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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반구대 암각화 어떻게 바라볼까 -회고와 전망- Ⅰ. 명칭 Ⅱ. 연구사 제2장 반구대 암각화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발견과 조사- Ⅰ. 천전리 암각화 발견과 조사 Ⅱ. 대곡리 암각화 발견과 조사 Ⅲ. 반구대 암각화 발견의 의의 Ⅳ. 반구대 암각화의 환경과 암석 제3장 대곡리 암각화 Ⅰ. 대곡리 암각화의 분포 Ⅱ. 대곡리 암각화의 신석기시대 조성 Ⅲ. 대곡리 암각화의 조성 기법 Ⅳ. 대곡리 암각화의 도상 특징 Ⅴ. 대곡리 암각화의 양식적 특징 Ⅵ. 대곡리 암각화의 신석기시대 편년 Ⅶ.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의 의의 제4장 천전리 암각화 Ⅰ. 천전리 암각화의 도상 분포 Ⅱ. 천전리 암각화의 조성 기법 Ⅲ. 천전리 암각화의 도상 특징 Ⅳ. 천전리 암각화의 청동기시대 편년 Ⅴ. 천전리 청동기 암각화의 의미와 고조선(한)과의 관계 제5장 신라시대 선각화의 특징과 명문의 해석 Ⅰ. 천전리 신라 선각화 도상의 특징 Ⅱ. 명문의 판독과 해석 Ⅲ. 문암(文岩=書石=신라 암각화)의 성격 제6장 천전리 암각화의 의의 제7장 반구대 암각화 어떻게 보존할까 색인 |
문명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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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4일은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한 지 꼭 50년째이고, 아울러 2021년 12월 25일은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조사책임자 문명대)이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를 발견한 지 만 50년째 되는 날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기간이 벌써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바로 반세기가 훌쩍 지난 것이다. 발견 반세기는 발견자로서 감회가 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 ‘국보 중의 국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이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정점(하이라이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고, 심지어 울산 시민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경주와 바꿀 수 없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하는 실정이어서 발견자로서는 형언할 수 없는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이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학술대회, 세미나, 보고서, 저서, 논문, 감상문, 기행문, 시·소설·수필·그림·조각·상품 등에 이르기까지 수천 가지(1,600편 이상)가 쏟아져 나왔다. 단일 유적·유물에 대해서 이렇게 다종·다양한 글과 예술, 상품까지 쏟아져 나온 예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자 전무후무한 일이 아닌가 한다.
발견책임자는 발견한 지 10년이 지난 1980년에야 원고를 완전 탈고했고, 1984년 7월에서야 간신히 연구보고서를 출간할 수 있었다. 원고를 쓰고 난 뒤 수년간 다방면으로 출판하려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차 발견 당시 관장이었던 황수영 박사가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자 부처님의 인연이나 천우신조라 여기고 원고를 들고 찾아가 뵙고 연구보고서 출간을 간청하게 되었다. 황 총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하여 연구보고서 출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8개월 남짓 만에 《盤龜臺-울주암벽조각》을 출판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반구대 연구가 급속히 진행되어 많은 저서와 글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필자는 연구보고서 출판 뒤 한동안 한걸음 물러서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선 후부터는 학술대회, 논문, 포럼 등을 통해서 반구대 암각화의 연구와 보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연구보고서가 나온 지 38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척되었고 필자가 출판한 연구보고서도 단종된 지 너무 오래되어 발견자로서는 반구대 암각화 단행본 출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수년 전부터 발견 50주년을 기념해서 새로운 반구대 암각화 단행본을 출판하기로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과 수시로 다짐하곤 했다. 이에 나로서는 일대 용단을 내려 반구대 발견 50주년을 맞아 뜻 깊은 단행본을 출간하게 되었다. 발견자로서는 연구서와 보고서도 겸하면서 많은 대중들의 교양서로도 널리 읽힐 수 있는 그런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뜻이 얼마만큼 반영되었을지 자신 할 수 없으나 독자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 끝으로 반구대 암각화 발견 조사에 참여했던 동국대학교 박물관·모든 관계자, 조사발견에 협조해 준 최경환씨와 마을 사람들,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참여한 모든 연구자, 특히 반구대 암각화의 조사와 연구에 적극 지원하고 동참해 준 이융조, 김정배 교수 두 학우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홍보에 열성을 기울인 이달희 교수 등 여러분, 이 저서 발간에 적극적으로 독려해 준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과 발간에 애쓴 편집자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편집과 교정에 헌신한 한국미술사연구소 김현우 간사 등 간사진들과 50여 년 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아울러 은사 황수영 박사 서거 10주년과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주년에 이 졸저가 출간된 것을 진심으로 기리는 바이다. ---「머리말」중에서 반구대 암각화 가운데 보존 문제가 가장 시급한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이다. 물에 잠긴 문제가 아직 미해결이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해도 물에 잠긴 기간이 60여 년이라는 장기간이므로 그동안의 누적된 암석의 피로감 때문에 이의 보존 문제가 심각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천전리 암각화도 보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현 상태에서도 쉽사리 관찰되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보존 방향만을 간략히 제시하고자 한다. 관계 당국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반구대 암각화 어떻게 보존할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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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1만 년의 한국역사가 되살아나다
