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현대 기술은 왜 철학의 대상인가 1. 기술의 형식적 역학 현대 이전의 기술 현대 기술 인과적 설명 ― 기술적 진보에 대한 강요와 충동 지속적인 진보 가능성을 위한 존재론적?인식론적 전제들 기술과 과학의 상호관계 철학적 측면들 2. 기술의 실제 내용 역학 화학 소비재로서의 기계들 전기 전기를 이용한 동력기술 전기를 이용한 통신기술과 정보기술 생명공학 도전받는 형이상학 현대 기술은 왜 윤리학의 대상인가 1. 결과의 모호성 2. 적용의 강제성 3. 시공간적 광역성 4.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5. 형이상학적 물음의 제기 미래의 문턱에서 ― 어제의 가치와 내일을 위한 가치 가치중립적 과학과 책임 ― 연구의 자기검열? 연구의 자유와 공익 1. 과학과 도덕은 서로 만나는가? 2. 현대 과학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의 혼융 의학의 진보와 인체실험 1. 인체실험의 특징 2. 개념적 틀로서의 ‘개인과 사회’ 3. 희생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4. ‘사회계약’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5. 공공선으로서의 건강 6. 사회는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 7. 사회와 진보의 문제 8. 개량주의와 의학 연구, 그리고 개인의 의무 9. 도덕법과 초도덕적 헌신 10. ‘동의’의 문제 11. 과학집단의 자기선택 52 12. 일반적인 선발원칙으로서의 ‘일치’ 13. ‘등급하향’의 규칙과 그것의 반공리주의적 의미 14. 환자에 대한 실험 15. 환자의 기본적인 특권 16. 환자와 관련된 ‘확인’의 원칙 17.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비밀유지 18. 환자에 대한 실험은 환자 자신의 고통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19. 결론 의술과 인간적 책임 인간복제 ― 우생학에서 유전공학으로 1. 생물학적 기술의 새로움 2. 유전자 조작의 종류에 관하여 3. 소극적 혹은 예방적 우생학 4. 태아감별 5. 적극적 우생학 6. 복제 ― 미래의 방법 I a. 복제란 무엇인가? b. 복제에 대한 물음들 c. 실존적 비판 7. 생물학자와 공학자 사이의 애매한 유사성 ― 미래의 방법 II: DNA-건축술 8. 분자생물학의 공학적 잠재력 a. 유전자외과의 개념 b. 비판점들 9. 결론: 창조와 도덕 미생물, 배우자, 접합자 ― 인간의 새로운 창조적 역할 뇌사와 인간의 장기은행 ― 죽음의 실용적 재정의 1.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2. 1976년 12월의 후기 3. 1985년의 재후기 죽음 지연술과 죽음에 대한 권리 1.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2. 의식 있는, 불치병 말기환자의 경우 3. 회복 불가능한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의 경우 4. 의학의 과제 책임의 원칙에 관한 공개 대담 a. 기조대담 (1981): 기술문화의 가능성과 한계 b. 인터뷰 (1981): 자유에 대한 회의? 주석 용어 설명 문헌 출처 역자 후기
|
|
“동물의 영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에게 아직 불투명한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우리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어떤 개체로부터 복제된 인간은 그의 실존적 기본권들, 즉 모든 가능성들이 이미 밝혀져 있는 어떤 생명체의 복제물로서 자기를 인식하는 대신, 비로소 자기를 찾아내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자신에게 놀랄 수 있는 등의 권리들을 침해받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복제는 단 한 번 이루어지건 수백 번 이루어지건,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중요하건 한 개인에게 중요하건, 그 모든 것에 상관없이 그 무엇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을 만큼 한 개인의 실존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탈무드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 가지 모양으로 찍어내는 동전들은 모두 똑같다. 그러나 왕은 ― 왕 중의 왕 ― 인간을 최초의 인간의 형상대로 만들어 내지만,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다른 이와 똑같지 않다.’ 탈무드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인격의 소유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인간에게 권력을 주고, 주어진 권력은 행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권력이 반드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인지는 그 가능성 획득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은 권력 행사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포기할 줄 아는, 경우에 따라서는 절제할 줄도 아는 그런 과학입니다. 권력을 획득한 다음 중요한 것은 이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학으로 무장한 기술의 악마성은 그것이 권력을 지향하면서 그 의미를 오직 권력 행사에서만 찾는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기술 권력의 실현은 추상적인 가능성이 현실에 적용될 때 이루어집니다. …… 외경심을 가지고 관조하는 인간의 태도를 기르고 그럼으로써 과학적 활동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철학과 윤리학의 과제입니다.” ― 한스 요나스 난치병 치료의 희망, 인간 줄기세포 복제의 성공! 그러나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이대로 좋은가? 1997년 최초의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이후, 인간의 배아복제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왔으며, 마침내 2004년 2월 체세포와 난자로 인간의 줄기세포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난치병 치료에 한줄기 빛을 제시한 생명공학의 성과는 인간의 기술이 새로운 단계에 돌입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의 발전이 그리는 미래가 과연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밝고 환하기만 할 것인가?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가치관 변화를 우려하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각 국가에서는 그에 관한 윤리적 실천의 일환으로 1964년 ‘헬싱키 선언’이 발표되고 연구의 윤리성을 심의하는 기관을 두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속도와 그것이 가져오는 풍요로움과 혜택에 대한 기대에 비해, 그것이 드리울 그림자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이 분명한 것처럼, 우리의 미래에 닥칠 수많은 변화에 대해 직시하고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정립하는 것 역시 분명한 당면과제이다. 전통적 윤리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대 기술의 발전 ― ‘미래 책임의 윤리’와 실천의 필요성 20세기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1979년에 발표한 『책임의 원칙』에서 생명에 대한 보편적 관심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본서 『기술 의학 윤리 ― 책임 원칙의 실천』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러한 기술 발전과 윤리의 조화에 대해, 기술은 인간이 행하는 권력이므로 윤리학적 반성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기술은 행위의 한 형태이며 모든 인간 행위는 도덕적 검토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모든 권력은 선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고 악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기술은 과거의 윤리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윤리적 사유의 노력을 요구한다. 