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008
‘현실’이라는 이름의 꿈 │ 009 제1장 ‘나’ │ 016 자아; 오케스트라의 이상한 지휘자 │ 017 ‘나’는 누구인가? │ 024 생각한다, 존재한다 │ 026 “자아는 없다” 리벳 실험 │ 031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 │ 035 자아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 043 자유의지 vs 자유거절 │ 053 철학적 좀비 │ 059 제2장 죽음, 영혼, 사후세계, 윤회 │ 067 죽음이라는 사건 │ 068 영혼은 존재하나? │ 073 영(靈), 혼(魂), 백(魄) │ 080 신의 분광, 모나드(monad) │ 085 영혼과 물리법칙 │ 090 양자역학으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 │ 102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구원, 해탈 │ 107 깨달음 게임, 해탈 게임 │ 121 제3장 깨달음의 과학 │ 129 소림사 스님이 한 손으로 합장하는 까닭은? │ 130 피라미드, 내면의 불꽃 │ 136 깨달음이라는 이름의 의식 변성 │ 140 뇌과학으로 푸는 깨달음의 비밀 │ 145 깨달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 151 미래시대의 깨달음 │ 154 제4장 영성계에 드리운 음모론 │ 161 영적 에고 │ 162 5차원 상승론 │ 169 스타시스; 현대판 휴거 │ 176 거짓 선동들 │ 186 양자도약이 왜 거기서 나와? │ 191 제5장 상상하면 이뤄진다는데 │ 199 100번째 원숭이 효과 │ 200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고? │ 205 끌어당김의 법칙은 과학인가? │ 209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220 마음공부 길의 유사과학 │ 227 제6장 마음공부, 깨달음, 그리고 삶 │ 234 마음공부 길의 지뢰밭 │ 235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 240 에고는 원수인가, 천사인가 │ 244 해탈이냐, 현실이냐 │ 253 협화음과 불협화음 │ 258 감정은 축복이다 │ 261 내 영혼의 SOS │ 268 에필로그; 존재 의미에 관한 범우주적 수다 │ 276 학동과 얼도 │ 277 첫째 날 대화 │ 279 둘째 날 대화 │ 301 셋째 날 대화 │ 316 |
김학동
김해용의 다른 상품
|
우리는 정신 활동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강력하게 지휘하고 통제하고 있다’라는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아의식(에고)이다.
자아는 왕정국가의 입헌군주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입헌군주는 왕이지만 실권이 없다. 군림하되 통치하지는 않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 pp.22~23 잠에서 깨어나거나 마취에서 풀리는 순간, 자아의식이라는 착각이 ‘짠’하고 출현한다. 깨어남과 동시에 ‘나’라는 의식은 기억과 결합해 ‘자아의 연속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잠들 때마다 죽는다고도 할 수 있겠다. --- p.41 일부 과학자들은 유체이탈을 뇌의 환각으로 보고 있다. 뇌의 두정엽 오른쪽 각회(측두엽과의 경계에 위치한 두정엽의 한 부위)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니 일부 피험자들이 정신이 몸에서 분리되는 듯한 환각을 느끼더라는 것이다. 측두 및 두정 접합부에 약한 전류를 흘려보낸 한 환자의 경우 천장에 매달려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꼈다는 보고도 있다. --- p.79 설령, 끌어당김의 법칙이 진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사람들의 소망을 실현하는 유효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너의 간절한 마음이 순일하게 유지될 때만 우주가 소원을 들어준다”라는 전제가 붙어있다. 불가능한 전제 조건이다. 사람은 구조적으로 100% 순일한 생각을 유지할 수 없다. --- p.218 생각이 현실로 이뤄지지 않는 지구에서의 삶을 우리는 오히려 축복으로 여길 수 있다. 끌어당김 법칙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생각은 자유가 아니라 족쇄이자 감옥이 되고 만다. 세상은 섭리에 따라 돌아가지 인간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끌어당김 법칙의 근본적 오류는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법칙이 적용된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 p.225 명상 수련을 통해 어떤 초월적 경지를 체험했다 하더라도 평소 쌓은 지식과 삶의 태도가 그 사람의 그릇 크기를 결정한다. 깨달음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선지식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려면 다양한 지식과 인생 공부를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 p.240 깨달은 사람이란 생로병사에서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무아 상태를 달성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자아를 갖추게 된 사람이다. 