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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 3일간의 자유 섬을 떠나며 섬을 찾는 길에서 지상에서 마지막 여행 흔들리는 성(城) |
玄吉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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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생각하면 도둑질한 추억까지도 정겹고 아름답다. 고향에서 일어나 일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지. 누구든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훔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겠어? 또 오랜 후에 그 사실을 부모님께서 아셨다고 자식을 책망하시겠어? 고향은 바로 육친의 부모야. 거기에서는 어떤 죄도 정죄되지 않아. 청해도가 완전히 딴 나라가 되었다는데, 자네 일 정도야 모두 사랑과 이해로 덮어버리겠지. 나도 하도 피곤해서 며칠 그곳에 가서 쉬어볼까 하는데, 섬이 받아줄지 모르겠어.” (p.27)
풍요를 만들어주던 이 바다와 동굴이 결국 그에게 죽음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방 되던 해였다. 읍내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삼촌은 제주에서 큰 전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가족을 이끌고 육지로 피난 가나다 미군기 공습으로 바다에서 죽고 말았다. (……) 그때 양현에게 바다는 육지로 나가려는 사람을 가둬놓는 철벽 같은 감옥으로, 곧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해 영등굿을 치르고 난 후 집안에서는 며칠 동안 준비한 대로 삼촌 가족의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을 이 동굴에서 일주일 동안 벌였다. (p.86) “인간은 어딜 가나 자기가 누리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요. 거기를 이탈하면 위험하죠. 혼잡한 서울 거리에서 차를 몰아보셨죠. 자기에게 허락된 공간이라는 것이 고작 그 차선 안 아닙니까? 전후좌우 일 미터도 여유 없지요. (……) 자, 들어가십시다. 망망한 바다를 내려다볼수록 자신은 왜소해지고, 그러면 외롭고 무서워집디다.” (p.183) “구약 요나서 이야기처럼, 저는 제가 가야할 고향을 내버리고 공연히 다른 곳을 찾아서 방황해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독도에서 한 제 작업은 고향을 작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공연한 자기 방어기제에 불과합니다. (……) 섬을 너무 잘 안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왜곡되게 알 경우도 많고, 어차피 고향을 떠나 사는 처지에 언젠가는 그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꿈꾸며 살아야 하는데, 사실은 돌아가야 할 고향을 놔둔 채 다른 곳을 고향으로 삼으려고 방황할 때가 많지요.” (p.204)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야. 모든 사물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아. 단지 그 상태만 변하는데, 그것은 다른 세계로 편입되기 위해서이지. 그러니 새 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여행 준비를 하듯이 죽음을 준비하게. 죽음을 준비해? 죽음을 준비해! 나는 한동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예정에 없는 여행을 떠나려고 나서니 이해가 되었다. 이 여행도 그 준비의 하나인가? (p.211) “조상들이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애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들이 들어오면 어차피 우리가 쫓겨나게 되니까 그런 거야.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섬을 가꾸기 위해 마음 썼지. (……) 섬을 개발하더라도 우리 식대로 하나는 말일세. 돈 가져 사업하는 사람들은 결코 밑질 장사를 하지 않는 법이네. (p.299) 청세관 건물이 청해리 포구를 가려버렸다. 전에는 이곳에 앉으면 마을 집집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겨우 포구 끝 방파제만이 보였다.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해신당에서 포구가 안 보인다면 이것은 문제다. 이제 그 해신당신은 섬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감시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게 되었다. ---p.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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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고향, 그리고 ‘섬’
소설 속에서의 섬은 회귀, 부활, 죽음, 탄생 등의 형이상학적이며 존재론적인 상징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완전한 세계이다. 육지와 달리 그 작은 섬에는 이념의 대립 같은 역사적 서사부터 어느 개인의 신화적 서사까지 혼재한다. 또한 곳곳에 동굴에서의 부활(예수 부활)이나 바다에서의 고난(요나 신화) 등과 같은 종교적 신화를 녹여냈고, 섬과 바다만의 무속적인 민속 신화 또한 그려냈다. 결국 소설은 종교적 상징과 무속적 공간이 어우러진 작가만의 새로운 공간으로써 섬을 보여주고 있다. 석양빛이 바위 위에 누워 잇는 주검 위에 내려앉았다. 주검은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와 잠시 쉬는 것 같았다. 옹달샘에 누워 있는 주검은 온통 금빛에 싸여 있다. 그것들이 주검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부활하기 직전의 주검이 저렇게 아름다울 것이다. _107p 여자는 숨을 거두었다. 선비는 여자의 부탁대로 그를 바로 그 자리에 묻고 훌륭하게 치산했다. 그 후 1년에 한 번씩 음력 정월 보름이 되면 온 섬사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었다. 섬에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그 제사는 섬의 큰 행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여기 모신 그 부인이 이 섬을 지켜주는 풍요의 신으로 믿게 되었다. _289p 섬에서 살면서 육지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고, 섬에서 떠나 육지에서 산다고 하여 섬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작가는 그런 그들을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묘사하는데,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의 인물 성균이 그렇다. 