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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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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준법정신 · 007
내가 뭐 어때서 · 035
도둑의 조건 · 065
노인을 찾아서 · 089
김 사장 · 115
해 뜨는 집 · 141
우정의 거처 · 167
주연배우 · 189
너무나 오래된 책 · 215
인형 뽑기 · 227

발문 | 김종광 · 238
작가의 말 · 251

저자 소개 1

일평생 글만 쓰고 살리라 믿었던 사람. 여러 글을 써왔지만 문학만이 채울 수 있는 갈증에 목말라온 소설가. 세상의 다양한 삶의 영역 속에 머물렀기에 소설의 자양분이 차고 넘친다고 믿는 경험 신봉자. 2012년 『작가마루』로 작품 활동 본격 시작. 현재 한국작가회의, 충남작가회의 회원. 그리고 ‘금강의 소설가들’ 회원.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30*200*20mm
ISBN13
9788966551675

책 속으로

“하, 이 사람 하는 소리 봐라.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먼 뭇 써. 적당헌 선에서 타협헐 줄도 알어야지. 아무리 자네 우리에 든 밥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허먼 뭇 쓰는 법이여!” 나는 솔직히 급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저 자리에 고구마든 콩이든 심고 밭을 일구면 될 터이지만, 슬라브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하루해가 참으로 길어 보였다.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고 여러 가지 경우를 떠올려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민호에게 직접 연락해서 집값을 흥정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좀 더 기다려보면 자연스럽게 풀릴 일이었다.
---「준법정신」중에서

성호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발길을 돌렸다. 우묵한 골짜기 드문드문 흰 눈이 보였지만 오르내리는 길에는 눈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 때 그토록 부딪혀 왔던 인간 군상들, 돈에 찌들다 못해 돈에 병든 인간들을 피해 산골 마을로 내려왔건만 이게 무슨 신세란 말인가. 몇 년 동안 심산리 사람들과의 만남은 성호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맨 처음부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성호 자신의 잘못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지러웠다. 성호는 카메라를 움켜쥐며 마을 회관 앞에 서 있을 느티나무를 생각했다. 아뿔싸! 느티나무에 흰 눈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내가 뭐 어때서」중에서

“빌어먹을 놈! 지 애비 집 한 채 남은 것조차 지키지 못하고 그 꼴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휴지 줍는 것도 이제는 힘에 부치는데…. 아! 이놈의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덥댜. 그런데 지금 경찰서 가는 것 아니지?” 아! 고물상을 찾아갈 때의 노인의 모습과 지금 노인의 모습이 어떻게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힘이 빠진, 어쩌면 넋이 반쯤 나간 노인네의 음성이었다. 풀이 죽은 노인의 질문에 김 경장이 대답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분 안 가셔도 요즘 경찰서 갈 사람 참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셔요. 그리고 어려우셔도 끼니는 꼭 챙겨 드시고요.”
---「노인을 찾아서」중에서

아나운서는 자신의 일인 듯 약간 달뜬 음성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과연 저 소식이 식당 주인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잠깐 생각을 더듬어 보는데, 어젯밤 아내가 읽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책은 ‘각자도생의 사회다. 네가 알아서 네 삶을 살아라’라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채널을 돌리자 요즘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이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민호가 그들을 따라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고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대는데 출근하는 미진 씨가 예의 그 밝은 음성으로 인사를 했다. 민호는 더 밝고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김 사장」중에서