우리는 ‘건강한 나’가 활발하게 작동되면서도 생로병사가 삶의 장애가 되지 않는 삶을 이룰 수 있다. --- p.244 수행 과정에서 ‘나’는 일시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에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에고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경향성이자 기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명상과 수행, 지식, 삶의 경험을 통해 그 경향성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고 삶에 관한 눈도 바뀌게 된다. 사람은 에고 없이 살 수 없다. 깨달은 자에게 에고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충직한 머슴이 된다. 그러면 에고는 더이상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삶 경험을 의식적이면서 충만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 pp.244~245 인간의 불행 중 대다수는 자신에게 통제권이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타인이나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세상사 등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렬되기를 바란다. 누구든 부지불식간에 자기가 원하는 그림대로 타자(他者)를 조종하려 든다. --- p.248 과학적 언어로야 감정은 물리적 현상이지만 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우주에서의 고귀한 경험이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언젠가 휘발된다. 음악처럼 사라진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주는 감정 경험이 소중한 것이다. --- p.270 수행을 통해, 삶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상처와 화해할 수 있다. 놓아주고 흘려보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없이 견성 또는 초월 체험을 하면 나중에라도 내면의 상처와 억압, 그늘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발목을 잡는다. 이른바 영적으로 한 소식했다는 사람인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괴팍하거나 고약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면 비록 견성을 했다 하더라도 내적 결핍감에서 해방됐다고 할 수 없다. --- pp.271~273 우리는 난파된 배와 같다. SOS가 간절하다. 상처받고 외롭고 서러운 우리의 영혼은 구원을 기다린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 누구도 나를 구할 수 없다. 나의 영혼을 구원할 이는 나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SOS를 쳐야 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진정한 자유와 평온에 이를 수 있다. --- p.273 창조주는 스스로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만들었지만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아름답고 장엄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놓고 혼자만 보는 것과 같은 거니까. 그래서 창조주는 각자의 시점에서 우주를 인식하는 의식체들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의식을 가진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억겁의 진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많은 의식체가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면서 각자의 의식 속에 서로를 투영했다. 창조주가 ‘객관적 우주’를 만들었고 우리와 같은 의식체들은 이를 받아들여 ‘주관적 우주’를 창조해낸 것이다. 이는 마주 보는 거울이 무수한 상(象)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의식체가 살아있는 동안 만들어내고 경험하는 주관적 우주는 그래서 창조주에게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다. --- pp.287~288 사실, 에고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에고는 어떤 사람이 가진 ‘경향성’이라 할 수 있다. 지혜와 수행 두 방편을 통해 자신의 경향성을 부드러운 기질로 바꿔나가는 것이 좋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 된 삶을 살 수 있다. 남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닌, 내 생각의 주도권을 내가 행사하는 삶이다. 그러면 에고는 더이상 나를 괴롭히는 ‘악동’이 아니라, 삶을 더욱 온전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천사’가 될 수 있다. 즉, ‘에고 = 천사’인 것이다. --- pp.340~341 |
|
영적 탐구에서 길 잃은 지구별 여행자 안내서.
