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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출산과 육아의 숲 장손 며느린데 딸 하나만 낳았습니다 엄마라는 특별한 유전자를 깨우기로 했습니다 태몽만 듣고 아들이라고요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아기가 예쁘면 예쁘다고 하면 되잖아요 제 딸이니 이름은 제가 지을게요 며느리 산후조리에 시어머니는 모르쇠 이런 시어머니를 둔 동생이 몹시도 부러웠습니다 온 마을이 필요한 게 아이를 키우는 일인데요 동서네 둘째, 산바라지 떠난 시어머니 관습의 거대한 뿌리 며느리가 자라온 문화도 존중해 주세요 낯설고 낯설었던 집들이 손님들, 근데 누구세요? "니 언제 올라고?" 나 없인 할 수 없던 제사 준비 제사의 주체가 아들이든 딸이든 무슨 문제일까요 출산 후 30여 일, 그래도 제사를 지냈다 귀에 걸면 딸, 코에 걸면 며느리 맏며느리도 살림 밑천인가요? 사촌 시누이 결혼식에 밀린 내 딸의 돌잔치 애가 다리 사이로 고개 숙이면, 담엔 아들이라고요? 예쁜 거는 다 우리 집안 닮은 거. 그럴 리가요! '집에서 논다'는 말은 제발 삼가 주세요 명절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당신은 할머니나 엄마하고는 달라 이런 애가 제 며느리라니 감사합니다 그들이 보내준 연대의 햇살 산후 우울증, 만나고 싶지 않지만 만나게 됐던 시댁에도 내 편은 있습니다, 동서라는 내 편 아이를 업고 하러 간 논술 수업 경력 단절 10년, 후회는 없었지만 아이의 눈부신 성장이 있어 다행입니다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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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댁 식구들을 포함 어쩌면 남편까지 제 배 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미래에 큰일을 해 낼 어떤 범상치 않은 아이, 곧 멋진 아들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태몽의 비범함(근데, 태몽은 대부분 비범했습니다. 친구들 얘기만 들어봐도)에 더해 그들의 염원을 버무려 대단한 아들이 태어날 걸로 이미 결론지어버린 것이죠. 아니, 어쩌면 장손 며느리니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집단의 무의식을 지배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태몽 그냥 꾸지 말 걸 그랬나 싶군요.
--- p.43 "새아야, 니 우째 이래 아를 빨리 낳았노. 니 참 아를 쉽게 낳아서 담 번에도 순풍 놓겠다. 첫딸이라 섭섭하재? 개안타, 담에는 아들 놓으믄 된다 아이가." 순간 멍해졌습니다. 이제 막 출산을 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 며느리에게 꼭 이렇게 말씀하셔야 했던 걸까요? 시어머니들의 용심은 하늘에서 내린다곤 하지만 본인도 여성이고 지난한 출산 과정을 여러 번 겪으셨을 터인데 듣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입장을 넌지시 표명하셨어야만 했을까요? 꼭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 p.51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죽도록 사랑해서,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어서, 제도의 품 안으로 들어가 마음껏 그 사랑을 표현하고자 결실을 맺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리고 철이 없을 땐 말이죠. 그러지 않고서야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 아니죠. 선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기라도 하면 다면적인 여러 개의 문화가 만나는 이 엄청난 변화를 기꺼이 하려고 들지는 않았겠지요. 그래서 결혼은 '뭘 모르는 철없을 때 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불문율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106 연애 초기엔 남편이 장손이란 사실이 좀 걸리기는 했습니다. 제사도 한 번 지내보지 않은 제가 그것도 깊고 오랜 기독교의 뿌리를 가진 제가, 유교적인 가풍에 더해 내로라하는 양반집(고루하지만)의 장손과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더군요. 당연히 저희 집에선 반대했습니다.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너무도 달라서 결혼생활이 고난의 연속일 거라는 얘기가 자꾸만 흘러나왔습니다. --- p.108 말수가 적고 생각이 많은 저와 달리 생각한 것은 일단 말로 뱉고 보는 시어머니가 서로의 태도와 행동을 이해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그마저도 완전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당신도 인정하셨다시피 대장부의 성정에 가까울 만큼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거름장치 없이 표현하고, 전화통화를 할 일이 있으면 본인이 준비한 말만 다 하면 단칼에 끊어버리는 분이신데, 제사라는 형식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고 쪼그라드는 모습이었습니다 --- p.125 "아이고 야야. 우리 아 낳았을 때는 아 놓고 하루 만에 부엌에 나가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오만 거 다 했다. 그라고 니가 맏며느린데 시아버지 제사에 얼굴은 비춰야지!" 