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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1장. 거울 내 마음을 비추다 지혜와 진실의 땅을 찾아서 때로 질문은 위험하다 나와 내가 친구 되기 2장. 불꽃 열정이 사라졌다 선택할 수 없는 열정은 분노가 된다 무시해도 좋은 죽음이 있을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보인다 불도 희망까지 태우지는 못한다 3장. 영혼 목적은 레이더 신호 영혼이라는 빵 흉터는 가장 강한 조직 길이 닫히면 문이 열린다 죽음의 문턱에서 4장. 세상 다시 세상 속으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재능은 나눌 때 아름답다 당신은 무엇을 섬기는가 나는 당신을 위해 걷습니다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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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마음속 ‘쓰레기’, 즉 고통이나 두려움과는 최대한 멀어지라고 배웠을 거다. 그래서 나 역시 고통과 두려움을 외면하고,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자메이카에서 온 천사는 나의 고통과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는 시련에 마음을 여는 또 다른 방법을 내게 알려줬다. 먼저, 우리는 마음에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고통, 혼란, 두려움, 온갖 잡생각보다 내가 훨씬 크고 강하다는 생각을 되새겨야 마음에도 공간이 생긴다. 그때 우리는 상처와 연결될 수 있다. 나는 이 과정을 겪으며 연민이야말로 아픔과 시련을 대하는 적절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면 우리는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 p.60, 61 선택할 수 없는 열정은 분노가 된다. 분노에 사로잡힌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화에 휩쓸린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분노에 휩싸이는 대신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뭘까? 나는 아빠가 가진 특정한 믿음, 자신에 대한 생각, 분노로 이끌었던 추측을 모두 묻어버리기로 했다. 마치 아빠의 관 옆에 온갖 말과 생각과 변명을 던져버린 것처럼. 네가 나를 화나게 했다는 합리화, 바깥의 뭔가가 나를 먼저 건드렸다는 변명, 자신은 결코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어리석은 핑계까지 모조리 묻었다. 나는 또한 자신과 세상을 잘 ‘다스리면’ 절대 분노나 화를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짐작까지 버렸다.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분노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을 뿐이다. --- p.84 우리는 모두 이야기꾼이다. 약간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를 덧붙여 어떤 행동을 할지 또는 억누를지 결정한다. 예를 들어, 의자에 앉아 있는데 허리가 찌릿하다고 치자. 통증을 느끼자마자 현재 경험과 관련된 데이터가 자동으로 수집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탄생한다. “스키를 타다가 근육이 긴장했나 보네.” 또는 “척추에 종양이 생긴 거야!” 같은 식이다. 아니면 “앤디 때문에 눕고 싶은 자세로 못 자서 그래!”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충동과 행동 사이의 ‘부글부글 끓는 지점’에 일단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 수 있다. --- p.85 나는 고개를 들어 북두칠성 외에 내가 유일하게 아는 별자리를 바라봤다. 바로 사냥꾼, 오리온자리다. 오리온자리가 내 고민을 들었는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용감하고 뛰어난 사냥꾼이었어. 살해당했지만 이렇게 별자리로 태어났지. 하지만 별을 하나씩 바라보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나를 찾을 수 없어. 나는 늘 여기에 있지만 햇빛이 환할 때는 나를 찾을 수 없지. 너는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별들 사이를 꼼꼼히 보며 전체 모습을 찾아나가야 해. 그래야 나를 볼 수 있어. 네가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내가 늘 여기에서 용기를 줄게. 그러니 누구에게도 절대 주도권을 넘기지 마. 네 삶은 네가 만들어 나가는 거야. 삶은 생각만큼 짧지 않아. 아니, 사실 무한하지. 그러니 나를 보고 방향을 잡듯이 마음과 영혼의 외침을 나침반으로 삼고 나아가야 해. 오직 너만이 너의 세상을 만들 수도, 파괴할 수도 있어.” --- pp.132~133 내 목적을 어떻게 찾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목적은 나만의 깜깜한 하늘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거나, 교회든 숲이든 내가 성스럽게 여기는 공간에서 윤곽을 드러낼 뿐이다. 주변에서 롤모델을 찾아보거나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들이 어떻게 고난을 이겨냈는지 알아내도 내 삶의 목적을 찾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규칙은 내게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은 비옥한 토양 속에, 음악이 태어나는 음표 속에, 선율 사이로 찾아오는 침묵 속에 존재한다. 목적을 찾는 일은 사실 매우 단순하고 기초적이다. 내 안에 숨은 선물을 찾고 어둠을 직면하고 상실을 경험하고 사랑을 선택할 때, 삶의 목적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가끔 혼자 고요히 있으면 된다. 자연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내면을 살피며,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대화를 나누면 된다. --- pp.135~136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네 집에 자주 놀러 갔다. 금요일 오후에는 빨간 식탁보가 덮인 식탁 옆에 쪼그려 앉아, 할머니가 안식일에 먹을 빵 만드는 모습을 구경했다. 할머니는 달걀을 넣은 반죽을 새끼 모양으로 꼬며 삶의 지혜를 내게 전수했다. 할머니가 따뜻한 손바닥을 나의 이마에 잠시 갖다 댔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마치 엄청난 보물이 숨은 이야기를 내 머릿속에 넣는 의식 같았다. “반죽을 부풀게 하는 이스트처럼 사람에게도 삶을 피어나게 하는 에너지가 있어. 