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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감사, 행복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힘
모든 것을 주신 어머니 1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어머니, 살아 계셔서 감사합니다 / 아들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죽음을 준비하신 어머니 / 마지막 가신 길 /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 어머니의 80년 / 외로웠던 어머니 / 아직은 실감 나지 않지만 / 손자가 생각한 할머니 / 어머니의 그늘 / 시간이 갈수록 / 어머니와 흑산도 2 어머니는 사랑이었네 목숨보다 더 아들을 사랑하신 어머니 /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 네가 아픈 건 못 본다 / 귀한 아들 배고플세라 /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 /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 어머니가 기쁘셨던 진짜 이유 /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 어머니 / 아들이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 어머니의 손주 사랑 / 어머니의 가족 사랑 / 유별난 친척 사랑 / 고향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 / 어린 시절의 추억 /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 3 어머니는 찬밥을 드셔도 되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찬밥을 드셔도 되는 줄 알았다 / 어머니의 특별 대우 1 / 어머니의 특별 대우 2 / 생선의 추억 / 늘 좋은 걸 주려고 애쓰신 어머니 / 아들 바보 어머니 4 내가 바르게 살라고 안 했냐? 위대한 스승이셨던 어머니 / 제가 어머니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 염소 사건의 교훈 / 버거운 일로 아들을 단련시키신 어머니 / 약속은 소중한 것 / 말의 힘을 깨우쳐 주신 어머니 / 벤치마킹을 알려 주신 어머니 / 몰입과 최선 / 공짜는 없다 / 자식의 자랑이 되어 주신 어머니 / 노는 만큼 성공한다? / 돈을 무시(?)하는 습관을 갖게 해 주신 어머니 / 돈을 무시하는 습관의 좋은 점 5 속 깊은 어머니 속 깊은 어머니 / 긍정의 여왕이셨던 어머니 / 대범한 어머니 / 쿨한 어머니 / 통 큰 어머니 / 참고 또 참으신 어머니 / 호랑이 어머니 / 깔끔한 어머니 / 세심한 어머니 / 쉴 틈이 없으셨던 어머니 / 때로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 / 자존심을 지키신 어머니 / 늘 당당하셨던 어머니 / 고집이 세셨던 어머니 6 어머니는 서울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어머니는 서울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 어른이 되어서도 내 생각만 했던 나 / “나는 집에 있을 테니 너희들끼리 다녀와라” / 어머니의 공을 생각 못했습니다 / 어머니와 며느리 7 어머니는 늘 사람이 먼저였다 어머니는 늘 사람이 먼저였다 / 인간관계의 달인 / 아들 친구들에게도 신경 써 주신 어머니 /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맺어 주신 어머니 / 사람을 좋아하신 어머니 / 직원들을 고맙게 생각하신 어머니 / 어려운 사람들에게 늘 잘해 주신 어머니 / 배려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배려하신 어머니 8 어머니는 늘 기다려 주셨다 어머니는 늘 기다려 주셨다 / 눈감아 주신 어머니 / 알면서도 모른 척 / 끝까지 아들을 믿어 주신 어머니 / 세상이 다 욕해도 / 정신이 없으실 때도 / 아들의 공부를 기뻐하셨던 어머니 / 공부의 길로 이끌어 주신 어머니 9 또 한 사람의 어머니 이제는 당신을 위해 / 당신 얼굴이 많이 편안해지고 예뻐졌습니다 / 나를 선택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 당신이 당신이어서, 감사합니다 / 당신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습니다 / 고된 시집살이, 참아 주어서 감사합니다 / 데리고 살아 주어서 감사합니다 / 당신의 지극한 정성, 감사합니다 / 믿어 주고 인정해 준 당신, 감사합니다 / 가르침을 주는 당신, 감사합니다 / 어머니를 이해하고 잘 모셔 주어서 감사합니다 / 의연한 당신, 고맙습니다 / 추억과 감동을 주는 당신, 감사합니다 / 나는 흉내도 못 낼 엄마의 사랑, 감사합니다 / 쿨한 당신, 감사합니다 / 나와 우리 가족의 오늘을 있게 한 당신, 감사합니다 / 감사하고 나누는 당신, 감사합니다 맺는말_ 감사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감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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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이 혼미한 지금도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 아들” 하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가 물어보면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내 며느리”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아들인 것에 감사합니다.---p.22 생명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신 어머니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흑산도 무장공비 사건이 터졌다. 조명탄이 터지고 포격 소리가 요란했다.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어머니는 문에는 이불을 덧씌우고 아들에게는 이불을 더 꺼내 덮어 주셨다. 그리고…… 당신은 이불 밖에서 기도하셨다.---p.43 어머니는 늘 아들 위주였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늘 아들에게 음식 그릇을 밀어 놓으셨다. 어머니 많이 드시라고 해도 어머니 말씀은 늘 똑같았다. “난 많이 먹는다.”---p.49 내가 퇴근 시간이 늦으면 잠 못 이루고 걱정하시는 바람에 아내가 마음 편히 자기가 어렵다고 한다. 내 나이 쉰이 넘었는데도…….---p.56 속이 깊으신 어머니 아들 동훈이가 태어나자 어머니의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나에게서 동훈이에게로. 동훈이는 두 돌도 지나지 않아 희귀병인 근위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 더 이상 바늘 꽂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머니는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 독촉하실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별말씀이 없으셨다. 역시 속이 깊으신 분이다.---p.58 어머니는 찬밥을 드셔도 되는 줄 알았다 찬밥이 있으면 당신이 드시고 나에게는 늘 새로 지은 밥만 주셨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만 알았다. 방학 때 내가 흑산도에 들어가면 그 바쁜 중에도 내 밥만은 새로 지어 주시려고 밖에서 일하시다가도 헐레벌떡 뛰어오셨다.---p.73 위대한 스승이셨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저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제가 지금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데, 어머니,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실 수 있었습니까? 아둔한 저는 1000 감사를 쓰는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습니다.---p.87 긍정의 여왕이셨던 어머니 딸아이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도 가해자가 운이 없어 그런 거라고 오히려 위로해 주고 나에게 별일 없을 것 같으면 합의해 주라고 하셨다. 자주 연락드리겠다고 감사하며 돌아간 가해자는 그 뒤 전화 한 통 없었다. 