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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Ⅰ. 천국天國 여행旅行 3일간(남도南都 기행紀行) 1. 첫째 날: 가자 보길도甫吉島로 윤 선생님 뵈러 1) 남도南都 1번지一番地 따라 보길도까지 2) 청별리淸別里의 장사도長蛇島 갯마을 할머니랑 2. 둘째 날: 보길도甫吉島 탐방探訪 1) 부용리芙蓉里에서 오우가五友歌를 읊으며 고산孤山 흉내를 2) 보옥리甫玉里 망월봉望月峰 아래 김선도金善道 할아버지랑 3. 셋째 날: 망월봉望月峰에서 바라본 대해大海와 강진 기행 1) 망월봉 산행과 백도白島의 우암尤庵 송宋선생님 냄새 2) 예송리해수욕장 흑자갈밭에 맨발로 3)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과 영랑생가永郞生家에서 Ⅱ. 대마도 기행(느릿느릿한 세상에서 살고파) Ⅲ. 가고픈 길 찾아가는 길(산청 시천면 덕산德山 기행) Ⅳ. 선인들의 길을 따라(남강 오백 리 물길 따라) 1. 강은 우리 삶의 근원이어라 1 2. 강은 우리 삶의 근원이어라 2 3. 강은 우리 삶의 근원이어라 3 4. 화림동 금천은 흘러 1 5. 화림동 금천은 흘러 2 6. 화림동 금천은 흘러 3 7. 화림동 금천은 흘러 4 8. 화림동 금천은 흘러, 마지막 회 Ⅴ. 부석사浮石寺 기행문 1. 애틋한 마음으로 찾아간 길 2. 소백산의 별을 헤며 3. 세상이 홍진이란 걸 알면 4. 행복을 늘리기 위해 5. 아 무량수전…. 6.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7. 천년꽃 선비화 8. 하늘로 오른 덩쿨나무 |
李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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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선인들의 역사와 삶의 정취를 담은 한 방랑가의 글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온 우리 민족은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 저자는 남도南都, 대마도, 덕산德山, 남강, 부석사浮石寺를 다니며 세밀하고도 흥겨운 문장으로 그곳의 풍경을 기록했다. 눈에 담은 그 진경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 기행에 함께 따라나선 것 같은 느낌을 줄 만큼 생생하게 담겼다. 발길이 닿는 곳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대화한다. 그 생생한 대화 속에는 지역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며, 마치 공간 속에 그들의 삶이 퇴적되듯 역사와 삶의 흔적으로 빼곡하다. “이번에는 우리 고장의 고적을 답사하고 그 과정을 적었던 글들이다. 사적(史蹟)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있다. 어떤 것은 불타 없어져 다시 세워지기도 하였고 다시 복원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서 무언가 남겨야 하는데 분위기나 모양을 글로 남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 오늘도 그때를 떠올리면 방랑 김삿갓으로 살았던 혈기왕성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새삼 그리워진다.” - 글의 ‘서문’ 中 저자는 시간의 힘을 알기에,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남겨야 할 우리 민족과 선인들의 삶과 고적을 글로 엮어 냈다. 책 『선인先人들의 길을 따라, 방랑放浪 20년』은 두루 경치 좋은 곳을 글로써 함께 거닐기에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작가의 말 시골살이를 한 지도 이제 이십 년이 지났다. 내가 이 심심 산골로 들어올 때만 해도 새 천년이 시작된다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산골로 올라오는 차가 하루 종일 한 대 아니면 두 대가 고작인 산골생활, 이런 산중으로 이사를 할 때는 나로서는 작심 각오도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글 쓰는 일이구나 해서 시골살이에 낙으로 글이나 쓰고 살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허나 막상 생활을 해 보니 글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터에 정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물길 돌려 연못 만드는 일이었다. 집 공터에 텃밭을 일구어 남새밭 사랑으로 살았던 것 같다. 여기 와서 쓴 글보다 오기 전에 쓴 글이 더 많아 작년에도 책을 엮었고 내친 김에 한 권을 더 묶었다. 모두 지난 세월에 내 삶의 편린을 남긴 글들이다. 이번에는 우리 고장의 고적을 답사하고 그 과정을 적었던 글들이다. 사적(史蹟)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있다. 어떤 것은 불타 없어져 다시 세워지기도 하였고 다시 복원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서 무언가 남겨야 하는데 분위기나 모양을 글로 남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십 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유적은 더욱 변하고 달라진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이 글이 언제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백 년 지나면 자료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사진 찍는 데는 부족한 사람이라 그 시절의 남긴 사진을 붙이지는 못한 것이 아쉽다. 오늘도 그때를 떠올리면 방랑 김삿갓으로 살았던 혈기왕성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새삼 그리워진다. 지금 허리 병이 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지내는 나약함이 참으로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하신 내 어머니의 건강을 닮고도 싶은 소회이다. 이 글이 감동을 줄 것 같지는 않으나, 선조들이 이루어 남긴 자취를 살피면서 그들이 후세 우리들에게 무얼 전해 주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 답사를 해 보고 선인들의 체취를 느껴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를 기록한 이 글이 독자의 답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22년 9월 중추가절에 산청 선유동 달아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