. [영인본] 육삼정 의거 판결문 원문

부록② 육삼정 의거 나가사키재판소 결심판결에 대한
스즈키 나가사키현지사의 외무성 보고서(1933.11.25)

제3장. 상하이일본총영사관의 판도라상자

8. 육삼정 의거 직후 일본 외무성 기밀자료

8-1. 기밀 제106호(1933.03.18)
8-2. 기밀 제107호(1933.03.18)
8-3. 기밀 제108호(1933.03.18)
8-4. 기밀 제29번(일본육군 보고, 1933.03.18)
8-5. 기밀 제340호(1933.03.27)

제4장. 상하이 「육삼정 의거」 예심 및 공판기록

9. 육삼정 의거 예심 종결 결정문(1933.07.05)

10. 이시이 상하이일본총영사의 외무성 보고서(1933.07.08)

11. 육삼정 의거 나가사키재판소 공판기록
스즈키 나가사키현지사의 외무성 보고서(1933.11.17.)

제5장. 미완의 의거
밀정은 누구인가?


12. 야마다 순사 보고서(1933.03.17.)
13. 「육삼정 의거」 동지들
1) 백정기(白貞基)
2) 이강훈(李康勳)

제6장. 원심창 의사 연보 및 유언

참고문헌

에필로그 ”이제 시작입니다“

저자 소개 1

재일동포 취재를 라이프워크로 삼고 있는 저널리스트. 1996년 재일한국계 신문 <통일일보> 기자로 입사, 현재 이 신문의 서울지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상주 외신기자로서 대통령실, 국회, 외교부 등의 출입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재일동포 및 일본 사회의 현상과 변해가는 모습을 취재하고, 국내 소식을 일본으로 발신하고 있다. 전문분야는 재일동포 모국공헌, 극일(克日)스토리, 생활 속 한일교류사다. 저서로는 <재일동포의 모국사랑, 2022통일일보>, <왔소에 오이소, 2019통일일보>, <민단70년사-한국어번역판, 2018재일민단>, <신한은행을 설립한 자이니치리더, 2015
재일동포 취재를 라이프워크로 삼고 있는 저널리스트. 1996년 재일한국계 신문 <통일일보> 기자로 입사, 현재 이 신문의 서울지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상주 외신기자로서 대통령실, 국회, 외교부 등의 출입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재일동포 및 일본 사회의 현상과 변해가는 모습을 취재하고, 국내 소식을 일본으로 발신하고 있다. 전문분야는 재일동포 모국공헌, 극일(克日)스토리, 생활 속 한일교류사다.

저서로는 <재일동포의 모국사랑, 2022통일일보>, <왔소에 오이소, 2019통일일보>, <민단70년사-한국어번역판, 2018재일민단>, <신한은행을 설립한 자이니치리더, 2015통일일보>, <모국을 향한 재일동포의 100년 족적, 2008재외동포재단>, <민단은 대한민국과 하나이다, 2014재일민단>, <재일동포의 민족교육과 생활사(공저), 2020박문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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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52*225*20mm
ISBN13
9788996780779

책 속으로

이제 시작입니다

원심창(元心昌, 1906.12.1~1971.7.4)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사망연도조차 잘못 알려져 왔다. 국가보훈처가 연도를 1971년(오류 1973년)으로 되돌린 건 2016년 말의 일이다. 필자가 국가보훈처에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당시 신문기사와 장례식 사진으로 증명한 다음에야 시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원심창을 검색하면 생몰년이 1906~1973으로 뜨는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속된 ‘오류’가 ‘팩트’로 둔갑하는 단적인 예다. 이는 또 그만큼 원심창이란 인물이 한국사회에서 조명 받지 못해왔음을 말해준다. 후손과 후배들의 관심은 적었고, 연구 조사와 언론 보도도 적었다.

〈젊어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이후 생(生)을 마칠 때까지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었던 사나이.〉

65년 원심창의 생애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청년시절에는 일제 때 해외 3대 의거로 꼽히는 「상하이 육삼정 의거(1933)」를 주도했고, 해방 직후에는 재일동포 민족단체 「재일한국민단(1946)」을 창단했으며, 6.25전쟁으로 쪼개진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평화통일 운동조직 「통협(1955)」을 세우고 재일동포 민족지 「통일일보(1959)」를 창간했다. 이러한 사회공헌을 인정받아서 원심창은 재일동포사회 최초로 ‘의사(義士)’ 칭호를 받았고, 장례는 국민장에 해당하는 ‘재일한국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정부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한국에서 이미 원심창의 「육삼정 의거」 동지들은 추앙의 대상에 올라가 있다. 백정기 의사는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 한송이 무궁화로 환생했다. 백 의사 무덤은 안중근 의사(1909 이토 히로부미 저격) 가묘 바로곁 양지바른 곳에 있다. 그의 무덤 친구들은 윤봉길(1932 훙커우공원 의거), 이봉창(1932 일왕 폭살시도) 의사다. 그곳엔 ‘백정기 무궁화’라는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그런데 새까맣게 잊혀진 듯한 이야기가 있다.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삼의사의 유골을 일본에서 찾아내 조국으로 봉환한 이들이 원심창과 그의 「재일한국민단」 창립자들이란 사실이다. 「육삼정 의거」의 또 다른 동지 이강훈 선생은 광복회 회장, 정치인, 독립운동사 편찬자, 독립운동 유공자 공적심의위원 등 다양한 이력의 삶을 살았다. 그 결과 이 선생은 살아서 이미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됐다. 중년까지는 원심창 의사와 이강훈 선생은 비슷한 삶의 궤적을 밟았다. 두 분은 「육삼정 의거」로 같이 일제의 감옥에 갇혔고, 8·15광복 후에 같은 날 출옥했으며, 박열과 의기투합하여 「재일한국민단」을 창단했다. 이후 선택은 엇갈렸다. 이 선생은 귀국해 독립운동 연구가가 됐고, 원 의사는 일본에 남아 통일운동가가 됐다. 당시 한국에서 금기시됐던 통일운동, 북한이 자기들 전유물로 선전한 통일운동을 했기에 원심창은 남과 북 양쪽에서 미움을 받았다.

