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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1부 시진핑의 중국 어디로 가나 1장 시진핑은 왜 한국을 중국의 일부라 말하나 2장 시진핑은 왜 6.25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라 주장하나 3장 시진핑은 왜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나 4장 시진핑은 왜 마윈을 때리나 5장 시진핑은 왜 중국 대문에 빗장을 거나 6장 시진핑은 왜 신천하주의를 거론하나 2부 시진핑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나 1장 시진핑 DNA 1 - 권력이 진리다 2장 시진핑 DNA 2 - 전통의 수성 3장 시진핑 DNA 3 - 홍색의 강산 사유 4장 시진핑 DNA 4 - 반역의 투쟁 본능 5장 시진핑 DNA 5 - 신하에도 굽히는 현실주의 6장 시진핑 DNA 6 - 소아 버리고 대아 취하는 집단주의 3부 시진핑은 어떻게 중국을 다스리나 1장 시진핑과 공산당 누가 누굴 이용하나 2장 시진핑의 권력엔 완성이 없다 3장 중국인은 왜 들고 일어나지 못하나 4장 애국을 머리에 쏟아 붓는다 5장 중국의 하늘에도 신은 존재하는가 6장 시진핑의 말은 왜 이렇게 거친가 7장 한 번 연 맺으면 끝까지 간다 4부 시진핑 앞엔 어떤 난제가 놓였나 1장 미국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2장 중국 통일의 대업 이룰 수 있나 3장 시진핑은 언제까지 집권할 것인가 4장 시진핑은 독재자 딜레마에 빠졌나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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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중국을 보려면 ‘유일한 존엄(定于一尊)’이 된 시진핑을 알아야 한다. 시진핑은 두 개의 야망을 추구 중이다. 국내적으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꿈(中國夢) 실현, 대외적으론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다. 중국 인민의 영수를 넘어 세계 만인의 영수가 되겠다는 야심이다.
시진핑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 전쟁이며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변한다. 중국은 1950년 6월 터진 건 조선 내전이고,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인민지원군이 10월 19일 한반도에 들어와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부터라고 말한다. 이후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미군을 38선까지 몰아냈으니 승리한 전쟁이란 논리다. 시진핑의 지난 10년 치세(治世)는 관리형보다는 투사형에 가깝다. 마오쩌둥과 닮았다. 우선 마오 시대 유행한 정풍운동(整風運動) 재개가 그렇다. 비판 세력에 대한 철저한 탄압 역시 닮았다. 2018년엔 헌법을 수정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앴고, 2022년엔 10년 집권의 관례를 깨고 당 총서기 3연임에 성공하며 마오와 같이 종신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마오 시대에 유행했던 우상화 바람도 분다. 중·고교의 모든 교재는 과목을 불문하고 ‘시진핑 사상’의 가르침에 따른다. 시진핑 집권 이후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시진핑은 2023년 3월 “민영기업은 우리 편”이라고 말했으나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기업가 마윈(馬云)을 몰락시켜 해외를 떠도는 존재로 만들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중국을 알기 어렵고 시진핑의 속내를 가늠하기 힘든 이유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경제는 ‘국진민퇴(國進民退)’란 말을 듣는다. 국유기업이 약진하고 민영기업이 퇴조한다는 뜻이다. 시진핑은 왜 이렇게 권력 집중에 집착하는 걸까.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났을 때의 처참함을 그 누구보다 더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권력을 잃고 반동으로 몰리자 그 자신이 ‘100번 총살감’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시진핑의 쓰라린 성장 경험이 그를 광적으로 권력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의 서방에 대한 껄끄러운 기억은 첫 결혼 실패와도 연결된다. 그의 첫 결혼 이야기는 공식적인 문건엔 등장하지 않는다. 대략 1979년 결혼해 1982년경에 이혼한 것으로 보인다. 첫 부인은 주영대사 커화의 딸 커링링(柯玲玲)이다. 커링링은 시진핑보다 두 살 정도 많았고, 키가 크고 예뻤으며 성격은 솔직한 편이었다. 둘은 영국 유학 문제를 놓고 사이가 틀어져 거의 매일 싸우다시피 했다. 커링링은 시진핑과 함께 영국으로 가서 2~3년 유학하기를 원했으나 시진핑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타협에 실패해 커링링 혼자 영국으로 떠나며 결혼은 깨졌다. ‘만물의 주석’이라는 말만큼 중국의 모든 권력을 한 손아귀에 틀어쥔 시진핑의 현재 위치를 잘 설명하는 말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시진핑은 자신의 지시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관철되도록 요구한다. 위대한 지도자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바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법이다. 시진핑에게 “어릿광대”라고 직격탄을 날렸던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强)은 18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고, 시진핑에게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던 장군 류야저우(劉亞洲)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홍콩 언론은 전한다. 시진핑은 4연임에 도전할까? 2022년 10월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세 번째 총서기가 되고, 2023년 3월엔 세 번째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이 2027년엔 과연 네 번째 총서기에 오르며 20년 집권의 서막을 열 수 있을까? 이는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무조건 그렇게 된다고 보면 된다. 시진핑을 이을 후계자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시진핑이 20년이 아니라 25년 정도 집권할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이후 덩샤오핑이 공들여 구축한 집단지도체제를 허물고 헌법 수정까지 하는 등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중국의 1인자가 됐다. 독재 체제는 부정적인 유산을 남기기 쉽다. 그중에서도 1인 독재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독재자의 딜레마’란 말이 있다. 독재자는 자신의 지위를 남이 노릴까 항상 불안해하며 사람을 믿지 못한다. 측근조차 말이다. 그래서 무능한 자들로 주변을 채우다 보니 국정 운영이 엉망이 되며 오히려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시진핑이 앞으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바로 1인 독재 리스크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