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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편지 루이즈 추운 봄 이별 학술 대회 화가의 아틀리에 완수 역전 호텔 생일 영원히 명랑한 옮긴이 해설 │ 천천히 꼭꼭 씹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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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라, 그렇다, 그리고 일곱 달 전 목요일. 어느 늦겨울, 따스하고 습기 많았던 봄, 그리고 지금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여름. 그녀는 찻잔을 양쪽으로 잡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일곱 달. 일곱 달이 가고 다시 목요일인데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죽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나? 다시 침묵이 깔리고 이번에는 그 침묵을 깨는 게 쉽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에 사로잡혀버렸다.
---「방문」중에서 몇 가지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생줄리앙 집과 관련된 질문이란다. 마당 끝에 그 배나무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있었지, 그렇지? 혹은 네 아버지가 전쟁 후에 뽑아버렸던가? 앞으로는 지금처럼 이런 일로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요새는 모든 걸 종이에 메모한단다. 지난 유월 말부터 메모에 기록한 게 무척 길어졌다. (이건 비난이 아니다.) ---「편지」중에서 루이즈는 텔레비전을 샀다. 논에 빠져 죽은 시체들, 호숫가 대형 호텔에서 맺어진 평화협정, 지금은 아랍 술집이 가득 들어선 염색 공장지대 운하에서 어느 날 가을 저녁에 건져 올린 익사자 등 그 시절 벌어졌던 모든 일, 그녀가 이전에는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그 소동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사가 뻣뻣한 잎이 난 화분들과 발로리스 도자기 그릇이 얹혀 있는 찬장 사이로 매일 저녁마다 흘러 지나갔다. ---「루이즈」중에서 모든 것은 자기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반짝거리는 강을 따라 물줄기는 더 멀리 흘러갈 것이다. 그만이 강둑에 남겨질 것이다. 이런 생각마저도 지워지자 그는 대로를 따라 몇 걸음을 걸었고 비가 다시 쏟아져서 신문 가판대 지붕 아래로 몸을 피했다. 거기에서 그는 신문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인쇄잉크로 얼룩진 손가락을 생각에 잠겨 들여다보았다. 일단 지금은 그것만이 중요했다. ---「추운 봄」중에서 노파는 두 사람을 향해 까만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을 돌리더니 이가 빠진 입을 벌리고 공범자의 미소를 지으며 “아, 연애하네, 연애해!”라고 말했다. 마르탱은 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길은 저 복잡한 인도 위 지하철 입구에서 끊어진다. 그는 잠시 후면 거기로 내려갈 것이며 그녀는 아니야, 나는 걸어갈 거야, 하고 대답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더러운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별」중에서 “나의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지요. 여든다섯 살을 조금 넘긴 때였죠. 말년 십여 년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식이요법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게 그러더군요. 이제 잃을 거 뭐 있냐고. 게임이 끝났는데.” ---「학술 대회」중에서 “도움을 청하러 가야겠어요.” “아니네, 여기 있게나. 금세 나아질 거야.” 바깥에서 어둠 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 속에서 그의 손은 올리비에의 손을 찾더니 꼭 쥐었다. 그는 “조금 더 있어주게나”라고 했다. 그의 호흡이 가빠지며 불규칙하게 변했다. 그는 ‘위로받지 못한 가련한 마음’이란 문장을 생각했다. 그리고 감긴 눈꺼풀의 어둠 속에서 그는 햇빛 찬란한 커다란 정원,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앞치마 차림으로 수다를 떠는 여자들을 보았다. ---「생일」중에서 해가 저물고 따뜻한 커피 냄새가 풍기자 그녀는 단조로운 오후를 벌써 모두 겪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예전과 같구나. 그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은 일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의 할머니는 빨래를 삶고 점심 식사에서 남은 커피를 두 사람을 위해 다시 데웠다. 그녀가 열 살, 그 정도는 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는 모든 것이 기억났다. 할머니의 피곤한 모습, 그녀의 터진 손등, 화덕 위에서 끓고 있는 빨래의 텁텁한 냄새, 그리고 이런 할머니의 말투까지도. “얘야, 눈이 밝은 네가 바늘귀 좀 끼워봐라.” 생생하고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에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영원히 명랑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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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소설가 추천! “여기 이 소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다.”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수상 작가 다니엘 살나브 소설 국내 첫 번역 출간! 