명상수행을 열심히 하는데도 왜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할까? 좋은 생각이 좋은 일을 부른다고 부자 되는 상상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가난할까? 영적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은 사실인가? 어떤 영적 탐구자들은 왜 유사과학이나 종말론 같은 허황한 믿음에 빠질까? 그리고 세상에는 왜 사이비 종교가 기승을 부릴까? 많은 이들이 삶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영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아 찾기와 명상수행, 마음공부에 나선다.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왜 존재하는지, 신이 존재한다면 왜 악과 부조리, 인간의 고통을 내버려 두는지와 같은 의문부호를 가슴에 품고 산다. 어떤 이는 구원을, 어떤 이는 대자유를, 어떤 이는 행복을 갈구한다. 어떤 이는 평화로운 삶, 가치 있는 삶을 꿈꾼다. 영적 서적과 자기계발서를 밑줄 그어가며 탐독하고 명상단체에 가입한다. 어떤 이는 영성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를 드나든다. 하지만 진리 탐구와 명상수행은 좁디좁으며 힘든 길이다. 제대로 마음공부를 해 궁극적 평화에 이르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극소수다. 어떤 탐구자는 영적 미망에 빠지기도 한다. 유사과학, 음모론, 심지어는 종말론,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다. 물질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내용의 예언서를 뒤적이거나 검증 불가능한 채널링(Channeling) 메시지에 현혹되는 이도 있다. 상상만 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류의 자기계발서들을 믿은 나머지 좋은 상상과 긍정적 생각만 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우주가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기댄다. 하지만 끌어당김의 법칙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긍정적 사고와 해석이 역경에서 일어설 용기와 살아갈 힘을 주는 점은 맞다. 하지만, 좋은 상상만을 한다고 해서 물리적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세계와 환경이 바뀌지는 않는다. 세상을 바꾸고 내 주변 환경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면 실효성 있는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나서는 게 더 효과적이다. 특히나 자기 내면에 불만과 결핍감이 가득하다면 좋은 상상만 하려 들다가 오히려 ‘희망 고문’을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원하는 상상들이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엄격히 말해 이는 진리 탐구와 거리가 멀다. ‘마음의 배신’은 영성계를 배회하는 미망과 미혹, 허황한 믿음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마음공부와 진리 탐구에 나선 사람들이 유사과학, 괴력난신, 혹세무민, 음모론, 종말론 같은 헛된 믿음에 빠지는 세태와 이유를 추적한다. 이런 허황한 믿음은 달콤하고 위로와 위안을 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목마른데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적 갈증만 더해질 뿐이며 삶에 미치는 폐해도 결코 작다 할 없다. 영적 탐구자들이 허황한 믿음에 빠져 길을 잃는 이유는 욕심과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사람 눈과 귀를 막고 분별력을 흐려 놓는다. 그리고 인지 부조화에 빠진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는 ‘영적 에고’의 길이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미래로 미루고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드는 가르침은 아무리 듣기 달콤해도 독약과 다를 바 없다. 책 ‘마음의 배신’은 다양한 사례와 에피소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영적 탐구 여정에 도사린 위험성과 올바른 마음공부 자세, 진리 탐구 방법 등을 일깨운다. 책은 또한 ‘오케스트라의 이상한 지휘자’에 비유해 ‘자아’가 왜 허상인지 설명하는 한편, 자아라는 환상이 존재하는 이유와 역할에 대해 색다른 분석을 시도한다. 뇌과학과 양자역학 등 현대과학으로 접근해본 영혼과 유체이탈의 비밀, 깨달음의 메커니즘 등도 이채롭다. 자기계발 강의의 단골 소재로 거론되는 이른바 ‘100마리 원숭이 효과’, ‘물은 알고 있다’가 왜 유사과학 범주에 드는지도 상세히 기술한다. 책은 △자아의 존재 여부 △죽음과 사후세계 △깨달음의 과학 △영성계에 드리운 음모론 △끌어당김 법칙의 허와 실 △깨달음과 삶 등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의 배신’은 진리에 도달하는 데에 두 갈래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지식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직관의 길’이다. 영적 탐구자는 한쪽 길로만 가지 말아야 한다. 새가 두 날개로 하늘을 날 듯 지식과 직관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책의 말미에는 이성을 직관을 각각 중히 여기는 가상 캐릭터 ‘학동’과 ‘얼도’가 나누는 유쾌한 담론을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대화 주제는 ‘존재의 의미에 관한 범우주적 수다’다. 우주 존재 의미에 대한 두 캐릭터의 재기발랄한 상상과 토론이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