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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제1장_ 세상과 마주하다 박꽃이 필 때 탯줄을 묻다 우리 집은 반월당 아버지의 발자취를 본다 내 별칭을 붙여준 사람들 길에서 소중한 보물을 만나다 제2장_ 배움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두 번 입학한 초등학교 아는 만큼 보인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꿈 대학 콤플렉스를 치유하다 그의 아내는 조각상이었다 제3장_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나? 공돌이, 넥타이를 매다 공직에 첫발을 내딛다 도청에 닻을 내리다 고향에서 봉직할 때 일에서 만난 사람들 모래밭에 핀 1억 송이 꽃 공직자의 꽃이 되다 공직은 공업(公業)이다 먹물 빼고 나그네 되다 제4장_ 삶에 소중한 가치는 유효하다 가족 사진첩의 빈자리 형제자매 우애가 유산이다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들 백수 7일의 행복 저승길에서 이승으로 왔다 백 번째 원숭이의 효과 내 가슴에 값진 보물 내 마음의 거울 자전거는 스승이다 제5장_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다 제2의 인생, 첫차에 CEO 농부의 휴일 정치 문지방에 서성이다 선물은 쓰레기가 아니다 배곯은 한 끼니 7월 백수의 멘탈 제6장_ 자전 에세이 어미 우렁이 어머니의 나팔꽃 사랑 동백나무를 심은 뜻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던 날 우리 집 신앙의 가면 둥근 밥상의 의미 행복이 담긴 음식 고둥 쌈 희망고문 사람 노릇하기 어쩌다 어른 얼굴 인생이 익어 갈 때 목욕탕 에피소드 일에 군침이 넘어갈 때 나의 스승 제7장_ 서정 산문 니들이 능쟁이 맛을 알아? 천황봉에 달맞이 가다 계룡의 버들 갑천은 흐른다 낙엽이 떨어져서 해바라기의 편애 구모배를 동경한다 갯벌의 추억 가을을 타는 사내 눈사람은 추억이다 □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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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입문한 나의 공직생활은 천수답에 농사짓는 농부와 같았다. 하늘이 돕고 땀을 흘려야 볏섬이라도 거둘 수 있는 하늘 아래 첫 번째 논 말이다. 가뭄에는 하늘만 쳐다보다 고작 물 한 그릇 떠 놓고 정성껏 기우제 지내는 것이 전부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산비탈길을 따라 올라가 논두렁을 걸어 보지만 걱정뿐이지 별수가 없다. 물 한 방울이라도 논바닥을 축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을 뿐이다.
그러하듯 그 암울한 시절에 인사에서 연줄이 첫 번째라는 불공정한 공직에 들어가 보니 연줄이 없는 나는 늘 뒷전으로 밀렸다. 열 자 되는 장대를 돌려도 한 사람 닿을 데 없는, 말하자면 빽이 없는 놈은 땀만 흘리고 소득 없는 천수답에 불과했다. --- p.30 요즈음에도 가끔 꽃밭에서 무거운 꽃수레에 눌리는 악몽을 꾼다. 군대의 공수 훈련 못지않은 공직자의 투신으로 일군 「2009안면도국제꽃박람회」 때문이다. 공직생활 38년에 가장 으뜸으로 꼽는 보람은 단연코 국제꽃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이룬 것이다. 언제나 열정의 크기에 보람은 정비례한다. 지금도 공직자의 마지막 남은 영혼까지 꽃지 모래 장벌에서 뛰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 p.80 동백은 선비의 상징이다. 도톰한 이파리는 사시사철 변치 않는 초록이요, 붉은 꽃은 시들기 전에 통째로 숨을 거두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활하지 않으니 의리요, 구걸하지 않으니 결의에 찬 사내 모습이다. 보통 동백꽃은 매화와 함께 겨울의 끝자락에 핀다. 추위에 떨면서 꽃을 피우니 수정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맡는다. 목련꽃은 아름다움이 나무에서 열리는 듯 아름답지만 꽃이 질 때는 가장 추한 모습으로 한 잎 한 잎 떨어진다. 하지만 동백꽃은 노란 수술이 달린 채 목이 부러지듯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꽃이 통구조이다 보니 그렇다. 여기에 더하여 꽃은 완전히 시들어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한 번에 떨어지기 때문에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나무로 여긴다. 때문에 뭐니 뭐니 해도 동백의 백미는 낙화다. --- p.209 오늘 사 온 둥근 밥상은 단순히 새 상이 아니라 우리 예쁜 두 딸이 어른이 되어 사회 활동할 때, 한 여자가 아닌 사회 일원의 한 여성으로 당당히 참여하고 역할을 다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네모난 밥상 같은 사회는 권위적이며 여성의 한계가 있지만, 둥근 상은 자유로운 영역과 능력에 의해 인정받는 사회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 두 딸은 이 둥근 밥상을 통해서 여권신장의 마인드를 쌓는 출발점으로 삼으라는 뜻이 있다며 길게 생색을 내고 의미 있는 말을 했지만, 어린 나이여서 잘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잠재의식은 살아있으리라 생각했다. ---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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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수와 같다’라는 말이 실감 난다. 무지개가 신비롭게 보이던 어린 시절에 어리석게 빨리 중후한 나이가 되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반전이 되어 젊고 멋스런 청춘이 부럽다. 나이가 겹겹이 쌓인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의 반증이다.
반월(半月) 권오인 선생의 젊은 날은 대부분 공직에 고스란히 받쳐진 삶이었다. 그는 38여 년간 공무원으로 살아왔다. 조국 근대화에 횃불을 들고 시작한 일이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 시대를 동료들과 함께 뛰어왔다. 그러기에 나의 영혼은 아직 공직에 머물러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기획단장으로 추진했던 2009안면도국제꽃박람회다. 미국발 경제 쓰나미와 태안의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 사고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흑자를 낸 성공한 박람회로 역사에 기록됐다. 공직에서 은퇴한 선생은 이제 청산에 기거하며 인생 2모작은 엮어나가고 있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봄이면 밭 이름 짓는 농부로 지내고 다른 날은 재능기부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서생으로 세월을 낚으며 살지만, 여전히 분주하다. 어찌 보면 허튼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마음은 한가하다. 땀의 대가는 보람이다. 비단 공직뿐만 아니지만 자신의 열정만큼 보람의 가치는 다르다. 여기에는 태안군민의 정성과 국민의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또 도에 홍보업무를 담당하던 때 지역신문에 광고 등 지원책을 최초로 마련하여 풀뿌리 언론 발전에 기여했다. 이보다도 도청 노동조합에서 직원들의 투표로 뽑은 최고 공무원에 선정됐던 것도 큰 보람으로 생각된다. 한편 못다 이룬 일도 회한으로 남지만 되새김질을 한다. 과거의 힘은 반성에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인간사 새옹지마다. 어려운 인간관계로 살 일은 아니다. 38년도 바람이 나뭇가지를 지나가듯이 그렇게 가버렸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어렵다고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 나의 탯줄을 묻은 태안은 어머님에 품이다. 나를 길러주고 쉴 수 있는 곳도 태안이다. 그러기에 고향은 내 가슴에 산다. 이젠 내가 태안에 보답할 차례이다.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태안을 위해 작은 봉사를 하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사회복지 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직 크게 활동하는 것은 없지만 뜻을 함께한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또한 여러 분야에서도 동참하고 싶다. 오늘날의 패러다임은 소통과 연대의 합리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의 개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