에너지는 사람의 가운데에서 위로 솟고 옆으로 뻗으며 터져나오려 하지. 설탕이 있어야 이스트가 활동하듯이 에너지도 밖으로 끓어오르려면 달콤함이 필요해. 우리가 달콤함을 주지 않으면….” 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반죽이 찐득하게 묻은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영혼은 병들게 돼.” 할머니가 손가락에 묻은 반죽을 떼어내려 하자 새끼 모양으로 꼬인 반죽이 이내 흐트러졌다. 할머니는 반죽을 다시 치대고 뒤집더니, 반죽 위로 밀가루를 듬뿍 뿌렸다. 그 바람에 내 머리 위에도 뽀얀 밀가루가 내려앉았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반죽하고 이스트를 부풀게 해야 해.” --- p.196 히브리어에는 ‘티쿤 올람Tikkun olam’이라는 굉장한 표현이 있다. 바로 ‘세상의 영혼을 수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혼이라는 아름다운 담요를 덮고 있다. 하지만 매일매일 세상의 담요는 조금씩 올이 풀리고 흐트러진다. 우리는 모두 담요를 움켜쥐고 있는데, 자신이 잡은 부분에서 올이 나간다면 책임을 지고 수선해야 한다. 손이 닿는 데까지 담요를 수선하는 게 영혼 수선공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 p.228 최근 한 기사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었다. 어떤 과학자가 커다란 수조 안에 작은 수조를 넣고 그 안에서 새끼 물고기를 기르는 실험을 시작했다. 작은 수조에 있는 새끼 물고기는 커다란 수조에 있는 성체 물고기를 볼 수 있었지만, 유리 벽 때문에 커다란 수조로 갈 수 없었다. 새끼 물고기가 다 자라자 과학자는 작은 수조를 없앴다. 하지만 작은 수조에 있던 물고기는 벽이 있었던 곳까지만 헤엄칠 뿐, 더 나아가지 못했다. 벽이 사라지자 자유가 찾아왔지만, 기억과 습관 속에 한계가 뚜렷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새끼 물고기처럼 우리는 주어진 한계를 받아들이고, 선을 넘지 않는 게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을 순순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 사람마다 잘 자라는 환경은 다르며, 우리는 타인의 한계를 자신의 한계로 종종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뭔지 탐색하며 스스로 뻗어나가야 한다. --- pp.234~235 허블의 이름을 딴 허블 망원경은 지금까지 수십억 개 은하를 관측해왔다. 하지만 은하가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은하의 비밀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세계에 속한 존재일지 모른다. 기계 부품 같은 미약한 존재가 아니라 더 크게 확장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 그렇다면 우리 삶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각각 고유한 생명체로서 다른 생명체와 연결되고 서로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결국 부패한다. 상황, 신념, 열정까지도. 하지만 부패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소생할 수도 있다. --- p.241 자연의 모든 존재처럼 인간 역시 계절을 거친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를 맺고 가을에 수확을 하고 겨울에 잠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각자의 계절이 있다. 한여름에 열매를 풍성히 맺고 수확을 준비하듯이, 가을에는 낙엽을 떠나보내듯 가진 것을 흘려보내며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뒤이어 찾아올 겨울에 죽음 같이 깊은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지금 통나무집 밖은 녹아내리는 눈으로 가득하다. 곳곳이 진흙탕으로 변한 곳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견뎌낸다면, 겨울은 초록빛 봄으로 자연스레 바뀔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지평선이 열리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잠시 당신의 열정을 생각해보라. 당신의 열정은 부드럽게 내리는 눈 속에 숨어 있는가, 아니면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뒹굴고 있는가? 당신의 목적은 봄볕에 자라고 있는가, 혹은 수확을 맞은 열매처럼 붉게 익었는가? ---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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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며 자신과 세상을 구한
한 여성이 써 내려간 영혼의 여정 밤이 깊어서야 눈을 뜬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강물처럼 흐르는데, 동시에 강바닥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스스로 비옥하고 깊은 토양처럼 느꼈다. 그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어떤 설명도 이유도 없었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오른손이 저절로 침대맡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그 모습이 빛을 좇는 해바라기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만년필을 쥐고, 낡은 빨간색 가죽 일기장을 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듯이 술술 써내려갔다. “제대로 살지 않고는 결코 죽지 않으리….” 이 책은 어느 날 저자에게 날아온 비보로 시작된다. 바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저자는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잉크 삼아 시를 썼고, 그 시는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가 되었다. 몇 년 후 자신이 극진히 돌보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저자는 번잡한 도시에서의 생활을 잠시 멈추고 유타주의 깊은 숲속에서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마치 『월든』을 쓴 헨리 소로처럼 말이다. 