출판사 리뷰

돈에 병든 인간들에 대한 풍자

농촌 사회에 대한 도시인들의 왜곡된 이미지는 주로 미디어에 의해 가공된다. 혹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 나가 사는 사람들의 추억에 의해 이상화된다. 황선만 작가는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의 생활도 결국 욕망의 출렁임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과장되지 않은 풍자와 유머로 그리고 있다. 첫 소설집이기도 한 『내가 뭐 어때서』는 그러한 인간 군상들의 초상으로 짜여져 있다. 추천사를 쓴 이시백 소설가의 말대로 “속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비정하여 자칫 천잡하기 쉬운 세태의 풍경들”이다. 「준법정신」의 앞부분에서 작가는 도시인들의 근거 없는 농촌에 대한 환상을 야유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 리포터라는 젊은 여자가 나와 냉이를 캐면서 “와― 흙냄새를 맡으니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어쩌구 하면서 수선을 떨었다. 농사는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꼭 봄이 되면 들을 찾아다니면서 흙 내음이 어떠니 대지의 기운이 어떠니 떠들썩거린다. 이제 언 땅이 풀리고 새봄이 찾아왔으니 방송국마다 한참 동안 봄 타령을 할 것이다
―「준법정신」 중

하지만 이런 도시인에 대한 야유는 결국 주인공인 ‘김정수 씨’ 자신에 대한 자기폭로로 이어진다. 운 좋게 소작을 부치고 있는 밭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그의 손에 들어오자 그만 자기 욕심에 덜컥 걸려들고 만 것이다. 어쩌면 “이 집 저 집 날품팔이로 고생만 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이야기에 드러나 있듯이 그동안 적잖이 힘들게 살아온 자기 삶에 대한 보상 심리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주인공은 소작 부치던 밭을 매입한 뒤로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움도 없이 방류해버린다. 이때 그가 앞세우는 것은 ‘법’인데, 도청 공무원인 며느리와 반려동물 애완용품점을 하는 아들을 앞세워 자신이 사는 마을 공동체의 윤리를 무너뜨리고 마는 것이다. 작품의 결론은 주인공이 골탕을 먹는 것으로 그치지만 이 작품은 농사를 짓던 땅이 부동산이 돼버린 세태에 대한 씁쓸한 풍자다.

작가의 세태 풍자는 「내가 뭐 어때서」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은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잊혀져간 삼산리의 광산 노동자들과 삼산리이야기협동조합을 꾸려 군청에 지원한 사업이 선정된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성호와 탄광 노동자 생활을 접고 식당을 하는 달수, 영덕, 달수의 조카 철민이 한 팀이 돼 생애사 기록 사업 공모에 선정되었지만 달수, 영덕, 철민의 욕망에 배신당한 성호의 이야기이다.

“야, 영덕아! 순진헌 소리 허덜 말어. 공모 신청인지 뭔지를 누구 이름으루 혔냐? 협동조합 이름으로 혔잖어! 내가 이사장이구, 너희 둘이 이사 아니냐. 세상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겨. 사실상 성호 성님이 무슨 자격으로 요구헐 수 있겄어. 안 그려? 더구나 동네에 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까지 우리가 챙겨야 헐 필요가 있겄어?”
―「내가 뭐 어때서」 중

성호는 다시 한번 “돈에 찌들다 못해 돈에 병든 인간들을” 마주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병든 인간들”은 이미 서울에서 숱하게 만났던 것이고 그들을 피해 산골 마을인 삼산리로 왔지만, 거기에도 그런 인간들은 있었던 것이다. 성호는 눈 녹은 느티나무라도 찍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더라도 자신의 눈에는 “보일 것이다”고 자위하지만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건대, 작가의 그런 바람은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자기 욕망에 대한 소설적 보고

「해 뜨는 집」, 「우정의 거처」는 후일담 소설의 형식인데, 여기에서도 자기 욕망이 먼저 앞서는 인간 군상들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특히 「해 뜨는 집」의 경우 학생운동 시절의 추억에만 빠져 있을 뿐, 결국 자기 욕망에 충실한 등장인물들에 대해 주인공인 ‘인수’가 보여주는 반응은 도덕적 비난에 그치지만, 「준법정신」의 ‘김정수 씨’나 「내가 뭐 어때서」의 달수와 영덕, 철민의 원형인 것처럼도 보인다.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뭐 어때서」에서 성호가 “서울에서 살 때 그토록 부딪혀 왔던 인간 군상들”을 언급한 것도 심상치가 않다. 무엇보다도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 것에는 도시의 욕망이 농촌으로 흘러들어온 사회적 배경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뭐 어때서」에서 은연중 드러난다.

