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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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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30주년 기념판 서문
감사의 말

서론
1장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반란
2장 대중에 맞선 반란
3장 전통과 가치의 회복
4장 붉은 악몽
5장 통합
6장 분열과 융합-철학적 질서를 향한 탐구
7장 미국의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실행 가능한 유산 찾기
8장 미국의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스트라우스주의자들과 윌무어 켄달, 그리고 “고결한 사람들”
9장 준비의 시간
10장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
11장 역동적 중도는 유지 가능한가
12장 비상하는 보수주의-레이건 시대와 그 이후
결론 보수주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부록 서신 및 인터뷰 명단
참고문헌에 관하여(1976)
참고문헌에 관하여(2006)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조지 H.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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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H. Nash

미국의 역사학자.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세기 미국 정치와 보수주의의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독립 연구자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대통령 직속 상설기구인 ‘국가문헌정보학위원회(NCLIS)’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 연구단체 필라델피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1976년 처음 출판된 그의 저서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은 출간된 지 40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이 주제와 관련해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허버트 후버의 전
미국의 역사학자.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세기 미국 정치와 보수주의의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독립 연구자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대통령 직속 상설기구인 ‘국가문헌정보학위원회(NCLIS)’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 연구단체 필라델피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1976년 처음 출판된 그의 저서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은 출간된 지 40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이 주제와 관련해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허버트 후버의 전기 『허버트 후버의 삶』 3부작과 『우파의 재평가-미국 보수주의의 과거와 미래』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철학 박사과정을 이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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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784쪽 | 152*225*40mm
ISBN13
9791198335708

책 속으로

1945년 당시 “보수주의”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용어가 아니었고, 그 대변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한때 홀로 울려 퍼질 뿐이었던 목소리가 한 세대가 지난 후 합창이 되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기회를 가진 중요한 지적 · 정치적 운동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이의 설계자들이 다음 페이지에서 보게 될 주제이다.
--- p.24

이념에는 결과가 따른다. 이는 자유주의를 둘러싸고 전후 초기에 급속하게 증가한 비판적 메시지였다. 유예된 판단을 추종하는 자유주의는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웠다. 자유주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유혹에 빠져 심지어 유린당하기까지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를 방치해왔다. 자유주의는 상대주의적 · 역행적 · 세속적 · 과학적 · 실용적인 방식으로-비판자들이 한목소리로 점점 더 크게 말했듯-자신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 문명을 훼손하고 있었다.
--- p.109

자유주의의 일부가 급진적인 좌파에 반발해 “역동적 중도”로 방향을 전환하자, 몇몇 자유주의자들이 동시대 보수주의에 뜻밖의 호기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몇몇은 어쨌든 보수주의는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인정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수주의적 열망은 자유주의가 위축되는 시대에 어느 정도 유용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온건한 보수주의의 부활은 고지식한 자유주의를 교정하는 방책으로 환영받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 p.279

1950년대와 1960년대 안정을 찾으려던 보수주의자들이 명백히 의지하지 않은 기관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법원이었다. 과거 1930년대에는 우파가 법원을 옹호하고 사법심리를 칭송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트프 리트 디체는 여전히 그랬다. 하지만 법원이 처음에는 “좌파적” 정책을 묵인하다 점차 이러한 정책들을 허용하면서 다수주의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이 논리적 방벽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이한 방식으로 전후 보수주의 지적 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p.427

미국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열린사회가 아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틀렸다. 건국의 아버지들, 권리장전, 우리의 일상에서 작동하는 전통에 대해서도 그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 그들 철학의 장점이 무엇이건 그들은 미국의 전통을 지지한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그 전통은 우리-보수주의 자-의 것이었고, 자유주의는 기껏해야 최근에 생겨난, 유기적이지도 실행 가능하지도 않은 부가물 · 이물질에 지나지 않았다.
--- p.473

단일한 목소리는 결코 없었지만-"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어찌된 일인지 보수주의운동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는 단순한 지적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 열망을 지닌 지적 운동이었다. 그러한 현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척도는 미국의 오랜 기준, 성공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른 결론이 등장한다.
--- p.496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패러다임적 접근법에서 좀 더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현실이 마침내 그들 비판의 타당성을 입증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복지국가가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없었다. 복지국가의 현재 결과를 보여줄 사례가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 p.548

좌파의 반역에 맞서 이제 민주주의와 적법 절차를 수호하고, 상향이동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보수주의자들이었다. 버클리는 이것이 우파가 점해야 할 고유한 위치라고 생각했다.
--- p.619

그는 보수주의자들이 “제일의 원칙”에서 “제일의 실천”으로 옮겨갔을 때 많은 “갈등”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 p.684

문화 전쟁의 모든 언어적 난장판 속에서도 문화적 쇄신의 징후는 계속해서 나타났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붕괴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확실히 성공하는 기독교 영화가 늘어나고, 미국 사회-강인한 풀뿌리의 자비로운 보수주의-의 도덕성 회복을 추구하는, 신앙에 기초한 다양한 정책 들이 발의되고 있었다. 어느 저자가 "선교사 세대"라고 부른, 기독교와 정통 유대교 고등교육 기관에서 배출된 대학생들의 수도 분명히 증가하고 있었다. 미국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통 종교로의 회귀가 지속된다면 15년 안에 미국은 다른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 p.737

출판사 리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세상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절망적이고 암울했다. 서구는 좌익화되었고, 국가 권력은 강화되었으며, 인류는 집단주의를 향해 줄지어 나아가는 듯 보였다. 보수주의는 인기 있는 용어가 아니었고, 이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보수주의에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미국 보수주의의 부활, 사상적 기원에 대한 탐색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부활을 위한 최초의 원동력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생겨났다. 미국혁명의 기원이 영국혁명인 이상 미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기원이 유럽인 것은 당연했고, 이를 탐구하는 건 필수적이었다.

