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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프롤로그Part I. 16세기와 21세기의 대화; 메타인지, 메타버스, 메타메시지 1장. 메타인지,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루터를 만나다1. 세상을 바꾼 수도사, 그 시대를 회고하. 2. 루터의 빈자리 3. 루터, 로마 교회에 저항하다4. 루터의 킬러 콘텐츠, 게임체인저가 되다5. 루터와 공감의 창문 만들기 2장. 메타버스, 16세기 콘텐츠 전장(戰場)에서 틴데일을 만나다 1. 윌리엄 틴데일을 체포하라. 2. 콘텐츠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3. 콘텐츠 전쟁의 승자, 역사의 승자가 되다. 4. 플랫폼과 콘텐츠,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5. 윌리엄 틴데일과 공감의 창문 만들기 3장. 메타메시지, 16세기와 21세기의 대화에서 조지 오웰을 만나다1. 윈스턴과 텔레스크린, 그리고 빅데이터 2. 포노 사피엔스, 그리고 〈1984〉 3. 번역에 목숨을 걸어라 4. 번역되지 않은 곳, ‘동물농장’5. 조지 오웰과 공감의 창문 만들기6. 한 걸음 더, 칼 비테가 제시하는 메타메시지 만들기Part II. 죽음의 위협 속에서 만들어진 콘텐츠 4장. ‘오직 성경’을 꿈꿨던 화가 한스 홀바인을 만나다1. 교회의 양심, 양심의 교회 2. 한스 홀바인이 제시하는 ‘교회’3. 예수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4. ‘오직 성경’을 외치다5.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보여주다 5장. ‘하나님 나라’를 보여준 화가, 피테르 브뢰헬을 만나다1. 교수대가 세워지던 시대 2. 바벨탑을 쌓는 세상에서 3. 참된 교회는 무엇인가? 4.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5.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소서 6장. 목숨을 걸고 고백한 ‘사도신경’, 미켈란젤로를 만나다1. 젊은 날에 찾아온 변화 2. 〈피에타〉는 ‘피에타’가 아니다?3. 미켈란젤로, 창조주를 고백하다4. 미켈란젤로의 ‘신앙고백’, 〈최후의 심판〉5. 미켈란젤로의 후일담7장.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던 화가, 카라바조를 만나다 1. 혜성처럼 등장한 화가 카라바조 2. 카라바조가 그린 하나님 나라 3.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는 주기도문 4. 일상을 견디게 하는 주기도문 8장. 눈에 보이는 ‘십계명’, 렘브란트를 만나다 1. 왕관 대신 터번을 쓴 바빌론의 왕 2. 십계명을 박살 내는 모세 3.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십계명 4. 하나님과 이웃을 연결하는 십계명 Part III. 위대한 역사, 위대한 도전, 위대한 세대 9장. 스토리텔링,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라. 1. 얼어붙은 ‘믿음’을 깬 땜장이의 이야기, 존 번연 2. 얼어붙은 ‘소망’을 깬 두 형제의 이야기, 그림 동화집 3. 얼어붙은 ‘사랑’을 깬 기자의 이야기, 찰스 디킨스 4. 공감의 창문, 스토리텔링에 도전하자. 10장. 예술, 오감으로 전하는 말씀 1. 얼어붙은 십자가. 뭉크2. 살아서 움직이는 십자가. 살바도르 달리와 반 고흐 3. 십자가를 노래하라. 바로크 음악의 삼총사, 바흐, 헨델, 비발디 4. 공감의 창문, 고립과 소통의 기로에 선 교회11장. 종교개혁으로 저항하라1. 혁명의 성채에 맞서라, 〈레미제라블〉 2. 시대의 성채에 맞서라, 〈찰리의 초콜릿 공장〉 3. 관념의 성채에 맞서라, 톨스토이 4. 광기의 성채에 맞서라, 바르멘 선언 에필로그. ‘두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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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을 도운 예술의 힘미술과 문학은 어떻게 성경을 번역했을까?“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종교개혁이 지금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종교개혁을 신앙의 뿌리로 두고 있기에 그러리라. 그렇지만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라는 말인지 모호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썩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한국교회’라는 허상을 들이대며, 그 익명성 뒤에서 던지는 일종의 ‘타자화’는 아닐까.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저 교회는 저래서 안 되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들이 외치는 종교개혁의 실체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것은 아닐까. 루터가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는데, 그것이 저절로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프로테스탄트’ 무리들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1555년이 되어서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통해 신교도들이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다. 장로교의 뿌리가 되는 칼뱅파는 1648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루터와 칼뱅이 살았을 때, 종교개혁은 이단의 불길이었다. 어떻게 종교개혁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유튜브나 언론에서 매일 쏟아지는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는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없다. 종교개혁이 당대와 다음 세대들에게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개혁자들은 성경을 그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게 글로 번역했고, 콘텐츠로 번역했다. 그것이 쌓여서 결국 종교개혁을 이루어 낸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쳤던 콘텐츠를 생각해 보자. 기독교 강요, 루터의 대교리-소교리 문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그리고 최고의 교리로 평가받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에 이르기까지 교육 내용은 성경,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종교개혁을 계승한다는 것은 이런 교육의 내용까지 이어받는 것이다. 그들은 이 내용을 교육하기 위해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의 내용을 가르쳤다. 과연 다음 세대는 위의 내용을 어떻게 접하고 이해하는가? 암기와 주입으로 외는 것 외에 제대로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예배 시간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은 주문처럼 변했고, 주기도문은 행사를 마무리하는 절차이며, 십계명은 ‘은혜’라는 이름 뒤에 밀려나 버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종교개혁’을 외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명확하다.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은 16~17세기의 예술이 되었고, 그것들이 쌓여서 시대의 문화가 되었다. 이 책은 종교개혁 콘텐츠와 시대의 예술을 접목해서 종교개혁 교육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아울러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는 방식을 현실에 접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이드와 방법을 제공한다. 이제 종교개혁을 향해 구체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제시해 본다.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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