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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3부 4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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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 진입로 틈에 볼썽사납게 삐져나온 잡초를 뽑고 있을 때였다. 깊고 거친 비명이 들렸다.
---「첫 문장」중에서 “얼마나…… 오래 묻혀있었죠?”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마당 흙이 알칼리성에 가까운 덕분에 옷이나 신발 일부 남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1970년대보다 더 이전은 아닐 거로 추정하는 정돕니다. 부패 상태로 보면 1990년 이후는 아닙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집에서 두 사람이 살해됐다. 나의 목가적인 시골집에서. 모든 것이 돌연 어둡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경찰에선 1970년부터 1990년 사이에 그 집에서 산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을 조사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댁의 전 소유주였던 로즈 그레이 씨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방이 기울어진다. 로즈 그레이는 우리 할머니다. --- p.24 오늘은 일찍 일을 마쳤다. 늘 그러듯 매주 목요일이면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집 밖에 기자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지난주에는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했다. 떠올리니 불쑥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목요일과는 다르다. 오늘 할머니 맞은편에 앉으면 오래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고 싶어질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어쩌다가 할머니의 정원에서 살해당하고 매장됐을까? --- p.26 모호하고 뒤틀린 기억이 머릿속에 스쳤다. 마당,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놀이로 간간이 어둠이 걷히던 기억이 언뜻 떠올랐다. 하지만 확실히 떠오르기 전에 날아가 버렸다. 마치 바람에 날린 민들레 홀씨처럼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 p.57 책을 받아서 앞표지가 보이게 뒤집는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어떤 기분인지 안다. 할머니는 늘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과거에 대해서도, 사랑했던 사람, 남편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로즈 그레이에게 엄마가 되기 전이나 할머니가 되기 전에도 인생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장미꽃을 넣은 시집을 받는 인생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던 인생도 상상할 수 없었다. --- p.125 눈에 갇힌 며칠 동안 우리는 집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을 보냈어. 영원히 그렇게 살아도 좋았을 거야. 세상과 단절된 채로 우리 셋이서만.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흑백 영화를 보고 직접 만든 수프를 먹었어. 난 특별히 너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었단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기분이었어. --- p.268 우린 너무 행복해서 경계를 유지하는 것도 잊어버렸어. 계속 그랬어야 했는데. 훨씬 더 조심했어야 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을에서 남자 방문객이 더는 목격되지 않자 차츰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렇지 않은데도. 순진하게. --- p.291 로나는 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낭만을 잊지 않는 아이. 하지만 로나도 같은 마음으로 정말 그렇기를 희망했다. 얼마 뒤 아파트로 돌아온 로나는 와인을 한잔 따라서 발코니로 나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연인이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잘 차려입고 밤 외출을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다. 이런 분위기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 p.479 너는 너 자신 그대로 독립된 한 사람이야.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렴. 나의 아름다운 롤리. --- p.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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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마당에서 시체가 나오기 전까지는”
파편화한 기억, 집안 곳곳에 숨겨진 결정적 단서, 서로를 지키는 구원의 힘 어린 부부인 새피와 톰. 그들은 코츠월드의 예스러운 마을, ‘베거스 눅’으로 이사한다. 이들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작고 낡았지만 사랑스러운 신혼집을 보수하기로 한다. 그렇게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당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오는 한 남자… 구덩이에서 나온 사람 손가락뼈. 유골은 무사히 수습되었지만, 그 죽음에 관한 비밀이 집안 곳곳에 달라붙어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은 과거 이 집에 산 적이 있던 ‘로즈’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새피가 사랑해 마지않는 할머니, 알츠하이머병을 앓아 기억이 사라져가는 할머니, 로즈를….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라는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도 조금씩 기억의 퍼즐을 늘어놓는다.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그 집이 로즈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푸르고 단정했던 앞마당에서 30년 전 그날, 무엇을 보았는지. 로즈가 지키려 했던 것은, 또 내던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엄마, 딸, 손녀로 대를 이어 전개되는 여성 서사 상상할 수 없는 반전, 로맨틱 서스펜스! 주로 여성의 삶을 다루고 쓰는 영국의 스타 작가, 클레어 더글라스. 『진 버든』은 그의 야심에 찬 신작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여성의 삶에 드리워진 기쁨, 두려움, 사랑 등의 입체적 면모를 잘 보여 주었다. 심지어는 그 방식마저 특별하다. 사랑에 대해 말하며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 등의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딸의 손을 꽉 잡은 엄마도 두려움에 떨 수 있고, 엄마로 살아가는 와중에도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우리는 모두 한낱 인간일 뿐이니까. 그렇게 엄마, 딸, 손녀가 서로를 지키고 연대하면서 어떻게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가는지를 잘 표현한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은 응당 우리가 그렇게 누려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행여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다 해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려 주는 책이다. 클레어 더글라스가 가진 따뜻하고 강인한 시선은 우리가 진짜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 그 인물로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앞마당에 묻힌 시체, 마음에 묻은 기억 내가 모르는 나를 아는 사람, 그 사람의 기억이 지워져 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섬세한 내러티브가 압도적인 소설이다. 기억을 잃어 가는 여자,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딸과 손녀. 하지만 세 사람의 운명은 유골이 발견되면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나는 모르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면 어떨까?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그가 정신을 차린 순간이 기회다!” 이윽고 밝혀지는 비밀은 어둡지만 찬란하다. 선데이 타임즈, 아마존, 독일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진 버든』은 평범해 보이던 인물들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내며 독자의 가슴을 움켜쥐게 만든다. 반전,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말로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다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읽기를 추천한다. 기억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지만 그곳에 온전히 남아 있는 ‘사랑’ 우리 삶은 한 가지 감정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마냥 기쁘거나, 내내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나를 둘러싼 이전의 세계를 떠나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감정이 조금 더 다채롭다. 이 책의 저자인 클레어 더글라스는 이런 점을 잘 포착해냈다. 그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온전히 홀로 살아가고자 했던 여성들의 삶. 그 안에는 기쁨도, 질투도,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로즈를 두려움 속에서 일으킨 힘은 오직 ‘사랑’이었다. 극중 인물은 모르고, 독자만이 훔쳐볼 수 있는 ‘로즈의 일기’는 이 모든 비밀을 담은 열쇠가 되어준다. 그러면서도 로즈가 꿈꿨던 이상향의 삶, 그리고 딸 ‘롤리’를 향한 사랑을 가시적으로 아주 선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젊은 시절의 로즈, 아직 기억이 온전할 때의 로즈가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그 절박함을 훔쳐볼 수 있다. 삶의 모든 슬픔을 떠나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우리는 기억하기에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기에 기억을 붙잡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클레어 더글라스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기억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지는 것이냐고. 그러면 그 속의 인물은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것이 파편처럼 흩어진다고 해도, 사랑만은 온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고. |