끝을 향해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띄우는 아련하게 식어버린 시절, ‘추운 봄’의 이야기들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다섯 번째 책. 『추운 봄』은 재출간 전 시리즈에서 소개된 적 없는 신간으로, 다니엘 살나브의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등 프랑스에서 저명한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뚜렷한 이력을 남겨온 다니엘 살나브는 2011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어, 페미나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의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2023년에는 수필집 『쥐스티스 거리』를 출간했다. 『추운 봄』은 열한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각자의 삶의 ‘순간’에 사로잡혀 있다. 독거노인 ‘그녀’와 안부를 확인하려고 온 ‘우리’의 이어지지 않는 대화(「방문」), 요양원에 오지 않는 아들에게 쓴 어머니의 시시콜콜한 편지(「편지」), 늙은 강아지의 죽음을 수습하며 떠오른 출가한 아들과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회상(「영원히 명랑한」)…… 『추운 봄』의 이야기들은 큰 사건 없이 찰나의 순간에 끈질기게 눌러앉아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에 관하여 생각하며 가늠할 수 없는 삶의 총체를 들여다보게 한다. 속절없이 흘러오는 죽음 앞에서 희망과 약속은 무엇일 수 있을까 살아가는 데에는 희망뿐 아니라 그것을 단념하는 일 또한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져가는 ‘실패한 희망’은 “되찾을 수 없는 기억, 향기나 희미한 여운으로만 남아” 불편한 침묵이 되어 우리의 현재를 맴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의 결과로 “지금의 내가 된 그 아이,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던 그 누구”만이 돌아가지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멈춰 선 채 흘러가는 삶을 관망할 뿐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같은 구름 떼를 보”면서. “계속 살아서 무슨 소용 있고 왜 당장 모든 것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젊음이라 일컬어지던 때에 시간과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들은, 필연적 결과라기에는 허술한 자신의 현재에 제대로 붙박히지 못한 채 어제와 내일 사이를 어정쩡하게 부유한다. 그들에게 “광막한 공간, 낯선 도시들, 결코 가보지 못할 숲”처럼 “먼 데를 환기시키는” 기대와 희망은 “대처할 수 없는 고약한 명령”에 불과하고, 그들에게는 “생의 충동”마저도 “일어나자마자 힘없이 가라앉”고 마는 덧없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명백한 진실을 수긍하고 모든 저항의 의욕을 상실한 듯” 우리는 또 현재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통도 행복도 희미해진 과거를 아련히 떠올리며 가다가도 다시 현재에 붙잡혀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어” 하고 주저앉고 마는, 이 과정의 무수한 반복이야말로 저물어가는 인간 생애의 전말이 아닐까. 시간은 또다시 무정하게 우리를 떠밀고, 우리는 결국 “잠깐 생기가 돌았던” 지난 세월의 회고를 뒤로하고 나아간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쨌거나 모두가 죽어야만 하는데” 하고 씁쓸한 체념을 읊조리며. 정이현 소설가의 말처럼 “아름다움의 뒷면에는 필연적으로 허망함과 슬픔이 배어 있다.” 젊음이든 추억이든,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함께 나눴던 예전의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어느 날 그 길에서 고독한 죽음을 만날 것이다.” 아름답고 잔잔한 삶이라는 물결 아래 그러한 상실의 예감이 고개를 들 때, 삶의 모든 순간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이들의 절대 고독을 넘어서는 그 ‘생의 의미’야말로, 다니엘 살나브가 이 열한 편의 소설을 통해 발견하고 싶었던 답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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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소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다. 아름답고 허망하고 슬퍼서 읽고 나면 누구든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건 마치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수은 방울”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다니엘 살나브는 냉혹한 고수의 칼 놀림으로, 표면에 수은 방울이 점점이 맺힌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쓱 잘라 우리 앞에 내민다. 케이크의 단면은 무심하고 단정하다. 그러나 입안에 넣는 순간 놀라울 만큼 깊고 진한 맛이 가득 퍼진다. -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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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지 사십여 년이 지났으나 다니엘 살나브가 천착했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할 것이라 생각된다. 독자 여러분은 오감에 호소하는 요리가 줄지어 나오는 프랑스 정식 식사를 음미하듯 천천히 꼭꼭 씹으며 열한 편의 접시를 모두 즐기시기를 기대한다. - 이재룡 (문학평론가,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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