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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사랑은 지지 않는다
공광규 * 3월의 안부 길상호 * 지나가는 말 김솔 * 고백 김태형 * 달의 뒤쪽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니다 김하늘 * 안단티노 박소란 * 주소 송재학 * 입술 유희경 * 뿌리 윤석정 * 내 마음의 뿌리 이선욱 * 작별 전형철 * 오늘의 독경 정호승 * 그리운 자작나무 최광임 * 구즉 묵집에서는 한보경 * 뒷덜미 제2부_바람은 지지 않는다 김성규 * 만삭(滿朔) 김준현 * 한 줄의 현악기 김효연 * 증인 류근 * 겨울이 와서 문인수 * 만촌(晩村) 박준 * 파주 안현미 * 깊은 일 이장욱 * 표백 이종암 * 절 이하석 * 숲 최진 * 빈 들 추종욱 * 법전의 역습 제3부_별은 지지 않는다 구광렬 * 間 44 김사람 * 영원을 부르는 벨칸토 창법 김윤이 * 오전의 버스 노미영 * 소금 박물관 박세미 * 팔자 박현수 * 가방에 손을 넣을 때 사이토우 마리코 * 비밀 손미 * 수원 윤동주 * 태초(太初)의 아침 이혜미 * 목련이 자신의 극(極)을 모르듯이 장승리 * 호위병들 정한용 * 벽 허연 * 가시의 시간 1 제4부_기억은 지지 않는다 강성은 * 아홉 개의 달이 떠 있는 밤 고영 * 킥킥, 유채꽃 권선희 * 꽃에 대하여 김명기 * 막걸리집 미자씨 김용락 * 어머니 도종환 * 꽃씨를 거두며 박호민 * 빨래집게 박후기 * 멸치 배옥주 * 글씨 손택수 * 실버극장 송승언 * 영원한 평화 전세중 * 빈자리 정훈교 * 갈 수는 있어도 올 수는 없는 당신 부록_여행에 관한 자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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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기설기 뻗어나가는 철로 위로 아지랑이가 홀로그램처럼 피어오른다. 새의 발자국이 구름이 바싹 찍힐 정도로 마른 대낮. 작열하는 햇볕을 피할 그늘 하나 없는 간이역 앞에서 덩그러니, 혼자가 되었다. 가슴에 찍혀 있던 말, 당신에게 꼭 전하리라 마음먹었던 말은 차마 올라오지도 내려앉지도 못한 채 그대로 엉겨 이내 삼켜버린다. 새삼 놀랍지도 않을 혼자라는 존재. 새삼 놀랍지도 않을 간이역 앞 사람들. 떠나야 할 시간도 기다려야 할 그리움도 모두 귀찮아져 버릴 만큼의 열기가 역전을 달구고 사위어갈 때쯤, 식당에 앉아 내장탕을 주문한다. 행주가 지나간 결대로 물자국이 남은 테이블에 더운 선풍기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파리들. 연신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저 ‘태양’ 때문이라고. K
--- 본문 중에서 너는 늘 오늘을 말했지만 그건 언제나 어제였지 가여워라, 오늘이라고 말해줄게 네가 어제의 사람이라도 괜찮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너 뿐이어도 괜찮아 괜찮은 게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먼 기억에서 기생해 형광색 다족류 벌레처럼 언 가슴으로 너를 사랑하기 10초전, 나는 내 멘탈이 싸구려였던 걸 알았지 이어폰을 배꼽에 꽂고 알몸으로 허밍하고 울먹이고 습도가 높아지고 멀어지고 곁을 내주고 손을 뿌리치고 키스해, 이해 같은 거 없어 동의 같은 거 없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너의 오늘일까 미처 어제를 다 살지도 못했는데 나는 어제를 오늘이라고 믿고 어제가 오늘이어도 되는 네가 있으니깐 내 의식을 모두 어제로 끌어 모으고 괜찮아, 다 괜찮아지기 위한 진통 같은 걸 거야 월경처럼 어제를 뱉어내도 돼 라고,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네가 있다면 나는 더욱 먼 과거에 있을게 천천히 와도 돼 음악적 표현의 빠르기말 중 ‘안단티노’는 그 빠르기가 중간쯤 되는 지시 기호이다. 당신과 나의 일상은 지금 이와 같은 빠르기로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늘 오늘을 말했지만 그건 언제나 어제였지’처럼, 우리는 오늘에 이르고서도 어제와 오늘을 혼동하는 불확실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가여워라, 오늘이라고 말해줄게 네가 어제의 사람이라도 괜찮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너 뿐이어도 괜찮아’라고 토닥거리고, 이쪽에서 당신에게로 건네는 따뜻한 말言이 오로지 말뿐이어도 충분히 고마운 시대이다. ---「김하늘, 안단티노」중에서 자작 자작 너의 이름을 부르면 자작자작 살얼음판 위를 걷듯 걸어온 내 눈물의 발소리가 들린다 자작 자작 너의 이름을 부르면 자박자박 하얀 눈길을 걸어와 한없이 내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온 너의 외로움의 발소리도 들린다 자작나무 인간의 가장 높은 품위와 겸손의 자세를 가르치는 내 올곧고 그리운 스승의 나무 자작 자작 오늘도 너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살아온 눈물의 신비 앞에 고요히 옷깃을 여민다 한때는 깊은 숲속 하얀 그리움이었다가, 또 한 때는 몰락하여 어느 카페의 장식품이 되기도 하는 당신이 있다. ‘하얀 눈길’을 하염없이 걷고 걸어, 깊은 이름이 되는 당신이 있다. 너무 깊고 깊어 파란 하늘의 폐를 찌르고, 허공으로 번져가는 당신이 있다. 