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품은 구매 후 지원 기기에서 예스24 eBook앱 설치 후 바로 이용 가능한 상품입니다.
|
지은이의 말 4옮긴이의 말 61부 1945년 이전의 논쟁사|서 론| 일본 자본주의 논쟁이란 무엇인가 18|제1장| 전전(戰前) 논쟁의 이해를 위하여 23제1절 전전 논쟁의 전제 - 일본 민주혁명론 241. 전략논쟁의 발생2. 27년 테제를 둘러싼 논쟁3. 논점의 분화와 논쟁 해결의 준비4. 32년 테제와 논쟁의 종결5. 민주혁명론에서 자본주의 논쟁으로제2절 전쟁 이전의 일본 자본주의 연구 381. 선구적 시기(1922~1926)2. 본격적인 전개 - 제1기(1927~1931)3. 제1기에서 제2기로제3절 자본주의 논쟁의 국제적 연결 47|제2장| 논쟁의 서막(1930~1931) 51제1절 일본 자본주의 현 단계논쟁 521.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 노로의 이노마타 비판2. 이노마타의 반박과 노로의 재반박제2절 농업 문제 및 소작료 논쟁 641. 이노마타, ‘해당파’, 쿠시다의 연합전선2. 노로와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의 반격|제3장| 막말 유신사(史)를 둘러싼 논쟁 79제1절 막말 생산단계논쟁(이른바 매뉴팩쳐 논쟁) 801. 매뉴팩쳐 논쟁의 발단2. ‘엄밀한 매뉴팩쳐’설을 둘러싼 논쟁3. 츠치야, 핫토리의 논전과 논쟁의 종결제2절 막말 토지문제 논쟁 991. 논쟁의 발단2. 강좌파의 총공격3. 새로운 논객의 등장과 논쟁의 종결|제4장| ‘일본 자본주의 분석’ 논쟁 113제1절 전기-강좌파의 노농파 비판 1141. 강좌파의 대표 노작2. ‘분석’ 논쟁의 개시3. ‘분석’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반박제2절 후기-강좌파 이론에 대한 반성 1411. 근로대중의 논쟁 비판2. ‘분석’ 논쟁의 새로운 개입자3. 강좌파 검거 후의 논쟁4. ‘분석’ 논쟁의 종결|제5장| 일본 농업문제에 관한 논쟁 157제1절 전기-‘전(前)자본주의적 지대설’의 붕괴 1581. 쿠시다설에 대한 비판과 반박2. 쿠시다 사후의 소작료 논쟁제2절 후기-‘반(半)봉건 지대론’의 확립 1671. 히라노에 의한 농업론의 전면적 전개2. ‘반봉건 지대론’을 둘러싼 논쟁3. 노농파 최후의 반격과 새로운 비판자의 등장|제6장| 기타 파생된 논쟁 183제1절 자본주의의 문제들에 관한 논쟁 1841.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 논쟁2. ‘인도 이하의 임금’ 논쟁3. ‘저임금’ 논쟁제2절 농업 문제들에 관한 논쟁 2001. ‘부역 노동’ 논쟁2. ‘경제외적 강제’ 논쟁3. ‘농업 자본주의화’ 논쟁|제7장| 전전 논쟁의 총괄 및 이후의 연구 221제1절 전전 논쟁의 총결산 2221. 자본주의 논쟁의 종결2. 강좌파의 성과와 약점제2절 논쟁 이후의 일본 자본주의 연구(1938~1945) 2321. 전체적인 특징과 경향2. 공업 방면의 연구3. 농업 방면의 연구2부 1945년 이후의 논쟁사|제1장| 전후 논쟁의 이해를 위하여 251제1절 전후 논쟁의 전제 - 일본 인민혁명 논쟁 2521. 전후의 전략방침을 둘러싸고2. 우익적 편향의 극복3. 좌익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4. 신강령의 깃발 아래제2절 전후 논쟁은 왜 제기되었는가 264제3절 전후 논쟁의 몇 가지 특징 267|제2장| 일본 국가론에 관한 논쟁 273제1절 문제의 제기 2741. 전후 천황제부터 국가론의 재검토까지2. 강좌파 제국주의론 비판제2절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를 둘러싼 시가·가미야마 논쟁 2821. 제1의 논전2. 제2의 논전3. 제3의 논전제3절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 논쟁의 발전 2961. ‘이중의 제국주의’를 둘러싸고2.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의 기초구조를 둘러싸고3. 국가논쟁의 일단 종결제4절 일본파시즘을 둘러싼 시가·가미야마 논쟁 3051. 문제의 소재2. 비판과 반박3. 대립적 견해의 발전제5절 전시·전후의 천황제를 둘러싼 논쟁 3131. 천황제 파시즘론의 전개2. 천황제 파시즘론에 대한 비판3. 일본형 파시즘에 대한 탐구4. 전후 천황제의 성질을 둘러싸고|결 론| 일본 자본주의 논쟁의 과제 338일본 자본주의 논쟁사 연표 342
|
小山弘健
|
한국과 가까운 ‘일본’,그들이 겪은 1900년대 초·중반의 자본주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당시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전쟁을 전후로 일본의 좌익 계열은 자본주의를 확립해가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려 했으며, 그리고 어떻게 현실 운동으로 이어지게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근대화의 상징인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1945년 패전 이전까지 천황제와 군부를 통한 전제적인 정치가 유지되었으며,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당시 자국의 사회구성체가 자본주의인지 혹은 봉건제인지를 두고 논쟁을 하였다. 이 논쟁은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실천적 운동을 할 것인지, 강좌파로 노농파로 싸울 것인지가 주요 골자였다. 각각의 논쟁이 이어지며, 이에 대한 반박의 내용도 계속 이어지므로 당시의 일본 내에 이루어진 논쟁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자본주의 논쟁사’는 패전 이후 일본 정치사를 이해함에 도움을 준다. 전후 일본 정치가 과거 자본주의 논쟁에서의 강좌파와 노농파가 형성한 인식이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일본의 양당 체제 아래 혁신계열의 정치와 경로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논쟁사를 살펴보며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