어머니는 태연하게 다 그런 거지, 하셨다.---p.116 고집이 세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성격이 직선적이셨다. 상대가 좀 거북할지라도 거침없이 바른말을 하시는 올곧고 직선적인 성격이셨다. 식구들을 많이 힘들게도 하셨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들의 행동과 생각을 다잡을 수 있게 해 주신 면도 있다.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어머니의 고집도,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느낀다.---p.130 어머니와 며느리 아내가 감당하기에 어머니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나에게도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기댈 수 있는 분은 아니었다. 늘 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내가 그렇게 어머니를 어려워하니 아내나 아이들은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너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생각과 문화의 차이로 인해 고부 갈등이 심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아내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 본인의 서운한 소회를 말씀하시는데, 내가 미처 생각 못한 깊은 뜻도 있었다. 큰 틀에서는 아내를 많이 힘들게 하셨지만, 나름대로 한계를 지키면서 따뜻함을 보여주신 면도 많았다. 나는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생각보다 많이 쌀쌀하게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나의 태도를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좀 쌀쌀 맞은 사람이야’라며 이해해 주셨다.---pp.142~143 어머니는 늘 사람이 먼저였다 흑산도에서 혼자 나를 키우시면서 어머니는 엄청나게 노력하고 절약하셨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물질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셨다. 늘 사람이 먼저였다. 심지어는 돈을 떼먹은 사람 등 좋지 않은 사람들과도 가급적 나쁜 인연을 맺지 않도록 깨우쳐 주셨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러니 특히 헤어질 때 잘하라고 하셨다. 내가 조금만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부딪히지 않을 거라고 충고해주셨다.---p.147 사람을 좋아하신 어머니 단칸방이었지만 어릴 때 우리 집에 손님이 많이 오셨던 기억이 난다. 겨울을 빼곤 마루나 마당에서 함께 모여 음식도 나눠 먹곤 했다. 어머니의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내가 닮은 것 같다. 어머니는 이해관계로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좋아서 만나지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더 친하게 지내고 이럴 줄을 모른다. 나도 어머니의 영향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다.---p.156 끝까지 아들을 믿어 주신 어머니 당시 우리 중학교는 고등학교 진학률이 10% 정도였다. 따라서 형편이 괜찮은 친구 중에도 진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따라서 나도 당연히 고등학교는 언감생심이어서 지레 포기하고 술 담배를 하면서 엇나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의 의지와 노동력만으로 나를 고등학교에 보내주셨다. 그 당시 어머니는 가지고 있던 돈도 사기당하고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탈선을 참 많이도 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묵묵히 믿고 기다려 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게 늘 “너는 잘할 수 있다”, “너는 최고다”라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태몽 얘기를 해 주시면서 너는 잘될 거라고 늘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셨다. ---pp.168~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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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했던 섬마을 소년,
주경야독으로 성공은 했지만…… 50여 년 전, 홀어머니는 다섯 살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흑산도에 들어갔다. 그 시절에는 다들 가난했다고는 하지만, 삶의 유일한 수단이 어머니의 노동이었으니 오죽했으랴.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술과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1등 하는 아이가 왜 엇나가냐”고 다그쳤지만,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도 꿈꾸기 어려운 형편에 공부는 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었다. 홀어머니는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아들을 뭍의 고등학교에 보냈다. 어머니는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 대신 “친구 많이 사귀고 경우 바르게 살아라”고 일렀다. 여름방학 때 섬에 돌아온 아들이 친구들과 이웃집 염소를 잡아먹고 시치미 떼고 육지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하숙방을 찾아가 책을 모두 불사르셨다. “내가 ‘경우 바르게’ 살라고 했냐, 안 했냐? 사람이 그런 나쁜 짓을 험시로, 공부는 해서 뭣하냐!” 아들은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직이 되지 않아 무작정 상경했다. 장갑공장에서, 백화점에서 막일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열심히 뛴 덕에 돈도 벌고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세무사가 되었지만 사람들한테서 쌀쌀맞아 보인다, 날카로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가장이었고, 직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윗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서울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어머니의 일생은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위한 인고의 삶이었다. 18년의 흑산도 생활은 온몸을 혹사하는 육체노동이었고, 30여 년 서울 생활의 대부분도 오로지 아들을 위한 의지 하나로 버텨 내셨다. 자신의 인생은 돌볼 엄두도 내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중년의 대부분을 사셨던 흑산도를 떠나 아들 하나 믿고 서울에 오셨다. 모든 것이 얼마나 낯설고 외로웠을까.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철없는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밖으로만 나돌았지만, 어머니는 늘 아들의 건강과 안전만 걱정하셨다. 아들은 몰랐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이렇게 사무칠 줄은. 어머니, 감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1000 감사를 쓰지 않았다면 이렇게 소중한 것을 전혀 모른 채 인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1000 감사가 저의 감사 실천에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저에게서 그치지 않고 더 널리 퍼져 갈 것입니다. 어머니,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