그는 낮에는 새소리를 들으며 독서와 산책을 하고, 밤에는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도시의 화려함과 편리함, 세상과의 소통으로부터 단절되는 삶을 사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결정으로 다가오지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저자가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그는 곧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머릿속은 가득 찼지만 마음은 텅 빈 듯했던 저자가 침묵하는 자연 속에서 오히려 영혼의 안식과 충만함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지만 애써 피하지는 않으리 저자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내내 이어진 아버지의 폭력과 열다섯 살 때 당한 성폭행, 어느 날 집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화재와 기나긴 암 투병 등. 심지어 그녀는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한 사람을 쓰러뜨리기에 충분한 여러 불행이 잠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음에도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삶을 회의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가족과 주변 지인의 이야기에서 얻은 것들이다. 열정적이지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다정하고 섬세하지만 남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어머니,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준 할머니까지… 그들은 모두 불완전했지만 저자는 그들로부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배웠고, 부정적인 경험도 승화시켜 내적으로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제대로 사는 삶’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완벽한 삶’을 떠올리지만 저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저자는 온갖 역경을 겪었으면서도,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으려 하기보다는 ‘내려놓고’ ‘받아들이기’를 우리에게 권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고통과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쓰레기’, 그리고 ‘상실’이나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아픔과 시련을 올바로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영혼이라는 빵을 부풀리는 삶 ‘영혼이란 빵과 같아서 은총이라는 이스트를 넣지 않으면 부풀지 않는다.’ 저자가 어렸을 때 그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이 말은 영혼이 없는 삶,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공허할 뿐임을 저자의 뇌리에 강하게 심어주었다. 삶에 치여 때때로 잊기도 했지만, 실제로 저자는 평생 이 말을 성실히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의 삶은 특히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겪은 고난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오랫동안 성폭력 트라우마를 마음속에 안고 살았고, 무려 다섯 번이나 유산하는 등 난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성폭력 사건은 작은 불씨만으로도 끔찍한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임신을 간절히 원했음에도 자신의 몸이 애초에 아이를 가지기에 부적합하다는 주위의 모진 말까지 삼켜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을 수없이 다잡으며 노력한 끝에 성폭력의 상처를 많은 부분 극복했고, 소중한 아들 데이비드를 얻었다.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출산 직전에 포기하겠다고 외치며 낳은 데이비드는 지금은 어엿한 어른이 되어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 여성으로서 그가 살아온 삶은 누구나 차마 쉽게 꺼낼 수 없는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이 이야기를 저자가 들려준 덕분에 훨씬 더 많은 여성이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를 치유하고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한 저자의 시선은 넓은 세상으로 옮겨간다. 그는 어릴 적 즐겨 읽은 위인전에 나온 헬렌 켈러나 잔 다르크처럼, 세상을 구하는 ‘원더우먼’이 되고 싶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이러한 욕구를 품고 있지만, 주위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자신감이 부족해 꿈을 포기하거나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우리의 어깨를 붙잡고 힘주어 말한다. 흔히 형편없는 단점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누군가의 특징도 어떤 곳에서는 눈부신 장점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저자가 예로 든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이야기 능력’이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자질을 요구하는 대학원 과정에서는 그의 넘치는 상상력은 평가 절하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 저자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곳곳에서 삶의 등대가 되어준 여러 작가와 명사의 말과 글을 소개한다. 읽고 쓰는 일은 그에게 먹고 자는 일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었다. 삶의 격랑을 마주할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독서’와 ‘글쓰기’였고, 오늘도 그는 글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타인의 마음까지 보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