요즘은 이 마을도 도시와 똑같이 저마다의 울타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지 않던가. 마을 공동체라는 말은 역사책 속으로 숨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내가 뭐 어때서」 중

이런 세태와 「해 뜨는 집」에서 대학 시절 때 은사인 김동현 교수를 대하는 변호사 친구 강성진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김동현 교수는 “작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공천 심사위원”이었으며 “게다가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분으로 무슨 국무위원 후보로도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김동현 교수를 대하는 변호사 친구 강성진의 모습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속물의 전형이다. 비록 인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학 시절 단골집인 ‘해 뜨는 집’으로 향하는 것밖에 없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 욕망에 취해 사는 우리 현실이다.

서글픈 현실에 굴하지 않는 건강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김 사장」에서도 「내가 뭐 어때서」의 달수, 명덕, 철민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는 바로 ‘김 사장’인 민호의 친구 필재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궤멸적인 타격을 받을 때 배달을 통해 나름 성업 중인 필재는 ‘더 많이’ 벌지 못해 불만인 인물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힘들어 하는 친구인 민호에 대한 염치와 예의가 없는 인물이다.

“아, 김 사장! 그건 모르는 소리야! 나는 밤에 맥주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다구. 그런데 이젠 맥주를 한 번 떼면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야! 오늘도 이젠 장사 끝이지. 원래는 지금부터가 피크인데 말이야. 그러구 소득이라는 것이 말이지, 월 몇백 벌던 사람은 일이백 떨어질 테지만 이삼천 벌던 사람은 그 떨어지는 단위가 달라.”
―「김 사장」 중

힘든 와중에서도 민호는 주방 아르바이트인 미진과 계속 가게를 꾸려나가겠다고 다짐하지만, 이것도 사실 다짐 이상의 의미는 없다. 어쩌면 소설가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일지 모른다. 황선만 작가의 첫 소설집 『내가 뭐 어때서』는 세태 풍자에 머무는 작품집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욕망에 눈이 번들거리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소설적 보고다.

작가의 말

기차역 대합실이나 시골 오일장은 품이 넓다. 그곳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머문다. 선거 때면 정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기차역이나 오일장이고, 젊은 부부가 가끔 아이들 데리고 이색 여행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 장날이면 관성처럼 장터로 나가는 어르신들이 아직도 많다. 그만큼 장터나 대합실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패자와 승자가 뒤섞여 있지만 가장 인간적인 표정이 웅성대는 곳이다. 어린 시절 내 사색이 시작되었고 생각의 물줄기를 길어 올릴 마중물이 아직도 가득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길어 올린 날것 그대로의 글을 쓰고 싶다. 아프지만 유쾌하고, 슬프되 비겁하지 않은 글로 당대인들과 동행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서로 가장 따스한 표정으로 마주하고 싶다.

2023년 가을 풍경을 마주하며, 황선만.

추천평

황선만 소설가의 첫 소설집 『내가 뭐 어때서』는 달항아리를 닮았다. 열 편의 이야기가 실린 소설집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일별하는 일상들을 꼼꼼히 챙겨 담백한 문장으로 빚어내고 있다. 기발하거나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일관된 호흡으로 담아내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준법정신」에서 「인형 뽑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과 군상들이 일궈내는 이야기들의 풍경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속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비정하여 자칫 천잡하기 쉬운 세태의 풍경들을 부양한 힘은 어디에 있을까. 현실감 있는 묘사와 인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안목도 한몫했지만, 잔잔한 어조의 이면에 잠복한 풍자의 예각에 주목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을 향하게 될 그 예리한 풍자의 칼날을 벼르며 장차 이어 나갈 소설의 항행이 기다려진다. 변질되고, 오염되며, 갈등하는 세태 속에서 고심하고, 때로는 체념하려는 인물들을 추슬러 좀 더 낯설고 파격적인 이야기의 파고 속으로 즐거이 뛰어들기를 기대하며, 황선만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 세태의 닻이 아니라 돛이 되기를 바란다. - 이시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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