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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10
제1장 천훈 … 16 제2장 신훈 … 40 제3장 천궁훈 … 58 제4장 세계훈 … 68 제5장 진리훈 … 82 부록: … 110 - 제천단 … 113 1. 삼일신고의 유래 … 118 2. 三一神誥序 삼일신고서 … 124 3. 御製三一神誥贊 어제삼일신고찬 … 132 天訓贊 천훈찬 … 136 𥛠訓贊 신훈찬 … 138 天宮訓贊 천궁훈찬 … 140 世界訓贊 세계훈찬 … 142 眞理訓贊 진리훈찬 … 144 4. 三⼀𥛠誥 讀法 삼일신고 독법 … 146 5. 三⼀𥛠誥 奉藏記 삼일신고 봉장기 … 150 6. 삼일신고 봉장기와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의 충돌에 관한 역자의 단상(斷想) … 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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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신고의 유래
삼일신고는 세 가지 원본에 관한 기록이 존재한다. 1. 고경각 신사기본(古經閣 神事記本) 태백산 대숭전(大崇殿) 고경각(古經閣)에서 소장하고 있던 신사기 가운데 교화기에 기록된 서본으로 전문 366자로 이루어져 있다. 신사기본은 서두에 ‘주약왈자이중(主若曰咨爾衆)’으로 시작하며 내용은 조화기(造化記), 교화기(敎化記), 치화기(治化記)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05년 겨울에 백봉(白峰)이 보낸 백전(伯全: 호 頭巖)이라는 노인이 〈발해 석실본〉과 함께 대종교의 홍암(弘巖) 나철(羅喆)에게 전해줌으로써 신사기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고경각 신사기본이다. 2. 발해 석실본(渤海 石室本) 고구려가 망한 뒤 발해국의 신하 대야발(大野勃, ?~?)이 고구려 땅에서 삼일신고를 입수해 왔다. 서기 698년 만주 동모산(東牟山)에 발해를 세운 대조영(大祚榮)이 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어제삼일신고찬’을 지었다. 고왕(高王) 대조영의 아우 반안군왕(盤安郡王) 대야발이 고왕의 명을 받아 서문을 지었고, 본문은 366자로 천훈, 신훈, 천궁훈, 세계훈, 진리훈의 5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해 문적원감 임아상(任雅相)이 여기에 주해(註解)를 달았다. 제3세 문왕(文王, 737~797)에 이르러 찬문, 서문, 본문 및 주해에 고구려 개국공신인 극재사(克再思)의 ‘삼일신고 독법’을 넣고 책의 말미에 문왕이 쓴 ‘삼일신고봉장기’를 덧붙여 ‘삼일신고어찬본’을 편찬하였다. 문왕은 봉장기에서 석본(石本), 단목본(檀木本)이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이에 조부 고왕으로부터 전해받은 삼일신고를 태백산(백두산) 보본단 석실 속에 보관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이 내용은 삼일신고 봉장기(三一神誥 奉藏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발해 석실본〉은 본문 서두에 ‘제왈원보팽우’로 시작한다. 〈발해 석실본〉은 나철이 전수받은 이래 지금까지 대종교의 경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발해 석실본〉의 「삼일신고」 전문 366자는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의 오훈五訓으로 분장되어 있다. 3. 태백일사본(太白逸史本) 〈태백일사본〉의 「삼일신고」는 〈태소암본(太素庵本)〉이라고도 하는데, 천보산(天寶山)의 태소암본(太素庵本)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송호수의 「한민족의 뿌리사상」에 의거해 보면, 고려 말기의 행촌(杏村) 이암(李巖, 1326~1364)은 이명(李茗)과 범장(笵樟)과 같이 천보산에 놀러갔다가 소태암에 야숙하던 중에 여러 기이한 고서(奇古之書)를 얻었다. 그중에 전문 366자로 구성된 삼일신고가 있었다. 이것이 〈태소암본〉이다. 〈태소암본〉의 삼일신고는 원래 분장되어 있지 않았는데, 행촌 자신이 “一曰 虛空, 二曰 一神, 三曰 天宮, 四曰 世界, 五曰 人物”로 분장한 것이다. 이암이 소장하고 있던 삼일신고는 후손에게 전해졌고, 1520년에 이맥(李陌)이 「태백일사」를 편술하면서 소장본을 「소도경전본훈」에 싣게 된 것이다. 이때 이맥은 366자로 구성된 삼일신고를 “第一章 虛空 三十六字, 第二章 一神 五十一字, 第三章 天宮 四十字, 第四章 世界 七十二字, 第五章 人物 一白六十七字”로 분장하였다. 출처가 다른 세 자료는 삼일신고의 시작부분이 조금 다르다. 〈고경각 신사기본〉의 삼일신고는 “主若曰咨爾衆”으로 시작하고, 〈발해 석실본〉은 “帝曰元輔彭虞”로 시작하고, 〈태백일사본(태소암본)〉은 “帝曰爾五加衆”으로 시작한다. 나머지 내용은 세 자료가 일치하고 있고, 다만 후반부의 어구 몇 개만이 앞뒤가 바뀌어 있다. 즉 〈신사기본〉과 〈발해 석실본〉은 “眞性無善惡”, “眞命無淸濁”, “眞精無厚薄”으로 되어 있지만, 〈태백일사본〉은 “眞性善無惡”, “眞命淸無濁”, “眞精厚無薄”으로 되어 있다. 〈신사기본〉과 〈발해 석실본〉은 선악이 전혀 없는 ‘진성’, 청탁이 전혀 없는 ‘진명’, 후박이 전혀 없는 ‘진정’을 말하고 있고, 〈태백일사본〉은 악이 없고 오직 선한 ‘진성’, 탁함이 없고 오직 청아한 ‘진명’, 박함이 없고 오직 후한 ‘진정’을 말하고 있다. △ 삼일신고 봉장기와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의 충돌 삼일신고 봉장기와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는 매우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삼국유사는 환웅과 한검을 중심 존재로 드러낸 것에 반해 삼일신고 봉장기는 오직 한검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환웅의 역할 또한 한검의 행적으로 기록된다. 그러므로 삼일신고 봉장기와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간의 관계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삼일신고 봉장기에는 웅녀 신화가 빠짐으로써 천강(天降) 신화적 요소를 강하게 표방하는 데 반해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는 웅녀 신화를 넣음으로써 신(神)과 인(人)의 결합을 통한 조화를 강조했다. 전자의 경우 천손(天孫)으로서의 특징이 강조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 흔한 웅녀 모티브의 신화가 추가됨으로써 상당히 수동적인 부분이 첨부된다. 다만 일반적인 웅녀 모티브의 신화가 부정적인 결과로 마무리 짓는 것에 비해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의 경우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통해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 또한 긍정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검의 위상만을 놓고 본다면 웅녀 모티브의 신화가 빠진 삼일신고 봉장기의 경우가 훨씬 더 강력한 신화의 형태를 가진다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