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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初章) _7
一. 방화(放火) _11 二. 역화(逆火) _101 三. 잔화(殘火) _169 종장(終章) _301 작가의 말 _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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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판의 개냐?”
강문은 남자가 손을 뻗어 재갈을 벗겨내자마자 아까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을 던졌다. 턱이 덜덜 떨리면서도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일순 강한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래, 새삼 나를 보니 그때 일이 두렵기도 했겠지. 그렇다고 구정물 치워 준 공을 이렇게 갚는 것이냐? 십 년 동안 입 꿰매고 산 보답이 이것…… 아아악!” 그는 말을 맺지 못한 채 비명을 내질렀다. 남자가 인두 하나를 들어 그의 넓적다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살 타는 내가 진동했다. 남자는 생살이 눌러 붙은 인두를 들어 살펴보다가 다시 강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반대쪽 다리에도 똑같이 인두를 내리눌렀다. 좀 전보다 더 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디다 뒀지?” 강문은 귀 가까이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찾는 것. 바닥에 풀어헤쳐진 자신의 봇짐이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들이 찾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알고 싶은가? 네 주인이 찾아오라던가? 말 잘 듣는 개로군.” 강문이 입술을 오므려 소리를 냈다. 흡사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였다. _8~9쪽 “소사자의 상태는? 타 죽은 거냐, 아니면…….” 덮어놓은 천을 젖히던 의준의 손이 공중에서 딱 멎었다. “흉하지요?” 엽복이 슬쩍 끼어들었다. “고문 후 불을 질러 죽인 듯싶습니다. 검안을 해봐야 알겠지만 그전까진 숨이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뒤툴린 꼴을 보아하니……. 그럼 저 몰골로 죽는 것만 기다렸다는 건데, 에구…….” 엽복이 소름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멸화군 삼 년차에 온갖 꼴을 봐왔지만 이번처럼 흉측한 소사체는 처음이었다. 의준은 횃불을 들어 시체 가까이 가져갔다. 불빛에 낱낱이 드러난 시체의 상태는 더 끔찍했다. 원래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엔 문드러진 살만 남아 있었다. 인두에 몇 번이고 짓눌린 자국이었다. 부릅뜬 눈은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_33쪽 “마님, 제가 하겠습니다요.” 정씨부인이 사랑채에 오를 기미를 보이자 노복이 싸리비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대감마님, 기침하셨습니까?” 노복이 방 밖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안에서는 대꾸가 돌아오지 않았다. 정씨부인이 눈짓을 하자 그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쥐었다. 쾅! 폭발음이 들린 것과 노복의 몸뚱어리가 공중에 뜬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리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은 정씨부인의 눈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 안쪽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창호지문이 뜯겨 마당에 나뒹굴었다. 노복은 문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 버렸다. 시커멓게 그을린 몸에서 나는 탄내가 그녀에게 훅 끼쳐왔다. 목이 기이하게 꺾인 노복의 몸은 이미 산 자의 것이 아니었다. _156쪽 “나 믿소, 항아님?” “에?” “날 믿느냐 말입니다.” 채령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는 호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자와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도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애초에 궁녀와 멸화군이 이렇게나 얽히게 된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기이하고 끈질긴 인연. 그러나……. 채령은 호림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이 사내를 믿는다. 그것은 비단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_200쪽 “오밤중에 이 웬 칼부림이십니까?” “잡생각 몰아내는 데에 이만한 것이 없지.” “호오, 나리께서도 그러실 때가 있습니까?” “많지, 아주.” 순순한 수긍에 호림이 잠깐 방심한 사이 의준이 허를 찌르는 공격을 해왔다. “이를테면?” “사내가 하는 잡생각이란 뻔하지 않느냐.” “여인도 품고 싶고, 이런 한직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에 대한 한탄도 하고 싶고?” “부정하지 않으마.” 또다시 쉬운 수긍에 칼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의준이 한껏 몰아붙였다. 겨우 막아낸 호림이 다시 입을 놀렸다. “은애하는 여인이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있을 때도?” 내리누르는 힘에 호림이 몇 발자국 밀려났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도?” 이번에는 의준이 밀려났다. ---pp.214~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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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한성대화재’를 드라마틱하게 복원해낸 역사소설 《멸화-꽃을 사르는 불》이 노블마인에서 출간되었다. 작가 이경민은 실록을 읽던 중 대화재의 기록을 발견하고, 방화 용의자들이 처형되면서 수습된 이 사건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관련 자료들을 탐독한 작가는 조선시대의 소방관인 멸화군과 그들이 소속된 관청 수성금화사를 중심에 놓고 한성대화재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과연 누가 조선 최고의 치세라는 세종의 시대를 뒤흔들려 한 것인가? 방화범으로 지목되어 처형된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감추어져 있는가?
