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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의 글
머리말: 미술의 세계화와 한국성의 이슈 제1장 뉴욕 미술계와 한인 미술가 공동체 제2장 한국에서 순수 기억을 만든 미술가들 제3장 한국에 대한 유아기의 블록을 가진 미술가들 제4장 기억에 없는 한국 문화를 전수받은 미술가들 제5장 한국 문화의 가장자리를 만드는 아웃사이더 결론: 정동이 이끄는 실천을 향하여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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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 능력에 따라 세 유형으로 미술가들을 구분하였다. … 성인이 되어 뉴욕 미술계에 진출한 미술가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이민 간 미술가들, 그리고 한국인 부모 밑에서 미국에서 태어난 코리안 아메리칸 미술가들의 상상계와 상징계는 미술계에서 다르게 작동한다.
--- p.12~13 뉴욕 한인 미술가 공동체는 뉴욕 미술계와 역사를 같이한다. 뉴욕 한인 미술가 1세대는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 1970년대에 뉴욕으로 이주한 2세대의 화풍은 1세대 미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경향을 보여주었다. … 비주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1980년대 이후 뉴욕 미술계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 (3세대는) 한국의 문화유산, 도교, 선불교의 철학을 소재 또는 주제로 삼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술가들이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던 배경은 뉴욕 미술계에 불기 시작하였던 포스트모던 다문화주의이다. --- p.58~60 뉴욕 미술계는 한국 미술가들에게 주류 미술가들과 구분되는 비주류의 “한국적” 작품을 요구하였다. … (그러나 한국) 미술가들의 시각에서 상징계의 대타자가 기억하는 한국성, 즉 불교와 도자기의 도상은 더 이상 그들의 삶의 표현이 아니다. 이와 같은 미술가들의 자각은 대타자의 욕망과 그들의 이상적 자아의 충돌을 초래한다. 그 결과, 미술가들은 신탁을 걸기 위해 대타자의 질문을 듣고자 한다. “네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 p.167~168 민영순, 배소현, 그리고 진신에게 한국은 기억 속의 나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에서 사용하였던 모국어를 현재는 더 이상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유자재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런 데다 한국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있다. 이러한 언어 상실과 기억의 희미해짐을 대체하기 위해 욕망이 자리 잡는다. 그것은 강도의 전환에 의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국을 신화화한다. “한국은 유산이고 바다이고 심연이다.” 그렇게 한국은 전설이 된다. --- p.189 미국에서 한국인 부모 밑에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바이런 김과 마이클 주의 정체성은 성인이 되어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과 분명 다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존재적 특성을 가지게 하는 이들의 순수 기억은 한국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 이들에게 한국은 전적으로 부모의 나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들이 미국인과는 다른 문화적 차이를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에 기인하여 마이클 주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세계인”을 지향한다. --- p.253~254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동일성”으로서 사전에서 정의하는 “정체성(identity)”은 변이와 변화에 따라 분리가 불가능한 다양성을 가진 “다양체(multiplicity)”로서 재정의되어야 한다. --- p.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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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 미술의 중심지 중 한 곳인 미국의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미술가들에 관한 현장 연구를 심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뉴욕은 여러 인종과 민족이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로 문화 간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국제 도시이다. 그와 같이 방대한 시각 문화 공간에서 각기 다른 민속적, 국가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전통과 유산을 가진 세계 각국의 미술가들이 다른 문화와 상호작용하면서 색다른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뉴욕은 다른 국제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인 미술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더욱이 이곳에는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와 맞물려 다양한 작가층이 공존하면서 많은 문화적 갈등이 목격되고 있다.
