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Ⅰ. 여는 글 친일가요와 군국가요 연구에 앞서 Ⅱ. 친일가요로 가는 길 1. 북선의 개발과 수탈 2. 만주국 수립과 북국정서 1) 국경을 넘는 감회 2) 도피처로서의 만주 3) 북국의 자연과 풍물 4) 만주의 도시 Ⅲ. 친일가요의 등장과 전개 1. 개척이민과 친일가요의 등장 2. 일본의 점령지역 확대와 친일가요의 확산 1) 중일전쟁 시기 (1) 북중국 가는 길 (2) 중국 아가씨 (3) 북경 (4) 산동 (5) 서주 (6) 황하 (7) 상해 (8) 소주 (9) 남경 (10) 강남 (11) 광동 (12) 해남도 2)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1) 베트남 (2) 싱가포르 (3) 필리핀 (4) 남양 3. 내선일체와 친일가요의 심화 4. 대동아공영권 건설 Ⅳ. 중일전쟁 시기의 군국가요 1. 군국가요의 등장 2. 가요 검열과 군국가요 음반의 판매 부진 Ⅴ.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의 군국가요 1. 침략전쟁의 미화와 찬양 1) 승전과 승전의 추억 2) 대동아공영권 건설 2. 조선 청년의 인력, 인명, 혼백 강제 1) 지원병과 징병 2) 한 목숨 천황에게 바치리 3) 야스쿠니의 귀신이 되어라 Ⅵ. C급 군국가요 C급 군국가요란 무엇인가 Ⅶ. 닫는 글 마치며 참고문헌과 자료 노래 찾아보기 |
허부문의 다른 상품
|
‘군국’이 ‘친일’에 속하는 듯 보이지만, 군국가요의 수효는 친일가요의 그것에 비해 2배가 넘는다. 군국가요는 그 비중이 친일가요에 비해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악성(惡性)이다.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구분해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사랑노래와 인생노래를 비교해 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사랑은 분명히 인생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중가요에서는 사랑을 주제와 소재로 삼은 노래가 인생을 다룬 노래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연구가 활성화하지 않은 현실에서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동일시한 기존 연구자들 대부분이 ‘군국’이 ‘친일’의 일부, 요컨대 ‘군국’이 ‘친일’의 하위개념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용어의 피상적 의미에만 집착해서는 곤란하다.
--- p.19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7면의 기사에는 ‘혈서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 아래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피로 쓴 글씨는 ‘한 목숨 버려 충성하겠습니다. 박정희’였다. 동봉한 편지글의 내용은 지원 자격을 갖추지 못한 박정희가 특별히 응시할 기회를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전반부와 채용해 주면 멸사봉공하면서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있던 박정희의 혈서 작성이 명백한 증거로 드러난 것이다. --- p.262 이제 이들 노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국치일을 기념하듯이, 국치기념일에 지상파 TV를 비롯한 언론매체에서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가요인 특집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남긴 불후의 명곡과 함께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성숙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p.340 |
|
대중가요계의 친일
『대중가요, 역사로 읽기』의 저자 허부문이 가사를 분석해 일제강점 말기 대중가요 속 친일의 의미를 탐구했다. 책 제목인 ‘친일의 시대’는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일제의 침략 전쟁이 격화된 중일전쟁 이후 항복에 이르는 일제강점 말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 조선은 일제의 전쟁에 동원되어 병참기지화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의 착취가 극렬해질수록 조선의 사회상도 친일 일색으로 변화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대중가요인과 그들의 친일 작품을 다뤘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호응을 기반으로 한다. 즉,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대중문화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대중을 압살하는 권력 아래에서는 대중을 외면하고서야 연명하거나 번성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룬 친일가요는 대중과 권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기존의 친일가요 연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개념을 재정의하고, 가사를 바탕으로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구분하여 재분류하였다. 친일가요는 점령 지역 상황을 윤색하고, 일제의 식민정책에 동조하는 내용의 가요로, 점령 지역의 확대와 더불어 친일가요도 확산했다. 군국가요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그 전쟁에 조선 청년의 목숨, 나아가 혼백까지 바치라는 내용의 가요이다. 전자는 대체로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후자는 패망의 색이 짙어져 갈 때 제작되었다. 조선인의 생활과 동떨어진 친일가요, 특히 흔쾌히 목숨을 바치라는 유의 군국가요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음반사는 판매 부진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음반이 사치품으로 규정되어 음반 제작 자체가 금지되는 1944년 전까지 친일, 군국가요를 생산했다. 그렇다면 친일, 군국가요의 제작은 그저 불가피했던 일이 아니라 창작자의 양심과 일신의 안위 사이 타협과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친일의 의미, 책임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의 저술 방향을 결정지은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대중가요 분야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과 그 선정 근거라고 말한다. 위원회는 심의 대상 7인 중 4인을 기각했는데, 그들의 행위는 ‘친일 행위가 맞다’고 하면서도 “작곡가나 대중가수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기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인기 가수의 사회적 위상이 낮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사회적 위상이 낮으면 친일 행위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건지 등 숱한 의문에 부딪힌 저자는 친일 가요인이 아니라 친일가요의 가사와 시대적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친일의 의미를 탐구하기로 한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대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의 시대에 발표된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망라한 후, 저자는 친일, 군국가요를 만든 가장 큰 책임은 노랫말을 만든 작사가에게 있다고 보았다. 노랫말에는 노래의 주제가 담겨 있고, 그 주제는 작사가가 나타내려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당시 대중가요인의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에 있어서는 대중예술이 갖는 파급력과 영향력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일과 마주하기’의 의미 우리 사회가 ‘친일’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친일반민족행위에 받은 상처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외면과 겉치장으로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다. 실수와 잘못은 부끄럽고 괴롭다. 그러나 부끄럽고 괴로운 과거를 은폐하고, 윤색하는 행동은 그 과거 속에 자기를 매장하는 일이다. 가요인을 포함해 민중은 일제강점기를 저항과 굴종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는 물론 생존을 위한 비겁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저자는 헤겔의 말을 빌려 ‘기왕에 존재한 것은 언제까지나 존재한다’면서,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친일가요와 군국가요에 대한 주된 책임은 그 곡을 만들고, 부른 대중가요인들에게 있다면,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책임은 지금 우리에게 있다. 이 책에서 전직 대통령의 혈서 작성을 다룬 「혈서 지원」 부분은 특히 눈길을 끈다. 나아가 주제별로 분류·검토한 친일가요와 군국가요를 정리한 〈표〉들은 이해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대중가요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물론, 더 나은 미래로 한 발 내딛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