뒤돌아보지 못하고 하늘로 하늘로 치솟기만 하는 직선의 당신이 있다. ---「정호승, 그리운 자작나무」중에서 은행나무는 몸 뒤척여 남은 잎사귀 쏟아냅니다 노을을 한조각씩 물고 떨어지는 이파리 두 사람 주위로 내려앉습니다 검버섯 핀 노인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아이, 사탕을 떨어뜨립니다 개미들이 의자 주위에서 머뭇거립니다 아이의 그림자에 발이 걸린 듯 노인이 넘어집니다 지팡이를 손목에 묶어주던 햇살이 실뱀처럼 달아납니다 개미들이 사탕을 덮고 있습니다 노인의 손을 잡아당기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소리를 타고 날아오른 참새 한 마리, 발갛게 일어선 저녁노을을 뜯어냅니다 부리에 묻은 피가 하늘로 흘러나옵니다 얼마만큼 울어야 저 아이는 활짝 핀 저승꽃을 떠올릴까요 잘 익은 과육의 향기로 달이 차오르면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은행나무 위로 날아갑니다 그 누구에게도 가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말 그대로 ‘은행나무는 몸 뒤척여 남은 잎사귀 쏟아’내는 중이다. 그리고 당신은 두터운 겨울옷을 준비 중에 있을 것이다. 결의(決意)에 찼던 가을은 이제 ‘노을을 한조각씩 물고 떨어지는’ 길이다. 환한 기운과 어두운 기운이 공존하는 경계라고 딱히 규정지울 순 없으나, 이미 ‘만삭(滿朔)’이란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애초에 쇠락(衰落)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김성규, 만삭(滿朔)」중에서 인도 뉴델리의 귀부인들은 겨울이 와서 영상 10도가 되면 밍크코트를 입고 외출한다 길거리에서 헝겊쪼가리 하나로 우기와 건기를 다 보낸 사내들은 겨울이 와서 영상 10도가 되면 웅크린 채 동사하는 일이 잦다 겨울은 그런 것이다 겨울을 믿는 자에게 겨울은 외출이거나 죽음이 된다 믿고 싶지 않으나 내게도 믿을 수 없는 겨울이 와서 헝겊쪼가리 같은 마음 위로 칼빛 바람이 파르르, 제 자국을 새기고 지나간다 ‘겨울을 믿는 자에게’는 지금 이 시각이 가장 시린 겨울이고, 겨울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저 단순한 온도 차일 뿐이다. 인도의 그들 눈에 지극히 정상적인 것도, 알래스카 에스키모 눈에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영상 10도’는 에스키모에겐 끔찍한 말이다. 곧 얼음 위로 외출 나온 북극곰도 죽음을 맞이하겠다. 이런 일이 비단 온도뿐이겠는가. 나와 당신의 주변은 온도 차가 다른 것들로 넘쳐난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허공에다 대고 푸른 칼을 벼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류근, 겨울이 와서」중에서 살아 있을 때 피를 빼지 않은 민어의 살은 붉다 살아생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 아버지가 혼자 살던 파주 집, 어느 겨울날 연락도 없이 그 집을 찾아가면 얼굴이 붉은 아버지가 목울대를 씰룩여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살아생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 아버지’가 민어와 오버랩 되며 더욱 쓸쓸하다. 대한민국 아버지들은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식 때문에 그들의 청춘을 기꺼이 바쳤다. 그런 아버지가 붉게 물든 황혼에 혼자 파주에 살고 계셨던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삶 전체가 종국에는, 파주로 유배되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살’을 기꺼이 내어주고, 유폐 아닌 유폐가 된 삶이 떠오른다. ---「박준, 파주」중에서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 오늘 아침 뉴스는 저 남쪽 바다 여수에 붉은 동백(冬栢)이 한창이라고 告고한다. 생명의 잉태와 부활의 이미지가 가득한 詩시이다. 붉은 색은 血(피 혈)을 뜻하기도 하는데, 봄여름가을겨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아침에 붉은 꽃 하나 피어났다. ‘태초(太初)의 아침’에 핀 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꽃이 아니다.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오늘 아침 나와 당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미 ‘그 전날 밤’ 아득한 시간을 지나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암울한 시대를 견뎌온 꽃일 테고, ‘사랑’과 ‘독(毒)’을 견뎌온 수행의 꽃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색채를 띠면서 동시에 역사성을 갖고 있는 詩이다. ---「윤동주, 태초(太初)의 아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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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따뜻한 선물,
