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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빠진 여자들
보존 나비 입속의 새 산타클로스가 우리 집에서 자고 있다 구덩이를 파는 사람 이르만 개 죽이기 행복한 문명을 향해서 올링히리스 내 동생 왈테르 인어 남자 역병의 대유행 아스팔트에 머리 찧기 사물의 크기 땅속 느려지는 몸 스텝 지대에서 엄청난 노력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 옮긴이의 말 |
Samanta Schweb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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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령 어느 나라에서 렌터카를 빌려 다른 나라에서 반납하고, 한달 전에 죽은 생선을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하고, 집을 나서지 않고도 각종 공과금을 내는 놀라운 일들이 가능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건의 순서를 조금 바꾸는 것처럼 사소한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 나는 이렇게 일찍 테레시타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보존」중에서 그러고 보면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새를 산 채로 먹는 것쯤은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자연적 관점에서 보면 그게 마약보다 건전하고,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열세살 아이의 임신보다 숨기기 쉬우리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차 문손잡이에 닿을 때까지 속으로 저 아이는 새를 먹는다, 저 아이는 새를 먹는다, 저 아이는 새를 먹는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던 것 같다. ---「입속의 새」중에서 저 개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 있었을지 걱정스레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기가 오늘 오후에 그랬던 것처럼 저 개도 언젠가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 세상의 모든 개가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꿈이 좌절된 인간들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털이 길어지고 귀가 아래로 축 처지고 꼬리가 길게 뻗은 인간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만 먹고 살아가면서, 공포와 추위에 찌든 채 역 구내의 벤치 아래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그루네르처럼 여전히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서 떠날 기회를 기다리는 또다른 좌절한 인간 군상을 지켜보는 것이다. ---「행복한 문명을 향해서」중에서 두 사람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가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광장을 지나 대로 사거리 신호등 앞에 멈춰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등이 달려 있었다. 모든 거리에는 신호가 있고, 신호가 바뀌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신호를 기다렸고, 아버지도 기다림을 받아들였다. 노란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을 때, 그들의 기분은 이미 한결 나아져 있었다. ---「엄청난 노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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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듯하다”
현실의 틈새로 미끄러진 인물들 앞에 펼쳐진 기이한 세계 사만타 슈웨블린의 두번째 소설집 『입속의 새』가 보여주는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낯설고 기이하다. 슈웨블린의 소설에서 환상과 공포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의 틈에 자리하고 있다가 불시에 현실로 틈입해 들어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얌전한 사춘기 딸이 어느날부터 느닷없이 새를 산 채로 잡아먹게 되거나(「입속의 새」), 아내를 죽여 여행가방에 넣어둔 것이 하루아침에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둔갑하거나(「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 누군가의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찧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 사람들이 열광하기도 한다(「아스팔트에 머리 찧기」). 오싹하고 이상하지만 어느 순간 자체의 질서에 수긍하고 매혹되며 거기서 현실의 인간과 삶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들은,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회사원이라든가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성 같은 프란츠 카프카 소설 속 부조리를 떠오르게 한다. 200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J. M. 쿳시는 이 작품을 가리켜 “사만타 슈웨블린의 블랙유머, 또다른 현실의 틈새로 미끄러지고 구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림 형제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듯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현실적인 공간의 비틀리고 벌어진 틈새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독자를 죄어오는 슈웨블린식 공포는 소설에서 메타포로 형상화된다. 구덩이, 나비, 새, 소리, 노란 동물 등의 메타포는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억압된 영역, 혹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사건을 응축해서 표현하는 장치이다. 작가의 말처럼 비정상적인 것, 즉 메타포가 환상의 영역을 벗어나 “현실의 또다른 일부, 현실적인 것”으로 변함으로써 “동일한 영토에 현실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이,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여성, 가정학대 피해자, 우울증 환자… 약하고 소외된 인물들을 그리는 여성주의적 시선 슈웨블린은 『피버 드림』에서 딸과 함께 간 휴가지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신화에 내재한 근원적 공포를 그려낸 바 있다. 그 이전 작품인 『입속의 새』에는 그러한 여성주의적 시선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보존」과 「절망에 빠진 여자들」 「올링히리스」처럼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불안과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물론, 어린아이의 순진한 눈과 그 어머니의 우울증적 관점을 교차시켜 여성의 존재의미를 되짚어보는 「산타클로스가 우리 집에서 자고 있다」 또한 그러한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개 죽이기」와 「인어 남자」에서는 오히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남성성의 요소와 아버지, 즉 가부장의 역할을 하는 오빠의 존재를 텍스트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슈웨블린의 작품세계에서 우울증/신경증과 광기는 일상을 여성적인 세계로 끌어들이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지나치게 행복한 가족들 사이의 우울증 환자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내 동생 왈테르」나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강박적 행동을 그린 「사물의 크기」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같은 결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인종차별 린치 가해자의 탄생기라고 할 만한 「아스팔트에 머리 찧기」에서는 한국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현재 스페인어권 동세대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작가. 슈웨블린을 놀랄 만한 작가로 만드는 것, 드물고 귀하게 만드는 것은 그를 움직이는 것이 단지 재능과 야망만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사실이다. 그 환상은 세계와 ‘더불어’, 깨어지기 쉬운 모든 것과의 관계에 내재된 잔혹성과 더불어 치열하게 고민하는 데서 나온다. - [뉴욕 타임스] 슈웨블린은 초자연적인 일을 지극히 실제적인 태도로 다루는 능력, 초현실적인 사건을 지극히 평범한 일처럼 서술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 전체를 통해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을 슈웨블린은 단 한 문장만으로 불러일으킨다. 세계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학의 팬이라면 슈웨블린의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입속의 새』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이는 작가의 놀라운 성취이다. - [NPR] 이 단편집은 공포와 불안의 생생한 세계를 살아나게 한다. 슈웨블린의 특별한 천재성은 그의 작품에 본질적으로 야만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이 섬뜩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은 작은 야생동물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순순하다는 거짓 약속으로 당신을 유혹한 다음,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드러내며 덮쳐온다. - [파이낸셜 타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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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타 슈웨블린의 블랙유머, 또다른 현실의 틈새로 미끄러지고 구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림 형제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듯하다. - J. M. 쿳시 (소설가, 문학비평가,노벨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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