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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비밀 속의 어린 시절, 1932~1946 2. 400번의 구타, 1946~1952 3.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 1952~1958 4. 새로운 물결, 1958~1962 5. 정체기, 1962~1967 6. 숨겨진 생활, 1968~1970 7. 영화 인간, 1971~1979 8. 미완의 초상, 1979~1984 감사의 말 필모그래피 참고 문헌 추천의 글 옮긴이의 글(개정판) 옮긴이의 글(초판) 찾아보기 |
Antoine de Baec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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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 Toub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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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으로서의 트뤼포에 대한 첫 각인, 즉 조숙하고 비밀스럽고 날카롭다는 인상은 이 마법의 장소, 바로 앙리-모니에의 아파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외로프 광장의 연속 상영 영화관에서 형성되었다. 프랑수아는 일찍이 전쟁 전에 모니크 이모와 함께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다. 두 어린 관객은 스크린 위에서 교회와 결혼식을 보았다. “나는 놀라움 속에서 바라보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다.” 그것이 프랑수아 트뤼포에게 새겨진 최초의 장면이었다.
--- p.56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아들을 나바랭 가로 데려왔다. 자닌은 남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자닌은 아들의 장래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려, 그저 심한 언쟁으로 종종 중단되던 식사 시간에야 언뜻 볼 정도였다. 말다툼이 격하게 이어졌고, 밤 9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에 롤랑 트뤼포는 집 근처 발뤼 가에 있는 경찰서로 프랑수아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롤랑은 며칠 전 서명한 자백 문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프랑수아를 비행 청소년 특수 시설에 수용해 줄 것을 청원했다. --- p.101 히치콕과 트뤼포의 대담은 6일간 계속되어, 숨겨진 일화에서 촬영 테크닉까지, 외설스러운 농담에서 플롯의 구축까지 생생한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것이 트뤼포와 스코트의 희망대로 이루어졌다. 히치콕은 정확하고 쾌활하게 많은 이야기를 했고, 상대방이 제기하는 기술적·해석적 세부 문제도 흔쾌히 설명했다. 그뿐 아니라, 할리우드 감독으로서 히치콕이 보통은 말을 아끼는 문제인 자신의 유년기와 성장기에 관한 사항, 여배우들과의 모호한 관계까지도 이야기했다. --- p.479 트뤼포의 인생에서는 이제 영화가 최전선에 있었다. 그러나 트뤼포가 이렇게 작업에 열중한 것은 또한 꽉 짜인 스케줄에 대한 편집증적 몰입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예정에 없는 일에는 절대 관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트뤼포는 작업 일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몇 개월 전, 또는 몇 년 전부터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하고자 했다. 기획들은 모두 사안별로 구분해 진행했기 때문에, 각본가들 사이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 p.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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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생애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400번의 구타], [쥴 앤 짐] 등의 작품을 만든 트뤼포 감독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새로운 영화 운동 누벨바그를 이끈 거장이다. 트뤼포는 기존의 영화 문법에서 탈피해 감독의 독창적인 작가 정신이 담긴 영화를 만들었으며, 영화광으로도 유명해 ‘인간 시네마테크’로 불렸다. 트뤼포는 생전에 여러 차례 자서전을 기획했으나 집필은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 이 책은 트뤼포가 가까운 친구이자 번역가였던 헬렌 스코트와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동료들의 수많은 증언과 트뤼포의 일기, 메모, 개인 문집 등 방대한 사적 자료를 토대로, 지금까지 트뤼포에 대해 알려진 사실 이외의 사실들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기록했다. 깊은 상처를 남긴 성장 과정, 히치콕, 혹스, 르누아르 같은 거장들에 대한 숭배와 교류, 영화 현장의 생생한 기록과 연출의 비밀들, 시네필들의 우정, 연애와 불륜,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방황하던 한 예술가의 초상 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트뤼포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현대 프랑스 영화사를 이해할 수 있다. 