첫째, 과거의 윤리학이 행위의 의도와 목적을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던 것과는 달리, 기술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하였음에도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기술 권력의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 사용의 문제는 마지막 결과에 대한 양적인 추측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으며, 그 해답을 우연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둘째, 현대 기술은 적용의 강제성을 갖는다. 기술은 이런저런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구체화되면 적용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마침내 지속적인 욕구로 자리 잡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현대 기술의 결과는 장기간에 걸쳐 예측 불가능한 깊이와 넓이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 기술과 그 작품은 지구 전역을 뒤덮고 있으며, 그 누적된 결과는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스 요나스가 볼 때, 강력한 권력을 인간에게 안겨준 기술에 대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갖는 권력을 통제할 능력과 책임감이다. 권력은 책임을 수반해야 하며, “책임의 요구는 권력의 행위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의 책임 범위는 현재의 인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현재의 이익과 필요 때문에 미래 인류의 삶을 함부로 다뤄도 괜찮은지, 우리의 행위가 정당한지 묻는다. 그에게 윤리학적 반성의 대상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지구 자체까지 포함한다. 왜냐하면 “황폐해진 다른 생명과 자연은 곧 인간 생명의 황폐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이든 다른 생명체의 생명이든 모두 동등한 생존의 권리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기술 의학 윤리』의 앞부분에서 현대 기술의 성격과 특징, 과학과 기술의 관계, 그리고 어째서 윤리학의 대상에 현대 기술이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논한 한스 요나스는 뒤이은 3장에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가 앞으로도 적용가능한지를 묻는다. 그러면 그에게 있어 발전하는 현대 기술에 대응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대안적 윤리는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성찰: 두려움과 겸손, 절제의 미래윤리학 한스 요나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현대 기술을 바라보면서, 현대 기술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거부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우려하는 것은 현대 기술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과 그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이며, 기술 진보의 혜택보다 더 비싼 대가인 인간 심성의 황폐화이다. 이에 따라 그가 제시한 미래 윤리의 첫 번째는 “미래에 대한 앞선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 가려는 권력을 따라잡고, 그 권력이 지향하는 근접 목표를 미래에 나타날 결과의 관점에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다. 한스 요나스는 현대 기술의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생각할 때, 새로움을 향한 지나친 용기보다는 예측 가능한 위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한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의 이 두려움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류가 갖는 권리와 관계가 있으며, 그에게 있어 그들에 대한 책임 의식은 권력을 특징으로 하는 이 시대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두려움’에 이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겸손함’이라는 태도이다. 한스 요나스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지식은 두려움을 낳고, 이 두려움은 겸손한 태도를 낳으며, 이 겸손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소비습관, 즉 네 번째인 ‘검소함’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검소함은 기존의 검소함과는 달리 개인적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운영과 보존, 즉 미래에 대한 책임 윤리라는 측면과 관련된 세계적인 문제”이다. 그에 따라 다섯 번째는 ‘절제’가 된다. 이 역시 개인의 탐욕을 억제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분야에서 한계를 설정하고, 그렇게 설정된 한계를 지킬 줄 아는 것”을 말한다. 한스 요나스는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겸손하라는 충고가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충고는 더욱 구체화될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상처가 치유 가능한 것은 아니며 몇몇 상처는 원칙적으로 아예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술이 야기하는 끔찍한 해악들 중에는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탓에 어떤 기술도―치유는커녕―저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기술이 앞으로 가능케 할지도 모를 기적을 염두에 두고 어떤 일을 일단 감행해 놓고 보자는 식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일단 획득된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때맞춰 제동을 걸 줄 아는 인간의 능력 역시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의 뒤이은 장들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책임의 원칙을 적용해본다. 그가 책임의 원칙을 적용하고자 하는 분야는 의학의 치료와 인체실험에서 인간복제, 그리고 뇌사와 장기은행, 죽음에 대한 권리까지 아우른다. 마지막 장에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공개 대담과 인터뷰를 나누면서 그의 입장을 재확인한다. 생태학적 휴머니즘의 실천: ‘희망’을 넘어 ‘책임’으로 ‘골치 아픈 생태론적 예언자’라 불리며, 21세기 대안적 윤리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한스 요나스의 주장은 고지식할 정도로 원칙적이고 보수적이며 엄격하다. 우리가 현대 기술의 발전 속에서 과연 그의 주장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죽을 수 있기 위해 그가 제시한 책임 원칙은, 우리가 과연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일이 진정 우리 자신과 미래의 후손에게 득이 되기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의견과 주장을 납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이러한 원칙적인 사유가 보여주는 인류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뇌를 함께 공유하고, 달려 나가는 현대 기술과 뒤처져 우왕좌왕하는 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