울산의 대곡리 암각화는 천전리 암각화와 함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전반기에서 역사시대 초기에 살던 사람들이 노루·사슴·멧돼지·호랑이 따위 들짐승 사냥(수렵)과 상어·고래 따위 물고기잡이(어로)로 살았던 경제사·사회사, 그리고 하늘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모두 축제를 벌이던 종교신앙의 문화사를 생생하게 그림과 조각으로 밝혀주는 한국역사의 원천이다. 대곡리 암각화의 역사적 미술사적 의의 〉헌팅아트 중 최고 걸작 우리나라 최초의 수렵어로 암각화 로 분류되는 선사미술의 최고 걸작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바다 물고기를 포획하고 육지 동물들을 사냥하는 장면과 수렵·어로의 대상물 그리고 수렵·어로의 풍요를 기원하고 의식 등을 묘사한 사냥미술로써,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암각화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성격 규명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정수인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문화의 성격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각예술로써, 당시의 미술은 물론 사회생활, 경제활동, 정치체계, 종교 신앙, 문화단계 등 한국 신석기시대의 모든 분야를 이해할수 있는 척도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여명기를 비추는 사서적인 기록 신석기시대 전반기에서 청동기시대 극초기에 걸치는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사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성격 규명 북방문화권의 선사문화를 상징하는 암각화 계통이 분명하다. 이는 대륙문화나 실크로드 문화권과 차별되는 문화권으로, 우리나라 선사문화가 북방문화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자료이다. 〉선사미술의 기법과 양식을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암각화 선사미술 양식 가운데 자연주의 양식과 표현주의적 자연주의 양식, 추상표현주의 양식이 한 암각화에 공존함으로써 우리 선사 미술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천전리 암각화의 역사적 미술사적 의의 〉시작은 작았지만 결과는 흥대하게 된 역사적 발견 천전리 암각화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넘나드는 한국사 최고의 암각화이자 한국 고대 문화의 표상이면서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한국의 역사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초기에서 신라시대까지 수천년의 예술과 역사가 동물상의 초기 청동기 암각화부터, 청동기 중·후기 기하학 무늬, 그리고 신라시대 선각화와 명문까지. 한 암면에 파노라마처럼 청동기와 고신라 암각화들이 펼쳐져 있어, 수천 년의 예술과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나라 전 청동기의 예술을 한 눈에 판별 초기의 동물상과 중·후기의 기하학적 무늬가 기법과 양식을 달리하면서 대조적으로 새겨져 있어서 우리나라 전 청동기의 예술을 한 눈에 판별할 수 있다. 〉문자적 성격을 가진 청동기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 한국 청동기 암각화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암각화이자 문자적 성격을 가진 청동기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천전리 암각화의 무늬는 우리나라 고대 문자의 실물을 알 수 있는 중차대한 암각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고대 문자를 가진 몇 안 되는 세계적 국가에 편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조선의 역사시대를 증명 천전리 청동기 암각화 문화는 고조선과 겹치는 고조선 시대의 중요한 유적으로, 이는 고조선의 역사가 신화가 아닌 역사시대로 편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신라 최고의 미술작품이자 역사적 기념화 신라시대 선각화는 신라를 대표하는 신라 최고의 미술작품이자 역사적 기념화로 평가될 수 있다. 또 신라 명문은 신라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살아있는 신라 역사로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들짐승 사냥(수렵)과 물고기잡이(어로)로 살았던 경제사·사회사, 그리고 하늘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모두 축제를 벌이던 종교신앙의 문화사를 생생하게 그림과 조각으로 밝혀주는 한국역사의 원천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한국역사가 반만년(5천 년)이 아니라, 1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동하는 우리 역사의 현장이요, 원천의 하나라고 저자 문명대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발견한 지 50주년을 맞아 저자는 그동안 연구에 참여한 관계 참가자들의 주장도 취사?선택하여 ‘발견자로서 보고서와 연구서를 겸하면서 많은 대중에게 널리 읽히도록’ 이 책을 썼노라고 밝히고 있다. 이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군 언양면 대곡리와 천전리 두 암각화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1970년 최초로 재발견한 저자는 원효대사 유적지 조사에 나섰다가 이 엄청난 세계사적인 현장을 본 것이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50여 남짓의 신석기시대 후기 사람들이 네 발 달린 길짐승 들을 돌과 창으로 사냥하며, 배를 타고 작살과 그물로 물고기잡이 하던 생활상이 소박하나마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호랑이 10여 마리, 사슴? 노루? 멧돼지 10여 마리와, 50여 마리의 고래와 상어를 포함, 200여 마리 물뭍동물들이 사람과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상에는 창을 든 사람, 배에 탄 어부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 춤추는 무당으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도 보인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인물상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기하학 무늬가 나오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문자로 여겨지는 둥근무늬, 겹둥근무늬, 마름모무늬, 물결무늬, 나선형무늬, 번개무늬, 가지무늬, 십자무늬, 타원형 무늬[음문], 3중의 둥근무늬와 겹마름모무늬 등이 나온다. 여기에는 옛 신라시대의 행렬도와 문자 기록과 함께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나라 암각화의 최초일 뿐 아니라 우리 경제사, 사회사, 미술사, 신앙(종교)사의 원천으로서, 동북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유렵의 구석기 시대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 벽화와 함께, 신석기시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각화임이 분명하다. (인류의 문화 유적이 수몰 위기로 아직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고 있음은 누구 책임인가) ▶이 책의 구성 1, 2장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과 조사 과정을 회고하였다. 3장에서는 대곡리 암각화를 상세히 해설하고 그 의의를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천전리 암각화를 상세히 해설하고, 5장에서는 신라시대 선각화의 특징과 명문을 해석하고, 6장에서는 천전리 암각화으 의의를 살펴보았다. 7장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과 방법을 제안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