재야 변호사로 활동하다 서울지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성균은 자신이 ‘청해도’ 출신임을 부정한다. 그의 아내와 자식도 그의 출신과 고향을 모른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행〉의 ‘나’도 그렇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자신의 과거를 뒤늦게 고해성사하듯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와 뿌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들뿐일까. 우리는 종종 섬을 고립과 단절의 상징으로 삼고 있고, 섬사람들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 섬과 육지를 우열 관계로 보는 현대인들의 이분법적인 관점에 대한 작가의 우려가 소설 곳곳에 드러난다. 육지를 최고의 선(善)이자 목적지로 두는 섬사람들의 환상과 욕망은 〈흔들리는 성〉의 순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순진한 섬 처녀인 순희는 백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웅그룹에 취직하여 서울행을 결정한다. 서울에서의 정신적?육체적인 피폐함으로 순희는 섬을 지켜준 해신당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행〉의 ‘나’는 자신이 그동안 놓치고 외면했던 옛 모습을 섬에서 되찾고자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다. 섬에서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던 그는 점차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허세와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현재를 돌아보며 자각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찾았을 때, 그는 섬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 받게 된다. “섬은 내 모든 것을 다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이제 편안하게 이 섬을 떠난다. _276p 반면 섬에게 거부당한 인물도 있다. 〈섬을 찾는 길에서〉는 소설가이자 사진작가인 위영이 독도를 찾아가지만, 결국 섬은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고향인 제주를 외면하고, 독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자 방황한다. 그러나 결국 위영이 탄 배는 풍랑과 안개로 인해 끝내 독도에 도착하지 못한다. 독도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그를 알아채고 거부한 것이다. 결국 독도 상륙을 포기한 상태에 이르게 되어서야 위영은 자신의 맨얼굴과 대면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 “제 소설에는 고향 이야기가 많고, 또 고향 문제를 진지하게 탐색해보려고 썼지만, 결국 그것은 근본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염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고향을 소설로 대신해보려는 음험한 제 의도가 있었음을 제 자신이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_202p 그래서 우리는 왜 섬에 돌아갈 수 없을까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의 인물들은 정체 모를 향수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나 끝없이 이념 또는 자기 자신과 투쟁하거나 그 안에서 서성이는 경계인이다. 그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고향을 잃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역사를 져버리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제2의 고향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정착하기 위해 이념 또는 타인을 거쳐 서성이고 투쟁한다. 그 과정에서 섬과 고향은 이념과 자본에 의해 상처를 받아 변해간다. 누구나 고향을 잘 안다고 하지만 제대로 모르고 살아간다. 고향뿐인가?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고향은 아무리 붙잡아두려고 하지만, 나와 상관없이 변해간다. 자신도 그렇다.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인물들은, 아니 우리는 왜 섬에 돌아갈 수 없을까. 평론가 이재복 교수의 말처럼 작가는 이에 대한 힌트를 평화로운 화해나 협정과는 거리가 먼 소설의 결말을 통해 던져준다. 절대 치열한 자기 탐색과 반성 없이 섣부르게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소설의 결말은 우리에게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섬이 유일하게 받아준 〈지상에서 마지막 여행〉의 주인공은 죽어가는 육체의 고단함 속에서 과거 자기 자신의 삶과 정직하게 대면함으로써 원죄에서 사면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길이다. 작가는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에서 섬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여행가이드는 청해도로 향하는 여행객에게 육지에서 갖고 온 모든 물건은 쓸 수 없으니 두고 와야 한다고 안내한다. 지상에서의 맛있는 음식도, 멋진 옷차림도 잊고 오직 빈 몸으로만 청해도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래야 섬이 그들을 받아준다고 말한다. 연수는 함께 청해도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애순에게 묻는다. 애순은 대답한다. “혼자 가세요. 전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있어서 그 섬이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_36p 섬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은 받아주지 않는다. 오직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만이, 청빈하고 순수한 사람만이 섬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암시한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자신만의 섬을 갖고 있다. 그곳은 그들 각자의 고향이다. 그런 섬을 대면하고, 자신만의 고향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현세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끝없이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이 마치 고된 자기 수련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