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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책 머리에 1장 탄핵 위기 24시 2장 몽돌과 받침대 3장 국무총리, 권력은 없어도 할 일은 많다 4장 공인의 시작 5장 새마을운동과 치산녹화 6장 "지사님, 들어오셔야겠습니다!" 7장 10.26과 서울의 봄 그리고 5.18 8장 세 부처 장관에 1년 10개월 9장 수도 서울의 그랜드 디자인 10장 소통과 불통의 사이에서 11장 부패의 연결고리를 끊어라 12장 공직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13장 시스템을 혁신해야 14장 왜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는가? 공직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 덧붙이는 이야기. 나의 삶, 나의 아버지, 어머니 고건의 공인 50년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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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말 빨리 흐른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김구 선생 장례식장에 따라가 나도 크면 나라 위해 일해보고 싶다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때로부터 6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기억력은 과히 쇠퇴하지 않은 것 같은데 검던 머리는 백발이 되어 물들여야 하게 되었다. 하긴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이니 강산도 많이 변했다. 민둥산에 황토물이 흐르던 국토는 이제 푸르름을 되찾았고 피난민으로 만원이던 황폐한 서울은 이제 세계 유수의 글로벌 도시가 되었다. 못 먹어 버짐투성이던 아이들은 사라지고 잘 자란 아이들은 늠름한 젊은이가 되어 운동선수로, 발레리나로, K팝 스타로 세계를 누빈다.
이 짧게 느껴지지만 짧지 않은 세월, 나는 공인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다. 김구 선생 장례식에서 받은 감동 때문이었는지, 나는 정치를 하고 싶어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유당 말기의 정치현실에 식상해 공직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서 고시를 보아 행정부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하여 공직을 오가기 50년, 새마을사업과 국토조림녹화계획을 맡은 공무원에서 지방의 ‘목민관’을 거쳐 장관을 세 번, 서울시장을 두 번, 총리를 두 번 하는 드믄 삶을 살았다. 내가 굳이 찾은 것은 아니었으되 나에게 주어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50년의 세월 가운데, 실제 공직에 있었던 시간은 다 합해 30여 년이다. 20년은 야인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를 평생 공직에 있었던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나 역시 공직을 떠나 야인으로 살 때에도 스스로를 공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공직에서 풀려난 이래 여러 사람들이 내가 공직자로서 겪은 경험을 책으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워낙 오랜 시간 변화의 현장에서 일해 왔으니 후진에게 참고될 이야기가 많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일 자체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내가 일할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지금, 지나간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자는 것인가, 내 얘기가 오늘의 시간에 어떤 적실성을 가질 것인가, 그런 생각이 반, 그래도 현재는 과거의 어깨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를 아는 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반이었다. 이렇게 망설이고 있을 때 중앙일보에서 나의 공직 경험담을 연재로 엮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포맷 속에서 진행하자는 것이다. 망설임 끝에 그러기로 했다. 세상에는 개개인의 가치와 이해를 넘어서 모두의 삶과 직결된 공적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고 싶었다. 그리고 국정의 중요성과 위기관리의 엄중함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한 평생 겪은 경험을 토대로 후배 공직자들에게 공인의 자세와 조건에 대해 함께 성찰해보고 정책 마인드의 요체와 소통방법에 대해 조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중앙일보 연재가 일주일에 다섯 번, 5개월 넘게 지속되었다. 총 115회에 걸쳐 ‘국정은 소통이더라: 고건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시리즈가 연재되었다. 그동안 나도 숨 가빴지만 신문사로서도 하루하루 새로운 면으로 꾸며지는 매체에 5개월 연속해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도 쉽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그렇게 여러 회를 거듭했는데도 하고 싶었으나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수두룩했다. 기사를 읽고 오랜만에 소회를 전하는 예전의 동료, 후배, 지역주민도 많이 나타났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던 옛날 일을 상기시켜주고, 새로운 자료들을 보내준 사람들도 있었다. 나로서는 과외의 흐뭇한 소득이었다. 중앙일보와의 연재는 나에게 지난 반세기에 걸친 나의 공직생활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주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이루었던가. 내가 일했던 시대, 나에게 일을 주었던 환경은 어떤 것이었던가. 나는 어떤 시공간에서 공직을 시작해 어떻게 변화된 세상에서 공직을 마친 것인가. 공직자로서 나의 개인사는 당연히 한국의 현대사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직을 시작해서 마치기까지 반세기 사이,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변했다. 해방의 혼란과 전쟁의 파괴에서 벗어나 산업화를 이룩하고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권위주의 체제를 거쳐 민주화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랜 중앙집권체제가 지나고 지방분권시대가 열렸다. 위로부터의 관제문화가 지배하다가 대중소비사회,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한국의 푸르른 산하가 더 이상 전쟁 뒤의 잿빛 풍경이 아니듯, 자신 넘치는 오늘의 한국인은 더 이상 가난에 주눅 든 과거의 한국인이 아니다. 공직자로서 나는 그러한 시대변화와 조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한편으로는 시대변화에 따르되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변화를 촉진하고 시대변화가 만들어내는 갈등을 완화하고 그림자를 치유하는 것이 공직자의 삶이다. 연재를 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던 화두는 ‘공인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나’ 하는 질문이었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곧 공인은 아닌 것 같다. 