트뤼포가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트뤼포의 테제는 정성일 평론가를 통해 소개되어 ‘시네필의 3단계’라 불리며 국내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오랜 시간 회자돼 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에서 정성일 평론가는 새롭게 쓴 추천의 글을 통해 이를 정정하며 원래 트뤼포의 문장을 그대로 소개한다. 원문에 따르면 트뤼포는 위 문장 그대로 말한 적은 없지만, 그의 생애를 따라가 보면 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3단계를 거쳐 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32년 파리에서 출생한 트뤼포는 아들을 늘 외면했던 미혼모 어머니와 양아버지 사이에서 성장했다. 부모로부터의 소외는 그를 가정과 학교 밖으로 내몰았고 이로 인해 비행 청소년으로 낙인찍혀 감화원까지 가게 된다. 이러한 불운한 청소년 시절에 그는 살아갈 의미가 될 영화를 발견했다. 트뤼포가 여덟 살 때 보았던 아벨 강스의 [실낙원]은 영화에 관한 최초의 ‘위대한 기억’이 되었으며, 부모 몰래 학교를 빼먹고 영화관으로 달려가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봄으로써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을 보여 주었다. 끊임없는 독서와 동네 영화관의 어둠은 그가 비밀스러운 상처를 묻어 두는 도피처이자 삶 그 자체가 되어 갔다. 수백 편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시네 클럽을 결성했으며,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앙드레 바쟁을 만나 스물한 살 때부터 『카이에 뒤 시네마』에 영화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1954)을 비롯한 특유의 냉소적이고 고집스러우며 공격적인 열정이 담긴 비평을 발표하면서,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이 그것을 사랑하는 두 번째 방법임을 보여 주었다. 비평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도전한 트뤼포는 1959년에 발표한 첫 영화 [400번의 구타]를 시작으로 [쥴 앤 짐], [아메리카의 밤] 등 25편의 작품을 만들며 영화를 사랑하는 세 번째 방법을 완성했다. 1984년 10월 21일 뇌종양으로 52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으나 현재까지도 영원한 시네필로 남아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일깨워 준다. “내일의 영화는 모험가들이 만들 것이다” ‘나’ 자신에서 ‘삶’으로 나아간 트뤼포 영화에 관한 르포 1957년 영화 비평가였던 트뤼포는 『아르』지에 실은 기사에서 미래의 영화는 “매우 사적인 것, 마치 고백록이나 일기와도 같은 것”이 되리라고 예언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59년 그는 자전적 영화인 [400번의 구타]로 감독으로 데뷔하며 누벨바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60년대에 걸쳐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탈피한 새롭고 도전적인 ‘작가주의’ 영화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누벨바그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가 남긴 25편의 작품은 영화에 대한 사랑의 결정체이자, 영화를 위해 바쳐진 영화들이기도 하다. 숨겨진 일기장을 펼쳐 보이듯 그의 영화는 곧 트뤼포 내면의 순수한 기록이었다. 그는 장 피에르 레오가 연기했던 [400번의 구타]의 비행 소년이자 [훔친 키스]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부부의 거처]의 새신랑이었던 앙투안 두아넬, [아메리카의 밤]의 감독인 페랑,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의 바람둥이 베르트랑 모란, 그리고 [녹색의 방]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숭배에 생을 바치는 남자 쥘리앵 다벤 역시 트뤼포 자신이었다. 불행한 성장 과정과 불안 그리고 번민 속에서 새로운 창조 정신을 키워 가며, ‘나’ 자신에 대한 영화에서 ‘삶’에 대한 영화로 나아간 트뤼포. 영화에 인생을 바친 감독이 명작들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한 이 책을 통해 거장의 고뇌와 열정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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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더욱 훌륭한 것은 감독의 미묘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묘사했으며 트뤼포 자신의 서한집, 특히 그의 친구이자 번역가인 헬렌 스코트에게 보낸 편지들을 토대로 트뤼포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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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예술가에 대해 혼신을 다한 연구…… 트뤼포에 대한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매력적인 전기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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