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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은 농담처럼
김철
아시아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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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규칙/옥상/지혜/평지인간과 높이의 인간/세모 개척기/저울/나무에서 떨어진 후/길 고치는 사람들/노동복/저녁이라는 뒷심/소리를 자르는 일/일렬/몰락/시그널/막막한 숨/옆집의 헤르츠(Hertz)/방 탈출 게임

2부

사슴/연못이 날아간다/잉크/개선책/불타는 집/고려장/가위의 쓸모/반가운 연탄/제왕나비 편도기/매듭을 삼키다/빨래의 거리/격리/염증 수치/직전/장발/지루한 의자/교차/70kg/죽음은 사각/분서갱유/고무찰흙에 관한 고찰/우는 서랍/발골/조금씩 사라지는 아버지/운석이 비껴간 날/역도

3부

양피지/양에게 물어보세요/웅덩이가 지구의 각도로 돌고 있다/회피/주사위 놀이/종이의 차원/십자와 일자의 세트/벌판의 걸음/대답들/큰 걸음들은 다 멸종되었다/물 빠진 구멍들이 떠다닌다/말의 칼로리/제례악(祭禮樂)/파랑은 다 땅속의 소란이죠/넝쿨의 시절과 철조망의 시절

해설: 세계 그늘에 가닿을 소리를 오려_성현아(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21년 《머니투데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전태일문학상, 심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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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76g | 115*188*20mm
ISBN13
9791156626268

책 속으로

내가 수습딱지를 지나 대리를 달고
다시 과장 대우가 되는 동안 내가 아는 그는
가장 높은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그 높은 곳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그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듯 내려왔다
무중력으로 가득한 평지,
내려오는 과정에 받은 환영이라면 수건 한 장이 전부였다
처음 평지인간이 된 것처럼 며칠간은 어지러웠다는 그
이 땅의 땅은 세상 어느 곳보다 높고 비싸서
누구든 휘청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알고 보면 그는 아주 높은 사람으로 몇 년을 사는 동안
사실은 가장 낮은 인간이었다
그 낮은 곳에서 폭염과 호우가 도르래를 타고 지나가는
기상일보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평지인간과 높이의 인간」중에서

일정한 때가 되면 연못들이 날아오른다
한여름 치솟은 끝들을 위해
잠자리를 날려 보내고
온갖 곤충들로 여름의 채도는
한층 어둑해진 저녁을 불러온다
반딧불 움직이는 지시등을 따라
프로펠러가 수면 위에 파동을 만들고
수심에서 쏘아올린 구름을 움직인다
사실 연못처럼 단단한 곳도 드물다
---「연못이 날아간다」중에서

할머니는 이제 걸어야 하는 걸음을 다 쓰셨고요
눈이 침침해서 그려
이가 없어서 그려
손이 떨려서 그런겨
핑계는 언제나 할머니 몫이지만
그래요, 다 할머니 탓이에요
아버지를 보며 한숨 쉬는 할머니
할아버진 누가 버렸나요
할아버진 언제 벼려지셨죠
그래요, 할머니를 버릴 곳은 이미 정해져 있고요
다음번 지팡이는
아버지가 들고 다닐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산을 오르는 걸음은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고려장」중에서

방 보러 다니다가 본
가지런히 쌓인 연탄 위로
흰 눈이 어색하니 내려앉고 있었다
싸늘한 하늘을 뒤집어쓴 골목 어귀
어쩌다 저 깊은 지층은 이 동네까지 올라와 있나
반나절 동안 바깥의 문고리만 만지는 사이
돈이 좁지 방이 좁을까
---「반가운 연탄」중에서

오로지 나아가는 인간은 멸종이 되어야 끝날 테지만 우리는 따뜻한 쪽과 추운 쪽을 다 사용하고 또 사막과 설산과 심해를 다 망가뜨리고 나서도 멀고 먼 별들을 향해 침략의 기술을 경쟁한다

반면 곤충과 새들과 몇몇 물고기들은
다만 덜 춥고 덜 더운 곳에 머물려는 것뿐이다
세대들, 가장 가기 싫은 죽음을 향해
전력을 다하여 뛰어가고 있다

---「제왕나비 편도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견고한 규칙으로 가득한 세계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며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 시집 『사이좋은 농담처럼』
전태일문학상, 심훈문학상 수상


2022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한 김철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사이좋은 농담처럼』이 출간되었다. 심사 당시 “노동과 일상의 감각을 참신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시적 감각을 일부러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개성적인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김근, 안현미, 허희)의 지지를 얻었다.

제27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김철 시인의 작품에는 노동하는 자로서의 시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인이 감각한 노동 현장의 부조리한 현실은 시 「평지인간과 높이의 인간」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현아 평론가는 해설에서 “이 질서정연해 보이는 세계가 특정 집단에게만 유리한 불공정한 규칙에 의해 운용되는 세계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쓰고 있다.

노동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가장 아껴 써야 할 말인데도
다급할 때 아무나 가져다 쓴다
쓰고는 아무 곳이나 버리기 일쑤인
일회용처럼 버려진 해결책, 막연한 판례의
본보기가 되어버린 어느 무인도 같은 담화

그 말을 들추면 하청 노동자의 안전화가 벗겨져 있고
시도와 가능성이 폐기처분되고
무사고 전광판 속으로 빨려든 날짜가 있다

개선책들이란 누구에게는 면피용 말이고
또 누구에게는 희망의 말이기도 하지만
이불 한 장 같은 말
그악한 욕설 같은 말이기도 하다
― 「개선책」 중에서

그의 시 「개선책」에서는 세계의 규칙으로 이득을 얻어 결정권자가 된 이들이 진짜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일지, 그저 법을 피해갈 방법들일 뿐인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무엇도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없는데도 전면에 나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척 보는 이들을 속이는 ‘개선책’이라는 단어는 “변명도 불법도 파렴치도” 다 가릴 수 있는 “아름답게 꾸며진 당황스런 말”에 그치고 만다. 시인은 그와 유사한 일들이 바로 우리의 노동 현장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이 우리의 세계에 만연한 부당함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는 방식은 목격한 것들을 과장 없이 기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에서는 일상과 거리를 두지 않고 그 속으로 파고들며 그럴싸하게 꾸며졌을 뿐인 풍경들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풍경이 포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자신도 모른 채 규칙의 일부로 편입되는 순간들까지도 깨부수는 문장이 될 것이다. 비록 세계의 규칙은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시인은 무력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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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 시집 『사이좋은 농담처럼』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 시집 『사이좋은 농담처럼』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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