가장 먼저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경제학자였다. 하이에크와 미제스는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통해 미국 우파에게 자신들의 신념을 방어할 수 있는 지적 자양분을 공급해주었다. 수적으로 열세였고 곤경에 처해 있던 우파는 자신들의 편에 서서 적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투사이자 자신들을 이끌어줄 성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철학의 부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서구 몰락의 뿌리에는 지적 오류가 있다고 믿었다. 맹목적인 유럽 추종은 위험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상의 역사를 통해 서구 몰락의 원인을 추적했고, 16세기와 17세기의 근대 정치철학과 그것의 구현이라고 여긴 프랑스혁명에서 지적 오류를 발견했다. 시급한 건 위대한 전통, 기독교의 원리를 재천명하고 고전 정치철학을 부활시키는 일이었다. 프랑스혁명을 혐오한 버크가 이 작업의 출발점이된 것은 당연했다. 그들에게 버크는 기독교의 정통성과 고전적 자연법 철학을 가장 당당하게 주장하고, 이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보수주의 지혜의 원천으로 보였다. 프랑스혁명의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는 토크빌의 증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유럽이 아니다, 미국적 전통의 확립을 위한 모색

하지만 미국은 유럽이 아니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유럽의 사상과 경험은 미국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대로 놔둔다면 보수주의는 미국에서 영원히 이국적인 수입품이 될 운명이었다. 유럽 보수주의는 다시 음미되어야만 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은 유럽이 아니라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우선 보수주의는 초월적 진리로서 영속적이며, 입헌주의 · 제한된 주권 · 법의 지배와 같은 미국의 신념이 중세 시대 영국의 전통에 깊이 새겨진 고대의 사상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라우스의 비의적 신념은 고대적 신비주의의 재림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확실히 미국은 유럽과는 다른 나라였다. 그들은 미국 보수주의의 뿌리를 유럽이 아닌 자신들의 조국에서 찾고 자신들만의 계보를 구성하고자 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남부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부는 미국에서 항상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었고, 그래서 남부에서 이를 발견하는 것은 우파에게 논리적인 작업이었다. 그들은 남부에는 배워야할 초월적 진리─기독교 전통, 사회적 위계에 대한 믿음, 강력한 중앙 정부에 대한 거부 등─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남부가 미국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깊숙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건국의 아버지들, 독립선언문, 헌법, 그리고 무엇보다 신성한 문서인 『연방주의자 논고』. 그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의 법과 정치이론을 계승했으며, 미국 헌법의 의도는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증명한 대중의 폭정을 좌절시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독립선언문은 서구의 전통적인 지혜, 양도할 수 없는 재산권을 소중히 여겼고, 『연방주의자 논고』는 선량한 사람들─대중이 아닌 의회─의 숙고를 거친 다수의 결정이라는 미국 특유의 헌법적 도덕성을 명시하고 있었다.

단일한 정치 세력으로의 부상

미국 고유의 존경할만한 보수주의적 전통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단일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주의는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의견 차이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다. 의견 대립은 종종 서로에 대한 혐오로까지 보이곤 했다. 그래도 큰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실제적인 일상적 문제 및 활동과 관련해 놀라울 정도로 쉽게 단결하고 협력을 유지하면서 이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그리고 1980년대 레이건혁명 이후에는 방대한 분량의 책과 에세이, 기사들을 쏟아내고, 언론 · 재단 연구소의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자유시장 싱크탱크를 확대해나가면서 보수주의운동을 조직화했다. 보수주의운동이 제도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우파는 정치인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정책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고,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는 자유지상주의 원리에 기초해 실용적인 경제 프로그램들을 창안해냈다. 마침내 미국에서 “한때 홀로 울려 퍼질 뿐이었던 목소리”, 보수주의는 “한 세대가 지난 후 합창이 되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기회를 가진 중요한 지적 · 정치적 운동이 되었다”.

보수주의, 이념의 실현을 위한 투쟁

이 책은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계보를 다룬 책이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보수주의를 한 나라의 중요한 지적 · 정치적 세력으로 만든 설계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전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은 단순히 사색적이거나 이론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일부를 보존하고 정화하며, 복원하고자 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 운동이었고, 그 목표는 이념의 실현이었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보수주의는 정점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공에는 그늘이 따른다. 레이건혁명 이후 보수주의가 정치적으로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는 점점 더 멀어져갔고, 보수주의자들은 서구 문명의 도덕적 기반이 공허하며, 권력의 장악 과정에서 이 운동이 점차 부패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부시 행정부는 전통으로부터의 일탈로 보였다. 신구보수주의 간의 소규모 전투는 이전보다 더 자주 발생했다. 이전의 성공과 대립되는 불안정한 양상이 자주 발생함에 따라 위기감도 더 커졌다. 과연 보수주의는 승리했는가.

저자는 보수주의는 선거에서의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법칙이나 자연의 어떤 법칙도 그들의 운동이 쇠퇴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1945년 이후 그들 자신의 역사는 그러한 숙명론을 반박해왔다.” 때때로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이 아무런 소용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1945년 이후 자신들의 역사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 자신을 믿고,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믿으며 보수주의를 미국의 주류로 만들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끈기 있게 노력해왔는가이다. 그리고 저자는 당부한다.

“현재의 악이 아무리 확고부동하고 무시무시하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가 항상 현재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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