1장에서는 뉴욕 미술계와 한인 미술가 공동체 형성의 역사를 알아본다. 뉴욕 한인 미술가 공동체의 역사는 뉴욕 미술계가 형성되던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뉴욕 한인 미술가 공동체는 뉴욕 미술계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 한인 미술가들의 미술 양식은 또한 뉴욕 미술계의 경향과 유기적 관계에 있다. 뉴욕 거주 한인 미술가들은 뉴욕 미술계에서 성행하는 양식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면서 그들의 작품 세계를 개척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한국 미술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한인 미술가들의 예술 활동은 뉴욕 미술계뿐 아니라 한국 미술계와도 영향 관계에 있다. 1장은 뉴욕 미술계의 성장을 뉴욕 미술 양식의 전개와 관련지어 알아본다. 그러면서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 제작의 형식, 그들이 사용한 매체와 재료 및 기술 등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형식이 어떻게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2장에서는 한국에서 미술 학사학위 취득 후 다음 단계인 미술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또는 미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할 목적으로 뉴욕에 정착한 미술가들에 대한 사례 연구를 서술한다. 이와 같이 성인이 되어 미술계에서 활동한 미술가들을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한국을 떠난 이민자 미술가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코리안 아메리칸 미술가들과 구분하기 위해 “한국에서 ‘순수 기억’을 만든 미술가들”로 부르고자 한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한국 미술가로 정의한다. 이 장에서는 먼저 이들 미술가들의 예술적 경력, 의도, 목적, 가치, 그리고 그들이 제작한 미술 형태를 묘사하고 분석한다. 그런 다음 이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특징을 해석한다. 성인이 되어 뉴욕에 진출한 미술가들은 뉴욕 미술계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먼저 그 제도권에서 통용되는 미술 언어를 익혀야 한다. 따라서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에게 뉴욕 미술계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라캉의 언어로 말하자면 “상징계”이자 절대 권력의 “대타자”이다. 미술가들의 정체성의 변화 과정은 자크 라캉과 철학자 질 들뢰즈의 이론을 통해 해석한다. 3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민자 미술가들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본다.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이들의 한국어 구사력은 좋은 편이 아니다. 이들은 적절한 단어와 어휘 사용에 의한 한국어 대화가 어렵다. 그와 같은 소통 능력의 부족 때문인 듯, 이민자 미술가들과 성인의 나이로 뉴욕 미술계에 진출한 한인 미술가들과의 관계는 긴밀하지 않다. 이들에게 한국은 이미 “떠난” 나라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민자 미술가들은 스스로를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련된 기억 속의 나라이다. 그런데 그 기억은 매우 단편적이어서 전체적인 배경과 연결되지 않는다. 조각나 부유하는 기억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대한 ‘유아기의 블록’을 가진 미술가들”이다. 이와 같은 제반 특징을 가진 이민자 미술가들은 앞 장에서 파악한 미술가들, 즉 한국에서 순수 기억을 만든 미술가들과 뚜렷한 정체성의 차이를 보인다. 이민자 미술가들의 정체성의 제반 특징을 그들이 제작한 작품과 관련지어 해석한다. 4장에서는 미국에서 한국인 부모 밑에 태어난 미술가들의 정체성의 형성과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한국에서 학사학위 취득 후 성인의 나이에 뉴욕 미술계에 진출한 첫 번째 유형의 한인 미술가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두 번째 유형의 미술가들과 달리, 세 번째 유형의 코리안 아메리칸 미술가들은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한국은 직접 체험한 나라가 아니며 부모로부터 배운 나라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지리적이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는 한국 문화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체험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순수 기억 또한 부재하다. 따라서 이들은 “기억에 없는 한국 문화를 전수받은 미술가들”이다. 이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한 욕망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미국인 또는 코즈모폴리턴으로 정의한다. 문화적 정체성 의식이 부재한 대신 이들 미술가들은 코즈모폴리턴의 시각에서 21세기 삶의 조건을 조명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이와 같은 조건의 코리안 아메리칸 미술가들의 정체성을 그들의 작품과 예술적 의도와 관련하여 파악한다. 5장에서는 한국의 영토 밖에서 활동하는 세 유형의 미술가들에게 제기하였던 질문, “누가 한국 미술가?”에 집중하고자 한다. 누가 어떠한 이유에서 한국 미술가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들뢰즈와 과타리가 개념화한 “다양체”를 해석하기로 한다. 정체성은 한 개체를 확인하는 특성이다. 그런데 본질주의에 입각한 정체성의 개념은 우주와 인간의 특징을 담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느 하나로 특징되는 우주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은 변화를 거듭하며 여러 양상들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한 인간의 특성을 정확하게 확인한다는 뜻을 가진 정체성은 사실상 무의미한 개념이다. 들뢰즈와 과타리에게 우주와 인간은 정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체”인 것이다. 국가라는 다양체 안에는 특이자로서 아웃사이더가 존재한다. 틈새 공간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들은 문화의 가장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순수 기억과 함께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 한국에 대한 유아기의 블록을 가진 이민자 미술가들, 그리고 한국 밖에서 태어나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서도 한국의 문화유산을 가진 미술가들. 이들 모두는 한국의 외곽에서 한국 문화의 가장자리를 만들고 있는 아웃사이더 미술가들이다. 이들이 다양체 안에서 어떻게 한국 문화의 가장자리를 만들고 있는지를 파악하기에 앞서, 이 장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이 세 유형의 아웃사이더 미술가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다른지 다시 확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