시장이나 국회의원이면서도 시민이나 국민의 행복이나 아픔보다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공인은 자신의 이익보다도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한다고 해서 획일적으로 집단의 의사를 강요하는 것은 집단주의, 파시즘에 다름 아니다. 공인은 개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다르게 살면서도 함께 조화롭게 사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개인들의 삶이 겹치는 영역을 찾아 이를 넓혀나가고, 그 속에서 갈등을 예방하거나 줄이며 조화와 시너지를 키워나가는 것이 공인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공인에게 소통이야 말로 주된 수단이자 목적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스스로를 놓는 역지사지야 말로 필수 자세이자 방법이다. 소통을 통해서 비로소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고, 역지사지의 자세를 통해서 비로소 세상에는 여러 가치와 생각이 공존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역지사지의 소통을 통해서 비로소 서로의 다름을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포용과 조화의 조건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인이 스스로를 바쳐 해야 할 일이다. 역지사지의 소통이 주된 무기라는 점에서 공인은 소통을 통해 감동을 구하는 예술가와 통한다. 소통의 핵심은 체감에 있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치, 체감하지 못하는 행정은 불통의 정치요, 일방통행의 행정이다. 무엇이 정치이고 무엇이 행정인지, 그 구별은 중요치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듯, 정치와 행정은 그렇게 힘을 합쳐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면 그만이다. 이제 이미 연재했던 글들을 묶고 새로운 글들을 추가하여 한편의 책으로 다시 발간하기로 했다. 이미 연재했던 글을 다시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 같은 이야기의 되풀이가 아닐까 약간의 주저도 있었다. 그러나 미처 신문연재를 다 보지 못한 독자들로부터의 요청도 있었고, 일간지라는 매체 특성상 전체의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매 꼭지를 독립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아서 책으로 엮어 내기로 했다. 연재하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저간의 형편, 즉 공공영역이 날로 축소되고, 공인답지 않은 공직자들이 생겨나는 시대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작용했다. 이 책은 공인으로서의 내 역정과 생각의 기록이다. 워낙 긴 기간, 다양한 자리에서 펼쳤던 일들이라 일일이 소상하게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꼭지마다 내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옛 자료와 증언으로 확인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러한 사실 확인, 글 정리에 도움을 준 수많은 옛 동료, 부하들 그리고 조현숙 기자, 정경아 씨에게 감사드린다. 이렇게 확인하기는 했지만 다르게 기술된 것도 있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그런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책임은 지난 일을 기술하는 나에게 있다. 공직이라는 특성상 반세기에 걸쳐 일해 오면서 수많은 분들에게 직접 간접의 도움을 받았다. 선배와 동료, 후배 공무원들은 물론이지만, 많은 전문가, 정치가들이 조언을 주기도 하고 힘을 실어주거나 견제나 비판을 통해서 일을 더 잘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인으로서의 일에 궁극적인 주인이며 감시자이자 최종 목적인 수많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이 변변치 않은 회고담이 공인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아니면 공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도 저도 아니면 지난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공인의 길을 살아온 내게 남은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책머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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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고건과 시스템의 진화 -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 “사람은 가도 시스템은 남는다고 했던가? 대한민국 정부 행정의 변천 과정을 그는 세 단계로 정의한다. 1960~80년대는 압축성장의 산업화 시대였고 그를 뒷받침한 것은 어쩔 수 없이 개발 행정이었다. 고건 총리는 스스로 “이 시기 나는 새마을운동·치산녹화·식량증산에 젊음을 바쳐 일했다”고 회고한다. 1980~90년대 정치·행정의 민주화 시대에 그는 국회의원과 임명직 서울시장, 그리고 김영삼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리고 2000년대 거버넌스 시대를 맞으며 그는 민선 서울시장과 노무현 정부에서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게 된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협치 행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대한민국 정부 행정의 진화 전 과정에 그가 함께 한 것이다. 그는 그를 남기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는 결코 직책을 탐하지 않았다. 그저 일을 탐했을 뿐이다.” “높은 관직을 보지 말고 저 아래 소리 없이 흐르는 하류 강물을 보라” -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 “사람들은 모두 그를 행정가로 생각한다. 시장과 총리, 그리고 대통령 권한 대행. 그 어려운 직분들을 그의 경우처럼 티 없이 완성한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직함을 통해서 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무허가 판잣집들이 즐비한 달동네 지역, 문자 그대로 쌈지만 한 마당 준공식에 서울시장이 나와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눈치 없는 아마추어 글쟁이 문화부 장관과 함께….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민원사항을 듣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다. “먼저 가세요.” 군중들에 에워 쌓인 채 손으로만 서로 인사하고 떠날 때 놀이터가 생겼다고 신나하는 달동네 아이들, 그 상기한 얼굴 너머로 고건시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신문 기사 한 줄 나오지 않는 행사장에 표가 아쉬울 것도 없는 관선 시장이 무엇 하러 민원이 많은 이 달동네 구석진 곳을 찾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