그는 왜 독립운동을 해야만 했는가? 그는 왜 일본에 남아서 통일운동을 해야만 했는가? 귀국을 않고 식민지 조선-〉일본-〉중국-〉일본으로 돌고 돌았던 삶. 해방 조국에서의 삶을 스스로 포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온실을 피해서 평생을 들판에서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으로 민족과 국토가 분열된 뒤에는 비극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고통에 허덕이는 민족의 다행(多幸)한 앞날을 보지 못하고 떠납니다. (조국통일을 이루지 못한) 대죄를 짊어지고 민족의 선조 앞으로 가는 게 불안할 따름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꾹꾹 눌러쓴 원심창 병상일기는 조국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러 물음들에 대한 고인의 대답일 것이다.

의사 원심창 이야기.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와 열혈 통일운동가. 불꽃 같은 인생을 살았던 원심창. 그의 궤적을 쫓으면서 그가 밟은 걸음걸음이 한 편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란 마음으로 계속 원심창의 삶을 추적하려 한다.

2022년 11월 안국동에서
이 민 호

---「에필로그」중에서

출판사 리뷰

韓·中·日 3국을 넘나든 애국지사
원심창이 평생 쫓은 건 단 하나
〈조 국〉

젊어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이후 생(生)을 마칠 때까지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었던 사나이


청년 시절에는 일제강점기 해외 3대 의거 「상하이 육삼정 의거(1933)」를 주도했으며, 해방 직후에는 민족단체 「재일민단(1946)」을 창단했고, 6.25전쟁으로 쪼개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면서 평화통일 운동조직 「통협(1955)」을 세웠으며, 재일동포 민족신문 「통일일보(1959)」를 창간하였다.

이러한 사회공헌을 인정받아 재일동포사회 최초로 ‘의사(義士)’ 칭호를 받았고 장례는 국민장에 해당하는 ‘재일한국인 사회장’으로 봉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도 나라의 기틀을 세운 공로를 인정하여 고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열도의 독립운동가 의사 원 심 창 아나키스트이자 열혈 통일운동가 불꽃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나이. 궤적을 쫓으면서 그가 밟은 걸음걸음이 한 편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란 마음으로 원심창의 삶을 계속 추적하려 한다.

- 에필로그 중에서

의사 원심창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무기징역 선고 당일, 원 선생이 재판장 하세가와(長谷川 松太?)를 상대로 일제의 만행을 꾸짖으며 법정 항고를 행하는 대화록과 법정 풍경을 재현해냈다. 또한 지금은 평화공원이 된 나가사키 원폭지가 원래는 형무소였으며, 그곳에 원심창, 백정기, 이강훈 선생이 독방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현장취재기로 전하고 있다. 이밖에 원 선생이 재일동포사회 최초로 의사(義士)로 추존된 과정, 원심창의 유언인 병상일기 전문, 동지 이강훈의 증언 등을 복원했다. 제2장은 육삼정 의거 판결문을 원문, 한국어 완역판, 현대 일본어판으로 소개하는 한편, 당시 판결결과에 대한 스즈키 나가사키현지사의 외무성 기밀보고서를 최초 공개하였다. 제3~4장은 상하이일본총영사관이 도쿄 본부인 외무성에 보고한 기밀 자료, 상하이에서 이뤄진 의거자 3명에 대한 예심 심리 기록을 소개하였다. 제5장은 ‘미완의 의거’로 그친 육삼정 의거의 실패원인인 밀정(密偵)의 존재를 쫓았다. 상하이일본총영사관 순사인 야마다(山田角兵衛)가 상부에 보고한 기밀자료 전문을 번역한 것으로, 당시 일제의 조선인 독립운동가 검거 수법, 일제가 구성한 독립운동가 관계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육삼정 의거는 윤봉길의 훙커우의거, 이봉창 일왕 폭살시도 의거와 함께 일제강점기 해외 3대 독립의거로 꼽힌다. 이 책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로는 3동지가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공원 의거 때 사용한 도시락 폭탄과 동일한 재형의 폭탄을 입수한 경위, 김구 선생과의 연결고리, 의거의 기획 실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원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평택의 정장선 시장은 ”이 책을 통해 원심창 의사의 독립운동 활약과 사상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며 ”고귀한 나라사랑의 정신이 후대에 계승되도록 원심창 의사에 대한 연구 활동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인 이민호 통일일보 서울지사장은 ”원심창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지사 가운데 한중일 3국을 넘나들며 활동한 보기 드문 존재“라며 ”무엇보다 독립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해방 후 일본에 남아 민족단체인 재일민단을 세우고 나아가 통일운동가로 변모한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이어 ”원 선생은 분단조국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는 인식의 소유자로, 국내외 최초로 남북통일운동을 펼친 지사“라며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열혈 통일운동가로 불꽃같은 일생을 살았던 원심창의 삶이 재조명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재작인 의사 원심창의 제2탄은 원심창 인생의 궤적을 정리한 평전으로 기획되고 있으며, 내년 광복절 발간계획이라고 통일일보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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