詩가 우리에게 주는 사랑 바람 별 기억에 관한 노래! 1부는 우리가 절정으로 달려온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지나온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2부는 어쩌면 한순간 바람이었을 것 같은, 그러나 그 바람 또한 인연이고 사랑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3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지의 그 무엇과 만나고 또 우리 모두가 간직한 마음 속 별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4부는 먼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푸른 하늘을 나는 꽃에 대한 이야기이다. 詩를 고체라고 한다면,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는 고체의 시를 녹이는 역할을 한다. 책 속에 작가의 말은 해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에 가깝다. 시를 읽고, 모든 감각을 살려 ‘시’로 답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를 ‘공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를 제대로 ‘맛’ 볼 수 있게 한다. 시어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의 맛을 찾아내어, 맑고 투명한 유리잔에 담아 놓았다. 정훈교는 “한 권의 시집을 해석하겠다고 작정하며 읽는 책이기 보다는, 따뜻한 감성으로 시 한 편 한 편에 흠뻑 젖어 보기를 권한다.”고 했다. “또한 이번 책을 통해 지역 출판사도 좋은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개된 시도 시이지만, 정훈교가 찬찬히 써내려간 에세이 또한 문학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 “얼기설기 뻗어나가는 철로 위로 아지랑이가 홀로그램처럼 피어오른다. 새의 발자국이 구름이 바싹 찍힐 정도로 마른 대낮. 작열하는 햇볕을 피할 그늘 하나 없는 간이역 앞에서 덩그러니, 혼자가 되었다.”라든가 “자작나무의 발소리가 하얀 그리움에서 연유緣由한 것이라면, 당신은 분명 귀머거리이거나 벙어리일 것이다. 오늘만은 그저 한가로이, 외로움으로 가득 찬 당신의 목울대를 생각한다.” 또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 곁에 푸른 칼 하나쯤 벼르고 있다,라 쓰고 온통 허공이다,라고 읽는다.”, “사내가 펄펄 끓는 청춘을 염전에 다 바친 것도, 바다가 펄펄 끓는 자신의 몸을 사내에게 온전히 바친 것도, 모두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등등. 외에도 부록으로 담긴 정훈교의 ‘여행에 관한 자선시’ 편에는 신안군 증도, 제주도 우도, 대구 김광석거리, 의성 조문국 사적지를 다룬 시와 에세이를 소개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아직도 그리움과 사랑을 떨치지 못한 당신에게.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는 그리움과 사랑에 관한 시 에세이집이다. 청소년은 물론 우리 모두가 “시는 너무 어렵다”고 하는 데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한 시 에세이집이다. 사랑 바람 별 기억이라는 주제로 우리 가까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당신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우리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1부는 우리가 절정으로 달려온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지나온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2부는 어쩌면 한순간 바람이었을 것 같은, 그러나 그 바람 또한 인연이고 사랑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3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지의 그 무엇과 만나고 또 우리 모두가 간직한 마음속 별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4부는 먼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고,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푸른 하늘을 나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BOOK 소믈리에가 말하다! 이 책은 시를 해석하겠다고 작정하며 읽는 에세이집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으로 대상에 흠뻑 젖어 보기를 권하는 감성일기이다. 한 편 한 편을 시가 아닌, 한 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훨씬 따뜻하게 읽을 수 있다. 시가 성가시고 귀찮은 친구가 아니라, 일상에서 문득 문득 뛰쳐나와 언제든 함께 우정을 나누는 좋은 친구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詩를 고체라고 한다면,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는 고체의 시를 녹이는 역할을 한다. 책 속에 작가의 말은 해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에 가깝다. 시를 읽고, 모든 감각을 살려 ‘시’로 답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를 ‘공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를 제대로 ‘맛’ 볼 수 있게 한다. 시어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의 맛을 찾아내어, 맑고 투명한 유리잔에 담았다. 우리는 ‘詩’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시를 읽으며, 그가 정성스레 마련한 ‘캐러멜 마키아토’ 같은 리뷰를 그저 천천히 마시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라는 문장을 읽다,』는 ‘시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천천히 그리고 달콤하게 녹아들도록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