조정의 중심에서 뻗쳐 나온 음모를 둘러싸고, 가슴속에 저마다의 불을 품은 이들이 핏빛 검무를 추기 시작한다. 탄탄한 문장과 치밀한 구상이 어우러져 완성된 고품격 역사 미스터리. 불과 싸우는 남자와 자유를 꿈꾸는 여자 가슴속의 불을 가면으로 가린 남자와 스스로 불의 꽃이 된 여자의 이야기 대화재 후 10년, 고향을 떠나 떠돌던 소년 호림은 청년이 되어 한양에 돌아온다. 10년 전의 상처를 지운 듯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도성이었지만, 최근 들어 수시로 출몰해 불을 놓고 사라지는 일명 ‘빠른 발’ 때문에 민심이 동요하고 있었다. 정의감 때문에 엉뚱한 사건에 휘말린 호림을 눈여겨본 수성금화사 별제 의준은 ‘빠른 발’을 잡기 위해 호림을 멸화군의 두령으로 임명한다. 자신도 대화재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호림은 신참 두령에게 적대적인 멸화군들 속에서 진상을 파헤치고자 분투한다. 처음에는 그저 방화범의 소행인 듯 보였으나, 화재 현장에서 인두로 온몸이 지져진 변사체들이 연거푸 발견되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와중에 호림은 당돌한 색장나인 채령, 한양 최고의 기생 자란과 조우하고, 서로 닮은 듯 다른 의준에 대해서는 신뢰도 불신도 아닌 복잡한 감정을 품게 된다. 그들 모두는 10년 전의 사건 때문에 인생의 방향이 크게 바뀐 처지로,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대화재의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마침내 호림은 건국 이래 네 명의 왕들이 수호해온 도성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고자 한 세력과 마주하게 되는데……. 멸화군, 성저십리, 지역 차별, 고아들의 삶 치세의 음지를 구석구석 조명하는 세심한 시선 《멸화-꽃을 사르는 불》을 구상하면서 숱한 자료를 섭렵한 작가는 흔히 사극이 소재로 삼는 궁중사가 아닌, 평민들의 소외되고 그늘진 삶에 주목한다. 방화범으로 지목된 이들은 화전을 일구는 함길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명을 쓰고, 성저십리 주민들은 사대문 밖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천대받으며 이중의 부담을 걸머진다. 죄를 짓고 악취가 풍기는 청계천 조산에 모여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 당대의 소방관인 멸화군들은 변변한 소방 장비도 없이 목숨을 걸고 불과 싸워야 했고, 금화 업무 외에도 수시로 노역에 동원되었다. 화재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어 구걸을 하거나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 작품은 이처럼 구석구석 가 닿는 세심한 시선을 바탕에 깔고, 소외된 존재지만 전력을 다해 운명에 맞서는 인상적인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화재고아 출신으로 빈털터리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불의에 저항하는 호림, 궁궐에 매인 몸으로 자유를 꿈꾸는 당찬 여인 채령, 강철 같은 가면으로 가슴속의 상처를 숨긴 채 과거를 극복하려 하는 야심가 의준, 사랑의 날개를 달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녀 자란. 역사적 사실 위에서 이들이 엮어내는 색색의 드라마는 독자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