저는 정말이지 시어머니의 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집안 어른들께 아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유였지만 그 기저에는 '넌 맏며느리'라는 책임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맘이 깔려 있었으니까요. --- p.143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지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야말로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모든 생각과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죠. 그저 바라건대 지난 시절엔 옳았다고 용인되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 p.175 결혼이라는 제도는 극명하게도 다른 불과 물이 만나서 화합을 이루게끔 가만히 놔두질 않았습니다. 제도에서 보호되어야 할 부부라는 존재는 제도 안의 여러 가지 엄수해야 할 법령들 때문에 오히려 생채기가 나고 스러지기도 하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감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랬습니다. 그래도 제도 안에서 어떻게든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름도 없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는 기를 쓰고 버둥거리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겁니다. 저 또한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요. --- p.209 제 시어머니도 시어머니가 되기 전엔 당신 역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오랜 세월을 보내셨고, 한없이 너그러웠던 제 친정엄마도 올케에겐 시어머니 역할을 알게 모르게 수행했을 겁니다. 올케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말투에서 혹은 가끔 대화 중에 언뜻 읽히는 표정에서 짐작할 수가 있었지요. 그 각각의 프레임 안에 갇힌 자신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과감히 끄집어낼 용기를 가져 본다면 '역지사지'의 마음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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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뒤늦은 각성이 이 땅의 며느리로 사는 모두에게
단단한 지지가 되기를... ‘코로나를 겪은 3년, 관습의 견고한 벽에도 조금씩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애써 지켜야만 했던 것들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한 덕분일까. 어깨를 짓누르던 ‘장손며느리’의 허울을 내려놓을 용기와 결단이 내게도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가끔은 들려올 비난과 수군거림까지 감내할 의지마저 차오르고 있는 중이다. 하여 앞으로의 내 삶은, 죽은 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경배를 서서히 거두고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경외로만 가득차기를.’ -작가의 말- “뭐? 그럼 지금 내보고 이 나이에 며느리도 없이 계속 제사를 지내라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선 지 딱 30년.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저자는 종교도 문화도 다른 유교적 가풍이 살아있는 한 집안의 장손 며느리가 되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문화를 어느 날 갑자기 전승해나가는 임무를 부여받자 삶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된 후로 가장 낯설고 가장 낮은 자리에 홀로 서있음을 목격할 때마다 수시로 울컥했다. 어쩌면 같은 여성이지만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 시어머니와 마주할 때면 거대한 관습의 굴레는 더욱 뚜렷해지기 까지 했다. 서애 류성룡 선생 집안의 혈통을 이은 장손의 어머니. 그녀의 성정은 거침없고 직설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분이었다. 때로 거름장치 없이 날아오는 말은 더 굵은 화살이 되어 박혔다. 대장부에 가까울 만큼 시원시원한 시어머니의 성격도 한 집안의 며느리라는 공통분모 앞에서만큼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은 다음 세대 며느리의 눈으로 목격된다.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였던 저자는 출산과 육아로 10년 동안 일을 멈출 수밖에 없던 시간을 돌이켜본다. 그 시대 사회 분위기로나, 책임과 임무를 짊어진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이어갈 수 없었던 절실함과 무거움을 엿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엄마가 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독박육아, 사회적 단절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비추며 메시지를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