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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서한집의 역사 -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썼는가? 2부 무덤에서 온 편지1장 총살된 파리2장 죽음 앞에 선 레지스탕스3장 인질로 죽다3부 역사에서 기억으로 -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최대 처형장 몽발레리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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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총살자 서한집’이 책에 실린 23명의 편지 48통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고 번역된 글이다. 독일이 영토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지배했던 강점기 프랑스에서 독일군에 총살당하기 직전 자신의 부모, 형제, 아내, 자녀, 친구, 지인에게 쓴 마지막 편지들이었다. 지은이는 이 편지들을 포함하여 전후 프랑스에서 출간된 총 7종의 ‘피총살자 서한집’들(1946, 1958, 1970, 1985, 2003, 2006, 2010)에 실린 편지 315통을 모두 분석하고 분류했다. 여기에는 유명인을 비롯하여 무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쓴 편지들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파리 최초의 레지스탕스 조직인 ‘인류박물관’의 지도자 보리스 빌데, 드골파 군대인 ‘자유프랑스’ 해군의 제2국 국장 데스티엔 도르브처럼 유명한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편지가 들어 있고, 또한 16세의 고등학생에서부터 19세의 모자 제조공, 22세의 교사 지망생, 33세의 르노 공장 노동자, 42세의 전차 운전기사, 52세의 육군 장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편지도 있다. 여기에다 사형수가 아니었지만 레지스탕스 활동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인질’로 선정되어 총살당한 사람들의 편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해서가 아니라 단지 거리에서 우연히 독일군과 몸싸움을 벌였다거나, 누군가 맡겨놓은 사냥총을 소지했다는 죄로 사형을 언도받은 평범한 파리 시민의 편지들을 통해 다양한 곡절의 사연과 애절한 이별사를 볼 수 있다. 몽발레리앵과 종(鐘)1941~1944년의 3년 3개월 동안 파리 서부 교외의 몽발레리앵에 위치한 독일군 주둔 요새에서 모두 1,008명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 혹은 항독 투쟁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인질로 선정되어 총살당했다. 이는 강점기 4년 동안 같은 유형의 총살로 사망한 전체 인원수(약 4,000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은이는 이 책 3부에서 처형 장소였던 몽발레리앵의 역사를 되짚고, 전후 그 장소가 프랑스인들에 의해 어떻게 기억되고 기념되어 왔는지 그와 관련된 기념식과 기념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프랑스인들의 역사 복원 작업은 정치 선전에 오염된 드골주의 또는 집단적 영웅주의나 대의의 승리를 찬미하기보다는 점령군의 총기에 무참히 희생된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집단적 망각에서 구제하는 데 의미를 두고자 했다. 2003년에 이르러 마침내 몽발레리앵에 종 모양의 기념물 「1941~44년 몽발레리앵 레지스탕스·인질 피총살자 추모기념물」이 만들어졌다. 종의 표면에는 당시 그곳 숲속 빈터에서 처형당한 1,006명의 이름들이 연도별ㆍ날짜순으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종 하단의 테에는 빈 공간이 남겨졌는데, 이는 차후에 신원이 확인될 피총살자들의 이름을 추가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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